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7, 환율정책 실패 인정…제2 IMF 예고
300만개 일자리 창출 장담…‘실업대란’ 야기
흔히들 이명박 대통령을 ‘경제대통령’이라고 부른다. 지난 2008년 2월25일 취임한 이명박 정부의 캐치프레이즈가 ‘경제 살리기’에 역점을 뒀기 때문이다. 이는 대선 당시 국민들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발휘했다. 7·4·7공약, 한반도 대운하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경제만 살려도 이명박 정부는 성공한다”는 게 중론이었다. 이런 이유로 이 대통령은 올해도 경제 살리기에 전념하고 있는 분위기다. 1·19개각을 통한 친정체제 구축, MB법안 통과 등 정면돌파식 국정운영이 이러한 의도로 해석된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째, 과연 이 대통령의 경제 공약 성적표는 어떠할까. 출범 초 이 대통령이 내세웠던 경제공약을 낱낱이 짚어봤다.
이명박 대통령은 출범 초부터 지금까지 경제 살리기에 역점을 두고 있다. 청와대 측은 “2009년은 국정운영의 성패를 좌우하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 경제위기 극복을 통해 리더십을 확보하겠다”고 말한다. 올해 들어 이 대통령이 거쳐 온 굵직한 정치일정을 들여다보면 경제 살리기와도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비상경제정부의 ‘워룸’을 진두지휘하고 있고, 지난달 19일 경제팀을 중심으로 한 개각 및 청와대 개편을 통해 위기극복을 위한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또 지난 4일 과천정부청사 지식경제부를 방문, ‘현장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했고 6일에는 ‘보건복지 콜센터 129’를 찾아 비상경제대책 현장 점검회의를 가지기도 했다. 이런 행보로 미뤄볼 때 이 대통령은 오는 25일 취임 1주년을 지나며 경제살리기에 더욱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작심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론은 여기저기서 계속 불거져 나오고 있다. 경제공약 이행 성적표는 ‘F학점’에 가깝고, 7·4·7 공약은 집권 1년이 되기도 전에 폐기됐던 것.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정책공약집 ‘발간사’에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실현 가능성이 없으면 용납하지 않았다”고 자신한 것이 무색할 지경이다. 이에 따라 ‘올해도 경제위기론은 가중될 것’, ‘경제성장을 위해 1%를 위한 성장이다’, ‘제2의 IMF위기가 몰아닥친다’, ‘경제위기론도 남 탓한다’ 등의 얘기까지 서슴없이 나돈다. 게다가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계속 친정체제를 가동하고, 귀를 닫는다면 경제위기론 가중은 물론 레임덕 현상까지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에 대해 친이계 한 인사는 “올 하반기에 경제위기론을 극복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바란다면 흑색전선은 그만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경제위기론이 계속될 것이라는 소문은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할까. 이 대통령이 내세웠던 공약을 살펴보자.
거시경제 슬로건은 이른바 7·4·7공약으로 집약된다. ‘매년 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의 실현을 담은 이 공약은 1년이 지난 현재 종적을 감췄다. 아예 폐기처분됐을 뿐 아니라 정부도 ‘실패’를 자인하고 있는 것.
이 대통령의 7·4·7 공약이 폐기된 것은 정부가 발표한 경제성장률로 가늠해 볼 수 있다. 지난해 2009년 경제운영방향에서 경제 성장률 목표치를 3%로 밝혔다. 그러나 단서조항이 붙는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던 것. 현실적으로 7·4·7 공약은 쉽지 않음을 인정하는 대목이다.
이명박, 경제공약과 역행 중
일자리 창출 아닌 마이너스 창출
여권 내에서도 잠재성장률이 6%인 상황에서 7% 성장은 불가능하며, 우리나라 경제규모 순위가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에서 10년 내 세계 7대강국 진입 역시 불가능하다는 비판론이 제기됐다.
이 대통령 스스로도 7·4·7공약이 ‘공수표’가 되어버렸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지난해 8월 미국 ‘야후’와의 인터뷰에서 “(7·4·7 공약에 대해) 10년 내에 이룰 수 있는 목표”라고 한 발짝 물러났다. 올해뿐 아니라 이 대통령 임기 내에도 보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를 입증하듯 IMF가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을 -4%로 전망했다. 지난 11일 정부도 국내총생산(GDP) 기준 올해 경제성장률을 3%에서 -2%로 하향조정했다.
또 지난달 3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8년 중 국제수지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경상수지는 64억1000만 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래 처음이다. ‘제2의 IMF 위기론’이 가중되는 요인 중 하나인 셈이다.
이 여파는 환율정책 실패로까지 이어졌다. 전 경제팀의 고환율 정책으로 환율시장이 전체적으로 불안했던 것. 부랴부랴 하반기부터 물가불안을 내세워 환율 방어 기조로 급선회하면서 외환보유액 감소는 물론 시장의 신뢰를 상실했다.
또 일자리를 연간 60만개씩 임기 중 300만개로 늘리겠다는 계획도 무산됐다. 윤증현 신임 기획재정부 장관은 “마이너스 4% 성장을 기록한다면 최대 2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던 것.
실제 지난 1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9년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취업자 수는 2286만1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0만3000명 감소했다. 신규 취업자 수가 10만명 이상 줄어든 것은 지난 2003년 9월 이후 처음이다. 말 그대로 7·4·7공약 파기로 인해 일자리 창출, 환율 안정화 정책들도 줄줄이 실패했다는 얘기다.
‘MB노믹스’ 주춤
야당 ‘MB악법’ 저지
또 이 대통령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공약을 내세웠다. 이 대통령은 당선 직후 “차기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freindly, 친기업적인)’ 정부로 만들겠다”고 단언했다. 이후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회자되면서 ‘MB노믹스’를 상징했다.
지난해 3월 이 대통령과 기업인들이 직접 휴대전화로 통화할 수 있는 ‘핫라인’이 개통됐다. 이 대통령의 ‘비지니스 프렌들리’ 정책의지에 따라 기업인 등 경제인들의 생생한 현장 목소리를 수시로 청와대와 기업의 최고 책임자 등과 소통의 창구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이다.
핫라인 대상 기업인은 각계가 추천한 인사들 가운데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 업종별, 기업규모별 균형과 경영상태 등을 고려해 선정되기도 했다. 중소기업 대표 39명을 비롯해, 경제단체 및 협회 33명, 금융기관 17명, 대기업 8명, 경제연구소 5명 등 모두 102명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었던 것.
이렇듯 기업을 위한 각종 규제(출총제 폐지 등)들을 풀어주려 했으나 야당의 발목에 잡혀,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세계경제 위기론이 급부상하면서 기업들이 ‘자기 방어’체계를 구축하다보니 활발한 투자를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아무런 계획도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른 투자를 하다보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인식이 자리매김한 것도 한 요인이라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이구동성이다.
여기에 야당도 한몫했다. 이 대통령이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 출자총액제한제(이하 출총제) 폐지를 강조했지만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유지론’을 펼쳤기 때문이다.
실제 야당은 출총제 폐지로 재벌로의 경제력 쏠림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막기 위해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기업집단 소속의 기업에 한해 순자산의 40%를 초과해 계열사와 비계열사를 불문하고 국내회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금산분리 완화 관련법도 마찬가지다. 금산분리 완화는 대기업을 포함한 산업자본의 은행주식 보유한도를 현행 4%에서 의결권 제한 없이 10%로 확대하는 내용의 은행법 개정안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추진하기 위한 차원에서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금융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은행에 민간자본이 많이 투입돼야 할 뿐 아니라 외국자본이 국내 금융산업에 유입되려면 그 기준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출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외환은행의 론스타 헐값매각 논란이 재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자본이 있는 국내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10%까지 확보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금산분리를 완화하면 은행을 국내 재벌에 넘기는 꼴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이명박 정권에서는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가 되고 국민 예금이 불안해져도 괜찮다는 것이냐”며 “국민적인 토론과 검증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문제가 아니다”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외에 공기업 민영화는 MB노믹스의 기조 즉, 시장의 자율·효율성 그리고 작은 정부론에 부합되는 정책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 상당수가 반대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는 해당 기업 간 각종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고 의견 조율이 쉽지 않다.
또한 섣부른 공기업 민영화는 공공성을 훼손하고 재벌의 덩치만 키워줄 뿐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대운하 재추진설 여전
“1% 위한 정책 버려야”
한편,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도 보류되거나 사실상 폐기됐다. 한반도 대운하로 수자원 확보 및 하천 수질 개선, 대구·충주·광주 등 내륙도시를 무역항으로 만들고 관광산업도 육성하겠다는 초대형 프로젝트는 촛불시위로 인해 ‘제자리걸음’ 중인 것. 그러나 이 대통령이 대운하 포기선언을 하지 않은 이상 한반도 대운하 추진은 언제든지 잠재해 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실제 야당과 시민단체에서는 4대강 정비 관련 재산이 대폭 편성된 것으로 볼 때 ‘한반도 대운하 추진의 사전포석’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또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더 높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이 추진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시각이다.
민주당 한 인사는 “이명박 정부가 내세웠던 공약은 친재벌정책일 뿐 아니라 1%의 특권층을 위한 정책에 불과하다”며 “경제 성장 위기론을 타파하더라도 1%를 위한 경제 정책을 계속적으로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빈부격차 문제 등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고, 서민들의 고통은 계속될 소지가 높다”며 “이명박 정부가 성공하려면 특권층을 위한 경제정책을 빨리 버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