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노림수

잦은 ‘대우맨’ 접촉… 화려한 부활 날개짓?

최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행보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던 김 전 회장이 올해 들어 2~3차례 해외 방문길에 오르는가 하면, 행사에 참석해 ‘대우맨’을 만나는 등 폭넓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이 같은 행보를 두고 경제계에 퍼져있는 ‘대우맨’을 등에 업고 경영 일선에 복귀하기 위한 행보를 시작한 거 아니냐는 시각이 팽배하다. 그러나  또 다른 일각에선추징금, 건강문제 등으로 인해 사실상 재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최근 행보가 심상찮다. 김 전 회장과 함께 대우그룹을 이끌며 ‘세계경영’을 외쳤던 ‘대우맨’과의 접촉이 잦아진 것이다. 재계 일각에선 이를 두고 “김 전 회장이 ‘대우맨’을 융합해 재기를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0일 오후 7시, 과거 대우그룹 계열이던 서울 남대문로 밀레니엄힐튼 호텔에서 열린 대우그룹 출범 42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대우그룹이 지난 1999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판정을 받고 해체된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대우그룹 전직 임원 모임인 ‘대우인회’는 지난 2000년부터 매년 3월22일 즈음해 격년제로 그룹 출범 행사를 열어왔다. 3월22일은 김 전 회장이 자본금 500만원으로 시작한 대우그룹의 모태인 대우실업의 창립일이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지금까지 해외 출국,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한 번도 창립행사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지난 2007년 3월 개최된 40주년 기념식에도 김 전 회장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지병 치료를 위한 형집행 정지 상태. 다만 김 전 회장은 측근인 장병주 전 ㈜대우 사장의 입을 통해 인사말만을 전했다.
김 전 회장은 앞서 지난 2월12일에도 서울 강남 포스코센터 서관 19층 중식당 휘닉스에서 대우계열사 사장단 50여 명과 만찬을 가졌다. 모임은 김 전 회장의 초청으로 마련됐다.
이날 모임에는 윤영석 전 대우그룹 총괄회장을 비롯해 서형석 전 ㈜대우 무역부문 회장,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회장, 윤원석 전 대우중공업 회장, 김성진 전 대우경제연구소 회장, 정주호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장병주 전 ㈜대우 사장, 이경훈 전 대우그룹 중국지역본사 사장 등 옛 ‘대우맨’ 5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김 전 회장의 행보에 대해 대우그룹 전직 임원은 “지인들의 얼굴을 본다는 차원에서 참석했으며 식사 한 끼 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10년 만에 만나지 못했던 ‘대우맨’의 안부를 묻는다는 차원에서 만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선 김 전 회장이 10년 만에 참석한 만큼 모임에서는 김 전 회장의 명예회복을 비롯한 향후 거취문제와 사업재개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눴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김 전 회장의 해외 방문도 잦다. 지난해 11월에는 일본과 베트남을 방문하는가 하면 지난 2월에는 베트남을 찾았다. 표면상으로는 신병치료와 요양을 위해서다. 베트남은 김 전 회장에게는 ‘제2의 고국’으로 통하는 곳이다.
베트남 하노이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입안했고 베트남 국토개발 사업을 자문할 정도로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요양을 겸해 새로운 사업 구상을 했고 사업구상이 마무리되자 ‘대우맨’을 만나 이를 구체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러한 해석이 가능한 것은 ‘대우맨’이 정재계 곳곳에서 현재도 활약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들을 융합할 경우 큰 ‘폭발력’을 가진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 중심에는 ‘대우인회’가 있다.
대우그룹이 유동성 위기로 ‘공중분해’되고 10년이 지나면서 ‘대우맨’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대우그룹의 전·현직 임원 모임인 ‘대우인회’를 통해 대우그룹은 망했지만 과거 한솥밥을 먹던 임직원들이 지금도 대우 정신을 일정부분 공유하고 있다.
대우인회는 대우그룹이 해체된 다음해인 지난 2000년 1월 회원간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서울역 부근에 위치한 대우재단 빌딩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정주호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4기 회장을 맡고 있으며, 김선익 전 대우중공업 부사장, 김세중 전 대우자동차 부사장, 윤병철 전 대우자동차 이사, 한용호 전 대우건설 사장이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자문위원으로는 손태일 전 (주)대우자도차수출부문장, 배순훈 전 대우전자 사장, 장영수 대우건설 회장 등이 등록돼 있다. 이 외에도 전·현직 임원 1500여 명이 대우인회 회원으로 있다.
또 다른 모임인 ‘세계경영포럼’도 김 전 회장을 지지하는 그룹이다. 김 전 회장은 지난 1995년 서울대 운동권 출신들을 ‘대우그룹 기업혁신’이란 명분을 내세워 전격적으로 스카우트했다. 현재 세계경영포럼의 실질적인 대표는 김윤 경영발전연구센터 대표와 정필완 인터넷 쇼핑몰업체인 인터넷 밀리오레 대표이사가 맡고 있다.

10년 만에 초청만찬·창립식 참석 ‘광폭 행보’
해외 출국 통해 사업구상 끝 실현만 남았다?

세계경영포럼은 전직 대우그룹 출신 임원들이 주축이 돼 정기적 세미나를 개최하며 옛 대우인들과의 친목을 다졌으나 최근 여론을 의식해 당분간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의 든든한 ‘우군’임에는 틀림없다.
타사 CEO로 변신해 활약하는 ‘대우맨’들도 있다. 건설업체 사장으로 변신한 ‘대우맨’으로는 김현중 한화건설 사장, 김기동 두산건설 사장, 김선구 동아건설 사장, 정태화 TEC건설 사장 등이 있다. 증권계에는 김 전 회장의 직계라인으로 꼽히던 박종수 우리투자증권 사장을 비롯해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김기범 메리츠 증권, 황건호 한국금융투자협회장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추호석 파라다이스 대표이사, 정성립 대우정보시스템 사장, 이승창 대우일렉 사장,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강영원 대우인터내셔널 사장, 윤영석 두산중공업 부회장, 서종욱 대우건설 사장, 최재범 메디슨 대표, 류철호 도로공사 사장 등도 대우 출신 CEO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 박정훈·이재명 전 민주당 의원들도 ‘대우맨’이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대우경제연구소장 등을 역임하며 김 전 회장 옆을 오랫동안 지켰던 정통 ‘대우맨’이다. 운동권 출신인 박정훈 전 의원은 지난 1983년 대우그룹 이사로 입사, 1987년 상무로 승진했다. 지난 1992년에는 김 전 회장이 다리를 놓아 김대중 총재의 민주당 전국구로 14대 국회에 진출했다. 당시 전국구 공천헌금도 김 전 회장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의 경기고 후배인 이재명 전 의원은 미국 유학 중인 지난 1997년 대우실업 과장으로 특채돼 김 전 회장의 수행비서로 출발했다. 이후 대우자동차 부사장, 대우기전 사장, 기조실 사장 등을 지냈다.
1993년 민자당 전국구를 승계 14대 의원이 되면서 대우를 떠났지만 2년 후 김 전 회장이 그룹을 개편하면서 그의 대우 복귀를 제의하자 미련 없이 금배지를 내던져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경기고 인맥도 김 전 회장의 든든한 ‘빽’이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 김원길 전 의원, 고건 전 총리, 장병주 (전) 대우건설 사장, 강영호 전 대우통신 부사장, 이동호 대우자판 사장, 이근현 대우건설 전무, 유춘희 대우엔지니어링 부사장, 김인균 대우엔지니어링 부사장 등이 경기고 동문이다.
이 외 석진강 변호사도 김 전 회장의 측근 중에 측근이다. 김 전 회장은 지난 1999년 10월 중국 공장 방문차 출국했다가 귀국하지 않고 도피행각을 벌였다. 이후 5년 8개월여 만인 지난 2005년 6월 귀국, 사기대출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김 전 회장은 재판 끝에 1심에서 징역 10년에 추징금 21조4484억원을, 항소심에서 징역 8년6월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았다. 이후 지난 2007년 12월 특별 사면됐다. 석진강 변호사는 김 전 회장의 법률고문으로서 당시 ‘대우 분식회계·사기대출·외화도피 사건’에 대한 법적 논리를 정립했다.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가족들도 빼 놓을 수 없다. 부인 정희자씨는 (주)필코리아리미티드(구 대우개발, 대표 홍진후) 회장으로, 수백억대의 자산가로 알려져 있다. 정씨는 경기도 포천 소재 아도니스골프장을 운영하는 (주)아도니스(대표 김충곤)의 대주주이며, 경주 힐튼호텔의 실질적 소유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의 사업 재개를 거론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많다. 대우그룹은 지난 1999년 8월 (주)대우 등 12개 계열사가 전격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의 평가다. 이유야 어쨌든 이로 인해 60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정부와 국민들이 떠안아야만 했다.

김 전 회장은 또 지난 2007년 말 사면·복권됐음에도 추징금 부분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는 2006년 11월 항소심에서 징역 8년6월에 추징금 17조9253억원,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고 이 형은 확정됐다.
추징금은 법원이 김 전 회장이 영국의 대우그룹 비밀금융조직인 BFC를 통해 관리한 자금이 200억 달러(당시 환율로 25조원) 규모로 파악하면서 나온 금액이다.
구체적인 내역을 보면 해외 유령회사에서 물건을 수입한 뒤 수입대금을 송금하는 방식으로 조성한 26억 달러, 해외 현지법인들의 자동차 판매대금을 국내를 거치지 않고 BFC로 직접 송금한 14억1000만 달러, 해외법인 명의로 현지 금융기관에서 빌린 157억 달러 등이다.
이중 해외공장 인수와 운용에 투입한 자금, 해외차입금, 이자를 제외한 돈이 비자금으로 조성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은 김 전 회장에 대한 추징을 지속적으로 집행해왔다.
김 전 회장은 1999년 7월 대우그룹 자구대책을 발표할 당시 전 재산(당시 주식 1조2553억원과 임야 452억원 상당)을 금융권에 담보로 제공한 탓에 공식적으로는 국내에 재산이 없다. 유일한 재산이던 서울 방배동 자택과 숨진 큰아들이 묻힌 안산농장도 경매에 넘어갔으며 부인 정희자씨 소유의 서울힐튼호텔도 오래전에 처분됐다.
이어 대우경제연구소와 한국경제신문의 김 전 회장 명의 주식을 압수했다. 하지만 이는 추징금에 비하면 미미한 상태. 더욱이 은닉했을 재산에 대한 적발은 전무한 상태다.
이로 인해 17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추징금이 그대로 남아있어 재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김 전 회장의 개인 건강문제와 ‘대우맨’으로 일컬어지는 후원자들도 대부분 현역에서 은퇴한 ‘노병’이란 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과의 애증 관계
김우중과 전직 대통령 각별한 인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누구보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인물로 통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폐허상태에 놓였던 옥포조선소를 인수, 박 대통령으로부터 “김우중 그 사람밖에 없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후에도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각별한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회장과 YS의 첫 인연은 악연으로 시작됐다. 1992년 대선 당시 YS의 심기를 건드렸던 김 회장은 당시 YS의 핵심 참모였던 K 변호사의 도움으로 YS와 관계를 복원했다. 그 이후 YS시절 대우그룹을 국내 4대그룹으로 성장시키는 등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다.
김 회장과 DJ는 좋은 인연과 악연을 모두 경험했다. 김 전 회장은 1997년 당시 대선 과정에서 DJ를 앞장서 지원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DJ 정부시절 김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된 것 역시 ‘청와대의 의중’이란 소문이 나돌 정도로 김 회장과 DJ는 막역한 관계를 유지했다.
김 전 회장의 경기고 동창이자 무기 중개상인 조풍언씨는 DJ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조풍언씨는 외환위기 당시 김 전 회장으로부터 대우그룹 퇴출을 막아달라는 청탁을 받고 돈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이후 지난 1월 법원은 대우 구명로비 혐의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어쨌든 외환위기가 오기 전까지 김 전 회장과 DJ는 각별한 사이였다. 그러나 DJ정부시절 대우그룹을 해체해야만 했었고, 이로 인해 해외에서 5년8개월을 떠돌아 다녀야만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 전 회장은 1987년 대우조선사건 때 노 대통령이 노동자였던 이석규의 사인 규명 작업을 하다 구속, 변호사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던 악연으로 첫 인연을 맺었다. 이런 악연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지난 2001년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대우 사태와 관련해 김 회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2003년 11월 대우조선을 직접 방문하는 등 대우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김우중 신화 몰락 일지
중국 준공식 참석 후 잠적…추징금 18조여원

지난 1999년 8월 대우그룹이 외환위기로 워크아웃을 결정한 이후 1999년 10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중국 부품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뒤 잠적했다.
2001년 11월, 프랑스 인터폴이 김 전 회장이 프랑스 국적을 취득해 독일서 치료 중이라고 발표한 후 2005년 4월 김 전 회장은 베트남에서 목격됐다. 당시 대법원은 대우그룹 임원 7명에게 23조358억원의 추징금 선고했으며 법원은 “김 전 회장에게 법적 책임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2005년 5월에는 법무부가 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 관련자 4명 특별복권 조치했고 같은 해 6월 김 전 회장은 귀국했다. 며칠 후 검찰은 김 전 회장을 구속기소했으며 같은 해 8월 김 전 회장의 건강악화로 구속집행정지처분이 떨어졌다.
김 전 회장은 신촌세브란스병원 입원했다. 입원 중 법원은 김 전 회장의 첫 공판을 시작해 1심에서 징역 10년, 추징금 21조4484억원,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이후 2006년 11월 항소심에서는 징역 8년6월, 추징금 17조9253억원, 벌금 1000만원을 선고,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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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