산행의 탈을 쓴 중년 불륜<속으로>

가족들 속이고 회원들 속이고 ‘이불 속 화끈 데이트’

중년들의 불륜 문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불륜을 맺고 있는 중년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히 각자 가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사정을 잘 알고 알아서 배려함으로써 이들의 관계는 은밀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섹스에 대해서도 더 이상 부끄러워할 것도 없기 때문에 과감하게 성관계를 맺고 이를 통해 비밀스러운 만남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불륜을 시작하는 ‘블루칩 커뮤니케이션’이 있으니 바로 산악회다.

주말마다 산을 찾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만남을 가질 수 있고 무엇보다 ‘건강을 위해 산행을 한다’는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이 있기에 집에 말하기에도 좋다. 그렇기에 배우자는 이를 까맣게 모르게 깜박 속아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산행을 둘러싼 중년의 불륜 실태를 취재했다.


중년의 직장인 J(43)씨는 요즘 자신만의 ‘은밀한 행복’을 가지고 있다. 물론 혼란한 경제 상황 속에서 그 스스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업무에 대한 것도 그렇고 외국에 나가 있는 자녀들에게 송금해주는 것도 빠듯하다.

산악회에서의
‘전략적 실천’

하지만 언제까지나 자신을 희생하며 자녀와 아내를 위해서만 살아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해낸 것은 바로 자신만의 ‘은밀한 행복’을 채워줄 섹스 파트너를 찾는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하려니 영 쉽지가 않았다. 술집 여자를 사귀자니 자칫하면 아내에게 들킬 것 같고 그렇다고 대놓고 바람을 피우자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가정을 파괴할 위험이 있는 여성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불륜 시작하는 ‘블루칩 커뮤니케이션’으로 산악회 급부상
이메일·메신저·통화·문자는 ‘NO’ 현지 만남만 ‘OK’


거기다가 정기적이고 잦은 만남을 갖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 식의 바람 역시 꼬리가 길면 잡힐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고민 끝에 결국 그가 찾아낸 것은 산악회. 매주 정기적으로 산을 오른다는 명분 자체가 일단 기가 막히게 좋았다. 또한 산악회는 거의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점에서 뭔가 말이 통할 것 같은 여성이 있을 듯한 생각도 들었다.

그의 이런 ‘전략적 실천’ 덕분에 그는 드디어 산악회에서 은밀한 만남을 이어갈 수 있는 여성을 만났다. 물론 그들은 평소에는 전혀 연락을 하지 않는다. 이메일은 물론이고 메신저, 통화, 문자도 하지 않는다. 커뮤니케이션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이다. 그들이 만나는 것은 매주 토요일 오전 8시. 그것도 다른 산악회원들과 섞인 자리에서 만난다.

J씨는 일주일 내내 이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한다. 정말이지 결혼한 이후 이렇게 가슴 두근거리는 생활을 한 적이 있었을까 할 정도였다. 그러나 J씨에게는 또 하나의 미덕이 있었으니 혹시라도 상대가 산악회에 나오지 못하더라도 절대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런 식의 연락이 시작되면 평소에도 연락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중년이 쌓아온 세월의 지혜, 인내의 미덕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J씨는 “산행이 끝나면 회원들과 함께 파전에 동동주를 마시거나 닭 한 마리에 소주를 마신다. 물론 이때에도 ‘우리’는 멀리 떨어져 서로를 흘끔흘끔 쳐다볼 뿐이다. 하지만 회원들과 조금 일찍 헤어진 후 그때만큼은 핸드폰으로 연락해 인근의 모텔을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말이지 심장이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일주일에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하니 사랑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서로에 대한 애정과 배려는 더욱더 깊어지는 것 같다. 이런 만남을 유지할 수 있는 여자 역시 많지는 않다”고 털어놨다.

또 “서로의 가정을 철저하게 지키려는 노력과 동시에 인내 덕분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중년 불륜이 가정불화와 심지어 이혼까지 가게 되는 데에는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지키지 못해서이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끝내는 것도
자연스러워

J씨의 경우처럼 산악회가 불륜의 장소가 되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국내에서 산행이 대중화된 것은 IMF와 웰빙 바람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산행은 돈이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심 속의 자연을 한껏 느끼며 운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크게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또 빠르고 격한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중년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운동의 방법이기도 하다. 거기다가 산행 후의 동동주와 파전은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식도락이기도 하다.

문제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불륜’이 생겨난다는 것. 남자의 경우 일주일 내내 회사에서, 여자의 경우라면 역시 일주일 내내 가사과 남편에게 시달렸으니 주말의 산행은 말 그대로 ‘꿀맛 같은 휴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오픈’되고 이성을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중년 정도가 되면 이제 일상에선 이성을 만날 기회가 극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회원들과 헤어지면 핸드폰 연락 후 모텔 직행
만남과 헤어짐 ‘쿨’ 남성·여성 모두 “환영”


설사 그렇게 만난다고 하더라도 주변의 눈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산악회는 지속적으로 회원들의 가입이 있고 명분이 좋기 때문에 점점 더 불륜을 위한 장소로 변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땀을 쫙 빼는 운동을 하고 나면 남성들의 성욕이 상승하고 활발한 혈액 순환으로 인해 성관계를 위한 ‘최적의 몸’이 된다는 점에서 이들의 불륜행각은 탄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산악회에서 불륜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언제든 그것을 꿈꾸고 있다는 또 다른 중년 H씨는 “솔직히 한번 산행을 하게 되면 몸이 개운한 게 섹스가 생각날 때가 많다. 골프를 하면서 많이 걸은 후 허벅지에 혈액 순환이 잘돼서 발기까지 잘된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설마’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산행을 해보니 그것이 정말이었다. 같은 산악회 여성 회원들의 모습만 봐도 불끈불끈 솟아오를 지경이다”라고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 이어 “아직은 몸담고 있는 산악회에서 적당한 대상을 찾지는 못했지만 언제든 그런 기회가 오기를 꿈꾸고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이 전혀 없이 산행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는 남성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일부 남성회원들은 언제든 그런 불륜 상대를 찾기 위해 산행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그런 여자를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운동을 했다는 즐거움은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산행 불륜’이 더욱더 각광받고 있는 것은 헤어짐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설사 이런 관계가 잘못되거나 혹은 서로의 가정을 위협할 일이 생길 경우라면 산악회를 나오지 않으면 그만이다. 말 그대로 ‘뒤끝’이 없다는 얘기다. 그저 서로를 ‘쿨한 섹스 파트너’나 ‘엔조이 관계’로만 설정해 놓고 그 경계를 넘어가지 않으면 이보다 좋은 불륜이 없다는 것이다.

불륜 커플 늘며
모텔들 ‘함박웃음’

이는 여성들이 더욱 환호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성들은 아무래도 남성들보다 더욱 이런 불륜 관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사회적인 신분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그녀들은 공개적인 만남을 꺼리게 된다. 게다가 예상외로 남자가 깊게 다가올 때는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 하지만 이렇게 자연스럽게 남자와 만나고 또 원할 때 만남을 그만 둘 수 있으니 보다 쉽게 불륜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산행 불륜에 덩달아 신이 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산 근처의 모텔들이다. 예전에 주말에는 거의 손님이 없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주말에는 상당수의 부모들이 가정에서 자녀들이나 배우자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당연히 ‘불륜 수요’는 없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산행 불륜이 늘어나면서 이런 산 인근의 모텔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 모텔 주인은 “어느 때인가부터 등산복을 잘 차려입은 남녀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며 “이제는 거의 매주 이렇게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이곳에 오고 있어 이들이 산행을 빙자한 불륜 관계임을 알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런 일부 남녀의 산행을 빙자한 불륜행각 때문에 애매한 피해를 입는 ‘선량한 산악인’들이 대다수라는 것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불륜에 대한 생각은 눈꼽 만큼도 없지만 일부 산악동호회 혹은 산행을 빙자한 묻지마관광 등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런 사건들이 심심찮게 알려지면서 배우자의 괜한 의심 때문에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산행도 잘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근 10년간이나 매주 산행을 했다는 한 중년 여성은 “남편이 그런 뉴스를 가끔 접하면 꼭 의심을 해서 그렇다기보다는 지나가는 말처럼 산행을 그만하고 집에서 함께 휴일을 보낼 것을 은근히 권유한다.

그럴 때는 일주일을 기다려 온 큰 즐거움을 침해당한 기분에 불쾌함이 오랫동안 가기도 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녀는 이어 “불륜을 하는 거야 자기 마음대로이겠지만 그런 일부의 세태로 진정으로 산을 사랑하는 선량한 산악인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되지 않냐”고 목소리를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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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