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충격의 토요일! 노무현 서거>⑥ 못다피운 과업 셋

‘바보’, 평생 꿈 이루지 못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탈권위과 수평적 리더십으로 국민과의 의사소통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의 ‘개혁’을 선창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원칙’과 ‘소신’이 그의 무기였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뚜렷하고 과감한 자신만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평생 과업도 못다 피우게 됐다. 그가 이루지 못한 세 가지 ‘꿈’을 조명해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특권과 반칙 없는 ‘깨끗한 이미지’를 표방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 초기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도, 사회의 건강을 위해서도 부정부패를 없애야 한다”며 “부패 사례가 걸리면 패가망신시키겠다”고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했다.
그는 집권 5년 동안 내내 도덕적 우월성을 자랑스러워했고, 퇴임 후에도 ‘도덕성’이 참여정부의 핵심 기반이었다고 누차 강조했었다.
하지만 그의 주변은 늘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노 전 대통령도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자신이 공언한 ‘패가망신’의 덫에 걸렸다. 참여정부 역시 비도덕적 정부란 ‘멍에’를 뒤집어썼다.

몸소 행동으로 실천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권의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을 단절하고 ‘깨끗한 정치문화’를 선도했다는 점은 노 전 대통령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며 “그러나 임기 내내 입버릇처럼 말한 비리 척결은 이제 이룰 수 없는 노 전 대통령의 꿈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부패 척결과 함께 줄곧 ‘망국병’인 지역주의 청산을 외쳐왔다. 1990년 3당합당 거부와 1995년 부산시장 도전 실패 등이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몸소 실천한 대표적인 경우다.

이 과정에서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을 얻었지만 지역주의 타파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행정복합도시와 공기업 지방 이전, 지역혁신 클러스터 등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발전 방침도 같은 맥락에서 노 전 대통령이 노력한 결과다.
노 전 대통령의 탈지역주의 과제는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는 듯했다. 2004년 4월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전국 지지율이 과거와 달리 대체로 고른 분포를 보였기 때문이다.

탈권위·수평적 리더십으로 소통 ‘대한민국 개혁’선창
부패 척결,  지역주의 청산, 귀농의 꿈 ‘다음 세상서…’


이도 잠시, 2007년 12월 대선에선 선거 때마다 고질적으로 되풀이되던 지역색이 어김없이 드러났다. 후보별로 영·호남의 표심이 뚜렷하게 갈린 것. 예상했던 대로 영남권에선 한나라당이, 호남권에선 당시 열린우리당이 몰표를 얻었다.
일부에선 지역감정을 이용한 선거운동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과거에 비해 지역주의가 희미해졌다는 분석도 나왔지만, 뿌리 깊은 지역주의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1년 만에 탈지역주의를 역설하며 열린우리당을 창당해 호남권과 거리를 두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3년 만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당을 자진 해체하고 호남 쪽으로 기대 의미가 퇴색했다.
무엇보다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무르익던 ‘귀농의 꿈’도 못다 피우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퇴임식을 가진 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고향마을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 귀향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자연정화 활동과 친환경 농사 등에 몰두했다. 농사를 짓거나, 손녀와 자전거를 타는 등 노 전 대통령의 평소 소탈한 모습들이 소개돼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봉하마을엔 전직 대통령을 보기 위한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또 “화포천의 쓰레기와 오염은 참 가슴이 아팠다”며 “새마을운동을 다시 하자고 해볼까 싶다”고 밝히며 자연정화 운동도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를 위해 마을 뒤 봉화산 숲 정비사업에 착수하는 한편 한림면 화포천습지와 봉화마을 봄맞이 화포천 자연정화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해엔 봉하마을 앞 농경지에다 친환경농법인 오리농법을 도입한 첫 벼 수확의 기쁨을 얻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수확한 ‘봉하 오리쌀’을 청와대로 보내기도 했다.

“조용히 살고팠는데”

그러나 그의 소탈하고 서민적인 귀향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귀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가 기록물 유출 문제로 청와대와 각을 세우는가 싶더니 지난해 12월 형 건평씨가 세종증권 매각 비리에 연루돼 결국 구속되면서 노 전 대통령은 “따뜻해지면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사실상 칩거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난 23일, 영욕의 64년 삶과 파란만장한 15개월간의 귀향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