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개편을 맞아 KBS는 26년 장수한 <가족오락관>과 10년 장수한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이하 사랑과 전쟁)을 폐지하기로 했다. 또 14년간 장수하며 잔잔한 감동을 전해준 아침드라마 <TV소설>과 <청춘예찬>도 막을 내리기로 했다.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지는 장수프로그램에는 수많은 해프닝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장수프로그램들의 아쉬움을 뒤로하며 그동안 일어났던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묶어 보았다.
‘타이틀’만으로 시청자 시선을 잡아끄는 <가족오락관>은 지난 4월2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치러진 마지막 녹화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1984년 4월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26년 만에 1237회를 끝으로 마침표를 찍게 됐다.
1237이란 숫자가 말해주듯 <가족오락관>에는 다양한 진기록들이 즐비하다. 우선 ‘모범 MC’로 손꼽히는 허참은 방송에 딱 한 번 불참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교통사고. 직접 차를 몰고 <가족오락관> 녹화를 오던 도중 가로수를 받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코뼈가 주저앉는 부상을 입고 타고 있던 차량은 반파됐다.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고집을 피워 녹화장으로 갔다. 그러나 얼굴에 심하게 흉터를 입은 허참을 본 제작진은 그를 병원으로 보냈고 그의 빈자리는 당시 여자 MC 정소녀가 채웠다.
허참과 짝을 이룬 <가족오락관> 여자 MC는 21명이다. 여자 1대 MC는 오유경 아나운서였다. 이후 정소녀, 김혜영, 김자영, 김영미, 최영미, 이유리, 전혜진, 장서희, 오현정, 손미나, 변우영, 윤지영, 박주아, 박사임, 이정민, 김새롬 등이 바통을 이으며 <가족오락관> 안방 마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어 축구선수 김남일과의 결혼으로 MC자리를 물러난 김보민에 이어 이선영 아나운서가 21번째 여성 MC를 맡아 프로그램의 마지막을 정리하게 됐다.
<가족오락관>에서 탄생한 코너의 개수는 무려 451개에 달한다. 유명 코너로는 ‘그림퀴즈’ ‘사구동성’ ‘폭탄퀴즈’‘고요속의 외침’ ‘볼과 볼 사이’ ‘방과 방 사이’ ‘따로 또 같이’ ‘스피드 게임’ 등이 있다. 이 중 ‘고요속의 외침’은 최근 제작진이 실시한 시청자 설문 조사 결과 ‘<가족오락관> 하면 떠오르는 것’ 1위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가족오락관>에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회상할 만큼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일명 ‘왕XX털’ 사건. 약 20년 전 <가족오락관>은 당대 최고의 인기 코너였던 ‘사구동성’을 진행했다. 전 출연자들이 큰 헤드폰을 끼고 앞사람과 뒷사람에게 4글자의 단어를 설명하는 게임이었다. 당시 여성팀은 ‘왁자지껄’이란 단어를 설명 중이었다.
출연자들은 헤드폰에서 들리는 큰 음악소리 때문에 단어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운 좋게 2번째와 3번째 출연자는 ‘자’와 ‘지’라고 답했다. 하지만 4번째 사람이 ‘껄’을 잘못 들어 ‘털’로 들은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번째 출연진이 ‘왕’이라고 답하면서 단어는 다소 민망(?)하게 조합됐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녹화장은 쑥대밭이 됐다. 당황한 출연진과 제작진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긴장감이 팽팽하게 조성된 순간, 한 방청객이 큰 웃음을 터뜨리자 스튜디오는 웃음바다로 변했다. 물론 그 웃음의 파도는 안방까지 전달돼 ‘왁자지껄’은 최고의 화제를 모았다.
<가족오락관>은 1만여 명에 이르는 연예인들이 출연해 프로그램을 빛냈으며 남진, 조용필, 유재석, 김혜수, 비 등 현재 스타가 된 연예인들도 이 프로그램을 거쳐 갔다.
제작진에 따르면 이들 중 지난 26년간 가장 많이 출연한 게스트로는 비공식 집계로 100회 정도 출연한 가수 서수남. 그는 지난 2일 진행된 <가족오락관> 마지막 녹화에 참여해 프로그램의 피날레를 함께했다.
‘관객 참여형’ 예능 프로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가족오락관>은 매주 방송마다 주부 게스트를 초대한다. 제작진에 따르면 1237회 녹화 동안 섭외한 주부 게스트가 무려 11만여 명에 달한다. <가족오락관>이 허참만의 방송이 아닌 ‘국민 예능 프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까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린 장수 인기 프로그램 <사랑과 전쟁>은 신구의 ‘4주 후에 뵙겠습니다’란 유행어를 남기고 지난 17일 방송을 끝으로 종영됐다. 무려 9년6개월을 끌고 온 이 장수 드라마는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사랑과 전쟁>은 1999년 KBS <아침마당>에 출연하는 ‘문제부부’를 그려내기 위해 재연 코너를 만든 것이 시초다. 반응이 좋아 드라마 요소를 가미해 지금의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그동안 300여 개의 에피소드를 다뤄 불륜 드라마의 ‘아이디어 뱅크’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랑과 전쟁>에 방송, 화제가 됐던 에피소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26년 만에 1237회 끝으로 마침표… 여자 MC 21명·451개 코너 탄생
‘사구동성’ 코너에서 일어난 일명 ‘왕XX털’ 사건은 최고의 에피소드
부산 모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사건을 소재로 삼아 25.2%의 높은 시청률을 얻은 190화 ‘단체관광의 최후’는 <사랑과 전쟁> 애청자들이 아직도 잊지 못하는 에피소드 중 하나로 꼽힌다.
부산의 아파트 단지 아줌마들이 일본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만난 한국의 남자들하고 단체로 놀아난 이야기다. 그 중 한 여자가 성병에 걸려 알려졌다는 소문이 있다.
398화 ‘시어머니는 남자’는 실제 있었던 사건이다. 트렌스젠더 시어머니가 등장해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한 며느리가 목욕도 같이 하고 침대에서 손 붙잡고 같이 잠을 잤던 ‘시어머니’가 사실은 시어머니가 아니라 성전환수술을 받은 시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362화 ‘가짜아내’는 사기 결혼의 진수를 보여준 작품이다. 한 여자가 동생의 주민등록증을 갖고 신분을 속인 채 한 남자와 결혼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여자는 이미 두 차례의 결혼을 통해 세 아이를 둔 데다 나이도 남편보다 아홉 살이나 많았다는 이야기다.
20화 ‘성 그리고 거짓말’은 처음으로 시청률 20%를 넘은 작품이다. 처음으로 남자의 자위장면을 묘사해서 충격을 주었다. 남편의 잠자리 요구가 부쩍 줄어들자 남편을 의심하는 중년 부인의 이야기다.
399화 ‘씨받이 신부’는 한국 시청자들을 무안하게 만든 드라마였다. 아들을 못 얻는 부부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순진한 처녀를 속여 대리모 삼는 이야기. 아이를 빼앗기 위해 알리바이를 꾸미고 우즈베스키스탄 여자를 감옥에 넣는 결말이 충격적이다. 국제결혼을 기존과 다르게 외국 신부의 입장에서 다뤄 화제가 됐다.
358화 ‘여왕벌의 외출’은 모 지방 대학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을 각색했다. 한 여자의 엽기 행각이 시청자들을 경악하게 했다. 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에 있는 미모의 유부녀가 일과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러 남자를 농락하다가 남편에게 발각돼 문어발식 행각이 들통나는 내용이다.
309화 ‘스폰서 카페’는 부유층 남성들이 스폰서 카페라는 장소를 통해 젊은 여성들과 사랑 없는 성관계를 맺고 젊은 여성들은 선물이나 경제적 도움을 얻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 존재한다는 스폰서 카페를 소재로 해 젊은 여성들의 달라진 인생관을 보여줬던 작품이다.
이외에도 탈북 귀순자가 우리 사회에 고생하는 모습을 눈물겹게 그린 262화 ‘귀순스타 룡호씨’, 중년 부부가 재미 삼아 스와핑을 시도했다가 점점 깊은 늪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로 25.2%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210화 ‘체인징 파트너’, 노인들의 사랑과 성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뤄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던 155화 ‘황혼의 아우성’ 등 <사랑과 전쟁>은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화제의 연속이었다.
한편 <사랑과 전쟁>은 그동안 수많은 인기스타들이 거쳐갔다. 탤런트 윤정희, 이필모, 김희정 등이 출연했었고, 가수 장윤정과 박현빈도 무명시절에 이 프로그램을 거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