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재보선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벌써부터 ‘변수’를 대비하는 여야 각 세력의 입장이 각양각색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정치권이 공천문제 등으로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기에 향후 당내 역학구도에 적잖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재보선 변수 및 선거 결과에 대한 기대치와 대응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 당 후보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순리이지만 여야 모두 재보선 이후 서로 다른 셈법을 염두에 둔 탓인지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오히려 각각 서로 다른 선거결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
현재까지 국회의원 재보선이 실시되는 5곳(인천 부평을, 울산 북구, 경북 경주, 전주 덕진, 전주 완산갑)의 판세는 오리무중이다.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분류되는 울산 북구에서는 비교적 선전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반면, 경북 경주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의 측근인사가 무소속 출마함으로서 한나라당이 고전중이란 것이 정설.
호남지역에선 민주당이 압승할 것으로 보이나 정동영 전 장관의 출마로 갖가지 변수가 작용할 태세다. 인천 부평을 역시 거물급 인사들 간의 ‘빅매치’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에서 변수가 있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친박-친이’, ‘정세균-정동영’, ‘DJ-노무현’ 간의 내부싸움이 본격화되면서 주류-비주류간의 조직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경북 경주의 경우 한나라당 정종복 후보와 무소속 정수성 예비역 장성의 2파전 양상을 띠고 있어, 친박계의 지원을 받고 있는 정 장군이 TK(대구·경북)수장으로 불리는 ‘박근혜 효과’의 덕을 볼 것이란 예상이다. 이번 재보선이 낮은 투표율에 그쳐 전형적인 조직선거의 양상을 띨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이런 분석은 힘을 얻고 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내부에선 “이대로 가다가는 경주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우려감 이 팽배하다. 특히 친이계 인사들은 이번 경주 재보선에서 패배할 경우 박 전 대표의 당내 영향력이 입증될 것으로 보고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게다가 여당 내 야당의 이미지를 고수하고 있는 박 전 대표에게 발목이 잡혀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등 갖가지 진통이 따를 것으로 전망돼 노심초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친이계에서는 정 장군의 대항마로 정 전 의원을 내세우고 있는 터라 선거에서 패배할 시 ‘친이계 입지 축소’ 등 역풍을 우려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따라 이상득 의원과 친박계 인사들의 회동을 계기로 ‘친박-친이 화해’를 기대하는 한편, 친이계 내부정리를 통해 친박계를 다독이는 데 총력을 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략공천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친박계 인사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하다. 대선 이후 당을 장악한 친이계가 자신들을 청산대상으로 몰고, 18대 공천에서 배신감을 심어줬기 때문이라며 이번 기회에 친이계의 기를 단단히 꺾어 놓겠다는 태세다.
친박계 핵심 관계자는 “경주 재보선에서 뜻하지 않게 세게 붙을 수 있다. 비공식 여론조사에 따르면 경주에서는 정 장군이 정 전 의원에게 3대1 정도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정 장군이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며 “(한나라당으로 전략 공천될 가능성에 대해) 현재로서는 절대 가능성이 없다. 정 전 의원이 재보선 출마를 포기한다면 모르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밝혔다.
눈길을 끄는 것은 친박계에선 박 전 대표가 지원유세를 보이콧하고, 향후 대권 판세를 관망하겠다는 각오다. 더욱이 경주를 발판 삼아 차기 대권플랜을 서서히 가동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친박-친이는 절대 융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들 간의 전쟁이 계속되는 데 이어 최악의 경우 둘 중 한 명은 한나라당을 뛰쳐나갈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때문에 ‘친이-친박간의 대혈투’가 치러질 것으로 보이는 경주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나라당에서는 ‘박희태 카드’가 최대 변수다. 지난 12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150만원이 확정된 한나라당 윤두환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함으로써 박 대표의 재보선 출마 지역이 인천 부평을에서 울산 북구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당 지도부에서는 울산 북구 출마를 적극 권유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민노당-진보신당이 울산 북구 지역에 단일 후보를 내세움에 따라 이 지역에 거물급 인사를 내세워야 한다는 논리다. 게다가 울산 북구 지역에 거물급 인사를 투입할 경우 인근 경주와 지근거리에 있어 한나라당 지도부의 지원 여부가 쉽고,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친박계 경주 통해 ‘박근혜 입지’ 재확인…친이계 노심초사
박희태 출마 변수…울산 북구 출마 통해 경주까지 바람?
정동영 전주 덕진 출마…정동영 승전보 울려 ‘비주류’ 설움 극복
전주 완산 DJ-노무현 대리전…친노 입지 재확인이냐 DJ 부활이냐
정몽준계 한 관계자는 “박 대표가 울산 북구로 출마한다면 정몽준 최고위원이 이를 적극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다면 박 대표의 당선은 예상보다 손쉬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박 대표가 울산 북구로 출마를 선택한다면 정 최고위원은 울산 동구에서 5선을 한 관록을 바탕으로 박 대표를 측면 지원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여전히 박 대표가 출마 여부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함에 따라 그의 출마 결정에 따라 한나라당 재보선 전략에 큰 변화가 일어날 조짐이다. 당 지도부가 지원유세를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내부 사정이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대체로 민주당의 텃밭인 전주 덕진, 완산갑에서 승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당내 주류-비주류가 선거 이후에 대한 ‘계산’이 다르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도부의 경우 정동영 전 장관이 지난 13일 전주 덕진 출마를 공식화함에 따라 정세균 체제에 더욱 강한 급브레이크가 걸릴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송영길 의원은 “정동영(DY) 전 장관이 이번 재보선에 출마하면 ‘제2 이인제’가 될 것”이라며 “어디로 출마하든 DY의 이번 복귀에는 반대한다. 당 지도부가 공천을 안 줄 것 같다. 이와 관련해 지도부에서 이미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반면 정 전 장관의 출마를 옹호하는 세력에서는 ‘당 지도부를 비판’하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민주당 한 인사는 “정 전 장관이 수도권에 출마한 것은 당을 위해 헌신한 것인 만큼 자신의 지역구인 전주 덕진으로 돌아가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정 전 장관의 출마를 놓고 민주당 내 인사들이 서로 다른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주 완산갑에서도 DJ-노무현의 대리전으로 인해 계파갈등이 본격화될 조짐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 DJ의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와 친노그룹인 이광철 전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번 재선을 통해 계파갈등이 본격화될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에 따르면 전주 완산의 경우 이 전 의원의 지지율이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두 전직 수장의 대리인들이 대거 맞붙은 만큼 어느 한쪽에 공천을 주더라도 적잖은 파열음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전주 덕진에 출마를 선언한 정 전 장관으로 인해 정동영계와 정세균계 간의 마찰이 빚어질 공산이 크다. 더욱이 전주 완산 갑의 구민주계와 친노계 간의 갈등으로까지 비화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편, MB정부의 중간 평가 고사장으로 불리는 인천 부평을은 무주공산이다. 여야에서는 중요한 지역 특성상 서로 치열한 ‘눈치작전’을 펼치고 있다. 이 때문에 거물급 인사들이 얼마든지 전략 공천될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실제로 박 대표는 여전히 인천 부평을에 대한 출마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고, 야당에서는 정 전 장관을 전략 공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에서 언제든지 거물급 인사들 간의 ‘빅매치’가 성사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크게는 여야, 작게는 주류-비주류에서 서로 다른 셈법을 놓고 재보선에 임하고 있다. 또 재보선 이후 여야 내부에서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칠 것으로 보여, 정치권이 한동안 시끄러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연차 리스트 터지나?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가 곧 터질 조짐이다. 검찰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치권 로비설’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4월 임시국회가 열리면 현역 의원을 소환조사하는 것이 힘들다고 보고, 이달 말까지 최대한 수사를 진행한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의원들이 검찰 청사를 줄줄이 소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실제로 검찰은 박 회장과 가족, 태광실업 및 계열사인 정산개발·휴켐스 임직원 등을 상대로 계좌추적을 벌였고, 불분명한 뭉칫돈을 찾아냈다는 후문이다. 더 나아가 박 회장이 홍콩 현지법인 APC에서 차명으로 배당받은 685억원 중 일부가 국내에 유입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자금이 정치권으로 유입됐는지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