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국제빙상경기연맹(ISU) 2009 세계피겨선수권 여자 싱글에서 ‘꿈의 200점대’를 돌파하며 ‘피겨여왕’으로 자리매김한 김연아는 1990년 9월 경기도 군포에서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7살이 되던 해인 지난 1996년 김연아는 고모의 낡은 스케이트를 신고 처음으로 피겨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6가지 점프 기술 중 악셀을 제외한 5가지 트리플 점프를 소화하며 ‘천재 피겨소녀’로 주위의 주목을 받아온 김연아는 타고난 천재성과 함께 연습벌레였다. 김연아를 지도하는 브라이언 오서 코치도 “연습할 때 ‘이제 좀 그만하자’고 말려야 할 정도로 연습벌레다. 만족을 모른다”고 말할 정도다.
더욱이 어릴 적부터 계속된 부상은 김연아를 더욱 힘들게 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곤 했다. 특히 중학 시절 인대가 늘어나 점프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땐 은퇴까지 고려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천재 피겨소녀의 노력은 차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4년 9월 ISU 주니어 그랑프리 2차 대회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지난 2005년 11월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세계 진출 첫 금메달을 목에 걸며 ‘김연아 시대’가 왔음을 세계에 알렸다.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두 차례 우승한 김연아는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에 이어 2006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정상까지 차지, 4개 대회를 연속 우승하며 세계 주니어 무대를 평정했다.
그러나 시니어 무대에 진출한 김연아는 2006~2007 시즌에는 시련을 맛봐야만 했다. 2006-2007 시즌 허리부상과 스케이트 부츠 문제가 겹치면서 은퇴까지 고려했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2006년 12월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진통제 투혼을 발휘, 아픈 허리를 이끌고 ‘라이벌’ 아사다 마오(일본)를 11.68점 차로 제치고 역전 우승,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어 2007년 3월 세계선수권대회 3위, 그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대회 2연패를 일궈냈다. 이후 2008년 3월 세계선수권에서 2회 연속 동메달을 따내며 ‘국민 영웅’으로 부상한 김연아는 4대륙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고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이번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을 거머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