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전’을 강조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이 대통령이 1·19 개각을 전격 단행하는 과정에서 헌신짝 인사들을 청와대로 다시 불러들여, 취임 초기의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 성향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여권에서는 ‘정치인 입각설’과 용산 참사로 인한 ‘김석기 사퇴론’을 거듭 주장했지만, 이 대통령은 이들의 주장을 묵살(?)했다. 게다가 박근혜 전 대표와의 갈등도 여전하다. 결국 ‘일방통행식’ 역주행은 계속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최근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용산 참사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로 진입한 것. 이는 ‘보수세력 대결집’으로 인한 상대적 지지율 반등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까닭에 경제 살리기의 일환인 ‘MB법안’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일방통행식’ 역주행을 계속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금씩 지지율을 회복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위기에 내몰린 이명박 정부. 과연 이 대통령은 어떤 방식을 통해 위기를 헤쳐나갈까.
이명박 대통령에게 2009년은 매우 중요한 시기다.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 놓여 있어서다. ‘올해에 모든 승부수를 띄워야 된다’는 말처럼 이 대통령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의 리더십은 어떠할까. 흔히들 위기에 강하다고 말한다. 이른바 ‘위기의 사나이’라고 불릴 정도로 현대건설 사장-서울시장-대권후보-대통령으로서 걸어온 길은 말 그대로 위기를 기회로 삼는 ‘인생 대역전극’이었다.
이를 대변하듯 이 대통령의 삶을 담은 <신화는 없다>라는 자서전은 “소중한 것을 먼저하기 위해 뒤로 미루거나 정중히 거절하는 용기와 자신의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주장하는 용기가 있었다”, “나를 가로막던 위기와 도전 앞에서 우회하지 않고 정면에서 돌파했다”, “당당하라, 직시하라 정면 돌파 없이는 이길 수 없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 대통령의 삶 자체는 말 그대로 ‘정면돌파’라는 얘기다.
실제 이 대통령의 신화는 거침이 없었다. 현대건설 사장 시절 현대조선이 대형 유조선 3척을 해외 해운업체로부터 수주했지만, 불황이 닥쳐오면서 돌연 계약이 취소됐다. 수주대금을 받았지만, 정주영 당시 그룹회장과의 고심 끝에 “해운사를 하나 만들어 유조선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렇게 설립된 것인 바로 현대상선의 전신인 ‘아세아상선’이다.
서울시장 재임기간도 ‘정면돌파’ 의지는 강했다. 청계천 복원·대중교통체계 개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질론’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지없이 ‘불도저’ 같은 추진력이 발휘됐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이 대통령이 청와대로 갈 수 있었던 ‘징검다리’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용산 참사’, ‘경제위기’, ‘남북관계 경색’, ‘박근혜 전 대표와의 불편한 관계’ 등 어려운 난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정치권 한 관계자는 “1·19개각만 봐도 알 수 있다. 권력사유화 문제로 사퇴했던 박영준 전 대통령실 기획조정비서관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다시 기용하는 것은 ‘일방통행식’ 역주행이기도 하지만 ‘정면돌파’를 하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라며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에 대한 유임설이 나오는 것 역시 이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라고 밝혔다.
실제 박 국무차장은 권력 사유화의 장본인이다. 인수위 시절 이 대통령에게 보고가 올라가기 전에 박 국무차장을 먼저 거쳐야 했을 정도다. 게다가 고위직 공무원들을 수시로 불러모았다는 점에서 인수위에서 활동했던 관계자들로부터 빈축을 샀다는 후문이다. 그런 그가 다시 ‘복귀했다’는 것은 친정체제를 강화를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 김 경찰청장 내정자에 대한 거취 문제도 비슷한 맥락이다. 어청수 전 경찰청장보다 더 강한 ‘공안정국’을 형성할 사람이란 말이 회자될 정도로 ‘법질서’를 확고히 함은 물론 ‘정면돌파’를 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이 내놓은 민심탈환 프로젝트는 무엇일까. 정치권에서는 위기관리 리더십을 계속적으로 발휘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제위기 극복이 바로 그것이다.
이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4대강 정비 등 경제정책에 바짝 고비를 당기고 있다. 이른바 ‘속도전’을 펼치고 있는 것. 속도전의 의지는 이미 곳곳에서 드러났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1·19 개각을 비롯해 ‘국민과의 소통’, ‘MB법안’ 추진 의지가 대표적이다.
실제 이 대통령은 “금년에 승부를 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2009년을 맞이했다. 때문에 이 대통령은 등 돌린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여준 전 의원은 “소통 통합이 민주주의 본질적 가치라고 말했으니 이런 가치를 내면화해서 생활 속에 실천하는 자질 있는 정치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 밖에 다른 수가 없다”며 “국민이 관대해서 혼내면 그걸로 넘어간다.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나가면 한번 야단치고 넘어가지 어쩌겠나. (이 대통령이) 꼼수를 쓰고 넘어가 봐라. 국민이 금방 꼼수라는 걸 알고 정부의 불신이 커진다”고 이 대통령에게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소통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를 위한 첫 신호탄이 바로 지난달 30일 공중파를 통해 방송된 SBS 원탁토론이다. 사실 이 대통령은 지난 1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국정운영 기조를 재검토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미덥지 못했다.
‘인사파동’, ‘촛불정국’ 등이 몰아닥쳤을 때 이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만 할 뿐 변화된 모습은 없었다.실제 지난해 6월19일 “대통령에 당선된 뒤 저는 마음이 급했습니다. 역대 정권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취임 1년 내에 변화와 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보다도 자녀의 건강을 더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세심히 살피지 못했습니다. 저와 정부는 이 점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던 것. 그러나 이 대통령은 또 다시 불도저식 ‘정면돌파’를 선택했고 또 다시 위기를 맞았다.
불도저식 정면돌파 의지 굳건…헌신짝 인사 핵심요직 복귀
용산 참사 등 당·청 갈등 표면화, ‘새로운 모습 보여라!’
따라서 이 대통령은 SBS 원탁토론을 시작으로 ‘정면돌파’ 전략과 동시에 ‘소통정치’를 취할 태세다. 이날 방송에서 이 대통령은 ‘소통정치’를 강화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경제위기론에 직면해 실상을 낱낱이 설명했고, 국민들에게 협조하는 모양새를 취했던 것. 설 이후 뿔난 민심을 되돌아보는 절호의 기회였다는 얘기다.
이뿐만 아니다. 당·청간의 불협화음을 없애기 위해 지난 2월2일 한나라당 중진인사들과 오찬모임을 가졌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정몽준·허태열·공성진·이상득 의원 등 총 2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오찬모임은 1·19 개각에 대한 평가와 2월 임시국회에서 있을 각종 쟁점 법안 처리 등에 대한 당·청간의 논의가 이뤄졌다.
실제 이 대통령은 ‘1 19 개각’에 따른 인사청문회에 대한 당의 협조와 정부의 ‘경제 살리기’ 노력을 설명했고, 미디어 관련법·한미 FTA 비준동의안 등 민생 개혁 법안들의 조속한 처리도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이달곤 의원을 내정함으로써 여권 내의 목소리를 들어줬다. 소통 정치가 서서히 가동된 셈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성난 민심을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당·청 갈등 해소는 물론 박 전 대표와의 끊임없는 충돌을 막아야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사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여전히 화학적 결합이 어렵다. ‘떠 있는 태양’과 ‘뜨는 태양’간의 대립구도와 2010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한바탕 ‘진검승부’가 불가피한 상황. 이 대통령이 외적으로 ‘경제 불황’으로 힘들어한다면 내부적으론 박 전 대표와의 갈등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정면돌파’보다는 통합의 리더십이다. 때문에 박 전 대표와의 갈등이 확산될 소지가 보인다면 ‘속도전’을 과감하게 늦춰서라도 봉합해야 한다. 더 나아가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박 전 대표의 ‘입김’이 바로 대다수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한 친이계 내부의 비판적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여권 내부에서 오래전부터 회자되고 있는 중이다.
안국포럼 출신 김영우 의원은 지난달 28일 “민심을 얻고 우리정부의 성공을 좀 더 장기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속도조절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국정운영에서 최고의 우선순위는 경제위기가 가정파탄, 경제고아 양산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 국가경제와 서민경제를 살리는 일에 당과 정부가 합심하고 야당의 협력을 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즉 이 대통령이 경제 위기론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정면돌파 할 필요성이 있지만, 민심을 잡기 위해서는 여야간의 대화를 통한 ‘소통 정치’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면 이 대통령은 국민과 정부에게 감동을 안긴 적이 거의 없다. 그만큼 위기에 내몰렸다는 것을 반증한다. 지난 1년을 발판 삼아 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줘야 한다. 따라서 이 대통령은 TV 토론과 중진의원간의 오찬회동에서 간접적으로 보여줬던, ‘소통정치’를 계속적으로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즉 이 대통령이 성공한 지도자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경제 위기를 ‘정면돌파’하는 대신 당·청, 국민들과 소통하는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교훈은 실패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이 대통령이 지난 1년 동안 겪었던 위기를 ‘반면교사’ 삼아 뿔난 민심을 되돌리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할 것인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