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그룹이 계열사인 코오롱건설에 일감을 밀어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코오롱건설은 지난해 부진에 허덕이더니 급기야 유동성 위기설까지 돌았다. 보다 못한 그룹이 내부 공사로 코오롱건설에 ‘힘’을 실어준 정황이다. 건별로 보면 다른 수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대형공사는 아니지만 모두 합친 금액은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코오롱건설이 따낸 그룹의 공사가 어느 한 시점에 몰린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코오롱그룹과 코오롱건설 간 어떤 거래가 오간 것일까. 그 의혹을 따라가봤다.
코오롱건설 작년 그룹공사 8건 ‘몰빵 수주’
유동성 문제 연관성 주목…부당지원 논란도
코오롱그룹의 내부 공사가 코오롱건설에 몰린 것은 지난해 하반기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코오롱건설은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그룹 지주사인 ㈜코오롱과 지난달 상장한 코오롱생명과학이 운영하는 공장 등의 증축·개조 공사를 수주했다.
코오롱건설이 이 기간 그룹 계열사로부터 발주 받은 공사는 모두 8건이다. 매달 1건씩 수주한 셈이다.
총 도급액 1434억원
세부적으론 ▲그룹사 폐수처리장 통합운영 사업(340억원) ▲김천공장 하이레놀 복구공사(568억8600만원) ▲김천공장 FBK-4 프로젝트(86억6900만원) ▲김천공장 자동창고 증축공사(40억5000만원) ▲여수공장 KNT공정 프로젝트(137억원) ▲구미공장 트로이 프로젝트(117억5500만원) ▲㈜코오롱 보일러 개조공사(31억9200만원) ▲코오롱생명과학 음성공장 증축공사(111억5800만원) 등이다.
이들 공사의 총 도급액은 1434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10월 코오롱건설이 모처럼 따낸 2007년 매출액의 13%에 해당하는 대형공사인 광명-서울간 고속도로 건설(도급액 1388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눈에 띄는 점은 코오롱건설이 수주한 그룹 공사가 지난해 하반기에 대거 몰린 사실이다. 업계에선 코오롱건설의 그리 녹록치 않은 내부 사정과 무관치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코오롱건설은 2007년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39.4% 감소한 676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0.5%, 77.9% 감소한 1조1490억원, 154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4분기엔 당기순이익이 적자로 전환, 25억원의 순손실을 입기도 했다.
코오롱건설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유동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코오롱건설의 차입금은 2005년 이후 매년 증가해 지난해 말 기준 6353억원으로 부채비율이 무려 355%에 육박했다. 반면 현금성 자산 보유액은 고작 수십억원에 불과했다. 급기야 지난해 6월 전후로 증권가엔 코오롱건설의 유동성 위기설까지 나돌았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달 재무안정성과 수익성 저하 가능성을 이유로 코오롱건설의 등급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한 상태다. 한기평 측은 “코오롱건설의 차입금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단기상환(2009∼2010년) 압박이 커지고 있다”며 “2년 내 상환이 도래하는 차입금이 전체 차입금 중 98%에 달해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결국 위기에 처한 코오롱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일감을 몰아주지 않았냐는 의혹이다. 더욱이 코오롱건설은 경쟁 입찰 방식이 아닌 수의계약을 통해 이들 공사를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 사실상 그룹의 계열사 부당지원 행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정위, 국세청 등은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 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 행태에 대해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엄정 단속·관리한다는 방침을 정한 바 있다.
또 주목할 점은 코오롱건설의 지분구조다. 실적에 따른 수혜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탓이다.
공교롭게도 코오롱건설의 최대주주는 이번에 거의 모든 공사를 제공한 ㈜코오롱(15.47%)이다. 개인 대주주는 이웅열 회장의 부친인 이동찬 명예회장(1.33%)으로, 나머지 개인주주들이 모두 0.1% 이하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적은 지분율이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코오롱건설은 내부적으로 윤리경영 차원에서 협력사에 하도급을 주면서 발생할 수 있는 하청업체 밀어주기 등 불공정 거래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며 “그런 회사가 짧은 기간에 10여 건에 달하는 그룹 공사를 받은 것은 일감 몰아주기가 아니냐는 의심을 충분히 살 만하다”고 말했다.
“왜 우리만 그러냐”
코오롱건설 측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그룹 공사 수주가 갑자기 몰린 이유는 회사 경영과 무관한 지난해 3월 김천공장 화재와 오래된 낡은 시설들의 보완·교체 때문”이라며 “수주 방식은 신축이 아닌 기존 시설의 복구나 증축이고 건립 당시부터 유지·보수를 계속해 온 탓에 입찰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일감 밀어주기 의혹에 대해 “전체적으로 봤을 때 당시 수주한 물량이 100% 그룹에서 나온 게 아니지 않냐”며 “다른 대부분의 건설사도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 간 밀고 당기는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 왜 꼭 코오롱건설만 의혹을 제기하냐”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