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후폭풍> 손익계산 분주한 잠룡들

일대일로 좁혀지는 대권 레이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4·7 재보궐선거가 여권의 참패로 막을 내리면서 차기 대권 구도가 요동치고 있다. 대선까지 남은 시간은 1년 남짓. ‘별의 순간’을 좇는 잠룡들이 분주하다.
 

▲ (사진 왼쪽부터)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 정세균 국무총리

국민의힘이 4·7 재보궐선거에서 압도적인 표 차로 서울과 부산을 탈환했다. 야권은 전국단위 선거에서 4연패를 끊고 흥행세를 달릴 전망이다. 반면 여권 내에서는 참패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크게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태년 전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겸허히 수용한다”며 지도부 총사퇴에 나섰다.

혼돈의
민주당

이번 보궐선거는 사실상 문정부가 민심으로부터 심판 받은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공정과 정의를 강조했던 문재인정부의 ‘내로남불’이 일 때마다 예견된 결과였다는 것. 문정부의 핵심 인물들의 위선적 행태에 민심은 크게 분노했다. 2019년 ‘조국 사태’와 김상조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전셋값 인상 논란’이 대표적이다.

특히 부동산 민심에 기름을 끼얹은 ‘LH 사태’는 민심이 돌아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선거 이후 “국민의 질책을 엄중히 받아들인다”며 “더욱 낮은 자세와 무거운 책임감으로 국정에 임하겠다”고 자성했다.

지난해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180석을 얻으면서 공룡 여당으로 거듭났다. 당시 7선의 이해찬 전 대표는 과거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의 사례를 들며 ‘국민들 앞에서 항상 겸손할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과반(152석)을 차지했다. 승리에 취한 당은 4대 개혁 법안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역풍이 불었다. 이후 열린우리당은 2007년 17대 대선에서 패배했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 81석으로 쪼그라들었다.

21대 총선 이후 민주당의 모습은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대로 가면 다음 대선 역시 희망이 없다는 비관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민주당은 총선 압승 후 강성 친문(친 문재인) 지지층만 바라보며 독주했다. ‘민심의 명령’이라며, 국회 상임위원장직 18개를 독식했고, 민주당의 검찰개혁은 ‘추미애-윤석열 갈등’을 낳으며 정국을 마비시켰다.

분노한 민심 책임론 이낙연 추락
뜨는 이재명…친문 정세균 합세

이번 선거로 민주당은 ‘명분조차 없는 패배’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800억원의 혈세가 들어간 보궐선거는 박원순, 오거돈 두 전임 시장의 성추문이 발단이 됐다. 당은 ‘공직자의 중대 잘못’으로 이뤄진 선거에는 공천을 하지 않겠다는 무공천 당헌을 바꾸는 악수까지 뒀다.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한 2차 가해자들은 캠프에서 요직을 맡았다.

결국 민주당의 유력 대권 주자들은 이번 선거로 인해 크고 작은 내상을 입게 됐다. 특히 이번 선거로 여당의 대표 대권주자였던 이낙연 전 대표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었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11월 소속 단체장의 중대 비위의 경우 공천하지 않는다는 당헌 개정을 주도해 후보를 냈다.

이 전 대표는 선거 이후 사실상 아웃된 상태다. 그는 “저의 책임이 크다”며 “국민의 실망과 분노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 전례 없는 압승을 이끌며 대권 행보에 날개를 달았던 그가 불과 1년 만에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셈이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40%의 대선 지지율로 독보적 존재감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수장으로서 별다른 정치력을 보이지 못했다는 평가다. 설상가상으로 이 전 대표의 지지율은 연일 하락세다.

지난 8일 4개 여론조사기관이 합동으로 조사한 차기 대통령 선호도에서 그의 지지율은 10%에 그쳤다. 반면 이재명 경기도지사(24%)가 오차범위 내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18%)을 앞서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확인).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주당 내에서는 이 지사가 본격적인 ‘원톱 굳히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민주당 원팀’을 강조해온 그였기에 여권 심판론에서 마냥 자유롭진 못하다. 다만 이 지사의 ‘선거 중립 의무’로 인해 그의 책임론은 덜해 보인다. 지지자들은 위기에서 구해줄 ‘영웅’에게 힘을 몰아주는 경향이 강하다.

엎치락
뒤치락

이 전 대표의 입지가 줄어들면 자연스레 여권 지지자들이 이 지사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지사의 장단점은 뚜렷하다. 다사다난한 삶으로 다져진 정치적 감각이 상당하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신천지 사태 해결에서 그가 보인 정치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무엇보다 이 지사의 큰 장점은 옅은 계파색이다. 그는 지금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대척점에 서서 중도와 일부 보수층의 선택을 받았다.

이번 선거로 중도 지지층의 중요성이 확인된 만큼, 이 지사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반면 대선에서는 중도 보수의 결집으로 이 지사를 지지하는 일부 보수 지지층들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 ▲지난 7일, 4·7 재보궐선거 투표 결과를 지켜보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되자 지지자들 축하에 답례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이 지사의 부족한 당내 기반은 그의 한계로 꼽힌다. 당내 친문 세력과 정서적 거리가 있는 인물로 이를 좁힐 수 있느냐가 최대 관건이다. 아울러 민주당의 패배로 진영 자체가 불리해짐에 따라 성난 부동산 민심을 달랠 과제가 남아있다. 득과 실을 얻은 선거로 남은 1년이 만만찮을 것이란 관측이다.

일각에선 이 지사의 한계로 인해 새로운 인물이 떠오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른바 제3 후보론이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것은 정세균 국무총리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 총리의 지지율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그가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나선다면 지지율이 상승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 총리의 사임은 이미 기정사실화됐다.

재보선 결과가 정 총리에게 기회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호남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이 전 대표의 입지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또 이 지사와 친문 세력의 간극이 큰 탓에 정 총리가 친문의 전폭적 지지를 받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정 총리는 문정부 2대 총리를 지내면서 범친문, 주류로 꼽힌다.

새 인물로?
제3 후보론


정치 이력 역시 화려하다. 6선 의원 출신이자 당 대표, 국회의장 등을 거쳤다. 안정적인 국정 운영으로 ‘적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소 거친 행정력을 보이는 이 지사와 차별점 부각을 꾀할 수 있다.

반면 야권에서는 내년 대선을 위한 대통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게 일고 있다. 통합 과정에서 윤 전 총장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역할론이 야권의 가장 큰 이슈다. 먼저 야권의 완승으로 윤 전 총장의 ‘대세론’은 더욱 굳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윤 전 총장은 검찰에서 나온 후 몸을 낮추고 등판 타이밍을 고심하고 있다. 대신 LH 사태 등 국정에 대한 여러 의견을 내놓으면서 ‘메시지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또 그의 고등학교 동창이 나눈 대화를 엮은 <윤석열의 진심>이 오는 14일 출간될 예정이다. 사실상 대권 행보를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윤 전 총장의 시작점은 어디가 될까. 보궐선거 전에는 윤 총장이 제3지대에서 시작할 것이란 분석이 우세했다. 윤 전 총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켰던 ‘주인공’인 만큼 국민의힘에 입당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이 보궐선거에서 제3지대가 아닌 제1야당이 국민으로부터 선택받는 모습을 지켜본 만큼, 국민의힘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에서 중도층을 두루 섭렵한 반문 세력에 눌리지 않는 힘을 보였다. 제1야당다운 전략은 기본이고, 인력 및 조직력 등 정권교체를 위한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가다.

윤 전 총장으로서도 대선을 치를 때 든든한 ‘뒷배’가 되어줄 국민의힘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윤 전 총장이 차기 대선에서 야권 단일화 과정을 거쳐야 하고, 제1 야당 간판으로 출마해야 승산이 있다”고 분석했다.


등판 임박 윤석열 혼자? 야당으로?
안철수 ‘야권대통합’ 합당은 언제?

일각에선 윤 전 총장이 이르면 오는 7~8월에 국민의힘에 합류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때까진 윤 전 총장이 제3지대에 남아 세력을 구축하고, 이후 본격적인 야권 단일화 국면에서 입당한다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윤 전 총장의 파급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도층 표심과 아스팔트 우파 세력을 제외한 보수 표심까지 끌어 모은다는 것. 이번 보궐선거서 국민의힘은 2030세대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최근 ‘공정’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는 윤 전 총장과도 합이 맞게 되는 것이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국민의힘과 윤 전 총장을 잇는 ‘키맨’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8일 “자연인의 신분으로 돌아가겠다”는 퇴임사를 남기고 당을 떠난 상태다. 하지만 야권에서는 그가 제3지대 후보들과 당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 ▲▲ 지난 7일, 4·7 재보궐선거 투표 결과를 지켜보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권한대행 등 선거 캠프 관계자들 ⓒ박성원 기자

그도 그럴 것이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총장을)한 번 만나보고 대통령 후보감으로 적절하다 판단되면 그때 가서 도와줄 건지 안 도와줄 건지 판단하겠다”고 했다. 사실상 ‘킹메이커’에 나서겠다는 심산으로 읽힌다. 앞서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총장이 대권 지지율 1위를 달릴 때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호평한 바 있다.

안 대표 역시 선거서 ‘빛나는 조연’ 역할로 상한가를 쳤다. 단일화 패배 이후 깨끗한 승복과 함께 거리 유세로 야권 통합의 시너지 효과에 일조했다는 평가다. 국민의힘과 유대감 역시 깊어졌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야권 단일화를 성사시킨 안 대표야말로 진정한 승자”라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선거 직후 안 대표는 국민의힘과의 합당 이슈를 꺼냈다. 대통합 과정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속도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혁신’을 동반한 야권 통합이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변함이 없다. 안 대표는 오는 6월 예정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경선에 도전하는 등의 방식으로 합당을 시도할 수 있다. 야권 내부에서는 그가 “전당대회 후 합당을 치러야 한다”는 견제구도 나온다.

그때까지 안 대표는 제3지대의 확장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윤 전 총장이 안 대표와 연대한 후 통합하는 그림이 최선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이 여기에 응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외에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유승민 전 의원과 원희룡 제주지사 등도 본격적인 몸풀기에 나섰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국민의힘에 복당한 뒤 본격적인 당내 경선 준비를 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한 명씩 민다?
몸푸는 주자들

국민의힘 최다선인 정진석 의원은 “국민의힘은 내년 대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범야권의 진지로 변모해야 한다”며 “안철수·윤석열· 홍준표·유승민·금태섭 모두를 끌어안고 내년 3월의 대회전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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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