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양재혁 101일 미스터리 행적 추적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0.31 09: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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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에 반전…뒤통수 친 가신 찾아 삼만리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수천여억원에 달하는 잔여자금을 들고 잠적한 측근을 잡기 위해 '작전'을 감행한 양재혁 전 삼부파이낸스 회장. 그의 기묘한 행적은 마치 한편의 첩보영화를 보는 듯 했다.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양 전 회장은 측근보다 먼저 경찰에 붙잡혀 복수에 실패했다. 양 전 회장의 미스터리 행적을 추적해봤다.

지난 10월22일 양재혁 전 삼부파이낸스 회장이 경찰에 검거됐다. 그가 실종 된지 101일만이다. 그는 부산 대연동 커피숍에 지인을 만나러 갔다가 종업원의 신고로 덜미가 잡혔다. 부산 연제경찰서는 양 전 회장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앞서 양 전 회장이 감금·협박으로 실종된 게 아니라 잠적한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양 전 회장이 처벌을 받을 지 관심이 쏠렸다. 처음 경찰은 양 전 회장이 단지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인 데다가 "현재 수배돼 있는 전 삼부파이낸스 재무이사 하인봉씨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행적을 밝히지 않은 이유를 말해 처벌은 애매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고의잠적 잠정결론
공무집행방해 혐의

하지만 고의로 잠적해 수사기관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가 인정돼 불구속 입건됐다. 그동안 경찰은 양 전 회장을 찾으려고 많은 수사 인력을 동원하는가 하면 양 전 회장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있을 때마다 사실 확인에 들어가는 등 적지 않은 경찰력을 낭비해야 했다.

양 전 회장은 '고의잠적' 의심을 극구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 10월23일 그는 "처음부터 자작극은 아니었고 자작극이라고 하면 하씨가 웃을 일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양 전 회장은 무슨 사유로 자택을 떠나 서울의 한 허름한 고시원을 숙소로 삼아 지내다가 갑자기 잠적해야 했을까. 그의 실종 101일간 행적을 추적해보니 마치 한편의 첩보영화 같았다.
지난 7월19일 연제경찰서로 실종신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양 전 회장이 하씨를 만나러 나간 뒤 일주일째 소식이 없다"는 양 전 회장 동생의 전화였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양 전 회장의 행적을 추적하려 했으나 미스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양 전 회장은 지난 7월13일 오후 2시쯤 "하씨를 만나러 간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집을 나섰고 그 뒤 3시간 만인 오후 5시13분 속초항 방파제 부근에서 종적이 끊겼다. 경찰은 휴대폰 위치 추적을 통해 정상적인 배터리 방전이 아니라 누군가 배터리를 강제 분리한 신호가 기지국에 잡힌 것을 확인했다.

양 전 회장의 가족들과 지인들은 세 달이나 연락이 두절된 것을 보아 양 전 회장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여기까지 종합해 보면 양 전 회장은 하씨에 의해 납치나 감금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열흘 후 양 전 회장이 대구의 한 대형마트 CCTV에 찍히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실종 열흘 뒤인 7월23일 오후 4시, 양 전 회장은 아들이 사는 곳에서 7km 떨어진 마트에서 아들 명의 카드로 2만5850원 어치의 식료품을 구입했다. 뿐만 아니라 CCTV 속의 양 전 회장은 눈에 띄는 개량한복을 입고 태연하게 물건을 둘러보는 등 누군가에게 납치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 사건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졌다.

회장님의 기묘한 실종 납치냐? 자작극이냐?
돈 들고 튄 측근 잡기 작전…첩보영화 방불

실종 54일째인 지난 9월5일에는 양 전 회장의 한 측근에게 의문의 전화가 걸려왔다.

"하씨가 중국 교포 둘을 매수해가지고 내가 지금 감금돼있습니다."


발신자는 양 전 회장 본인. 정말 양 전 회장은 하씨에게 납치된 것일까.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아들의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신용카드가 사용됐다는 카드회사의 알림 문자였다. 당시 아들의 카드를 갖고 있었던 이는 양 전 회장이었다.

경찰은 이때부터 실종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고의잠적 가능성을 높게 봤다. 실제로 양 전 회장은 같은 달 22일 경북 포항시 장어집에서 아들 신용카드로 음식값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또 서울에서 택시운전기사 휴대전화를 빌려 친구에게 전화하기도 했다.

이어 지난 10월3일 낮 12시4분께 부산역 공중전화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투자자 김모씨에게 전화해 "부산에 내려왔다"고 말을 한 뒤 도중에 전화가 끊긴 것으로 확인되면서 그의 고의잠적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경찰은 양 전 회장이 마지막으로 행적이 확인된 부산에 있을 것으로 보고 행적을 추적하는 중 22일 오후 5시25분께 커피숍에 양씨와 인상이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종업원의 제보를 받고 출동해 현장에서 그를 붙잡았다.

여기까지 경찰의 입장을 바탕으로 한 실종사건의 전말이다. 그런데 양 전 회장의 말은 달랐다. 양 전 회장은 하씨는 만나지 못했지만 하씨의 대리인을 만났다고 주장했다.

양 전 회장에 따르면 지난 7월6일 인천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방은 "하씨를 만나려면 13일 오후 6시까지 강원도 속초 방파제로 와라"라고 일방적으로 말한 후 끊었다. 양 전 회장은 고민 끝에 동생에게 이 사실을 알린 후 약속한 장소로 갔다.

약속시간 30분이 지나자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조선족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자신이 하씨의 대리인이라며 양 전 회장의 휴대전화를 배터리를 분리토록 요구했다. 그리고 수신만 가능한 노키아 휴대전화를 양 전 회장에게 줬다.

속초 방파제에서
조선족 만났을까

속초에서 하룻밤을 보낸 양 전 회장은 다음 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이 대리인과 함께 자신이 거처하고 있던 서울 역삼동의 고시원으로 갔다. 영 전 회장은 이때 자신의 휴대전화를 고시원에 두고 나왔다.

이후 양 전 회장과 대리인은 경북 울진으로 내려가 3일을 보냈고 포항에서 또 3일을 보냈다. 대리인은 또 대구로 가자고 했다. 영 전 회장은 "현금이 충분히 있었지만 아들에게 자신이 무사하다고 알리기 위해 아들의 체크카다를 이용했다"고 말했다.

양 전 회장에 따르면 대리인은 하씨를 선처해 달라고 요구했고, 양 전 회장도 잡히는 것보다는 자수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회유했다고 한다.

지난 8월30일 이 대리인은 양 전 회장에게 "하씨와 함께 갈 테니 원룸 인근에 있는 호텔에서 만나자"고 했다. 하지만 4시간이 지나도 하씨는 나타나지 않았고 대리인은 "하씨가 11월30일에 자수를 할 것이다. 그렇게 알고 있어라"는 말을 남긴 후 사라졌다.


양 전 회장은 과거 자신의 경호원이었던 A씨와 함께 하씨를 찾아 나섰지만, 하씨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수중에 돈이 떨어진 양 전 회장은 지인으로부터 돈을 빌리기 위해 부산 남구 대연동의 한 커피숍에서 지인을 만나려다 결국 자신을 알아본 커피숍 직원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잡혔다는 것. 여기까지 양 전 회장의 진술을 바탕으로 한 사건의 전말이다.

양 전 회장은 1999년 파이낸스 사태로 부도가 나기 전까지 국내 최대 규모였던 삼부파이낸스와 삼부건설 등 계열사 5개를 거느렸던 부산에서 이름난 거물이었다. 자산 규모만 1조5000억원에 달했고 연예계와 체육계도 주물렀다.

양 전 회장은 유사수신행위로 부산 경제를 뿌리째 뒤흔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는 1996년 1월 부산 삼부파이낸스를 설립한 뒤 '연수익률 30% 보장'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그러나 1999년 회사설립 불과 4년 만에 내부 부실운영과 이자 돌려막기에 의한 경영악화로 파산했다.

당시 부산지역 90여 개 파이낸스사 중 '삼부사태'로 29개 업체가 파산했고 피해액만 1조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회사가 부도나면서 삼부파이낸스에 돈을 맡긴 투자자 6500여 명의 2280억원이 날아갔다.

당시 이 사건의 피해인원이 3만 여명으로 추산돼 부산경제에 막대한 파장을 몰고 왔다. 특히 높은 수익률 보장이라는 대대적인 광고에 속은 부산지역 영세서민들은 피땀 흘려 번 돈을 삼부사태에 날린 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그 와중에 양 전 회장은 고객투자금 1116억원을 빼돌려 계열사를 설립하고 호화생활 경비로 써버린 혐의 등으로 지난 1999년 9월 대검 중수부에 구속됐다.


경찰이 대신 추적하도록 유도?
잔여자금 챙긴 하씨는 어디에?

2004년 1월 출소 후 재기를 꿈꾸던 양 전 회장은 최측근이었던 하씨에게 맡겨둔 2200여억원을 손실 정산법인 ㈜CKA를 통해 찾으려 했다. 양 전 회장은 구속 수감 중에 피해자 구제를 위한다는 취지로 ㈜CKA를 설립하고 삼부파이낸스 재무담당부사장을 맡았던 하씨를 대표이사로 앉혀 잔여자금을 맡겼었다. 하지만 하씨가 2200여억원과 함께 잠적해 그의 계획은 무산됐다. 출소 후 양 전 회장은 복수의 칼을 갈며 8년 넘게 하씨를 뒤쫓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질긴 악연은 시작된 것이다.

경찰의 수사가 진척되면서 이 실종사건의 주요 열쇠는 양 전 회장이 아니라 삼부파이낸스 부도 잔여자금을 관리해오던 하씨에게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씨가 어디에 있는지, 그를 찾을 수 있는지가 사건을 풀 핵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하씨는 현재 양 전 회장 등으로부터 회사자금 횡령 혐의로 고소된 상태이며 2010년 자수해 조사를 받다 다시 잠적했다.

또 지난해 4월 경기도 여주에서 불심검문에 걸려 부산으로 인계된 후 경찰 조사를 받았으나 당시 양 전 회장이 해외에 나가있었던 데다 48시간 내 혐의점을 밝히지 못해 석방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은 "당시 양 전 회장 이외의 고소인과 대질심문도 벌였지만 혐의를 다 확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하씨는 정산법인의 돈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4월부터 검경에 의해 수배된 상태다.

삼부파이낸스가 한참 잘나가던 시절 양 전 회장은 하씨를 만났다. 당시 하씨는 세무공무원으로 삼부파이낸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다 양 전 회장의 신임을 얻어 영입된 후 삼부파이낸스 재무담당 부사장을 지냈다. 양 전 회장이 구속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양 전 회장의 하씨에 대한 신뢰는 두터웠다고 알려졌다. 양 전 회장이 구속되면서 2200여억원에 달하는 삼부파이낸스 잔여자산을 하씨에게 모두 맡긴 것만 봐도 그렇다. 그랬던 하씨가 양 전 회장의 출소에 맞춰 그가 관리해오던 2200여억원과 함께 돌연 잠적하면서 두 사람은 졸지에 철천지원수가 되어버린 것.

하지만 일각에서는 '수천억 원대 재산 은닉설'은 양 전 회장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하씨가 실제 이 정도 규모의 자금을 갖고 있는지 확인된 것은 없다는 지적이다. 당시 양 전 회장이 횡령한 회사자금 대부분을 방탕한 호화생활로 탕진해 버려 수중에 남은 재산은 별로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더불어 하씨가 실제 관리하는 돈은 2200여억원이 아닌 수십여억원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믿는 도끼에 발등…·
8년 동안 추적

연제경찰서 측은 양 전 회장의 속초에서 하씨를 만나게 해 주겠다는 조선족 2명을 만났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자작극으로 잠정적 결론을 내린 경찰은 양 전 회장이 애초에 하씨의 소재를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도 배재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양 전 회장이 속초 방파제에서 하씨를 만나기로 한 것 역시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

경찰 측의 예측이 틀리지 않다면 양 전 회장은 잔여자금을 들고 달아난 하씨를 경찰이 찾아내게 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 아래 가족까지 속이며 연극을 한 셈이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하씨와 잔여자금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연제경찰서 관계자는 "은닉 재산이 과연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는 도피 중인 하씨의 신병을 확보해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씨는 수배 중인만큼 소재파악 등 수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 의령 출신인 양 전 회장은 삼부파이낸스를 설립하기 전에는 주택건설과 컴퓨터유통업을 하다가 1980년대 말 사채업체인 부민투자금융을 운영하면서 금융업계에 뛰어들었다.

양 전 회장은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속에 동남은행과 부산지역 4개 종금사들이 무더기 퇴출당하면서 자금운용에 큰 어려움을 겪던 지역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영업을 펼쳐 부산에서 알아주는 거물급 인물이 됐다.

삼부파이낸스가 승승장구하던 시절 양 전 회장은 심형래 감독이 제작한 영화 <용가리>에 22억원을 투자하고 <짱> <엑스트라> 등 100억여원을 영화산업과 공연물에 투자했다. 한때 부산을 쥐락펴락 했다. 또 삼부건설, 삼부엔터테인먼트, 삼부벤처캐피털, 한결파이낸스 등의 계열회사를 거느리기도 했다.

 

[양재혁 전 회장 검거되기까지]

▲1999년 1월       삼부파이낸스 설립
▲1999년 9월       양재혁 회장 구속
▲1999년 10월     삼부파이낸스 도산
▲1999년 12월     검찰 양재혁 회장 징역 15년 구형
▲2000년 1월       법원 양재혁 회장 징역 5년 구형
▲2000년 6월       정산법인 ㈜CKA 설립(최측근 하인봉씨 대표 선임)
▲2004년 1월       양재혁 전 회장 출소
▲2004년 4월       ㈜CKA 대표 하씨 잠적, 검찰 수배
▲2011년 11월      58억원 횡령한 ㈜CKA 직원 2명 구속
▲2012년 7월13일 양 전 회장 속초에 하씨 만나러 간 후 실종
▲2012년 7월19일 양 전 회장 아들 경찰에 신고
▲2012년 7월23일 대구 남구 대형마트 CCTV에서 양 전 회장 모습 포착
▲2012년 9월5일   양 전 회장 감금당했다고 한 측근에게 전화
▲2012년 9월22일  양 전 회장 경북 포항 장어집에서 아들 신용카드로 음식 값 지불
▲2012년 10월3일  양 전 회장 지인 김모씨에게 "부산에 내려왔다"고 전화
▲2012년 10월22일 양 전 회장 부산 대연동 커피숍에 지인을 만나러 왔다가 경찰에 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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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