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사재 담보 ‘조건부 언아웃’제시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고민에 빠졌다. 산업은행이 동부그룹에 동부메탈 매각 가격을 높이고 싶으면 김 회장과 친인척 등의 사재를 조건부로 넘기라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이 요구한 담보 규모는 2000∼3000억원 수준이다.
금융계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최근 동부메탈 매각 협상이 가격 차이로 난항을 거듭하자 동부그룹 측에 ‘조건부 언-아웃(earn-out)’방식을 제안했다. 이 방식은 매각 기업이 사후에 매출이나 이익이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매각 대금을 추가로 지급하는 것으로, 매각 협상 때 매도자가 기업의 잠재 가치를 높게 평가해 가격 협상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할 때 활용된다.
산업은행이 제안한 ‘조건부 언-아웃’은 김 회장과 친인척 또는 동부메탈의 모회사인 동부하이텍이 보유한 자산 일부를 담보로 동부메탈을 매각하면 동부그룹 측이 원하는 가격에 인수한 후 기업 가치가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담보로 넘겼던 자산을 다시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만약 동부메탈의 매출이나 이익이 기준에 미달하면 산업은행은 동부그룹 측이 담보로 넘긴 자산을 팔아 미리 지급한 매각대금을 충당하면 된다.
동부그룹 측은 동부메탈 매각 가격으로 7000∼8000억원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산정한 가격은 5000억원 내외로 무려 2000∼3000억원의 차이가 난다. 이에 따라 동부그룹이 동부메탈을 정상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선 2000∼3000억원 상당의 오너 일가 자산을 담보로 제공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산업은행은 가장 먼저 김 회장의 장남 남호씨 지분을 담보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유학중인 남호씨는 현재 동부그룹 경영엔 참여하고 있지 않지만 동부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동부씨엔아이 지분(16.7%)을 비롯해 동부정밀화학(21%), 동부화재(14.1%), 동부증권(6.4%)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상 동부그룹 최대 개인주주다.
앞서 산업은행은 올초 동부그룹에 대한 신디케이트론을 제공할 당시에도 남호씨 지분을 담보로 제공할 것을 요구했으나 동부그룹 측이 반발해 무산된 바 있다.
김 회장은 산업은행이 제안한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업계에선 김 회장이 동부메탈 매각 가격을 높이기 위해 어느 정도 사재를 담보로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회장의 결심이 빠를 경우 동부메탈 매각 협상은 이르면 이달 내 마무리될 전망이다.
한편 동부메탈은 동부하이텍이 합금철 사업을 떼어내 만든 100% 자회사이다. 동부하이텍은 동부메탈 외에도 ㈜동부(49.7%), ㈜동부월드(46.5%), 동부파인셀㈜(61.6%), 동부저축은행(22.0%), ㈜아큐텍반도체기술(6.2%)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