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자연이 안타까운 생을 마감한 지도 어느새 한 달째로 접어든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살아서 말 못하다 죽음을 통해 연예계의 어두운 그늘을 폭로한 그의 자살은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의혹과 논란을 부르며 사건이 증폭되고 있다. 경찰 수사 역시 좀처럼 진전을 나타내지 못하면서 장기 수사가 예상되는 가운데 경찰이 유력 인사에 대해 어떻게 수사를 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탤런트 장자연 자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술접대·성상납 의혹과 관련된 유력 인사들의 소환 시기와 방법을 당사자들과 조율하고 있다. 하지만 이 유력 인사들이 과연 경찰에 나올 것이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찰은 장자연이 성상납 등을 강요받았다는 의혹과 관련된 구체적인 정황을 상당부분 확인했다. 실제로 목격자들도 술자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소속사 전 대표 K씨 지인은 “노래 부르고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춤추고 접대라는 그런 개념 아니겠냐”고 전했다.
따라서 접대와 관련된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선 의혹의 당사자들을 소환하는 게 당연한 절차다. 그러나 경찰의 태도는 모호하다. “범죄 혐의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면서 소환 결정을 계속 미루고 있다.
경기경찰청 이명균 강력계장은 “문건에 나오는 인물, 고소된 인물이 범죄 혐의가 다 있다고 보는 것 자체가 일단은 무리다”라고 전했다.
이 계장은 이어 “장씨와 술자리에 있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들을 소환할 방침이지만 혐의 입증이 어려운 경우 참고인 신분으로 방문 조사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 인사는 분당경찰서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상당수 인사는 경찰의 출석 요구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계장은 또 “수사 대상이 알려진 것보다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당초 알려진 술접대·성상납 관련 수사 대상은 10명이다. 접대를 강요한 소속사 전 대표 K씨와 종합일간지 대표 등 장씨 오빠가 고소한 4명, 문건에 등장하는 5명, 문건에 등장하진 않지만 장씨와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지목된 인터넷언론사 대표 1명 등이다.
그러나 경찰은 참고인 조사와 소속사 사무실 압수수색 등을 통해 새로운 인물들을 수사선상에 올려놓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경찰은 이 중 일부는 혐의를 입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보고 소환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대체 언제 소환할 수 있느냐”는 질문엔 “수사를 더 진행하고 소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관련 인사들이 워낙 사회 고위층이라서 경찰이 수사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는 수사가 진행될수록 K씨가 연예계는 물론이고 언론계, 정계, 재계에 이르기까지 ‘전방위 로비’를 펼쳤다는 증거가 속속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매체가 보도한 K씨의 스케줄표에 따르면 K씨는 2008년 4월 전 정권의 실세였던 인사를 비롯해 언론계와 금융계 유력 인사 등 각계각층의 주요 인물들과 만나며 인맥을 구축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전 정권의 실세이자 고위 공직자 출신으로 모 투자회사의 대표를 맡기도 했던 A와의 만남이 눈길을 끌고 있다.
스케줄표에 따르면 K씨는 지난해 4월8일 A와 저녁식사를 했다. A는 국내 금융계의 거물이자 한때 대형 로비 사건에 연루됐던 인물로 K씨는 A를 통해 고 장자연 유족들이 경찰에 수사를 요청한 인물로 지목되고 있는 IT업체 대표 B와 친분을 쌓은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A는 로비 사건으로 공직을 떠나 투자회사 대표로 재직하며 B의 회사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4월21일에는 제주도에서 언론계 인사와 골프를 치고 오후에는 유력 일간지 국장과 저녁 약속을 잡았다. K씨의 전 직원은 장자연이 지난해 4월과 5월 제주도행이 잦았다고 말해 장자연의 동행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현재까지 경찰 수사결과를 보면 문건 유출 경위에 대한 의혹은 어느 정도 해소됐으며 고인에게 부적절한 술접대·성상납을 받은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거론되는 인물들의 개략적인 신원도 유족의 고소와 언론 보도를 통해 윤곽이 드러났다.
그러나 정작 핵심 문제인 성접대 등 문건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 확인과 입증 여부, 고인의 자살 동기 등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경찰 수사가 몸통을 건드리지 못하고 곁가지만 치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이유다.
장씨의 한 지인은 “경찰이 실체 확인보다는 눈치 보기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 속에 의혹은 확대 재생산되고 있고 유족들의 고통도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 유력 인사들 소환 ‘눈치보기’…관련 인사들 사회 고위층이라서(?)
경찰관계자 “범죄 혐의가 다 있다고 보는 것 자체가 일단은 무리이다”
K씨 2008년 4월 전 정권 실세 및 각계각층 주요인물 만나 인맥 구축
여배우 A ‘배후인물설’ 부인…“K대표에게 출연료 5000만원을 떼였다”
경찰 수사가 늦어지면서 ‘장자연 리스트’의 인물들 외에도 고인과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는 여러 명의 연예인들이 가명이나 실명으로 세간에 거론되며 구설에 오르는 등 여러 의혹에 시달리면서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
특히 고인과 같은 소속사에 몸담았던 여배우 A와 B등이 고인이 자살하기 전 문서 유출 과정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여러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여배우 A는 계속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 최측근을 통해 입을 열었다. 이 측근은 “A와 남편이 이번 사건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괴소문을 알고 있으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측근에 따르면 A가 자신과 장자연이 몸담고 있었던 소속사 K대표에게 등을 돌린 결정적인 이유는 출연료 미지급 문제였다고 한다.
지난해 1월부터 K씨가 출연료 5000여 만원의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자 A는 수차례 지급을 요청했지만 K씨는 전화마저 피했고 결국 전속계약 만료시점인 지난해 9월을 넘기자마자 출연료 미지급과 관련해 K씨를 형사고발했다는 것이다.
측근은 “법적 다툼을 즐겨하는 K씨의 성향을 잘 알고 있으므로 계약기간 중 문제를 제기했다가는 괜한 해코지를 당할까 봐 일부러 계약이 만료되는 9월까지 참고 기다린 것”이라고 전했다. 또 측근에 따르면 유장호씨는 A의 매니저가 아니라고 했다. 지난해 가을 연극을 준비중이던 A에게 전속 계약을 먼저 자청한 쪽은 평소 친분이 깊지 않았지만 A를 ‘누나’라고 호칭하던 유 대표였다.
그러나 K씨로 인해 매니저 선택에 신중해진 A는 “연극할 때만 잠깐 도와달라”고 했다. 당연히 계약금이 오고가지 않았으며 그 이상의 사업상 파트너십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A의 남편이 유씨 회사에 거액을 투자했다는 얘기를 듣고 투자가 있었다면 금융 거래 내역 등이 남아야 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며 관련설을 일축했다.
아울러 B는 장자연과 같은 소속사에서 일했을 뿐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사이였다고 전했다. 측근은 “일부에서는 고인이 문건과 관련해 A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선후배 사이에 그런 일이 과연 가능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번 사건은 사건의 핵심 인물인 K씨의 귀국 여부가 변수다. 그러나 K씨가 경찰의 귀국 종용에도 일본에 체류하며 ‘시간 벌기’를 통해 장자연의 전 매니저 유장호씨를 고소하는 등 이미 상당한 대응책을 마련한 것으로 보여 K씨에 대한 수사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외교통상부는 K씨에게 여권 반납 명령을 내렸다. K씨가 계속 귀국을 미룰 경우 50일 후 여권 무효 조치가 내려져 불법체류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