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면 처음에는 양처럼 순해지고, 좀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워지고, 더 마시면 돼지처럼 추악해지고, 더욱 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소란을 피우게 된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술로 인한 폐해를 ‘경계’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국내 굴지의 A그룹 고위임원인 B씨가 술로 인해 이미지를 구기게 됐다. 술을 ‘경계’하지 못한 탓이다.
직장동료들과 회식을 한 후 귀가를 재촉하던 A그룹 고위임원인 B씨가 집이 아닌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보내야만 했다. 술이 과했던 것이 문제였다. 회식자리에서 ‘거나하게’ 술을 마신 B씨는 택시를 타고 귀가를 하던 중 택시기사가 평소 자신이 다니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간다는 이유로 운전 중인 택시기사를 때려 입건됐다.
그놈의 술이 원수?
이 일로 인해 가족들과 부하직원은 밤늦게 경찰서로 ‘출동’해야만 했고,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좋았던 B씨는 체면을 구기게 됐다.
지난 8일, 서울 혜화경찰서는 B씨를 택시기사를 때린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폭행)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전날 밤 늦게까지 직장 동료들과 회식을 한 뒤 만취상태에서 돈암동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탔다. 하지만 택시가 인사동에서 출발, 밤 11시경 원남동 사거리에 이르렀을 쯔음 문제가 발생했다. 택시기사가 평소 B씨가 다니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한 게 화근이었다.
‘이상한 길로 돌아간다’ 실랑이 끝에 경찰서행
운전 중인 택시기사 머리 잡아당기고 목 졸라
B씨는 “중계동으로 가라고 했는데 왜 이상한 길로 돌아서 가냐. 여기서 세워라”며 택시기사의 머리를 잡아당기고 목을 졸랐다. 운전 중이던 택시기사는 머리를 잡히자 순간 깜짝 놀라 택시를 급히 정차하고 경찰에 바로 신고했다. 이로 인해 이들은 지구대를 거쳐 경찰서로 들어가게 됐다.
경찰 한 관계자는 “(B씨는) 만취한 상태여서 (경찰서에 와서도) 기억을 전혀 못 하고 있었다”며 “경찰서에 와서도 소리를 지르는 등 소란이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B씨가 입건됐다는 소식에 그의 부인과 과장급 부하직원이 경찰서로 급히 달려왔다. 그들은 상황을 파악한 후 택시기사에게 그냥 넘어가 달라는 조건으로 30만원의 합의금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술에서 깨어나지 못한 B씨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무슨 합의냐’며 오히려 합의하려던 이들을 만류했고, 택시기사는 ‘대기업에 계신 분 같은데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느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이후 B씨 가족은 B씨를 진정시킨 뒤 택시기사와 합의를 마쳤다.
그러나 문제는 당사자와 합의해야만 효력이 발생한다는 것. 경찰은 당시 B씨 가족에게 “당사자와 직접 맺지 않은 합의는 효력이 없기 때문에 B씨가 직접 합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B씨 가족들은 B씨가 술에서 깨어날 때까지 몇 시간을 더 경찰서에 머물러야만 했다.
사건 하루 뒤인 지난 9일 B씨는 이번 사건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이며 대질조사와 무고죄로 고소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A그룹 관계자는 “당일 (B씨는) 술을 그렇게 마시지 않았다”며 “오히려 길을 잘못 들어 내리겠다는데 택시기사가 문을 잠그고 감금했다”고 밝혔다. 이어 “차가 막힐 때나 다른 길로 돌아가는 것인데…”라며 “사건 당일 시끄럽게 하기 싫어 합의를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B씨 “억울하다”
한편 B씨가 경찰로부터 받은 혐의였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폭행’은 운전자와 대중교통 이용자의 안전을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지난 2007년 4월3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은 운전 중인 사람을 폭행했을 때 일반 폭행보다 강하게 처벌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의 시행에 따라 운행 중인 자동차의 운전자를 폭행 또는 협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또 사람을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3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하고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등 가중 처벌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