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후폭풍> 오세훈에 달린 시민단체 운명

10년 꽃길 걷다 어둠 속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7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뒀다. 과반의 서울시민이 야당을 지지한 만큼 인사부터 정책에 이르기까지 서울시정은 큰 변화를 맞게 될 전망이다. 이제 시민들의 눈은 여당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시민단체’에 쏠리고 있다.
 

▲ 지난 7일, 4·7재보선 투표 결과를 지켜보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된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박성원 기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야당의 승리를 점쳤지만 생각보다 격차가 컸다. 여당은 정권심판의 뭇매를 피해가지 못했고, 대선·지선·총선 등 선거 4연패 끝에 승리를 거둔 야당은 내년 3월 대선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여야의 엇갈린 희비만큼이나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10년 정책
싹 지우기

지난 4월7일 재보선에서 국민의힘이 서울시장 자리를 탈환했다.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는 57.50%의 득표율을 기록,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영선 후보(39.18%)를 18.32%포인트 차로 따돌렸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모두 오 후보가 승리했다. 특히 강남구에서 73.54%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오 신임 서울시장은 2011년 8월24일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투표율 미달로 무산되고 이틀 뒤인 26일 사퇴했다. 이후 같은해 10월26일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당선됐다. 박 전 시장은 지난해 7월9일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뜰 때까지 서울시장으로 재임했다. 

10년 만에 서울시장으로 재입성한 오 시장은 ‘박원순 지우기’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 전 시장의 대표적인 부동산 정책이었던 ‘35층 룰’은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35층 층고 제한은 서울시가 지난 2014년 발표한 ‘2030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만들어진 규제다. 오 시장은 한강변 아파트 35층 이하 규제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박 전 시장의 역점사업이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도 재검토 또는 중단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은 편도 6차로의 서쪽 도로를 모두 없애 광장으로 편입하고, 주한 미국 대사관 쪽 동쪽 도로를 7~9차로로 넓혀 양방향 차량 통행을 가능하도록 하는 사업이다. 8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서정협 시장 권한대행 체제에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에 착수했다. 당시 2009년 700억원을 들여 조성한 광화문광장을 불과 10년 만에 다시 800억원을 투입해 뜯어 고치는 게 타당하느냐는 비판이 일었다. 오 시장은 이미 후보 시절에 “이 공사는 정당하지 않고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박원순 시장 때 1000개 늘어 
9년 동안 200억원 넘게 지원

박 전 시장 시절 크게 늘어난 시민단체에 대한 오 시장의 입장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박 전 시장이 재임한 9년(2011년~2020년) 동안 서울시 등록 시민단체가 1017개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기간 동안 서울시가 시민단체에 지원한 금액은 200억원을 상회한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국회 입법조사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12월31일 기준 1278개이던 서울시 등록 시민단체는 지난해 11월30일 기준 2295개로 79.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국 17개 시도 등록 시민단체는 총 9020개에서 1만3299개로 평균 47.4% 늘어났다. 서울시 등록 시민단체가 다른 지역보다 크게 증가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서울시가 시민단체에 지원한 보조금은 200억5169만6000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 윤미향 의원 ⓒ고성준 기자

연도별로는 2012년 21억8300만, 2013년 19억4300만원(141개), 2014년 17억5800만(122개), 2015년 20억3600만원(143개), 2016년 24억4700만원(144개), 2017년 21억9999만6000원(158개), 2018년 21억9000만원(151개), 2019년 26억3870만원(167개) 등이다.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제기한 일본군 성 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역연대(정의연) 회계 부정 의혹,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소 의혹 유출 등으로 시민단체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진 상황이다. 시민단체의 회계 투명성 등을 위한 외부 감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지난해 5월7일 이용수 할머니는 기자회견에서 성금 사용과 수요집회 관련 정의연 등 관련 단체를 비판했다. 정의연은 다음날 입장문을 발표하고 성금 사용 영수증 공개 및 모금 사용 내역을 정기 회계감사 통해 검증받고 있다고 반박했다.

늘어나면서
영향력 커져

하지만 이후 언론을 통해 부실회계, 기부금 논란 등 정의연 관련 의혹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윤미향 의원이 개인계좌를 통해 기부금을 모금했다는 의혹이 함께 불거졌다. 또 정의연이 운영하는 경기도 안성 소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인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 고가 매입, 윤 의원의 부친이 쉼터를 관리하면서 운영비를 받았다는 의혹도 터졌다. 

같은해 6월6일에는 정의연 마포구 쉼터 ‘평화의 우리집’ 소장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다양한 추측들이 쏟아졌다. 시민단체들은 윤 의원을 ‘아동학대·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 ‘기부금품의모집및사용에관한법률 위반 및 업무상배임·횡령죄, 사기죄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검찰은 지난해 9월14일 ▲보조금관리에관한법률위반 및 지방재정법 위반, 사기 ▲기부금품의모집및사용에관한법률 위반 ▲업무상 횡령 ▲준사기 ▲업무상 배임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등 8가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윤 의원은 지난해 11월30일 첫 재판에서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한다”고 밝혔다. 
 

▲ 정의기억연대 ⓒ고성준 기자

윤 의원은 최근에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의 갈비뼈 골절 사실을 알고도 무리하게 해외 일정을 강행하고 노래를 부르게 한 혐의로 고발됐다.

앞서 여명숙 전 게임물관리위원장은 윤 의원이 지난 2018년 길 할머니와 유럽에 갔을 때 할머니의 갈비뼈가 부러졌는데도 가혹한 일정을 소화하게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여 전 위원장은 길 할머니가 “윤 의원은 어디를 가나 날 이용했다”고 말하는 내용이 포함된 영상도 공개했다. 여 전 위원장이 공개한 의료내역에 따르면 길 할머니는 귀국 다음날인 2017년 12월8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의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늑골의 염좌 및 긴장’이 의심됐다. 통증이 이어져 다음날 방문한 종로구의 대형 병원에서 길 할머니는 ‘4개 또는 그 이상의 늑골을 침범한 다발골절’ 진단을 받았다. 

횡령, 유출… 
숱한 의혹들

윤 의원은 “허위사실 유포”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지난 5일 “독일을 다녀오는 과정에서 갈비뼈 골절을 의심할 증상이나 정황이 없었고 가슴 통증을 느낀다는 말은 귀국 후에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명백한 허위사실을 명예훼손 의도를 갖고 악의적으로 유포하는 행위를 즉각 멈출 것을 엄중히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정의연 사태가 불거지고 시민단체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 회계 기관 감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지난해 5월 YTN 더뉴스의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조사한 결과 ‘정기적인 외부 회계 기관 감사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과반(53.2%)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직접 시민단체 회계 관리에 나서야 한다’(21.4%), ‘시민단체들이 공동의 기구를 만들어 서로 감시해야 한다’(15.8%) 등이 뒤를 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정의연 사태는 안 그래도 줄어들고 있던 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기부 경험이 있는 사람’의 비율은 2013년 34.6%에서 2019년 25.6%로 감소했다. 특히 ‘모금단체에 대한 신뢰’ 문제로 기부를 하지 않는 응답자가 2017년 8.9%에서 2019년 14.9%로 3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피소 사실이 시민단체를 통해 유포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부정적인 여론은 더욱 확산됐다. 검찰에 따르면 김재련 변호사는 지난해 7월7일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에게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을 ‘미투’로 고소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리면서 지원을 요청했다. 

정의연·여성연합 사태로 불신↑
‘공동경영’ 안철수 부정적 입장

이 요청을 들은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는 또 다른 시민단체 관계자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고, 또 해당 관계자는 같은 단체 공동대표에게 말했다. 공동대표는 평소 친분이 있던 민주당 남인순 의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어 남 의원은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박 시장과 관련해 불미스러운 이야기가 도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이후 박 전 시장은 임 특보로부터 ‘구체적인 내용이나 일정을 알 수 없으나 피해자로부터 박 전 시장을 상대로 고소가 예상되고 여성단체와 함께 공론화할 예정’이라는 취지의 말을 전해들은 것을 검찰은 확인했다. 박 전 시장은 관련 내용을 전해들은 후 비서진과 대책논의를 진행했지만 결국 잠적했다가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성원 기자

여성단체연합은 “피해자와의 충분한 신뢰 관계 속에서 함께 사건을 해석하고 대응활동을 펼쳐야 하는 단체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진실 규명을 위해 분투하신 피해자와 공동행동단체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시민단체 출신의 남인순 의원은 처음에는 “피소 사실 몰랐고 유출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가 나온 이후에야 “피해자에게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한 성적 언동 일부를 사실로 인정하며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오 시장은 시민단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경선 과정에서 경쟁했던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시민단체의 서울이 아닌 시민의 서울을 돌려드리겠다”고 말한 것과 대조된다.

당시 나 전 의원은 “박 전 시장 취임 이후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시민단체의 시정 장악’”이라면서 ”서울시의 4급 이상 개방형 직위는 지난해 6월말 56개까지 늘어났다. 이는 이명박 전 시장 당시 14개에서 4배나 늘어난 숫자“라고 지적했다. 

든든한 아군
이제는 견제?

단일화 과정에서 ‘서울시 공동경영’을 이야기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2018년 시민단체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당시 안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서울시청 위의 진짜 서울시청, 서울시청 ‘6층 사람들’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라며 ”시장실이 있는 서울시청 6층에는 30~40명으로 구성된 시장비서실, 외부자문관 명목의 온갖 외부 친위부대가 포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시민단체 출신 공무원이 시민단체 출신 민간업자에게 일감과 예산을 몰아주는 6층 라인, 그것이 서울시 부패의 ‘파이프라인’이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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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