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결국 사퇴했다. 내정 23일 만의 일이다. 김 내정자는 “용산 사고의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를 결심했다”며 사퇴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어떤 자리보다 지키기 힘들었던 경찰청장들의 수난사에 한 페이지가 더 추가됐다. 역대 경찰청장들을 돌이켜 보면 아무 탈 없이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치고 박수를 받으며 떠나기보다는 임기 동안 끊임없는 구설수에 시달리거나 황급히 자리를 뜬 이들이 적지 않았던 것. 물의를 일으키고 쓸쓸한 뒷모습을 보였던 경찰청장들의 면면을 돌아봤다.
경찰청장의 수난사는 2대 청장 이인섭 씨로부터 시작된다. 이 전 청장은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슬롯머신업자 경찰간부 등에게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 청장의 뒤를 이어 경찰청의 수장이 된 김효은 청장은 부동산투기 의혹을 받고 6개월을 겨우 채우고 사퇴를 하게 된다.
김 전 청장의 바통을 이어 받은 것은 김화남 청장으로 재직할 1994년 당시 ‘시위진압을 위해서는 총만 쏘면 해결된다’는 식의 극언을 서슴지 않아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그치지 않고 15대 총선에 출마하면서 거액의 현금을 살포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한 케이스다.
다음으로 청장직을 수행한 박일룡 씨 역시 깔끔하지 못한 뒷모습을 보였다. 1994년 12월부터 1996년 12월까지 2년이란 임기를 채우며 이전 청장들에 비해 단연 오랜 시간동안 청장직을 이어 나갔지만 1992년 대선 당시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에 연루된 것이 드러나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초원복집 사건이란 1992년 부산의 유력기관장 등이 부산의 ‘초원복집’이라는 음식점에 모여 지역 감정을 부추겨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치자고 의논한 사건이다.
당시 김기춘 법무부 장관 및 부산시장, 안기부 지부장 등 지역기관장 등이 모여 신한국당 후보였던 김영삼을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정주영 및 김대중 등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시키자는 등 관권 선거와 관련된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이것이 정주영 후보 측의 통일국민당에 도청을 당해 언론에 폭로됐다. 아파트 값을 반으로 내리겠다는 공약 등으로 보수층을 잠식하던 정주영 후보 측이 신한국당의 치부를 폭로하기 위해 전직 안기부 직원등과 공모하여 도청 장치를 몰래 숨겨서 녹음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김영삼 후보 측은 이 사건을 음모라고 규정했으며 주류언론이 관권선거의 부도덕성보다 주거침입에 의한 도청의 비열함을 더 부각시켰다. 때문에 통일국민당이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았고 김영삼 후보에 대한 지지층이 집결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이 여세를 몰아 김영삼이 14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초원복집 사건이다.
이 사건에 박 전 청장이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 구속되면서 더 이상 경찰청장직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8대 경찰청장직을 위임한 김광식 씨는 1999년 인천 인현동 상가건물 화재 참사로 경질됐다. 이 화재는 1999년 10월 인천시 중구 인현동에 위치한 4층짜리 상가건물의 지하에 있던 ‘히트 노래방’에 불이나 이 건물 2층 호프집과 3층 당구장에 있던 손님 57명이 숨진 사건.
이날의 화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란 점에서 많은 이를 안타깝게 했고 이것이 김 전 청장의 옷을 벗게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9대 경찰청장직을 맡은 이무영 씨는 ‘수지 김 피살사건’ 내사중단 의혹으로 구속된 바 있다. 이 사건은 1987년 1월 홍콩에서 한국 여성 수지 김이 살해되자 국가안전기획부가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고 오히려 수지 김을 북한의 공작원으로 조작해 해외 상사원 납치 공작으로 조작한 사건이다.
경찰청장의 수난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0대 청장 이팔호 씨는 최성규 전 경찰청 특수수사과장 해외도피 의혹으로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조사를 받았다.
김석기 내정자 사퇴로 지난 경찰청장들 수난사 주목
각종 사건·의혹에 휘말려 임기 못 채우고 불명예 퇴진
뒤를 이은 경찰청장은 최기문 전 청장이다. 최 전 청장은 최초의 2년 임기제 청장이었으나 임기를 3개월 남겨둔 채 사퇴하고 말았다. 당시 최 전 청장의 갑작스런 사의 표명을 놓고 경찰 안팎에서 갖가지 설이 무성했다.
청와대 등 윗선과의 갈등설, 정치계 입문설 등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2007년에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사건에 휘말리면서 또 다시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다.
결국 최 전 청장은 보복폭행사건 수사를 무마시키기 위해 외압을 행사했다는 혐의로 지난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장희곤 전 남대문경찰서장에게 전화해 수사 중단 지시를 하도록 청탁한 혐의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최 전 청장에 이어 12대 청장직을 역임한 허준영 전 청장은 임기 당시 농민들이 시위를 하던 중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농민이 사망함에 따라 사퇴를 맞았다.
13대 이택순 전 청장 역시 평탄한 청장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임기 내 터진 한화그룹 보복폭행 사건에 휘말려 사퇴 압박을 받았던 것. 검찰 수사까지 받으며 무혐의처분을 받았지만 여론은 따가운 시선을 보냈고 급기야 이 전 청장은 대국민 사과까지 하며 아슬아슬하게 임기를 채웠다.
14대 어청수 청장 역시 임기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했다. 어 전 청장은 ‘촛불시위 과잉진압’과 ‘종교 편향’ 논란 등으로 끝없는 사퇴압박을 받아왔다.
그러나 사퇴요구가 있을 때마다 ‘15만 경찰의 사기’를 이유로 비켜갔던 어 전 청장은 지난 1월 “이명박 정부 집권 2년차를 맞아 새롭게 진용을 갖추고 새 출발 할 수 있도록 자진해서 물러나겠다”라며 돌연 사퇴를 밝혔다.
뒤를 이어 다음 경찰청장 자리에 낙점된 김석기 내정자는 결국 청장자리에 앉아보지도 못한 채 물러나는 수난을 겪었다. 정치적으로 석연치 않은 부분이 없지 않지만 용산 철거민 참사의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용단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역대 경찰청장들은 굴곡과 수난의 소용돌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때문에 다음 경찰청장은 누가 될 것인지, 그의 행보는 순조로울지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고서> 한국사회는 폭력이 약하다
“법보단 주먹이 우선”
우리 사회가 여전히 폭력에 약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서울 등 7개 도시 1505명을 상대로 한 ‘한국사회 폭력문화의 구조화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말이나 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폭력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37.5%(565명)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부모들이 자녀를 때려 키우지 않아 아이들의 버릇이 없어졌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52.4%(789명)가 ‘그런 편’이나 ‘그렇다’고 답했다.
또 어떤 경우 폭력을 허용할 수 있는지 6점 만점으로 점수화했을 때 정당방위 상황일 때가 평균 3.97점이었고 공권력이 남용됐을 때(2.98점), 부부 사이에 부정한 행동이 있었을 때(2.94점) 등이 뒤를 이었다.
가족 간 폭력과 관련해서는 성장하면서 잘못된 행동으로 부모나 친척으로부터 맞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88%였고 뚜렷한 이유 없이 맞았던 적이 있다는 응답자도 50%에 달했다.
연구진은 “폭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정도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실제 폭력이 효과가 있다고 여기고 있으며 한국사회에서는 아직도 폭력이 효율적인 삶의 한 방식이자 수단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