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만을 노린 흉악범들의 범행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날마다 터져 나오는 흉흉한 뉴스에 여성들의 귀가시간마저 빨라졌다. 이런 가운데 일명 ‘발바리’라고 불리는 연쇄성폭행범들까지 잇따라 검거돼 밤길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강호순이 잡힌 이후 검거된 발바리만 해도 3명. 한 명은 충청도를 무대로, 나머지 두 명은 서울의 각각 다른 영역을 무대로 몹쓸 행각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1996년 원조발바리 검거 이후 전국 각지에서 검거된 발바리들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수년 동안 보일러공을 가장해 성폭행을 벌인 ‘보일러 발바리’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해 두려움에 떠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강호순 등장 이후 흉악범들이 연일 덜미를 잡히고 있다. 이들 역시 강호순과 마찬가지로 여성들만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 목적은 성폭행.
이들은 자신들의 영역 안에서 유사한 범행방식과 패턴으로 성폭행을 저질렀다. 각각의 범인들에게 희생당한 이들 역시 비슷한 특징을 가진 여성들이었다. 최근 한 달 사이 적발된 발바리는 모두 3명. 두 명은 서울에서, 한 명은 충청도에서 연쇄성폭행을 저질렀다.
이들 중 한 명은 이른바 ‘동북부 발바리’라고 불리는 김모(27)씨. 김씨는 서울 중랑구, 광진구 일대에서 부녀자들만을 노리고 무려 5년 동안 범행을 이어가다 덜미를 잡혔다.
김씨가 처음 성폭행을 저지른 것은 2003년 11월. 당시 김씨는 여성 혼자 사는 집을 골라 몰래 침입해 성폭행을 하고 돈을 빼앗아 달아났다. 첫 범행에 성공한 김씨는 그후 반복해 성폭행과 강도짓을 이어나갔다. 5년간 그에게 피해를 당한 여성은 모두 9명. 모두 20~30대의 젊은 독신녀들이었다.
지난해 4월10일 오전 4시20분경에는 중랑구 면목동에서 혼자 살고 있는 A(24)씨의 집 화장실 창문을 뜯고 몰래 침입했다. 김씨는 미리 준비한 흉기로 A씨를 위협한 뒤 현금과 수표 등 110만원을 빼앗고 2차례에 걸쳐 강간했다.
같은 날 발바리 두 명 검거
20~30대 독신녀만 노려
또 지난해 11월25일 오전 4시40분경에는 중랑구 면목동 다세대주택 2층 베란다의 열린 문을 통해 B(25)씨의 집에 침입해 B씨를 때리고 성폭행한 뒤 현금 8만원을 빼앗았다.
이런 방식으로 김씨는 서울 동북부 지역에서만 9명의 여성들에게 몹쓸 짓을 벌이고 170여만원의 금품도 갈취했다.
김씨가 5년 동안 경찰에 잡히지 않은 것은 피해자들이 알아볼 수 없도록 마스크를 쓰고 범행을 해 얼굴이 노출되지 않은데다가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장갑을 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경찰은 중랑구와 광진구에서 성폭행 피해자들의 신고가 집중된 점에 주목해 동일범의 소행일 것으로 추측했다. 그리고 이 일대에 살고 있는 7000여명의 남성을 상대로 6개월간 수사를 벌였다.
강호순 사건 이후 연쇄성폭행 저지른 발바리 3명 검거
서울과 충청도 지역에서 수년 동안 강간하고 금품 갈취
치밀하게 계획하고 증거 남기지 않아 검거망 피하며 반복 범행
수년간 서울 강북지역에서 9명 성폭행 ‘보일러발바리’행방 묘연
또 이들 7000명 중 중랑구 지역에 거주하는 300명의 남성을 다시 추렸다. 범인이 중랑구에 거주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던 것. 이 가운데 피해자들이 말하는 범인의 인상착의와 연령대가 일치하는 30명을 다시 추린 뒤 이들에 대해 잠복수사를 펼쳤다.
김씨가 잡힌 것은 담배꽁초 하나가 화근이 됐다. 경찰은 뒤쫓던 30명의 용의자들이 흘린 물건 중 DNA조사로 감식할 수 있는 물건들을 수거했는데 김씨가 PC방에서 피우고 버린 담배꽁초에서 나온 DNA가 피해자 여성에서 발견된 정액의 DNA와 일치했던 것.
경찰은 이에 따라 지난달 17일 새벽 중랑구의 한 PC방에서 김씨를 검거했다. 범행을 자백한 김씨는 “유흥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써 지난 5년 동안 서울 동북부 지역의 여성들을 두렵게 만들었던 발바리 김씨는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게 됐다.
또 다른 서울지역 발바리는 관악구 일대를 중심으로 젊은 여성들을 노려 성폭행행각을 저지른 ‘관악구 발바리’ 최모(28)씨다. 최씨는 김씨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더 많은 여성들을 성폭행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2002년 8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7년 동안 12명을 성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한 것.
최씨 역시 혼자 사는 20~ 30대 여성들을 노려 범행을 저질렀다. 지난해 9월27일 오전4시20분경에는 관악구 신림동에 사는 김모(25)씨의 집 부엌 창문을 뜯고 들어가 흉기로 위협한 뒤 성폭행하고 현금 2만5000원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최씨가 노린 집들은 주로 경비가 허술한 다세대 주택들. 상대적으로 보안이 잘 갖춰진 신축원룸이나 아파트보다는 오래된 연립 등의 주택들 중 범행대상을 고른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12명을 성폭행하고 13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은 것으로 드러났다.
수년에 걸쳐 검거망을 피해 온 최씨는 지난해 8월 범행 현장에서 훔친 승용차 열쇠를 흘려 덜미를 잡혔다. 수배를 받던 최씨는 도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친구를 만났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조사에서 최씨는 “술을 마시고 성욕을 이기지 못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 번째 발바리는 충청도 등 지방을 무대로 연달아 성폭행을 저지른 김모(53)씨. 앞선 두 명의 서울 발바리들과 달리 김씨는 타깃을 다방여종업원으로 삼았다. 가정집에 몰래 침입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는데다 단둘이 있는 장소로 유인하기 쉬웠던 탓이다.
다방종업원만 골라 성폭행
두 달간 18명 유인해 범행
김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두 달 동안 무려 18명의 여성을 유인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강호순과 마찬가지로 3000CC급 고급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재력을 과시해 여성들을 유혹했다.
그는 대전·충남·충북·경북 등에서 다방종업원들을 여관이나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려간 뒤 수면제를 먹여 실신시킨 상태에서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았다. 이런 방식으로 김씨는 3~4일에 한 번씩 여성들을 꾀어 강도와 강간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여성들을 상대로 성폭행을 한 김씨가 덜미를 잡힌 것은 1월27일. 이날 김씨는 충남 연기군의 한 다방에서 종업원의 금품을 훔치다 발각됐다. 김씨는 합의를 보기 위해 피해자와 함께 경찰서로 갔다.
단순절도혐의로 붙잡혀온 김씨를 본 경찰은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했다. 전날인 26일, 충남 홍성군에서 발생한 성폭행미수사건의 범인과 생김새와 차량 등이 비슷했던 것.
1월26일 다방 종업원 최모(38)씨는 한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가 자신이 남성인 것을 안 범인이 성폭행을 포기하고 현금 50만원을 빼앗아가는 피해를 당했다. 당시 최씨는 야산에 버려져 저체온증으로 입원치료까지 받았다.
그런데 김씨가 경찰서에 온 27일, 경찰이 성폭행미수범의 생김새와 김씨가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고 휴대전화 발신지 조회와 국도의 CCTV를 분석해 그가 범인이란 것을 밝혀냈다.
김씨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달 23일 실종됐던 충남 당진의 한 다방 종업원 김모(48)씨와 함께 나갔던 남성이 김씨인 것으로 밝혀진 것. 경찰은 김씨의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이동경로를 파악하는 한편 같은 경로에 있는 CCTV 녹화 내용을 분석해 김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그를 추궁해 범행을 자백 받았고 김씨의 시신을 찾았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달 23일 오후 1시쯤 여종업원 김씨에게 접근해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유혹해 자신의 그랜저XG 승용차에 태웠다. 그 뒤 충북 청주의 술집으로 데려가 약을 탄 술을 먹였고 차 안에서 성폭행한 뒤 괴산군 청천면 야산에 버려 숨지게 했다.
경찰은 김씨의 차 안에서 여종업원 김씨를 성폭행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은 휴대전화와 알약 등을 찾아냈다. 자신의 범행이 속속 드러나자 김씨는 그동안의 범행행각을 자백했고 18명의 여성들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 밝혀졌다.
이처럼 잇따라 연쇄성폭행범들의 행각이 드러나면서 더욱 궁금해지는 것은 수년 동안 서울강북 일대에서 9명의 여성을 성폭행한 ‘보일러 발바리’다. 범인은 보일러수리공이나 택배직원을 가장해 여성들을 안심시키고 문을 열게 한 뒤 성폭행을 저질렀다.
처음 범인에게 피해를 당한 여성은 광진구 군자동에 사는 20대 여성으로 2005년 5월31일 변을 당했다. 이 여성은 범인이 누르는 초인종 소리를 친구로 착각해 문을 열어줬다가 봉변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후에도 마포구 창전동과 서교동에서 4건, 광진구에서 1건, 동대문, 동작구, 종로구에서 각각 1건 등 모두 9건의 성폭행 피해가 신고 됐고 사건 현장에서 확보한 용의자의 DNA가 모두 동일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자취 감춘 보일러발바리
불안감 커지는 여성들
현재 경찰은 사건이 자주 발생한 마포경찰서 내에 전담반을 편성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밝힌 용의자의 특징은 180cm 정도의 큰 키에 20대 후반 남성이라는 것.
그러나 범인이 흘린 증거나 단서가 적어 수사는 난항에 빠졌다. 이로 인해 인근에 사는 여성들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신도 발바리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밤길을 재촉하는 여성들도 부지기수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정모(29·여)씨는 “잊혀질 만하면 들리는 성폭행범들의 검거소식에 불안감이 가실 날이 없다”며 “범인들은 수년 동안 성폭행을 저지른 후에야 검거가 되니 결국 여성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킬 수밖에 없는 것이냐”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