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기 폭파 주범인 김현희가 12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11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BEXCO)에서 일본인 납북자 다구치 야에코씨의 장남 이즈카 고이치로씨, 오빠 이즈카 시게오와 면담을 갖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특히 이번 일을 계기로 MB정부와 일본 간의 관계가 돈독해졌다. 김현희-납북자 만남이 이뤄진 다음날 공교롭게도 일본은 북한 미사일 발사 움직임과 관련 대책 및 6자회담 진전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양국은 북한 문제 등을 명분으로 우호적인 관계로 급진전 양상을 띠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현 시점에서 ‘김현희 카드’를 꺼내든 배경에 강한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 금융위기 등이 맞물린 상황에서 ‘국면 전환 카드’로 꺼내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야권 일각에서는 MB정부가 김현희 카드를 이용, 나름의 더 큰 노림수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협력해준 데 대해 (한국 정부에) 감사를 드린다.”
아소 다로 일본 총리가 김현희와 다구치씨 가족들의 면담을 보고 일본 언론과의 기자회견장에서 던진 말이다. 일본 언론들 역시 “다구치씨 가족들이 이전에도 김현희와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실현되지 않다가 한일관계를 중시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에 의해 성사됐다”고 전하는 등 MB정부와 일본 사이에 따듯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게다가 MB정부가 위기에 빠진 아소 다로 내각을 살려줬다는 말도 나온다.
김현희 카드 통해
MB 대북정책 어필?
실제로 일본 언론들은 10%대의 저조한 지지율로 실각 위기에 놓인 아소 다로 총리 내각이 납치문제를 지지율 반전카드로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김현희-다구치씨 가족들 간의 면담 이후 한·일관계가 급진전되고 있다. 지난 12일 나카소네 히로후미 일본 외상의 요청으로 유명환 외교통일부 장관과 전화통화를 가졌고, 일본을 방문하기로 한 것.
회담 의제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과 관련대책 및 6자회담 진전 방안에 초점이 맞춰질 분위기다. 특히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와의 협의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대응 방안을 협의하기로 했다. 김현희가 12년 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한·일 관계뿐 아니라 북한 문제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얘기다.
김현희 카드로 인해 양국간에 따뜻한 기류가 형성된 배경을 놓고 세간에서는 구구한 해석이 흘러나오고 있다. 또 정치권에선 남북관계가 단절된 시기에 MB정부에서 김현희 카드를 꺼내든 그 이면에 또 다른 노림수가 있다는 관측이다. 미래지향적 양국관계를 위한 긴밀한 공조체제 구축에 나섰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북한 압박용 국면전환용 노무현 죽이기가 아니냐는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김현희는 국정원 등으로부터 철저하게 감시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김현희가 공식석상에 선 것에 대해 여러 의구심이 생긴다”면서도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의 일환으로 김현희 카드가 나온 것 같다”고 관측했다.
김현희-다구치씨 가족 지난 12일 면담…한일관계 급진전
납북자 문제 통해 참여정부 대북정책 비판…강경정책 고수
전문가는 물론 정치권 인사들 역시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한 의지가 강경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동안 일본 정부가 납북자 문제에 집착한 탓에 북핵 6자회담 진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참여정부의 주장을 단번에 뒤집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준비 등 각종 위협 공세를 펴고 있는 데에 정부가 더 이상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MB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해오던 민주당 한 인사는 “북한은 정권교체에 대해 별다른 의미 부여를 하고 있지 않고, 남한 정부의 진정성을 보고 있다”며 “북한과의 신뢰관계는 하루아침에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MB정부의 대북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MB정부 내내 ‘냉기류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김현희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이 KAL기 폭파 사건과 관련해 진실과 다른 증언을 강요했다”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한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 MB정부가 ‘노무현 죽이기’를 위해 꽁꽁 숨겨놨던 김현희 카드를 꺼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
KAL기 사건 조작
MB정부 수사 중
김현희는 기자회견장에서 “(KAL기 폭파 사건에 대해)지난 정부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오늘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것은…”이라며 말꼬리를 흐리면서도 “현 정부가 지난 정부에서 있었던 일을 조사하고 있다고 하니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참여정부가 김현희 사건을 왜곡하려 했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함과 동시에 ‘노무현 죽이기’에 직·간접적으로 적잖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만든 국정원 진실위는 지난 2006년 8월 KAL기 폭파 사건에 대해 다른 결론을 내린바 있다. ‘KAL기 사건은 북풍을 노린 안기부의 자작극’, ‘안기부가 폭파계획을 알고도 방조했다’는 등 각종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발표했던 것.
하지만 MB정부의 김현희 주장에 대한 사실 확인과정을 통해 참여정부에 대한 의혹이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게다가 MB정부에서 김현희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발표할 경우에는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여론이 극에 달할 뿐 아니라 각종 ‘음모론’이 제기될 소지도 다분하다. 이른바 ‘노무현 죽이기’인 셈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부에서는 MB정부가 국면전환용으로 ‘참여정부 손보기’ 카드를 꺼내들었다”며 “김현희가 MB정부에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든다”고 귀띔했다. 김현희 카드를 통해 ‘노무현 죽이기’를 가동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 셈이다.
MB정부가 남북관계·경제 위기론 등에 시달리고 있는 시점에서 김현희가 12년 만에 등장한 배경을 둘러싼 궁금증도 증폭되고 있다. 김현희를 국면 전환카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게 의혹의 주된 골자다.
이중 MB정부의 대북정책은 여야간의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뜨거운 감자’다. 북한의 강경체제는 MB정부가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고 민주당이 강하게 주장해왔기 때문. 이에 따라 김현희 카드를 통해 북한 정국의 실상을 밝힘과 동시에 현재의 강경 대북정책을 정당화시키고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자는 고도의 노림수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위기 극복 위한
국면 전환 카드
실제로 이 대통령은 대북정책에 대한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12일 제1차 국민원로회의를 주재하며 “남북관계를 잘 해나가고 있다는 얘기를 듣기 위해 단기적 처방을 내놓는 것은 옳지 않다”며 “민족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남북이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 존중하면서 대화할 필요성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북한을 진정으로 돕고자 하는 게 현 정부의 정책”이라며 “쌀과 비료만 준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경기침제 장기화 등 총체적 위기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이 대통령이 김현희 카드를 꺼내 국면전환용으로 사용할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설일까. 모든 것은 12년 만에 나타난 김현희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