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입장 곤란한 황찬현 신임 감사원장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2.02 13: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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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방석 앉은 반쪽짜리 원장님

[일요시사=사회팀] 황찬현 신임 감사원장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강행처리 됐다. 야권의 반발속에 날치기 의사진행이 이루어져  정국은 꽁꽁 얼어붙었다. 야당은 보이콧을 선언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반면 여당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감사원장 자리에 앉게 된 황찬현. 그는 감사원의 공백을 메꿀 수 있을까.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사건과 일부 사제들의 정치발언 파문 등을 둘러싸고 정국이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여당이 감사원장 인준안을 단독처리하면서 정국이 더욱 어두워질 전망이다. 장기화한 여야 대치 구도가 자칫 극한 대결 양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국회가 다시 공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내년도 예산안은 물론 주요 법안 처리에도 상당한 차질이 우려된다.

야당 반발 속
날치기 가결

지난달 28일 새누리당이 야권의 반발 속에 황찬현 감사원장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강행처리했다. 야당은 의사일정 전면 보이콧을 선언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전 황 원장 인사청문특위 전체회의를 단독으로 개최했다. 민주당 측이 ‘여야 간사 협의’를 주문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민주당 특위 위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는 단 10분 만에 처리됐다. 이어 오후 열린 본회의에서 황 원장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가결됐다.

새누리당의 의지만 구현된 표결이었다. 몸싸움만 사라졌을 뿐이었다. 과정을 살펴보자면 사실상 날치기나 다름 없었다. 앞서 “여야 논의된 합의점은 존중·수용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 발언은 무색해졌다.

여야의 시선은 공을 넘겨 받은 강창희 국회의장에게 향했다. 새누리당은 “정당한 이유 없이 기간 내에 인사청문특위가 인사청문 내지 심사를 마치지 못한 때 국회의장이 이(임명동의안)를 바로 본회의에 부의하는 것이 ‘직권상정’”이라며 임명동의안 상정을 거듭 요구했다. 또 “본회의에 자동부의되면 의사일정을 작성하는 권한은 국회의장에게 있다. 여야 합의에 의해 의사일정을 정하는 것은 관행이다”며 규정에 맞춰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주장은 ‘(본회의) 부의’로 이는 안건 심의를 위한 준비행위일 뿐”이라며 “국회 개원 이래 130여 건의 임명동의안 중 단 한 건도 직권상정이 된 사례가 없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통합진보당도 이번 강행처리에 대해 “더 이상 귀찮게 야당의 눈치 볼 것 없이 155석이라는 의석을 앞세워 독재정권의 첨병이 되겠다는 신호”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강 의장은 ‘친정’ 새누리당의 손을 들었다. 본회의 처리예상안건 중 마지막 순서에 있던 임명동의안을 본회의 첫 머리로 올려 상정했다. 의원총회를 하던 민주당은 강 의장의 ‘기습상정’에 뒷통수를 맞고 급히 본회의장으로 입장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수모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강 의장은 “인사 관련 안건에 대해서는 토론을 허용하지 않는 게 관례”라며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 요구를 거부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법보다 관례가 우선이냐”는 볼멘 소리도 터져나왔다.

강 의장은 “감사원장의 공백이 94일째 지속되고 있어 국정에 많은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며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을 처리를 더 이상 미루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임명동의안을 상정한 것. 투·개표 과정에서도 민주당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박범계, 김광진, 서영교 등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임명동의안 표결을 위한 명패와 투표용지를 배부 받았다.

투표권 행사를 늦춰서라도 임명동의안 표결을 막기 위한 ‘최후의 방법’이었다. 강 의장이 “투표 다 하셨습니까”라고 물었을 때도 “다 안 했다. 투표 안 했다”고 의사를 표시했다. “빨리 투표하시라”고 한 강 의장은 세 번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투표하지 않은 상황에서 “투표 다 하셨냐”고 물은 뒤 곧장 ‘투표 종료’를 선언했다. 명패와 투표 가부를 확인하는 감표위원들조차 모두 새누리당 의원으로 선정했다. 박범계 의원은 이와 관련, “달리 얘기하면, 실시 여부를 놓고 논쟁이 있는 중차대한 선거에 있어 한쪽 정당의 참관인과 한쪽 정당의 투·개표인만 배석한 채 투표가 실시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임명안 강행 처리 ‘꽁꽁’얼어붙은 여의도
‘속수무책’후폭풍 정치권 강타…국회 올스톱

새누리당은 직권상정이 아닌 정상적인 절차에 의한 의사진행이었다며 야권의 공세를 저지했다. 반면 민주당은 임명동의안 표결에 반발해 투표에 불참하는 등 강하게 저항했다. 특히 강 의장이 필리버스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황 내정자 임명동의안 표결을 실시한 데 대해 국회법 위반으로 ‘표결무효’라며 고강도 대응에 나서며 맞불을 놨다.

새누리당 홍지만 원내대변인은 국회 본회의에서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이 통과된 직후 브리핑을 통해 “감사원 수장의 공백이 3개월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홍 원내대변인은 다만 직권상정 의혹에 대해선 “인사청문특위에서 과반수 출석, 과반수 찬성으로 심사경과보고서를 채택했고 표결절차가 끝난 안건이기 때문에 직권상정이 아니다”며 “정상적인 표결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당 보이콧
정국 ‘급랭’


민주당은 황 원장의 임명동의안 본회의 통과 직후 긴급 의원총회 등을 열고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달 29일부터 의사일정 전면 보이콧에 돌입키로 하는 등 초강경 대응에 불을 붙였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황 내정자를 감사원장으로 임명하면 직무효력정지 가처분을 강구하고 강 의장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김한길 대표는 “오만과 독선, 불통에 빠진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그리고 국회의장의 행태를 127명 국회의원 모두의 이름으로 강력히 규탄한다”며 “민주당은 야당과 민의를 깡그리 무시하는 안하무인식 의회 폭거를 대하면서 의회 일정에 임하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따라 내일부터 의사일정을 중단키로 한다”고 밝혔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이날 필리버스터 거부에 대해 “있지도 않은 관행을 내세워 관행으로 국회를 무력화시키려는 행위”라며 임명동의안이 가결된 후에도 “야비하고 비신사적이고 유신회귀형 국회”라고 비판했다. 박수현 원내대변인도 브리핑에서 “국회의장과 새누리당이 저지른 만행은 국회 치욕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맹비난을 했다.

신경민 최고위원은 황 원장 임명동의안 강행 처리와 관련해 “(당내에서) 강창희 국회의장에 대해 사퇴 권고를 결의하자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일각에서는 지도부 책임론까지 거론된 상황이다.

29일 청와대는 민주당의 의사일정 보이콧 선언과 관련해 “차질없이 국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국회가 국민을 위해 대통령을 도와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이정현 청와대 총보수석은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는) 안팎의 여러 분야에서 지금 많은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법리논쟁 시끌…
감사원장 앞날은?

문제는 강 의장이 민주당이 요구한 필리버스터를 막은 것이 적법한지에 대한 논란이다. 자칫 헌정사상 최초로 임명동의안이 무효화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회사무처는 인사청문회법은 특별법으로 국회법에 우선하는데 무제한토론을 허용하는 근거 규정이 없다고 밝혔다. 또 비록 새누리당 단독이지만 인사청문특위에서 심사경과보고서를 채택한 만큼 임명동의안을 본회의에 올린 것이 직권상정이 아니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일단 동의안이 본회의에 올라온 이상 인사청문회법이 아닌 국회법을 따라야 한다고 반박한다. 인사청문회법에는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을 처리하는 절차에 대한 규정은 없다. 또 이 법 제19조 준용규정을 보면, ‘위원회의 구성·운영과 인사청문회의 절차·운영 등에 관하여는 이 법에서 규정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국회법, 국정감사및조사에관한법률 및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의 규정을 준용한다’고 돼 있다. 즉 이 법에 무제한토론 규정이 없다면 국회법의 무제한토론 규정을 적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야]‘필리버스터’만 믿다가…정국경색 최고조
[여]직권상정 아닌 정상적 절차 의한 의사진행

여기까지 보면 필리버스터를 허용했어야 한다는 민주당 주장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황 후보자 임명동의안 자체를 뒤짚어질 것이라 단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협회 한 관계자는 “전문용어로 책문권 포기 상실이라고 하는데, 규정 해석이 잘못됐다면 바로 지적했었어야지 ‘그런가 보다’고 해놓고 지나서 따져봐야 소용이 없다”며 “결과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결과를 뒤짚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변호사 출신인 민주당 김관영 대변인은 “항의했지만 (의장이) 이미 방망이 세 번 땅땅땅 내려찍는데 당시 우리가 취할 방법이 있었겠느냐”면서 책문권 포기 상실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형사재판 정통
IT분야 해박

황 원장은 경남 마산 출신으로 마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사법고시 22회에 합격하고 연수원 12기를 수료한 뒤 인천지법·서울민사지법 판사, 법원행정처 법정심의관,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장, 대전가정법원장 등을 거쳤다.

황 원장은 30여년 법관 생활 중 절반 가까이 형사재판을 맡았다. 그래서 형사재판에 정통하다는 평을 받아왔다. 또 평소 기록을 꼼꼼하게 파악·분석한 후 치밀하게 논리를 전개하면서도 구체적 사안에 가장 적합한 결론을 도출한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2003∼2004년 서울중앙지법에서 부패 사건을 전담하는 형사 재판부 재판장으로서 대선자금 불법 모금, 유영철 연쇄살인, 굿모닝시티 비리, 대우그룹 부실 회계감사 등 대형 사건을 맡아 엄정한 판단력을 보였다.


특히 법원행정처 전산담당관, 법정심의관으로 근무하면서 등기전산화 작업을 주관, 최단기간에 최소비용으로 등기전산화 시스템을 완성·정착하는 데 이바지한 공로로 2008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09년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100여명이 뽑은 대법관 후보 6명 안에 속한 바 있다. 지난해 서울가정법원장 시절 소년보호시설 문화축제를 열고 청소년 참여 모의법정을 지원했다. 올해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서 형사판결 간이화를 추진하고 국민과 소통을 위한 각종 행사를 열었다.

황 원장은 또 사법부 안에서 정보기술(IT) 분야 전문가로 유명하다. 취미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일 만큼 IT 분야에 해박하다. 지난 1996년 출범을 주도한 정보법학회는 법관, 경제학자, IT 전문가 등 300명을 아우르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사법정보화 커뮤니티 회장도 맡았다.

법관으로서는 드물게 전기, 전자 및 정보통신 등에 해박한 지식과 전문가 이상의 실력을 겸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무 밖에서는 소탈하고 스스럼없는 성품이어서 선후배 법관 및 직원들의 신망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은 임미자씨와 슬하에 1남2녀.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황찬현 원장은?]


▲경남 마산 출생
▲마산고 졸업
▲서울대 법학과 학사, 석사 수료
▲제22회 사법시험 합격·연수원 12기
▲수원지방법원 인천지원 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
▲법원행정처 전산담당관
▲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법정심의관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제49대 대전지방법원 법원장
▲대전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서울가정법원 법원장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원장
▲서울특별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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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