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자녀 그룹 계열사 입사 후 경영권 승계 수업 절차
CEO 자녀 경쟁 뚫고 입사…자기만의 영역 구축 나서
재벌그룹 총수와 혈연으로 맺어진 자녀 등이 그룹의 계열사에 입사하는 것은 오래된 재계의 풍속도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그렇고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도 삼성그룹 계열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아들인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 1995년부터 경영 일선에 참여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장남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도,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상무도 여기에 속한다. 이렇듯 대다수의 재벌그룹 총수의 자녀들은 그룹의 계열사에서 근무를 하며 ‘경영권 승계 수업’을 받는 것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전문 최고경영자(CEO)의 자녀가 부친과 같은 회사에 다니는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최근 들어 이러한 한솥밥을 먹는 CEO와 자녀가 늘고 있는 추세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는 지난 1991년 삼성전자에 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2001년 상무보, 2003년 상무, 2007년 전무로 승진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었지만 경영 수업을 차근차근 밟고 있는 모습이다.
이건희 전 회장의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도 지난 1995년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복지재단에서 대리로 출발했다. 이후 1998년 삼성전자 과장으로 일했고 2001년부터 호텔신라에서 일하면서 부장 3년, 상무보 1년, 상무 4년을 거쳐 지난 1월 전무로 승진했다.
재벌총수 자녀들
부친 회사서 시작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아들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지난 1995년 상무로 화려하게 입성했다. 지난 2000년에는 부사장, 2006년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정 부회장은 신세계사보 4월호에 실린 ‘만나고 싶었습니다’란 코너에서 “전지역 1번점, 우리나라 최대 백화점, 국민의 지지를 받는 최고의 백화점, 모든 협력사의 지지를 받는 백화점이 돼야 한다”고 포부를 밟히는 등 경영 전면에 나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은 지난 2000년 현대자동차 이사로 경영에 참여한 뒤 2001년 전무, 2003년 현대모비스 부사장, 2005년 기아자동차 사장으로 승진했다. 정 사장은 아버지 정 회장의 경영스타일에 따라 현장경영을 통해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상무는 지난 2004년 10월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 부팀장(차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2006년에 차장에서 상무보로 진급했고, 2007년에는 상무B로 승진한 데 이어 2008년 상무A로 올라서는 등 승진을 거듭했다.
재벌그룹 ‘황태자’들인 이들은 모두 ‘아버지의 울타리’인 그룹의 계열사에 입사해 ‘아버지와 한솥밥’을 먹으며 ‘경영권 승계’라는 똑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 이외에도 다수의 재벌그룹 ‘황태자’들은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이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평균 31세에 임원이 돼 경영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후 평균 28개월에 한 단계씩 진급하며 ‘경영권 승계’에 한 발짝씩 다가간다. 이는 일반 임원의 평균 승진 기간인 43개월에 비해 15개월이나 빠른 속도다.
CEO의 자녀들은 그러나 재벌그룹 황태자들과는 달리 아버지와 같은 회사에 다니는 일은 드물다. 오히려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 CEO의 자녀들이 많아 보인다. 더욱이 연예계나 스포츠계에 입문해 스타로 부상한 인물들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인물이 탤런트 윤태영이다. 그의 아버지는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탤런트 차인표의 아버지도 CEO다. 바로 지난 1974년 우성해운을 창업한 차수웅 회장이다. 탤런트 김정은은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의 조카딸이다. 이수그룹 김준성 명예회장이 그녀의 작은 외할아버지다.
영화배우 강동원의 아버지는 경남 통영에 위치한 조선회사 SPP의 부사장이다. 영화배우 이성재는 전 삼성종합건설 이강태 사장의 아들이다. 또 영화배우 한재석은 한승준 전 기아자동차 부회장의 아들이다.
스포츠 스타 중에도 기업인을 아버지로 둔 이들이 많다. 프로골퍼 박지은 선수의 아버지는 박수남 삼호물산 사장이다. 역시 프로골퍼인 한희원 선수는 한영관 삼화수지 사장의 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CEO와 자녀·친족이 같은 회사에 다니는 사례가 확산되고 있다. 이런 사례는 삼성전자에서 확연이 나타나고 있다. CEO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후광’을 입은 ‘그룹 황태자’와는 달리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해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아버지가 그랬듯이 자신들도 현장에서 땀 흘리며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윤우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의 아들은 삼성전자 해외마케팅 파트에 근무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970년대 중반부터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이끌어 오면서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만드는 데 초석을 다진 인물.
아버지와 아들
CEO와 부하직원
기흥공장장으로 일하던 지난 1980년대 중반 일본 업체의 덤핑공세와 반도체 경기침체기에도 과감하게 256K D램과 1메가 D램 양산 체제를 갖춰 삼성반도체의 신화를 이뤄내기도 했다.
경북 경주 출신으로 지난 1968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해 1977년부터 삼성전자에서 근무했으며 처음부터 삼성반도체 생산과장으로 근무했다. 이후 삼성반도체통신 이사, 상무이사 겸 반도체 기흥공장장을 지냈다. 특히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메모리 사업에 진출한 1983년 이후 고전을 했던 5년여를 고스란히 메모리 공장에서 연구에 바치기도 했다.
이후 1992년에는 메모리 사업 총괄 부사장을 역임했다. 지난 1994년부터 반도체 총괄 대표이사 부사장에 올랐으며, 현재까지 15년째 대표이사로 재직해왔다. 그런 아버지를 따라 아들도 삼성전자에 입사해 ‘하드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최지성 삼성전자 DMC 부문장(사장)의 아들도 최근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부문 휴대폰 상품기획 일본파트로 배치됐다. 아버지가 수장을 맡고 있는 사업부문의 최전선에서 아들이 뛰고 있는 것이다.
최지성 사장은 지난 2006년 ‘보르도TV’로 삼성전자를 세계 디지털TV시장 1위의 반석에 올려놓았고, 지난 2007년에는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던 휴대폰 사업을 맡아 ‘제2의 애니콜 신화’를 쓴 인물이다.
최 사장은 1951년생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1977년에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이후 최 사장은 반도체 메모리수출담당 사업부장과 비서실 전략1팀장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2000년 디스플레이사업부 부사장, 2004년 디지털미디어 사장, 2007년부터는 정보통신 총괄 사장을 역임했다.
특히 최 사장은 마케팅 능력과 기술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기술과 영업을 모두 이해하는 CEO로 평가 받고 있다. 이러한 아버지의 이력을 뛰어넘기 위해 아들도 DMC부문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순봉 삼성석유화학 사장의 딸은 삼성전자에서 휴대폰 디자인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부산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윤순봉 사장은 경영혁신 전문가로 삼성경제연구소에서 16년간 다양한 분야의 연구 활동을 수행했고 그룹 홍보업무를 총괄했던 인물이다.
이런 윤 사장의 딸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삼성전자에 입사해 근무하고 있으며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외에도 ‘황의 법칙’으로 잘 알려진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의 아들도 삼성전자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지성·이윤우·윤순봉·황창규 자녀들 삼성 계열사 근무
자본주의 사회 신분의 꽃인 CEO 향해 현장에서 구슬땀
CEO를 향해
현장에서 구슬땀
구학서 신세계 부회장(전사 부문)의 차남도 삼성전자 일본파트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구학서 부회장도 사회생활의 첫발을 삼성전자 경리과에서 시작한 만큼 부자가 모두 전-현직 ‘삼성맨’이다.
구 부회장은 지난 1972년 삼성그룹 공채 13기로 입사했다. 이후 삼성그룹 비서실 재무팀 과장, 제일모직 경리과장, 도쿄지점 관리부장 등을 거쳤다. 지난 1996년 신세계 경영지원실장으로 영입되면서 유통업에 발을 내디뎠고 1999년 신세계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후 지난 2006년 11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LG그룹 쪽에서는 남용 LG전자 부회장의 사위가 휴대폰(MC) 사업본부 경영관리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남 부회장은 LG텔레콤(LGT)과 LG전자를 거치며 12년째 CEO를 지내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LGT 사장 재직 당시 포화상태인 이동통신시장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가입자 650만명을 돌파하며 업계 최고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렇듯 아버지인 CEO들은 자신들의 역량을 펼치며 그룹 내에서 입지를 굳혔다. 이런 CEO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자녀들도 걷기 위해 아버지의 근무처에 당당히 발을 들여 놓고 있는 것.
오히려 아버지보다 더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는 평가다. CEO가 된 아버지가 자신의 활약으로 그 자리에 오른 만큼 부정을 개입시키기보단 혹독한 훈련을 통해 자녀 스스로가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CEO의 자녀들도 아버지의 마음을 십분 받아들여 월급쟁이들 꿈의 정점이자, 자본주의 사회 신분의 꽃인 CEO를 향해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