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전용관 건립이 이번엔 가능할까.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5일, 독립영화 <워낭소리>를 관람한 후 독립영화에 대한 제도적 지원책으로 “만화영화와 독립영화를 함께 상영하는 전용관을 확충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게 좋겠다”며 “학교 학생들도 이런 영화를 많이 보며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언급해 사업 중단 상태에 놓인 다양성영화 전용 상영관 건립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가 주목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독립영화 전용관 확충 방안 고려하라” 지시
독립영화계 긍정적 평가…하지만 큰 기대는 걸지 않는 형편
유인촌 문광부장관 ‘독립영화 인큐베이팅 시스템’ 필요성 언급
영화관계자 “독립영화가 살아야 한국영화도 산다” 한 목소리
현재 독립영화상영관의 경우 영화진흥위원회가 아닌 민간이 운영하고 있는 예술영화 전용관이나 시네마테크만 존재하며 독립영화만 전용으로 상영하는 곳은 없는 상태다. 애니메이션 전용관도 서울산업통산진흥원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지난 2005년 1월에 개관한 중구 예장동의 서울애니시네마가 유일하고 국가가 운영하는 전용관은 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사실 독립영화상영관에 대한 문제는 어제오늘에 걸쳐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은 아예 없어지거나 점차 줄어드는 추세였으므로 “제2의 워낭소리는 없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었다.
독립영화계 vs 영진위
정책 둘러싸고 대립
현 정부가 들어서기 전 제3기 영진위는 독립영화나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등을 상영할 복합상영관 건립을 추진해 왔다. 당초 내년까지 영화진흥기금 250억원과 서울시 예산 250억원을 들여 복합상영관을 건립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출범한 제4기 영진위(위원장 강한섭)가 갑자기 이 사업의 예산 규모를 무리하게 두 배로 늘려 추진하려다가 결국 올해 영화진흥기금예산안에서 관련 예산이 빠졌고 현재 이 사업은 표류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 사실이 처음 알려지자 독립영화계는 영진위에 질의서를 보내며 반발했으며 영진위 노조 역시 이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이 문제는 국정감사에서도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다양성 영화 전용 상영관은 독립·예술 영화계의 오랜 꿈이었다. 당초 영진위는 2005년 구서울역사에 다양성 영화 전용 상영 공간을 마련하려 했지만 문화재청과의 이견으로 무산됐으며 이후 영진위가 추진해 오던 복합상영관 사업도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독립영화계는 대통령이 직접 화제의 독립영화를 관람하고 전용관 마련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한 부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그리 큰 기대는 걸지 못하는 형편이다. 마침 독립영화계가 복합상영관 문제를 비롯해 최근 영진위가 폐지한 다양성 영화 마케팅 지원제도 등 독립영화 정책을 둘러싸고 영진위와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네마테크협의회의 김홍록 사무국장은 “영진위가 독립영화계에 반하는 정책을 잇따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립영화 발전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 얼마나 나올지 궁금하다”며 “영진위가 복합상영관 건립을 한다고 해도 독립영화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될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멀티플렉스 극장의 개봉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멀티플렉스가 제작비나 마케팅 비용, 스타급 배우 출연 여부로 상영작을 결정해 저예산 독립영화들이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적다는 것이다.
감독 색깔 진하게 묻어나
관객들과 의사소통 힘들어
<워낭소리> 배급사의 한 관계자는 “7개관으로 시작한 <워낭소리>도 처음에는 멀티플렉스 극장이 대부분 상영을 거절해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보통 독립영화는 상영관 1개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늘어 봤자 서울지역 5개관에 그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 12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독립영화인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독립영화 인큐베이팅 시스템’의 필요성을 언급해 실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 장관은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도입해 좋은 기획과 시나리오 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사전 제작 지원을 받지 못했지만 호평을 받은 작품들에 대한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며 “현행 지원 제도에서 떨어진 사람에게도 인큐베이팅 지원을 해줘 클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하겠다”며 실무자들에게 정책 마련을 지시했다.
유 장관은 이어 독립영화계에서 말한 홍보 마케팅비 부족과 독립영화전용관의 위치 문제에 대해 “홍보 마케팅이 문제면 현찰을 직접 주기보다 그에 들어가는 돈을 (영진위에서) 대신 써줘야 한다. (전용관은) 25개가 있지만 다 흩어져 있는 것이 문제다. 어느 지역에 가면 많은 독립영화를 볼 수 있도록 집중해줘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예전에는 독립영화들에 편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충무로 영화와 다른 길을 걸으면서 상업적인 면보다 감독의 색깔이 진하게 묻어나는 작품들이 다수 있었다. 그렇다보니 관객들과 의사소통하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뛰어난 작품성과 함께 관객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작품들이 독립영화에서 나오고 있다.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워낭소리>, <낮술> 등은 감독의 열정과 노력, 뛰어난 감각 등이 잘 묻어나 있는 작품들이다. 다가서기 어려운 것이 독립영화라는 편견을 깨트려 주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은 영화들이 공존하고 있어야만 한국영화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는 점이다.
하부 인프라 갖춰야
한국영화 미래 밝아
현재 한국에서 영화 스태프나 감독으로 데뷔하는 길은 힘 있는 제작사의 낙점을 받거나 유명 감독 밑에서 스태프 및 조연출 등으로 활동한 후 정식 감독으로 데뷔, 아니면 스스로 독학해서 개천에서 용 나는 식으로 데뷔하는 길 외에 거의 없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에 해당한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만약 독립영화가 이 땅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아무리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은 영화인들이 있어도 쉽게 영화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며 “뛰어난 감독과 스태프는 단시간에 나올 수 없다. 다양한 토대에서 서로 경쟁하면서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해야만 한국 영화를 이끌어가는 양질의 인력들이 배출될 수 있다.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독립영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국독립영화가 일정 부분 지분을 가지고 한국영화계에서 살아남아야만 뛰어난 아이디어로 무장한 감독과 기초 훈련이 잘된 스태프 등이 나올 수 있다”며 “특히 여러 사람들에게 영화에 입문할 수 있는 길이 넓어지면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천재감독이나 뛰어난 실력의 스태프, 그리고 미래가 기대되는 제작사 혹은 배급사 등이 계속 경쟁하면서 한국 영화 하부토대를 탄탄하게 해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기본적인 하부 인프라조차 갖추지 못하고 할리우드 영화와 경쟁하겠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라며 “먼저 기본적인 하부 인프라 구축과 한국독립영화가 일정지분을 가지고 경쟁할 수 있게 해주어야만 실제 한국영화의 미래 역시 밝아질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