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전북 전주덕진 재선거서 ‘무소속연대’로 압승
당내 복귀 추진 “돌아간다” 민주당 “누구 맘대로”
정동영 전 장관이 귀환했다. 17대 대선에서 역대 최대 표 차이로 낙선한 데 이어 18대 총선에서도 고배를 마시고 쫓기듯 미국 유학을 떠났던 그가 4월 재보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여의도 정계 복귀에 성공했다. 정 전 장관은 정치적 고향 전주 덕진 재선거에서 72.3%(5만7423표)의 득표율로 12.9%에 그친 민주당 김근식 후보를 압도적인 차로 제쳐 민주당 지도부의 공천배제 결정에 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나서야 했던 설움을 씻어냈다. 하지만 정 전 장관에게 재선거는 나지막한 언덕을 넘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더 많은 고비와 더 높은 산들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재선거 출마를 위해 뛰쳐나왔던 민주당에 복당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추락한 ‘거물’의 이미지 쇄신과 비주류가 된 자신의 계파 챙기기,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 대비도 하나같이 녹록치 않은데다 당권과 대권이라는 두 마리 토끼는 빠른 걸음으로 내달리고 있다. 이번 재선거에서의 당선이 ‘절반의 승리’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정동영 전 장관이 여의도 정가에 복귀했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고 미국으로 떠났던 정 전 장관은 4월 재보선을 앞두고 귀국, 민주당과의 갈등 속에서도 전주 덕진의 금배지를 꿰차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 전 장관은 ‘외로운 승자’다. 미국에서 “13년 전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정치를 시작했던 곳에서 새롭게 출발하겠다”며 전주 덕진 4월 재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할 때부터 시작된 당과의 불편한 관계로 인해 탈당을 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기 때문이다.
돌아온 정치적 고향 전주
민주당 떠나 외로운 승리
정 전 장관은 출마 당시 자신의 재선거 출마에 대한 당내 반발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달게 감수하겠다”고 했다. 공천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관측에 대해서도 “나는 당을 만드는 데 앞장섰던 사람”이라며 “공천은 사천과 다른 공당의 결정으로 정동영이 들어가 도움이 된다면 공천을 못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내부적인 반발이 있을 수 있지만 그동안 자신의 ‘공적’을 생각한다면 쉽게 내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 은연중에 서 있었던 것.
하지만 그의 출마에 “선당후사(先黨後私·당이 먼저고 개인이 나중)”라는 말로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낸 당은 “당과 나라가 백척간두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죽기를 각오하고 진일보해야만 새 세상이 열릴 것”이라면서 정 전 장관의 출마를 만류했다.
정세균 대표도 “당을 먼저 생각하면 해법이 나온다. 선당의 자세로 하면 답이 나온다”고 거들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 백짓장을 맞드는 심정으로 당 지도부를 돕고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봉사할 것”이라는 정 전 장관의 말도 소용없었다.
김부겸·김상희·김동철·백원우·신학용·양승조·우제창·이광재·조정식·최재성 의원 등 386인사들은 물론 친노와 손학규 전 대표측에 이르기까지 당내 계파 대다수가 정 전 장관의 출마에 대해 “부적절한 처신”이라며 재고해 줄 것을 요구한 것.
최재성 의원은 당 소속 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정 전 장관의 출마에 대한 부당성을 호소했으며 오영식·임종석·우상호 전 의원 등 민주당 전 의원과 원외 지역위원장 66명도 정 전 장관의 출마에 대한 비판 성명을 냈다.
결국 당 최고위원회는 “민주당이 일관되게 추진해 온 전국정당화 노력에 비춰 정 전 장관이 전주 덕진에 출마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면서 정 전 장관에 대한 공천배제를 결정했다.
탈당하면서 복당 약속
이 가는 민주당 “어림없다”
당 대선후보를 지내고 지난 총선에서 수도권 지역에 전략공천됐던 이가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호남에서 정계복귀를 시도한다는 것은 민주당을 ‘호남정당’으로 귀착하게 하는 선택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 전 장관에게 공천을 줘야 한다는 당내 비주류의 반발에 정 대표는 차기 총선에서 현 지역구(전북 무주·진안·장수·임실)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쐐기를 박았다.
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며 정 전 장관은 복당을 약속했다. “잠시 민주당의 옷을 벗지만 다시 함께할 것”이라며 탈당계를 낸 직후 선거가 펼쳐지고 있는 전주로 내려가 “다시 한 번 ‘전주의 아들’로 키워 달라”고 호소했다.
또한 전주 재선거에서 ‘무소속연대’를 꾸린 신건 전 국정원장과 복당 신청서를 작성했다. 재선거가 마무리되면 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것.
정 대표는 이에 대해 “이벤트 정치의 한 예”라고 비꼬았다. 그는 “탈당은 탈당계만 제출하면 되지만 복당은 개인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절차와 심사를 거쳐야 하며, 당을 지탱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율과 기강을 지켜야 한다”면서 정 전 장관의 복당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미경 사무총장도 “신 전 국정원장은 재산신고 누락 등으로 당선돼도 재보궐 선거를 다시 치르게 된다”면서 “민주당은 공당으로 마음대로 나가고 들어올 수 없다. 개인의 당이 아니다”라고 복당 불가를 외쳤다.
노영민 대변인은 “지금으로선 탈당한 경우 1년이 지나야 복당이 가능하도록 돼 있는 당헌·당규에 따라 원칙대로 처리할 것이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다”고 우회적으로 복당을 반대했다.
당내 주류에 속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두고 보라”며 민주당 안마당에서 뒤통수를 친 ‘무소속연대’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정 전 장관은 당선 직후 전주 완산갑에서 당선된 신 전 국정원장과 전북도당에 복당 신청서를 작성하고 ‘복당투쟁’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무소속연대를 꾸렸던 신 전 국정원장까지 동반당선된 만큼 ‘목소리’를 키울 수 있다는 것. 그는 당선 소감에서도 “당에 입당해 강한 야당을 만들겠다”고 해 지도부와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민주연대도 지도부를 압박하는 것으로 정 전 장관을 돕고 있다. 민주연대 공동대표인 이종걸 의원은 “전주의 민심이 정세균 대표 체제를 탄핵한 만큼 지도부는 겸허히 (복당을) 수용해야 한다”고 지도부를 강하게 압박했다.
정 전 장관이 재선거를 통해 정계에 복귀하게 됐지만 손실도 상당하다. 우선 당과 갈등을 빚으면서까지 재선거에 출마한 데 대해 ‘개인 정치’를 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 대표는 정 전 장관에 대한 공천 배제에 대해 “당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공천을 주장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게다가 정 전 장관은 현직 지역위원장이었다. 현직 위원장이 이적하는 것은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만약 정 전 장관이 동작 위원장이 아니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결정적인 걸림돌이었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데 반해 정 전 장관은 당 지도부의 공천 배제에 대해 “민주당은 당권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다.
정 전 장관측은 “무소속 출마로 얻은 것만큼 잃은 것도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원내에서 이명박 정권에 맞서 싸우며 어두운 ‘그림자’는 서서히 지워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보선 계산서
득보다 실, 실보다 득?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정 전 장관도 정치생명줄을 놓고 마음이 급했겠지만 잃은 것이 너무 많지 않냐”면서 “당과의 갈등은 부득이한 것이었다고 해도 ‘그릇이 작다’는 말은 쉽게 메울 수 없는 큰 틈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큰 정치’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대권을 바라보는 이에게는 치명적”이라며 “주류든 비주류든 당 전체를 끌어안아야 하는 것은 당 지도부만의 과업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 안팎에서는 그의 복당이 힘들어 질 경우 ‘신당 창당’ 등 새로운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번 재선거에서 호남민들은 수도권 탈환을 통해 전국정당으로 거듭나려는 민주당과 뿌리를 찾아 호남으로 돌아온 정 전 장관 사이에서 정 전 장관에게 표를 몰아주는 것으로 ‘의사’를 밝혔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당의 공천 배제 결정에 무소속 출마로 답했던 것처럼 복당 불가를 외치면 정 전 장관을 지지하는 의원들과 호남에 기반을 둔 신당을 창당하는 구상도 가능하다는 것.
정 전 장관의 팬클럽 ‘정통들’의 홍성룡 상임대표는 “정 전 장관의 복당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복당을 논할 정도였다면 당 지도부가 공천을 안 줄 리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홍 대표는 “민주당은 더 이상 민주세력의 희망이 될 수 없다. 정 전 장관의 민주당 복당이 어렵다면 새로운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