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만 쌩쌩 불고 있는 대한민국 경제. 국민들은 죽을 맛이다. 그 어렵다던 IMF 시절보다도 더 춥다는 게 한결같은 전언. 절로 나오는 ‘죽지 못해 산다’는 타령은 더 이상 엄살이 아니다. 경기 한파는 고소득 전문직으로까지 이미 확산된 상황이다. 법조계도 마찬가지다. ‘뛰고 날던’ 변호사들이 불황 직격탄에 ‘낮은 포복’으로 버티기에 급급하다. 민초들의 빈 주머니 실정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한민국 변호사 업계를 대변하는 성유경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에게 변호사 시장 판세와 해법을 물었다.
‘잘나가던’법조계도 불황·포화에 전전긍긍
‘한우물’전문 분야 부각 세분·차별화 제시
‘나홀로 변호사’먹고 살기 힘든 세상
“고소득 전문직종의 대표 격인 변호사들도 경기침체에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총체적인 경기 불황은 직종을 불문하고 사회의 전반적인 침체기를 불러왔다. 고소득을 자랑하던 전문직 또한 이 덫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야말로 어느 직종이든 안정된 직업이란 타이틀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인 셈이다.
“변호사들이요? 당연히 어렵죠. 일반 직종의 사람들이 들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변호사들도 내·외적인 문제들로 심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휴·폐업은 물론 개인 사무실 낼 엄두조차 못 내고 있어요.”
의뢰 줄고 수임료 ‘뚝’
‘잘나가던’ 변호사 업계도 불황 직격탄에 휘청거리고 있다. 고급 인력의 정점인 변호사들은 경기한파뿐만 아니라 수적으로 포화상태에 접어든 현실까지 겹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1906년 변호사제도가 도입된 이후 1993년 4000여 명 정도로 파악된 변호사는 매년 급격히 늘어 지난해 1만명을 넘어섰다. 그만큼 경쟁이 심해졌다는 얘기다.
반면 사건 의뢰는 줄고 있는 상황.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 없어 국가에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 단적인 예다. 국선 변호인을 선임한 형사 피고인은 2006년 3만5000여 명에서 지난해 6만여 명에 육박했다.
게다가 민사 건마저 줄어 지난해 변호사들이 수임한 민사사건은 한 달 평균 3건을 밑돌았다. 단 1건도 수임하지 못한 사실상 개점휴업 중인 변호사도 2004년 126명에서 지난해 364명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수임료도 뚝 떨어졌다. 민사사건의 경우 서초동의 평균 수임료는 최저 500∼600만원 선이지만 최근 절반으로 ‘흥정’이 가능하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쯤 되자 자연스레 변호사들이 경영난이 뻔한 단독사무실 대신 대형 로펌 등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대한변협에 등록된 회원 9000여 명 가운데 로펌 형태의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절반 이상인 5000명이 넘는다. 이는 변호사 업계의 ‘빈익빈 부익부’양극화 현상을 가속시키는 원인이다.
그나마 국내 로펌에 미국 등 해외 변호사들의 잦은 노크와 까다로운 커트라인 탓에 그 문을 통과하기도 만만치 않다.
“인력이 넘치고 수임료가 줄면서 ‘나홀로 변호사’가 먹고 살기 힘든 요즘이죠. 대형 로펌이나 전문 법인 위주로 사건 의뢰자가 몰리면서 개인 변호사들은 설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무리하게 대출을 받았다가 유지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는 사무실도 적지 않습니다. 통폐합이나 동업으로 이어지지만 쉽게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어요.”
성유경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은 업계의 지각변동 속에서 변호사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키워드로 ‘전문성’을 제시했다. 과거 변호사들이 개인 사업자로서 다방면의 법률 소송을 다루던 소위 말해 ‘소송 멀티플레이어’로 활약했다면 지금의 변호사들은 각자의 분야를 전문·세분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10년 전만 해도 국내 변호사들은 전문 분야가 없었어요. 우리나라도 점차 법률 서비스가 세분화되고 있지만 좀더 ‘칼 같이’전문성을 부각시켜야 합니다. 민·형사 사건은 물론 회사 합병이나 국제거래 등 구체적으로 특화된 분야를 꿰차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시대 흐름에 따라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각자의 분야를 개척해 나가는 게 생존 방법입니다.”
지난 2월 대한변협 사무총장으로 취임한 성 사무총장은 자신의 본업인 부동산 전문 변호를 비롯해 국내 변호사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 변호사로서 ‘말 많고 탈 많은’ 재건축·재개발 토지수용 보상 등의 부동산 문제들을 의뢰받은 데다 협회의 책임자로서 변호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정책과 입법에 반영하고 경·검찰에 의견을 제시하는 ‘징검다리’역할로 하루가 모자라다.
“변호사, 법원, 판사는 대등한 관계죠. 그중에서도 변호사가 사법의 중심부라 생각합니다. 자율성 보장이 매력이에요. 다만 수입의 기복이 심하고 고민 해결사 노릇이 힘들지만 충분히 보람 있는 일입니다.”
성 사무총장은 부동산 분야와 함께 탈북자 인권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2000년부터 대한변협 통일문제연구위원과 탈북자인권보호위원 등으로 활약하면서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그는 대한변협 내에서 북한 관련 정책을 띄워 이슈화하겠다는 복안. 특히 복잡한 탈북자들의 혼인신고 절차 문제를 집중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데 혼인신고가 안 되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를 협회 차원에서 돕고 싶습니다. 또 탈북자들이 당하는 사기, 정착금 문제 등에 대해서도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있습니다.”
대한변협은 ‘중소기업지원변호사단’을 운영하는 등 기업 법률 상담서비스도 진행하고 있다. 불황 여파로 벼랑 끝에 몰린 기업으로선 든든한 ‘동아줄’이 아닐 수 없다.
성 사무총장은 “국내 크고 작은 기업들이 법률 관련 자문을 너무 소홀이 여긴다”며 “고문 변호사를 고용하거나 법률 자문을 구하는 것은 해당 기업의 이익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투명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대형로펌으로 대이동
“기업 활동은 법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법률자문 습관화’는 기업인들의 필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분쟁은 언제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겠습니까. 적은 시간과 비용만 투자하면 나중에 생길 수 있는 손실을 미리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성유경 사무총장은?
부동산 전문 변호사인 성유경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은 고려대 법과대학을 나와 1978년 군 법무관 임용고시에 합격, 1980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미국 조지아 주립대학 법과대학원에서 법학석사를 취득한 뒤 육군본부 검찰관, 군사법원 판사, 국가배상심의위원회 강원지부 위원장, 한미연합사령부 법무실장 등 군 내에서 굵직한 직책을 맡았다.
이외에도 건설교통부 분쟁조정위원,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전문상담위원, 서울시 서초구 무료법률 상담위원 등 역임하다 지난 2월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으로 선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