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국민배우 송강호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4.01.14 10:4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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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만 찍으면 대박 “비결은 진정성”

[일요시사=사회팀] 영화 <변호인>이 기대 이상의 돌풍을 일으키며 주연 배우 송강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변호인>에서 가방끈 짧은 세무 변호사 송우석 역을 진정성 있게 소화해냈다는 평가다. 그만큼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송강호는 거침없는 작품 활동으로 점점 더 신뢰받는 배우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 영화가 관객 수 1000만을 동원한다는 건 매우 뜻 깊은 일이다. 지금 영화 <변호인>이 그럴 기세다. 극중 세무 변호사 송우석 역을 맡은 송강호는 지금 구름 위에 있다. 이 영화에 대한 호평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대체적으로 ‘좋아요’를 누르고 있다. 곧 ‘좋아요’가 1000만을 넘어서 한국 영화계의 큰 족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의미 있는 기록을 세울 <변호인>. 지금 송강호는 떨리는 가슴을 붙잡고 조용히 쾌재를 부르고 있다.

송우석 변호사
그리고 송강호

<변호인>은 ‘부림 사건’의 변호를 통해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배경은 1980년대 초 부산. 빽 없고, 돈 없고, 가방끈도 ?은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그는 부동산 등기부터 세금 자문까지 남들이 뭐라든 탁월한 사업수완으로 승승장구하며 부산에서 제일 잘나가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린다.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으며 전국구 변호사 데뷔를 코 앞에 둔 송우석. 하지만 우연히 7년 전 밥값 신세를 지며 정을 쌓은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국밥집 아줌마 순애(김영애)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 구치소 면회만이라도 도와주겠다고 나선 송우석. 하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진우의 믿지 못할 모습에 충격을 받은 송우석은 모두가 회피하던 사건의 변호를 맡기로 결심한다. “제가 하께요, 변호인 하겠습니더”. 진우의 변호를 맡고, 다섯 번의 공판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이야기를 담았다. 송강호의 열연이 빛을 발했다.

현재 <변호인>은 꾸준히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주연 배우 송강호를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이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 기준에 따르면 <변호인>은 정식개봉 후 2∼3일 간격으로 100만 관객씩 쌓아가고 있다. 예매율과 좌석점유율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로 봤을 때 <변호인>의 900만 관객 돌파는 확실시되고 1000만 돌파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로써 송강호는 지난해 각각 943만, 913만 관객을 모은 <설국열차> <관상>에 이어 <변호인>으로 3연속 900만 관객 흥행작 출연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물론 그 이상이 될 거라는 전망도 있다.

송강호의 이 기록은 불과 4개월여 만의 성취라 더욱 놀라움을 준다. 지난해 8월1일 개봉한 <설국열차>는 같은 달 31일 900만 관객수를 넘겼다. 송강호는 5개월도 채 안 된 기간 내에 자신의 영화로 2600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은 셈이다. 전무후무한 기록임이 분명하다. 또 송강호는 개인 통산 출연작 8000만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우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또한 <변호인>은 12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7번방의 선물> <광해, 광이 된 남자>는 물론 역대 국내 박스오피스 최고 흥행작 <아바타>보다도 빠른 속도로 관객을 모으고 있다. 이는 송강호의 기록과도 연결되는 부분이기에 <변호인>의 박스오피스 기록 달성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더불어 이번 작품이 송강호의 최고 흥행작이자 역대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인 <괴물>의 1300만 관객 기록을 넘어설지도 주목할 만하다. 뿐만 아니라 <변호인>이 1000만 관객만 넘는다 해도 송강호는 설경구에 이어 두 편의 1000만 관객 주연작 보유 기록을 갖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된다.

<변호인> 1000만 향해 순항 “기대 이상 돌풍”
충무로 거침없이 종횡무진…출연했다 하면 흥행

연기 인생 두 번째 1000만 관객 돌파작을 기다리는 송강호는 이번 작품에 대한 부담이 컸다. 실화를 토대로 한 데다 정치 색깔 논란 등의 이유였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차기작을 정하지 않은 송강호 씨는 당분간 쉴 것이다. 지난해 연거푸 대작 3편을 개봉했기에 휴식이 간절하게 필요하다. 1000만을 돌파하면 기념 무대 인사 정도만 진행할 것 같다”고 전했다.


개봉 전에 “관객이 진심을 알아주시는 게 급선무”라고 했던 송강호는 영화가 생각보다 빠른 흥행세를 보이자 “인제야 가슴 졸였던 마음이 놓인다”며 안도했다고 한다.

쉴 틈 없이 달려온
‘흥행 보증수표’

또한 소형 영화배급사인 NEW(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가 <변호인>으로 CJ, 롯데 등 대형 배급사물을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지난해 한국영화 전체 매출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한 것도 화젯거리다. 화제작 <변호인>은 이제 한국을 넘어 북미 지역 개봉이 확정됐다. 다음달 7일, 북미 LA를 포함해 15개 도시 30여개 이상 극장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한때 미국 LA 개봉이 보류됐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배급사 NEW 측이 “사실 무근”이라고 밝히며 북미 지역에서의 흥행을 기대하고 있다.

영화 흥행과 더불어 <변호인>의 실제 주인공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기 <운명이다>가 베스트셀러에 재진입하기도 했다. 동시에, 영화 속 불온서적으로 등장하는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의 판매량도 크게 증가했다. 영화 한 편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다. 이번 영화를 현 정국에 비춰보는 이들도 크게 늘었다. 적절한 시기에 개봉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다소 정치적인 내용으로 인해 송강호가 ‘외압’을 받았다는 논란도 있었다. 그 이유는 그가 <변호인> 출연 이후 섭외가 뚝 끊겼다며 내년 여름까지 휴식기를 가질 것이라는 복수매체의 보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 같이 2013년 한 해 동안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 등 무려 세 편의 영화로 쉴 틈 없이 달려온 그가 잠시 휴식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는 게 맞다.

그런데 한 가지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송강호는 <변호인> 출연을 한 번 거절한 바 있다. 송강호는 “감히 제가 그 분(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정과 치열한 삶을 잘 표현하거나 묘사할 수 있을까. ‘정말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글자 그대로 감히 제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때문이었지 외적인 부담감은 없었다”고 밝혔다.

<초록물고기> 데뷔
어떤 역할도 소화

송강호는 중학교 시절부터 배우를 꿈꿨다. 당시에는 전국에 연극영화과가 5개밖에 없었다. 그는 입시에 한 번 실패하고 방송연예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이내 영장이 나와 한 학기 만에 군인 신분이 된다. 군 복무를 무사히 마친 스물셋 청년은 복학생의 길을 접어두고 연극 무대로 향했다.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사회적 격변기 속에서 부산 지역의 극단을 찾아 ‘민족극’에 참여한다.

민족극에서 연극을 시작한 그는 민족극의 경직된 방식 속에서 염증을 느꼈고, 1990년 12월 연우무대의 지방 공연인 ‘최선생’을 만났다. 전교조 문제를 다뤄 기존의 민족극 소재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연극의 ‘방식’에 끌렸다. 그 방식이라 함은, 구호와 주장에 호소하는 게 아닌, 현실적인 감동으로 다가가는 연극이었다. ‘연우30년’이라는 책에서 송강호는 “연우무대는 내가 지향하던 점을 정확히 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연은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집어준 기회이자 새로운 용기와 목표를 가지게 한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1991년, 송강호는 무작정 상경해 연우소극장으로 향했다. 무려 네 번 상경하며 연락처를 남겼다. 이후 연우무대가 주최하던 행사에 부족한 일손을 도왔다. 그리고 연출가 이상우를 만났다. 이상우는 “연우무대가 네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연우무대는 너의 목적을 위해 몸을 담그는 곳이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송강호를 단원으로 받아줬다. 그리고 이상우의 첫 영화인 <작은 연못>에 송강호도 참여하게 된다.

당시 송강호는 <동승>의 노인 역을 맡았고 <박첨지>에도 참여했다. 이후 <국물 있사옵니다> <지젤> <비언소> 등 10여 편의 연극 무대에 섰다. 그리고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출연 중이던 연극계 선배 김의성의 추천으로, 극 중 김의성의 동창 역을 맡았다.

본격적인 영화계 입문은 <초록 물고기>일 것이다. 이창동 감독은 <비언소>를 통해 송강호를 발견했다.
<넘버3>는 대중들에게 송강호를 각인시킨 작품이었다. 그리고 <조용한 가족>이 이어지며 그의 이미지는 코미디 쪽으로 기울어지는 듯 했지만 틀에서 벗어났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형사 역할로 강인한 인상을 심어줬다.

믿고 보는 송강호 영화 
신뢰받는 최고의 배우


송강호는 시나리오를 정독한 후엔 다시 읽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시나리오를 보면 볼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연기자가 발휘할 창의성을 제한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최민식은 <조용한 가족> DVD 서플먼트에서 송강호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감각이 있어도 배우는 일단 몸으로 표현해야 하잖아요. 설득력있게. 그런데 송강호는 그게 완벽하게 표현이 되죠.”

그래서 그는 극중 특정 역할을 맡았다고 해서 그들과 함께 지낸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는 <나쁜 영화>에서 행려 역할을 맡았는데, 정선우 감독은 행려 역을 맡은 배우들이 실제 행려 생활을 경험하기를 원했지만 송강호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연기든 자기가 편안하고, 자기 안에서 나오는 연기를 해야 한다고 봐요. 그렇지 않으면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없죠. 연극영화과 나오고 공부 많이 하면, 모두 훌륭한 감독, 훌륭한 배우가 되어야 하잖아요. 근데 그렇진 않죠. 그 논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요. 결국 다 자기가 해결해야 할 몫인 거죠.”

<쉬리>는 한국영화의 새 시대를 열었던 작품이었지만, 그에게는 조금 힘들었던 작품이었다. 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랄까. 이때 만난 <반칙왕>은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가 됐다. 영화를 시작한 지 3년 남짓된 배우에게 ‘원 톱 주연’이라는 타이틀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김지운 감독은 “제작사에선 다른 배우들을 얘기했지만, 저에게 ‘반칙왕’은 오로지 송강호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송강호는 정말 ‘죽기를 각오하고’ 그 어려운 레슬링 테크닉들을 모두 소화해냈고요. 멋진 일이죠. 서른 살이 넘은 배우가, 그런 고도의 기술을 마스터한다는 건 믿기 힘든 일이었고요.” 그런 믿음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이어졌고, 그들은 또 한 번의 멋진 만남을 이뤘다.

연극무대서 영화로
최고 배우 되기까지

<반칙왕> 이후 송강호는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박찬욱 감독과 만난다. ‘코미디 배우’가 아닌 그냥 ‘배우’로서 관객에게 다가선 것. <복수는 나의 것>에서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 작품 이후 그의 연기 스펙트럼은 넓어졌다. 

영화 속 모든 ‘얼굴’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성장한 것이다. <살인의 추억>은 결정적 계기로 평가된다. 호주의 커뮤니케이션&문화인류학 교수인 브라이언 예시즈는 2004년 쓴 글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적어도 최근 3편의 영화, <반칙왕> <YMCA야구단> <살인의 추억>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송강호를 클로즈업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하자면 송강호는 관객인 우리들을 들여다보고, 또 사회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송강호는 문자 그대로 현대 한국영화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페이스 중 하나인 셈이다.”

영화 평론가 김영진도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 클로즈업을 “한 시대를 요약하는 표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송강호를 “어떤 역을 맡아도 자기화해서 송강호적 인간형을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그 직업, 계층, 성격의 인물에 맞는 분위기를 절대적으로 창조한다는 점에서 아주 미세한 일상적인 결에서 감성을 창조하는 예술가”라고 평가했다. 보편의 존재를 흡수하고 밖으로 튕겨내는 단단한 탄력이 있다는 것.


이러한 송강호의 매력은 이창동,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등의 감독들을 매료시켰다. 이동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송강호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것이 미리 규정된 장르 영화에 매력을 느끼지 못해요. 연기뿐 아니라 세상살이 역시 쉽게 규정 지을 수 없는 거잖아요. 배우로서 저는 한 번 연기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쪽인 것 같아요. <넘버3>(이후에 조폭 배역이 쏟아져 들어왔고, <살인의 추억> 이후엔 형사 배역이 계속 들어왔지만 그런 이유로 거절했어요.”

이러한 그의 노력 덕분일까. 관객들은 언제나 새로운 송강호를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괴물> <우아한 세계> <밀양>은 국내외 영화제의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연이어 선사했다. 그는 시상식에서 “책임감을 느낀다” “갚아야 하는 빚을 지는 느낌이다” 등의 수상 소감을 이야기했다.

송강호는 어느새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우뚝 섰다. <변호인>은 그에게 있어 화룡점정이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송강호 출연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홍상수)

▲<초록 물고기>(이창동)
▲<넘버3>(송능한)
▲<조용한 가족>(김지운)
▲<쉬리>(강제규)
▲<반칙왕>(김지운)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복수는 나의 것>(박찬욱)
▲<YMCA야구단>(김현석)
▲<살인의 추억>(봉준호)
▲<효자동 이발사>(임찬상)
▲<남극일기>(임필성)
▲<괴물>(봉준호)
▲<우아한 세계>(한재림)
▲<밀양>(이창동)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김지운)
▲<박쥐>(박찬욱)
▲<설국열차>(봉준호)
▲<관상>(한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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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