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만 해도 과외는 수험생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취업난은 성인들도 과외수업을 받게 만들었다. 이 경우 선생님과 학생은 모두 성인이다.
즉 이성간 감정이 싹터도 하등 문제가 없다는 것. 때문에 성인과외를 받는 이들 중 사제지간의 정을 넘어 연인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부 부유층 사이에서 연애를 목적으로 결혼적령기의 딸이나 아들에게 과외를 시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원하는 사윗감이나 며느릿감을 과외를 빙자해 자신의 자녀와 만나게 한다는 것. 요지경 속 신 결혼풍속도를 취재했다.
한때 개인과외교습이란 선생님은 대학생, 학생은 초·중·고등학생 또는 재수생이란 공식이 성립했다. 과외를 통해 가르치는 것은 국어, 영어, 수학 등 입시를 위한 과목들이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취업난과 경제 불황은 학생과 선생님의 범위를 넓혔다. 취업에 필요한 공부나 면접기술 등을 배우려는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이 학생 대열에,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인 투잡족 직장인들이 선생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이른바 ‘성인 과외’가 붐을 이루게 된 것.
과외하다 ‘큐피드 화살’
이 현상은 통계로도 나타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불법과외 및 무허가 학원 단속 건수가 2006년 182건에서 2008년 436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때문에 엉뚱하게 손해를 보는 것은 과외아르바이트를 원하는 대학생들이다. 직장인들이 과외시장에 뛰어든 만큼 자신들의 일자리가 줄어든 탓이다.
성인과외로 인해 발생한 또 다른 현상은 과외선생님과 학생의 관계였던 남녀가 어느새 연인사이로 발전하는 것이다. 좁은 방 안에서 단둘이 몇 시간 동안 붙어있는 과외수업은 청소년들의 성적호기심을 자극시킬 만한 소재로 에로영화 등 성인물의 단골메뉴이기도 했다.
하물며 같은 성인끼리 가르치고 배우는 성인과외에서 이성간의 감정이 싹트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때문에 과외수업을 받다 연인관계가 되고, 취업공부를 하다 취집(취업난 속에 일찌감치 시집을 간다는 뜻의 신조어)을 하는 일도 종종 생겨나곤 한다.
모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에게 면접과외를 받던 A(25·여)씨도 과외수업이 신부수업으로 발전한 케이스다.
대학을 졸업한 뒤 1년 동안 취업하지 못해 고민하던 A씨는 친구의 소개로 면접과외를 받게 됐다. 선생님은 1년 전 A씨가 들어가길 원하는 대기업에 취업한 B(29)씨. 이 두 사람은 지난해 10월 선생님과 제자로 처음 만났고 일주일에 두 번씩 과외수업을 받기로 약속했다.
취업난 속 ‘성인과외’늘면서 눈 맞는 남녀도 생겨
일부 부유층선 과외 빙자해 결혼상대자 엮어주기도
과외를 받는 장소는 A씨의 집. 처음엔 선생님과 학생의 감정으로만 서로를 대했다. 그러나 좁은 방 안에서 몇 시간 동안 함께 붙어있던 청춘남녀는 어느 순간 서로를 남자와 여자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수업시간은 면접기술보다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으로 바뀌었고 결국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해 결혼을 약속한 사이가 됐다고 한다. 이처럼 성인끼리 하는 과외수업은 종종 목적과는 다른 결실을 맺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부유층 사이에서 이를 이용해 자녀들의 짝을 찾아주는 이들이 늘고 있다. 신랑감이나 신붓감으로 손색이 없는 과외선생님을 물색한 뒤 자녀에게 과외를 하라는 명목으로 두 사람을 만나게 한다는 것.
이는 주로 딸을 가진 어머니들이 이용하는 수법이기도 하다. 특히 결혼적령기의 딸이 자신의 마음에 차지 않는 남자와 교제를 할 때 이들을 갈라놓는 최후의 수단으로 이용된다.
서울 강남에 살고 있는 주부 C(53·여)씨도 최근 주위사람들로부터 이 방법을 듣고 딸 D(23)씨에게 과외를 시키고 있다고 한다.
모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D씨는 1년 전부터 남자친구 E씨와 교제 중이다. 그러나 C씨에게 딸의 남자친구는 눈엣가시다. 어느 모로 보나 자신이 마음속에 정해 둔 사윗감의 조건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전문대 졸업이란 학벌이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자란 E씨는 학비를 줄이기 위해 전문대를 택했고 일찌감치 작은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소위 부유층에 속하는 C씨에게 이런 조건의 남성이 사윗감으로 눈에 찰 리가 없었던 것.
처음 딸이 남자친구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만 해도 ‘잠깐 만나다 헤어지겠지’라는 생각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C씨가 조바심이 난 것은 올해 초부터다. 갑자기 딸이 결혼선언을 한 것.
놀란 C씨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딸의 마음을 돌리려고 시도했다. 회유와 협박으로 딸을 설득했지만 딸은 확고했다. 올봄이 가기 전 결혼을 시켜달라는 것이 딸의 변하지 않는 소망이었다.
딸과의 전쟁에 지칠 대로 지친 C씨. 그러던 C씨가 비책을 전수받은 것은 몇 주 전 동창으로부터였다. 딸과 남자친구의 사이를 갈라놓을 방법이 없냐고 하소연하는 그에게 동창이 전해준 비법은 바로 과외 시키기.
동창은 “무조건 갈라놓으면 오히려 사랑이 깊어질 수 있으니 딸의 시선을 다른 남자에게도 돌리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모 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의 연락처를 건넸다. 명문대 출신에 대기업직원인 이 과외선생님이 마음에 들었던 C씨는 결국 딸에게 토익과외를 빙자해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다.
남친 뗄 수만 있다면…
C씨는 “딸을 설득해 2주 전부터 과외를 시키고 있는데 결과가 어떨지는 모르지만 남자친구에게 쏟는 관심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면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숨은 목적을 가지고 자녀에게 과외를 시키는 이들은 C씨뿐만이 아니다. 부유층을 중심으로 조금씩 확산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특히 자녀가 결혼정보회사나 맞선 등 조건에 맞춘 만남을 원치 않을 경우 이 방법은 더욱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