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보내는 시간 늘면서 T팬티·콘돔 매출 쑥쑥
적은 돈으로 큰 만족…초콜릿·명품 소품도 인기
T팬티와 콘돔, 초콜릿에는 공통점이 있다. 경기가 침체될수록 매출이 오르는 제품이란 것이다. 값비싼 물건을 사기엔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은 돈으로도 큰 만족을 느끼기 위해 이 같은 제품들에 지갑을 열고 있다.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서도 즐거운 시 간을 보내는 데 필요한 제품이나 잠시라도 스트레스를 풀고 사치스런 기분을 느끼기 위한 제품들이 주를 이룬다. 불황엔 특정 제품이 잘 팔린다는 속설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경기침체로 달라진 소비자들의 쇼핑풍속도를 살펴봤다.
인터넷쇼핑을 즐기는 이모(36·여·회사원)씨는 최근 한 사이트에서 속옷 몇 점을 구입했다. 평소 란제리류는 직접 매장에 가서 사던 그녀가 온라인 몰을 택한 이유는 따로 있다. 매장에서 눈으로 보고 고르기엔 민망한 야한 속옷을 사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무난한 속옷을 즐겨 입던 이씨가 색다른 속옷에 눈을 돌린 것은 불황과 무관치 않다. 치솟는 물가에 지갑은 날이 갈수록 얇아지고 구조조정 한파까지 그녀와 남편을 불안하게 만들면서 쇼핑패턴은 크게 변했다.
속옷으로 기분전환
특히 패션에 큰 변화가 생겼다. 옷을 자주 사지는 않았지만 비싼 브랜드의 옷을 사는 편인 이씨는 좀 더 저렴한 옷을 사기 위해 아울렛매장이나 인터넷몰을 자주 찾고 있다. 또 목돈이 들어가는 겉옷으로 변화를 주기 보다는 스카프 등 액세서리로 변신을 시도하기도 한다.
겉으로 보이는 옷보다는 속옷을 더욱 자주 구매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적은 돈으로 기분전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자극적인 속옷에까지 눈을 돌리게 됐다. 자신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 색다른 기분을 주고 싶어서였다.
결국 그녀는 인터넷에서 특이하고 야한 속옷을 전문으로 파는 쇼핑몰을 찾아 T팬티와 슬립 등 몇 가지 제품을 구입했다.
이씨는 “아무래도 외출하게 되면 돈이 들어 주말에도 집에 있는 날이 늘었는데 속옷 하나로 좀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씨처럼 불황이 깊어지면서 겉옷보다는 속옷에 투자를 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특히 T팬티 등 평소엔 잘 입지 않았던 야한 속옷의 매출도 늘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까지 신세계백화점의 란제리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백화점은 9.3%, 현대백화점은 7.5%가 증가했다.
특히 롯데백화점의 경우 란제리 중에서도 붉은색 계통의 속옷이나 T팬티 스타일 등 야한 속옷 매출은 이달 들어 19%나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야한 속옷 판매 비중도 지난해에는 20~25% 수준이었으나 올해는 35~40%를 차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속옷 매출이 급증하는 데 대해 소비자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외출을 삼가는 대신 화려하고 야한 속옷을 입음으로써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 침체기에는 유독 속옷이 잘 팔린다는 속설이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불황에 잘 팔리는 것은 또 있다. 콘돔 역시 불황이 깊어질수록 판매량이 느는 제품 중 하나다. 경기가 침체될수록 콘돔을 찾는 이들이 느는 이유는 두 가지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과 출산을 미루기 위해 피임을 하는 부부가 증가했다는 것. 이로 인해 올해 들어 대부분의 할인마트나 편의점 등에서 콘돔판매가 10%가량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초콜릿 등 달콤한 간식류도 잘 팔리는 제품 중 하나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단 것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적은 돈으로 잠시나마 사치를 누리기 위해 평소에 먹던 초콜릿보다 값비싼 고급 초콜릿을 선택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초콜릿 효과는 미국에서도 불고 있다. 북미 지역 최대 초콜릿 제조사인 허쉬의 지난해 4분기 순익이 51.4% 상승한 것. 영국의 제과업체 캐드베리사의 순익도 지난해 30% 상승해 초콜릿열풍을 실감케 했다.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명품브랜드에도 여전히 잘 팔리는 제품들은 있다. 비교적 싼 가격으로도 구입할 수 있는 소품이 그것이다. 의류나 가방, 신발 등 고가의 제품을 사기엔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열쇠고리나 넥타이, 헤어밴드 등 10만원대의 명품 소품을 구입함으로서 만족감을 가진다는 것이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프라다, 구찌 등 명품브랜드에서 판매하는 열쇠고리, 휴대폰고리 등 소품 매출이 50%이상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황에도 명품을 포기할 수 없는 이들의 선택이다.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기초화장품이나 값비싼 색조화장품보다는 립스틱이나 마스카라 등 적은 돈으로도 극적인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소품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불황엔 립스틱판매량이 증가한다는 속설 역시 입증된 셈이다.
적은 투자 큰 만족
전문가들은 “적은 돈으로도 큰 만족을 느끼기 위해 평소엔 구매하지 않던 제품들에 눈을 돌리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며 “한쪽에서 지출을 줄인 만큼 다른 쪽에서 만회하는 경향이 있어 ‘소비의 풍선효과’를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