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이 ‘알몸대화’를 나누는 이색 친목모임을 만들었다. 국회 건강관리실에서 자주 만나는 의원들이 모인 ‘목욕당’이다. “목욕탕을 이용하는 의원들이 여야간 물밑대화의 창구 역할을 맡으면서 정치를 부드럽게 해보자”는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의 말이 현실로 나타난 것. 안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 내 목욕탕인 ‘건강관리실’을 많이 이용하는 의원들에게 발기인 대회 초청장을 보낸 데 이어 50여 명에 이르는 당직인선까지 마무리 한 ‘당’을 창당했다.
18대 여야 국회의원들이 친목모임을 통해 뭉쳤다. 관심거리를 공유하면서 친목을 다지고 여야간 물밑대화의 창구까지 맡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19일 국회에서 이상한(?) 보도자료가 나왔다.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번지 국회의원회관 목욕탕’에 자리한 ‘목욕당’이 창당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 당 로고 대신 목욕탕 로고(♨)를 사용하고 있는 목욕당은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과 민주당 최인기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국회 친목모임이다.
여야 아우른 막강 친목모임
“목욕탕에서 자주 만나는 여야 의원들을 모아 ‘목욕당’을 만들 계획”이라던 안상수 의원의 발언이 현실화 되면서 50여 명에 이르는 여야 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
안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 내 목욕탕인 ‘건강관리실’을 이용하는 한나라당 안경률·송광호·서상기·구상찬·정양석 의원, 민주당 박병석·유선호·최인기·김성곤·신학용 의원 등 10여 명에게 발기인 대회 초청장을 보낸데 이어 이들과 목욕당을 창당했다.
당 공동대표를 맡은 안상수, 최인기 의원은 목욕당 창립관련 보도자료에서 “민의의 전당 국회가 언제부턴가 서로 상대방을 증오하면서 격투를 벌이는 장소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본의 아니게 국민들에게 커다란 실망감과 깊은 상처를 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생각하고 국가를 생각하기 위해 밤을 새워도 모자를 판에 서로 비난하면서 막말국회, 난장판국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이를 막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끝없는 자괴감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과거 국회선배들은 서로 격렬하게 싸우고도 밤에는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국민걱정, 나라걱정을 했던 낭만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다르면 선배도 없고 동료도 없고 후배도 없다. 날선 대립과 갈등만이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 내에서 여야가 가장 편안하게, 꾸밈없이 만날 수 있는 목욕탕에서 몇몇 선배와 후배들이 나섰다. 적어도 뜻을 같이하는 여야 의원들이 우리들만이라도 여당은 야당을 야당은 여당을 생각하고 인정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자는 취지에서 목욕당(沐浴黨)을 창당했다”고 창당 배경을 밝혔다.
이들은 “여당만 있고 야당은 없는 국회는 필요 없다. 야당만 있고 여당이 없는 국회도 필요 없다”면서 “격렬하게 여야가 부딪치는 전투의 장, 비난의 장이 아니라 서로를 아끼고 보하는 상생의 국회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내보였다.
한나라당, 민주당, 창조한국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이 모두 참여한데다 ‘벗고’ 만나는 모임이라 여당도 야당도 없지만 각종 위원장에 냉탕·온탕 대표까지 당직인선을 마무리, ‘당’의 모습을 갖췄다. 당 공동대표를 여야 의원들이 함께 맡으며 ‘친목’을 강조하는 한편 개개인의 역량과 특색을 배려한 당직을 인선한 것.
김용태 의원은 당 대표 비서실장에 임명됐으며 정몽준 의원은 탕내 수압조절 위원장, 송광호 의원은 당원자격 심사 위원장, 권영세 의원은 탕내 적정온도 유지 위원장, 원혜영 의원은 탕내 적정온도 조절 위원장, 유선호 의원은 탕내 분쟁조정 위원장, 주호영 의원은 조직 강화위원장, 김성조 의원은 홍보위원장을 맡는 등 여야 중진 의원들이 위원장을 꿰찼다.
최규성 의원이 당 정책 조정실장을, 김충환 의원은 체력단련 연구실장을 맡았다. 진영 의원은 냉온탕 수위조절 위원장, 강기정 의원은 수질검사 위원장에 위촉됐다.
온탕과 냉탕도 각기 대표를 뒀다. 온탕대표는 구상찬 의원, 냉탕대표는 최재성 의원이다. 장세환, 김기현 의원이 공동 대변인으로 나섰으며 박병석 의원은 냉온탕 교류 위원장을 맡았다. 탕내 윤리 위원장은 신지호 의원이다.
지난해 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폭력사태 당시 해머를 들어 구설수에 오른 문학진 의원이 대량살상무기 탕내 반입 저지위원장에 위촉됐으며 최연희 의원은 냉온탕 온도유지 위원장을 맡았다.
이밖에 김선동 온탕조절 위원회 제1위원장, 권영진 온탕조절 위원회 제2위원장, 이종혁 냉탕조절 위원회 제1위원장, 이진복 냉탕조절 위원회 제2위원장, 이용경 목욕당 연구소장, 서상기 온탕연구 위원장, 유재중 냉탕연구 위원장, 전병헌 탈당방지 위원장, 김정훈 사우나 대표, 현기환 사우나 부대표, 이학재 탈의실 복지 위원장, 신학용 수면실 실장, 정양석 수면실 부실장, 강석호 체력단련실 실장, 김재균 샤워실장, 김성회 여탕친선교류 협의회장, 임영호 타올 품질관리 실장, 이상민 안전사고방지 위원장, 김창수 안전사고방지 부위원장, 조전혁 사우나 환경조성 추진위원장, 홍장표 사우나 환경조성 추진부위원장, 박종희 탕내 시설 관리 위원장, 이철우 탕밖 시설 관리 위원장, 정하균 당내 고충상담 위원장, 황영철 건강트레이닝 위원장, 서종표 탕내 전략기획실장 등 의원 한 명 한 명이 특색있는 당직을 맡았다.
온탕·냉탕 당직 인선
‘목욕당’은 우선 건강관리실을 애용하는 의원 50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향후 모임이 활성화되면 추가 가입신청도 받는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매월 한 차례씩 만나 여야간 이해의 폭도 넓히고 친목도 다지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목욕당은 여당과 야당을 떠나 친목을 다지고 대화에 나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비판도 만만찮다. 의원들이 산적한 ‘일거리’를 두고 한가롭게 목욕이나 즐기겠다는 것을 사방에 공표한 꼴이 됐다는 것이다.
특히 창당모임에서 ‘소주폭탄주를 주고받는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면서 이를 ‘여야간 이해의 폭을 넓히는 귀중한 시간’이라고 하는 등 ‘친목’에만 집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국회 일정 추진에 활력을 불어넣을 ‘물밑대화’의 역할론은 어디로 갔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