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리스트’ 수사와 관련, 경찰이 수사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지만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장자연 리스트’에 거론된 유력 인사 3명 중 1명인 신문사 대표의 이름이 공개된 이후 경찰이 취재진의 질문에 노골적인 답변 거부에 나서 그 배경에 의혹이 일고 있는 것. 경찰은 그동안 수사방향이나 일정, 그리고 잠적한 전 기획사 대표 K씨에 대한 수사 진척사항 등에 대해서는 일부 공개했으나 지난 8일부터는 이마저 함구하고 있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신문사 대표의 이름을 공개한 것과 관련, 수사계획을 묻는 질문에 경찰은 “원래의 계획대로 수사를 진행할 뿐”이라는 모호한 입장만을 되풀이했다. 전 매니저 유장호씨의 구속영장 신청 계획에 대해서도 “사법처리 수준이 결정되면 그때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유씨의 모순점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에 대해서는 “조사 완료 후 설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문사 대표를 포함한 유력 인사들에 대한 조사 여부와 일정에 대해서는 “수사진행 중이어서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경찰 일각에서는 유력 신문사가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경찰이 벌써부터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질 압박을 받고 있는 MBC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는 지난 8일 클로징 멘트를 통해 유야무야 끝날 조짐을 보이는 ‘장자연 성상납’ 의혹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신경민 앵커는 “계속 지지부진했던 ‘장자연 리스트’에서는 관련된 유력 언론이 떠들썩하게 거론되면서도 정작 이름이 나오지 않아 유력 언론의 힘을 내외에 과시했다”며 대표 이름이 거명된 유력 신문사를 힐난했다.
여의도에서도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해 ‘금융권 수사는 왜 안 하나’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미 언론의 보도를 통해 간간이 흘러나온 ‘금융회사 유력 인사’에 대한 것이다.
연예인 자살사건과 금융회사가 어떻게 엮였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그리 복잡한 문제도 아닌 듯하다. 금융회사라는 게 돈(대출)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시중에는 A, B은행이 연루돼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 과정에서 무엇이 어떻게 돈 문제를 일으켰는지 밝히는 것은 경찰의 몫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의 사례를 보면 가장 흔한 것이 대출 커미션이다. 커미션은 보통 중개료·수수료 등 역시 돈을 얘기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역시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보상의 방법은 필요에 따라 꼭 돈이 아니어도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고 장자연 사건’의 핵심 인물인 고인의 소속사 전 대표 K씨를 로밍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찾고 있지만, 뒤늦은 대응 탓에 별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씨가 경찰과의 통화 직후 곧바로 휴대전화 착신 정지를 해놔 위치추적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경기 분당경찰서 수사전담본부는 본격적으로 사건 수사에 나선 지 열흘 만인 지난달 23일에서야 핵심인물인 K씨와의 휴대전화 통화에 성공했다. K씨는 이번 사건의 실마리뿐만 아니라 사건 해결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경찰은 하지만 K씨의 소재파악을 위한 어떤 조치도 하지 않다가 K씨와의 통화에 성공한 지 열흘 만인 지난 3일에서야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로밍 휴대전화를 통한 위치추적에 나섰다.
경찰은 지난 3일 수사브리핑에서 “기지국까지의 체포영장(로밍 휴대전화에 대한 실시간 추적영장)이 발부됨에 따라 K씨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위해 일본 교환국에 협조를 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원래 계획대로 수사 진행할 뿐” 모호한 입장 되풀이
유력 신문사 ‘법적 대응’에 경찰 벌써부터 고개 숙이고 있어
K씨는 이 같은 경찰의 늑장 대응을 비웃기라도 하듯 경찰과의 통화 직후인 지난달 25일쯤 자신의 로밍 휴대전화를 착신 정지했다. K씨가 가입한 휴대전화 통신사로 확인한 결과 K씨는 현재 휴대전화의 발신과 착신을 모두 정지해 놓은 상태로, 이 경우 휴대전화를 꺼 놓을 때와 마찬가지 상태가 된다.
휴대전화 위치추적은 전파가 모이는 기지국을 이용하거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활용하는 방법 두 가지가 있는데 이 두 가지 모두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 있으면 추적이 불가능하다.
A 통신사 관계자는 “착신 정지 안내 멘트를 확인해 보니 K씨는 휴대전화의 수신과 발신 모두 정지해 놓은 상태”라며 “휴대전화의 수신과 발신을 정지하면 위치추적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이로 인해 경찰이 벌이고 있는 로밍 휴대전화를 통한 K씨의 위치 추적은 무용지물인 셈이다.
다만 로밍 휴대전화 대신 K씨가 최근까지 통화한 가족이나 변호사를 통해서는 그의 위치 추적이 가능할 수 있다. 가족과는 유무선 전화기로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 받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의 유선 전화기를 확인한다면 K씨의 위치가 단박에 드러날 수 있지만 경찰은 아직까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있다.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 수사 중인 경찰은 리스트에 오른 인물 중 1명만 소환하거나 입건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7일 SBS <8뉴스> 측은 “경찰은 어제까지 술접대 강요 공범으로 의심되는 유력 인사 9명 가운데 6명에 대한 조사를 마쳤고 나머지 3명은 조사하지 못했다”며 “아직 조사하지 못한 3명은 언론사 대표들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3명의 언론사 대표 중 모 인터넷 언론사 대표 1명만이 술자리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한 혐의로 출국 금지됐고, 나머지 2명에 대해서는 뚜렷한 혐의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SBS 측은 이어 “이미 조사한 6명에 대해서도 술접대 강요 혐의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해 결국 소환조사나 입건 대상은 1명에 그칠 공산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경찰에 따르면 현재 출국금지 된 인터넷 언론사 대표 외 추가로 출국금지될 인사는 없다는 것.
이 같은 전망이 현실화될 경우 고 장자연이 남긴 문서에서 고인이 술접대 및 성상납을 한 것으로 드러난 정·재·언론계 인사들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무력화되는 셈이다. 만일 수사가 이같이 종료될 경우 결국 경찰은 겉핥기식 수사를 했다는 여론의 뭇매를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