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서거 ‘비밀의 열쇠’ 2002 대선자금 전모

‘박연차 게이트’로 불러내 ‘대선자금’으로 옭아매려 했다?



대통령 시절 못 건드렸던 대선자금·당선축하금 주목
검찰, 광범위한 계좌추적·세무조사로 샅샅이 뒤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그 배경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2002년 대선자금’이 주목받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직전 서초동 검찰 청사 주변에서 검찰이 2002년 대선자금과 당선축하금의 ‘꼬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말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또한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민주당 내 ‘이명박 정권 정치보복진상규명특위’가 검찰이 노 전 대통령 주변에 광범위하면서도 세밀한 수사망이 펼쳐졌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2002년 대선자금’에 대한 의혹이 골격을 갖추기 시작한 것. 2004년에도 지금도 ‘여지’를 남기고 있는 노 전 대통령 대선자금에 관한 시선을 쫓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관측이 제기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수그러드는 주장과는 달리 ‘2002년 대선자금’에 대한 부분은 날이 갈수록 탄탄한 뼈대 위에 살을 붙여나가고 있다.

진짜는 서거 직전
수사에 있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 도중 서거하면서 그의 서거가 검찰 수사와 관련이 깊다는 것은 이미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박연차 게이트’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원인이라고 보는 시선은 적다.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수사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진술에만 의존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은 측근과 친인척들의 비리가 포착되면서 ‘도덕적’ 궁지에 몰리기는 했지만 “모르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친인척들의 혐의와 노 전 대통령과의 직접적인 연계성은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발표에서 ‘공소권 없음’으로 내사종결한다고 밝혔다. ‘공소권 없음’은 수사 대상자가 숨지거나 공소시효 만료 등으로 기소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검사가 불기소 처분하는 것을 말한다.

뒤집어보면 혐의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도 이러한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수사에 노 전 대통령이 박 전 회장에게서 640만 달러를 건네받은 의혹을 포함한 것.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혐의는 이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일 것이라는 목소리가 여의도 정가와 서초동 청사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그리고 ‘2002년 대선자금’이 조심스레 수면위로 떠올랐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전 서초동 청사 주변에서는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을 파고 있다는 말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당선축하금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 규명 특검팀이 노 전 대통령의 당선축하금으로 의심했던 40억여 원 상당의 무기명 채권 40여 장에 대한 수사를 재개했다는 것.

특검팀은 당시 이 채권이 2005년 명동 사채업자를 통해 모두 현금화된 사실을 확인했다. 사채업자는 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부탁을 받아 현금으로 바꿔 준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금화된 기록과 유통경로 추적에 실패하면서 무혐의 종결처리됐다. 검찰이 이 부분을 다시 끄집어냈다는 것이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공소권 없음’으로 내사종결하면서도 밝히지 않았던 데는 대선자금이나 당선축하금에 대한 부분이 포함됐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어리는 부분이다.

‘2002년 대선자금’ 수사는 2003년 시작돼 2004년까지 정국을 흔든 핫이슈였다. 검찰은 전현 정권에 사정의 칼날을 드리웠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823억원과 114억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모금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대선자금과 당선축하금에 대한 의혹은 당시에도 일말의 ‘의혹’을 남겼으며 이후에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03년 12월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안희정 여택수 선봉술 등 노 전 대통령의 측근 비리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남김없이 철저히 수사했다”라면서도 “수사 결과가 측근 비리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운을 남겼다.

예전에도, 지금도
대선자금 의혹 솔솔


“이번 수사의 초점은 대통령 측근들이지만 노 대통령이 관여된 부분도 있다.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고 예우를 해야 된다고 본다. ‘지금은’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 것.

2004년 대선자금 수사에서 노 전 대통령은 “노무현 캠프의 대선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 넘으면 사퇴하겠다”고 강수를 뒀다. 검찰은 한나라당에 823억원, 노 캠프에 114억원의 불법 대선자금이 흘러들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대선자금의 10분의 1이 넘는 액수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도 뒷말이 돌았다. 당초 10분의 1에 해당하는 액수만 밝혀졌으나 ‘일부러 맞췄다’는 말이 나올까봐 추가로 30억을 더 밝혔다는 것.

당시 검찰 수장이었던 송광수 검찰총장은 퇴임 후 한 강연에서 “검찰이 10분의 2, 3을 찾아냈더니 대통령 측근들이 ‘검찰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른다’고 했다”고 털어놓아 의혹을 키웠다. 송 총장의 발언에 따르면 최소 160억에서 240억 이상의 대선자금이 사용됐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대선 당시 선관위에 신고한 법정 선거비용이 260억~280억원 규모인 걸로 알고 있다. 신고하지 않은 불법자금을 합쳐도 350억~400억원 규모를 넘지 않는다”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뒤집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대선을 마치고 선관위에 신고한 선거비용은 274억1800만원이다. 그러나 이후 사용된 선거자금은 여전이 ‘?’ 마크를 달고 있다.

문제는 정권교체 후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아낼 정도로 촘촘한 검찰의 수사망이 노 전 대통령 주변을 훑었다는데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집권하는 동안에는 ‘묻혀’ 있던 것들이 ‘박연차 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파헤쳐졌을 수 있다는 것.

검찰 관계자들은 “역대 대선자금 수사는 측근 비리부터 시작됐다”면서 “정권이 바뀌고 나면 제보가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전 정권에 대한 수사가 수월한 편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내용이 얼마만큼 커질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언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표적수사 의혹에 대해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서거를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민주당은 검찰 개혁을 목표로 ‘이명박 정권 정치보복진상규명특위’를 발족했다.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주선 최고위원은 “이명박 정권 시절 권력기관에 의한 계좌추적이 참여정부 시절에 비해 큰 폭으로 늘어났다”면서 “이는 정치보복 수사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박 최고위원은 “2008년 수사기관이 요구한 금융거래 정보는 8만600여 건으로 참여정부 시절보다 3배 많다”면서 “2009년에도 1~3월까지 6만4700건 요구했고, 국세청도 이 기간 3개월 동안 참여정부 때보다 5배나 많은 1만800여 건의 계좌추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전 정권 인사들에 수사와 구속이 집중된 이유”라면서 “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은 본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검찰이 10만원 이상 결제한 사람을 모두 조사했다는 진술을 했는데 이것과 맞아떨어지는 결과”라고 강조했다.

현 정권이 전 정권을 죽이기 위해 계좌추적과 세무조사를 통해 작은 먼지 하나까지 털어냈다는 것이다.

특위 간사를 맡고 있는 박영선 의원도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 중 대통령 임기시절 청와대에 출입한 적이 있는 재계 인사들에 대한 광범위한 계좌추적 및 세무조사가 이뤄졌다는 제보가 접수돼 진상을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2002년 대선자금 수사 배후로는 이인규 중수부장이 지목되고 있다. 검찰은 2002년 대전자금 수사에 손을 대고 있다는 말이 서초동 인근에 파다하게 퍼지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 축하금이나 대선 자금은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일축한 바 있다.

그러나 소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검찰 내 실질적인 권한을 쥐고 있던 이 중수부장이 ‘대어’를 낚기 위해 나섰다는 관측도 제기됐었다.

이 중수부장은 노 전 대통령과는 질긴 악연으로 이어진 인물이다. 2003년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장 시절 SK그룹 비자금을 수사한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SK로부터 당선 축하금을 받았다는 단서를 확보, ‘노무현 측근비리 수사’의 단초를 마련했다. 또한 2004년 원주지청장으로 재직할 땐 노무현 캠프의 대선자금을 추적하기도 했다.

물샐 틈 없는 수사망에
잠들어있던 ‘증거’ 잡혔나

반면 이명박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기도 하다. 지난 1999년 이 대통령이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 검찰 파견직으로 워싱턴 영사관에서 일하며 인연을 맺은 것. 이후 이 대통령 측근 그룹인 워싱턴 골프 클럽 3인방의 하나로 활동할 정도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명박 정권 정치보복진상규명특위’도 검찰의 대청와대 창구로 이 중수부장을 지적, 즉각적인 파면을 요구했다.


정치권은 ‘입’을 다문 검찰에 의혹어린 시선을 던지고 있다. ‘박연차 게이트’는 참여정부 인사 등 최측근들을 겨냥했지만 ‘2002년 대선자금’으로 인한 파장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을 ‘핵폭탄급’인데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 주변에 철저한 저인망 수사를 펴면서 찾은 ‘혐의점’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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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