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 김성수 기자가 파헤친 재벌가 신(新)혼맥 [제6탄] 이혼남녀 X파일

씻을 수 없는 상처 ‘파란만장 웨딩잔혹사’

[일요시사=경제1팀] 재벌가 혼맥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한두 다리만 건너면 사돈’이란 말이 통용될 정도로 ‘그들만의 성’은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 물론 재벌가문은 정·관계 및 학계 쪽으로도 거대하고 강력한 연줄망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사세 확장을 위해 권력층과의 정략결혼도 서슴지 않는다. 전략적 통혼을 통해 최고의 부와 명예, 권력을 한 손에 쥘 요량에서다. 5년 전인 2004년 시사지 최초로 재벌가 혼맥을 집중 해부해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일요시사>가 2009년 새해를 맞아 새 식구를 포함한 재벌가 신 혼맥을 유형·테마별로 새롭게 재구성해 봤다.



어느 가정이든 숨기고 싶은 가족사가 있기 마련이다. 그중에서도 이혼은 언급조차 꺼려지는 아픔이다. 재벌가도 예외는 아니다. 총수 일가의 파경은 ‘치명타’나 다름없다. 일단 노출되면 집안은 물론 기업 경영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혼 경력을 숨길 수 있다면 끝까지 감추는 게 상책인 이유다.

당연히 해당 그룹은 하나같이 모르쇠로 일관한다. 오너 가족의 개인사란 까닭으로 언급 자체를 극도로 꺼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한 재벌가 사람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재벌가의 파경 사례는 연예인을 식구로 받아들인 집안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자본의 권력인 재벌과 대중의 우상인 스타의 결혼은 대중의 호기심을 끌며 숱한 화제를 뿌린다. 

1971년 결혼한 고 장강재 전 한국일보 회장과 인기 여배우 문희 씨를 시작으로 2006년 8월 백년가약을 맺은 범 현대가의 정대선-노현정(전 KBS 아나운서)에 이르기까지 재벌과 스타의 만남은 그때마다 신선한 충격을 주는 최고의 화두로 떠올랐다.

물론 이들은 대부분 아무런 잡음 없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실과 바늘’로도 불리는 두 부류간 결합이 순탄치 않거나 서슴없이 갈라선 ‘막장 커플’도 적지 않다.


조규영 중앙산업개발 회장은 1970∼80년대 장미희, 유지인 씨와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의 주역인 청순 미녀 정윤희 씨를 아내로 맞았다. 그야말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었다. 문제는 조 회장이 유부남 상태에서 결혼이 진행됐다는 사실. 본부인과 이혼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에서 정씨와 교제를 시작한 것이다. 

결국 1984년 조 회장의 부인이 두 사람을 ‘간통’으로 경찰서에 고발했고 정씨는 유치장 신세를 져야 했다. 당시 ‘유부남과의 불륜’이란 비난이 쏟아졌고 정씨는 이를 계기로 연예계를 완전히 떠났다. 이들은 현재 주변의 걱정과 달리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최원석 전 동아건설 회장은 ‘두 번 이혼, 세 번 결혼’이란 이력을 갖고 있다. 모두 스타와의 인연이었다. 최 전 회장의 첫 번째 배필은 1960년대 유명한 육체파 여배우였던 김혜정 씨다. 그는 1976년 이혼 뒤 ‘펄시스터즈’ 멤버였던 배인순 씨와 재혼했지만 1998년 다시 이혼 후 KBS 아나운서 출신 장은영 씨와 결혼했다.

배씨는 2003년 자서전 <30년 만에 부르는 커피 한 잔>에서 최 전 회장의 사생활을 공개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 책에 따르면 배씨는 22년간의 결혼생활 내내 시부모와 불화를 겪는 등 재벌가 안주인으로서 삶이 순탄치 않았다. 특히 최 전 회장의 외도 경력까지 폭로한 배씨는 “만약 후배 연예인이 재벌과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면 적극 말리겠다”고 말을 하기도 했다.

에스콰이어그룹 일가 2세 이정 씨와 인기 절정이던 황신혜 씨는 1987년 결혼했지만 9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다. 황씨는 이듬해 3살 연하의 사업가와 재혼했지만 2005년 또 다시 이혼했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막내아들 채승석씨도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SBS 아나운서 공채에 합격한 한성주 씨와 1999년 결혼했지만 성격 차이를 이유로 5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외아들 정용진 부회장에게도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다. 바로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고현정 씨와의 결혼과 이혼이다. 


정 부회장은 1995년 고씨와 결혼했지만 8년6개월여 만인 2003년 이혼했다. 법원에 제출한 이혼사유는 ‘성격 차에 따른 가정불화’였다. 이들의 만남은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이혼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 한 번의 화제를 낳았다.
정용진-고현정 못지않게 세간의 시선을 끈 만남과 이별은 홍승표 전 계몽사 회장과 역시 미스코리아 출신의 탤런트 오현경 씨다. 오씨는 1998년 ‘O양 비디오’가 유포되면서 연예계를 떠났고 2002년 홍 전 회장과 극비리에 결혼식을 올렸으나 4년 만인 2006년 갈라섰다.

재벌과 스타의 이혼은 결혼만큼 화제를 뿌린다. 재벌가는 물론 연예인들이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탓이다. 결혼에 이은 이혼 소식이 빠짐없이 세상에 알려지는 이유다.

그러나 재벌가에서 ‘끼리끼리’은밀하게 이뤄지는 ‘그들만의 혈맹관계’는 외부로 잘 노출되지 않는다. 이혼 또한 마찬가지다. 대부분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조카이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누나 이미경 CJ엔터테인먼트 부회장과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간 파경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 전 사장은 연극배우 윤석화 씨와 재혼했다. 이 부회장은 독신생활을 고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삼성가에선 이병철 창업주의 3녀 순희 씨가 김규 전 서강대 교수와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다시 결합해 잘 살고 있다는 후문이다.

롯데가에서도 이혼한 로열패밀리가 한둘이 아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장녀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은 1967년 대구의 유지였던 장오식 전 선학알미늄 회장과 결혼, 1남3녀(재영-혜선-선윤-정안)를 뒀다. 신 사장은 이런 인연으로 선학알미늄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해 1973년까지 이사로 재직했다.

그러나 신 사장은 그리 만족할 만한 결혼생활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는 1979년 장 전 회장과 이혼하면서 회사를 롯데쇼핑으로 옮겼다. 장 전 회장은 재혼했다가 다시 이혼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4년 막내딸 정안 씨와 국제변호사인 이승환 씨의 결혼식에 장 전 회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문화·성격 차이로” 총수일가 파경 비일비재
베일 속 은밀한 만남…이별도 극비리 마무리

신 사장은 현재 혼자 살고 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장남 재영 씨와 장녀 혜선 씨도 결혼에 실패해 독신으로 지내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공교롭게도 신 사장의 차녀 선윤(호텔롯데 상무) 씨도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결별 시점과 사유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다. 그의 전 남편이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게 전부다.

선윤 씨는 2007년 양성욱 아우디코리아 상무와 전격 재혼했다. 외할아버지인 신 회장의 각별한 총애를 받고 있는 선윤 씨는 어머니 신 사장의 뒤를 이어 롯데쇼핑의 ‘후계자’로 점쳐졌다. 하지만 선윤 씨는 지난해 4월 호텔롯데 마케팅부문장에서 돌연 물러나 사임 배경을 놓고 갖가지 관측이 나돌기도 했다.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의 막내딸인 경주 씨는 광명덕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의 장남 광태훈 씨와, 김수근 삼양그룹 창업주의 장녀 상경 씨는 아폴로 박사로 유명한 조경철 씨와 각각 결혼했지만 가정불화로 헤어졌다. 고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의 장남 석원(전 쌍용그룹 회장) 씨는 첫째 부인과의 결혼에 실패, 1981년 박문순(성곡미술관장) 씨와 재혼했다. 


재벌가와 정·관계 집안간 결합이 이혼으로 끊기는 경우도 많다. 류찬우 풍산그룹(옛 풍산금속) 회장의 장남 류청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차녀 근령 씨와 1982년 결혼했다가 불과 6개월 만에 헤어졌다. 근령 씨는 지난해 10월 14세 연하인 신동욱 백석문화대 교수와 재혼했다.

고 이원만 코오롱그룹 창업주의 차남 동보(전 코오롱TNS 회장) 씨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장녀 예리 씨도 한때 부부였지만 성격 차이로 갈라섰다. 양 가문은 이로 인해 급속도로 냉랭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전두환 전 대통령도 사돈관계를 원만히 유지하지 못했다. 박 명예회장의 4녀 경아 씨와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 씨는 1988년 결혼했으나 불화를 견디다 못해 2년5개월 만에 이혼했다. 

재용 씨는 두 번째 아내인 최모씨와 결혼생활을 하다 2007년 2월 또다시 갈라선 뒤 같은 해 7월 탤런트 박상아 씨와 세 번째 결혼을 올렸다. 박 명예회장은 막내딸에 이어 1984년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과 혼인한 차녀마저 2002년 파경하는 아픔을 겪었다.

무엇보다 재벌가에서 간간이 터지는 ‘황혼 이혼’소식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은 2006년 부인 박모씨와 합의 이혼했다. 박씨는 2005년 8월 강 회장을 상대로 서울가정법원에 위자료 53억원 등을 요구하는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사실 강 회장 부부는 오래 전부터 상당기간 별거했을 만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강 회장의 파경은 당시 79세였던 나이는 물론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와 전경련 회장직을 맡고 있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했다. 주변인들은 “강 회장이 사업은 성공했지만 가정은 실패했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 사건은 강 회장과 배다른 자식 간 갈등이 증폭되는 계기가 됐다. 강 회장은 슬하에 5남4녀를 두고 있는데 이중 장·차남만 박씨의 자녀다. 나머지는 후처 최모씨와 사이에서 태어났다. 강 회장이 박씨 소생인 장·차남을 배제하고, 배다른 3·4남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후계구도 정비에 나섰고 이 일은 동아제약 경영권 분쟁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회장의 황혼 이혼도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이 회장의 나이는 77세였다. 그의 부인 신모씨는 2000년 무려 1000억원의 이혼 위자료 및 재산분할청구 조정신청을 서울가정법원에 냈다. 국내 이혼 위자료로 사상 최고의 액수였다.

“남편의 외도와 구타를 참을 수 없었다”는 게 신씨의 주장. 이 회장은 이에 대해 모두 부인했다. 그룹 측은 “이 회장이 사재출연을 반대하는 가족들과 마찰 끝에 부인에게 이혼을 당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이 회장은 평생 모은 재산 6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한 바 있다. 이 소송은 신씨가 50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마무리됐다가 8년 만인 2007년 재결합해 세상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창업 1세대 ‘세컨드 스토리’

십중팔구 아슬아슬 ‘양다리’

‘정주영, 이원만, 이병철…’ 창업주 대부분 애첩 관리

재벌그룹을 일군 창업주 치고 ‘애첩’을 곁에 두지 않은 사례는 드물다. 아슬아슬한 ‘양다리’를 걸치다 이른바 ‘세컨드’로 들인 경우는 창업 1세대에 집중되고 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한국에 부인이 있었지만 일본에서 일본인과 결혼해 2명의 자녀를 더 뒀다. 이 창업주는 모두 10명의 자녀가 있는데 이중 8명(3남5녀)만 본처인 고 박두을 씨의 소생이다. 나머지 4남과 6녀는 이 창업주가 일본을 드나들면서 만난 일본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았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도 한국인 첫 번째 부인 고 노순화 씨와 결혼해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을 낳았다. 이를 모른 채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간 신 회장은 1952년 일본인 시게미쓰 하츠코 씨와 사이에서 동주-동빈 두 아들을 얻었다. 

시게미쓰 씨는 당시 일본 외무성 대신의 여동생이었다. 이런 탓에 배다른 남매인 신 사장과 신동빈 부회장의 갈등설은 호사가들의 단골 메뉴다. 여기에 신 회장은 미스롯데 출신인 서미경씨와 사이에 두 딸을 더 두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부친 이맹희 씨는 혼외 아들을 뒀다. 2006년 대법원은 뒤늦게 나타난 아들이 이씨를 상대로 제기한 친자확인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확정 판결을 내렸다. 

2007년엔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배다른 자녀인 두 자매가 100억원의 추가 상속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각각 20억원씩 더 챙겼다. 고 이원만 코오롱그룹 창업주도 미국에 혼외 아들을 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고 최준문 동아그룹 창업주도 아슬아슬한 양다리를 걸쳤다. 최 창업주는 4명의 부인 사이에 모두 7명의 자식을 뒀다.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 3남매를, 둘째 부인과의 사이에 1명을 낳았다. 그 뒤로도 셋째 부인 사이에서 딸 둘, 넷째 부인 사이에서 아들 하나를 더 낳아 호적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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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채 상병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취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신의 사건을 언급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한 게 핵심이다. 임 전 사단장과 연락이 닿은 인물들은 대부분 이해관계자다. 자칫하면 회유 정황으로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은 ‘채 상병 사건’의 핵심 피의자다. 수사외압 논란의 시발점이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직접 챙긴 인물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사건을 물밑에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다 왜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침묵 지키다… 임 전 사단장은 최근까지 복수의 해병대 간부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는 간부 A씨에게 “(공수처)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상황서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어서 연락하지 못했다”며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은 없었다. 다만 “모두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지만 아들을 잃은 채 상병의 유족 특히 모친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다. 진실을 밝힐 때까지는 고통스러워도 견딜 생각이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임 전 사단장은 A씨에게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하 대령)의 변호인이었던 김경호 변호사에게 내용증명을 보낸 것과 관련해 민·형사 소송을 준비 중이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뉘앙스로 연락을 취했다. 김 변호사가 자신을 고발한 게 무고에 해당하는지와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타 간부들에게도 비슷한 도움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간부는 <일요시사>와의 연락서 “난감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모셨던 사람이긴 한데 임 전 사단장에 대해 개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든 사람이 채 상병 사건 진상규명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전 사단장은 과거 박 대령에게도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바 있다. 자신은 물속 수색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수차례 했고 작전통제권이 육군 50사단장으로 넘어간 상황서 자신의 책임과 범위 내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며, 이에 대한 박 대령의 기억과 판단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공수처 수사 대상인데… 사건 연루자들에 연락 당시 임 전 사단장은 “상급지휘관(임 전 사단장)에게 작전통제권은 없지만, 부대를 방문해 전술토의할 수 있고 효율적인 작전이 되도록 유도할 권한은 있다”고 했다. 작전통제권이 없어 안전 책무가 없다면서도, 자신이 현장서 ‘수변을 수색하라’고 지휘한 건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런 이유로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직권남용 문제를 언급한 해병대수사단의 조사 결과 보고서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해병대 수사단은 임 전 사단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적시하지 않았다. 수사단은 ‘작전통제권과 상관 없이’ 임 전 사단장을 실질적 수색작전 지휘관으로 보고, 안전지침을 부대에 하달하지 않아 채 상병 순직사고가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임 전 사단장은 김 변호사와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김 변호사가 SNS에 게시한 글 중 허위 사실이 포함된 내용이 있다는 게 임 전 사단장의 주장이다. 그는 김 변호사에게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한계 속에서 해석과 이해를 거쳐 어떤 주장을 하는 것에 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악의적이라고 생각한다”며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문제점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발견됐고, 제가 사안의 진상을 밝히면서 그걸 뒷받침하는 자료를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허위가 여론을 조작하고 진실을 가리는 불의한 상황을 시정하기 위해 나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을 공수처에 세 번째로 고발했다. 이번 혐의는 군형법 제79조 무단이탈죄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임 전 사단장은 지난 1월 말 서울 노원구에 있는 화랑대연구소가 아닌 영등포구에 위치한 해군 관사 ‘바다마을아파트’에 거주하며 인접한 해군 재경근무지원대대 사무실로 출근 중이다. 마음 급해졌나…어떤 의도? 갑자기? 특검 압박 느꼈나 이 사실은 그가 여러 곳에 자신이 결백하다는 취지의 문서를 내용증명, 등기우편 등으로 보내면서 드러났다. 등기 봉투의 발신지는 화랑대연구소였으나 배송 조회 결과 실제 발신지는 서울 신길7동 우편취급국이었다. 임 전 사단장이 거주 중인 서울 관사 인근이다. 발송 시간도 대부분 일과시간 직전이나 일과 중이었다. 임 전 사단장은 언론을 통해 “연수 초기에 육사에서 주로 근무했으나 장거리 출퇴근 비효율적이라서 최근엔 해군재경대대서 근무 중이다. 근무 장소 중 하나가 해군 재경대대”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정책 연수의 일시와 출퇴근 시간 및 장소가 명령으로 특정된다. 인사명령의 지정된 장소서 지정된 출퇴근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인사명령이나 상급기관의 지휘관에게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최근 자주 번호를 변경하는 임 전 사단장의 핸드폰을 압수수색해 무단이탈한 장소와 상급지휘관인 해병대 사령관에게 정식으로 사전에 허가를 받았는지에 관한 진실을 밝혀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취지”라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행동이 증거인멸 시도로 볼 수 있다”며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며 같이 책임을 면하자는 회유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수처는 지난 1월부터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와 경찰 이첩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에 대해 강제수사를 착수해 왔다. 박 대령에게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것에서 임 전 사단장이 적극적인 책임 회피에 나섰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현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권서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자 조용했던 임 전 사단장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적절한 처신 한 해병대 간부는 “전우의 죽음 이후 형평성에 어긋나거나 석연치 않은 윗선의 처리는 진상규명 문제를 떠나 정치권 개입을 불렀다”며 “도의적 책임도 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일부 작자들의 행동으로 인해 해병대 전체의 명예가 실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 전 사단장은 <일요시사>가 사건 관계인에 연락한 이유에 관해 묻자 "사건 관계인에게 연락한 것은 사실 확인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