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부 5년’ 요동치는 재계 서열

1위는 굳건한데…A 그룹 엎치락뒤치락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문재인정부가 어느덧 집권 5년 차를 앞두고 있다. 그 사이 재계 판도에는 많은 변화가 감지됐다. 건실한 성장을 거듭한 곳이 있는 반면 몇몇 기업은 대기업 지위를 상실했다. 변화의 소용돌이는 신축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 현대자동차 사옥 ⓒ현대자동차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5월 ‘상호출자제한집단 및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발표해왔다. 직전년도를 기준으로 자산 5조원이 넘는 대기업집단을 공개하는 것이다. 여기에 포함됐다는 건 ‘대기업’으로 분류됐음을 의미한다. 회사가 양적 성장을 거듭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흥미로운 
판도 변화

상호출자제한집단 지정은 재벌에 의한 시장경쟁 저해를 막기 위해 1987년 첫 도입됐다. 초창기에는 자산총액 4000억원이 기준이었지만, 2002년 2조원, 2009년 5조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상호지급보증 금지 출자 총액 제한, 상호출자 금지 등 규제가 가해진다.

해당 기준은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수정됐다. 2017년 7월11일 자산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 기업집단의 지정을 위한 세부기준이 담긴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데 따른 변화였다.

개정안은 석달 전 공표된 개정 공정거래법의 위임 사항을 규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공시 의무와 사익편취 규제의 적용대상을 기존 자산 10조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집단 외에 자산 5조원 이상의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분류하는 게 핵심이다.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 절차는 기존 상호출자제한집단의 내용을 그대로 사용했다. 자산총액 산정은 직전 사업연도 대차대조표상의 자산총액 합계로 이뤄지며, 금융·보험사는 자본총액과 자본금 중 큰 금액에 따른다. 대신 금융·보험업만을 영위하는 기업집단이나 회생·관리절차가 진행 중인 소속 회사의 자산총액이 전체의 50% 이상인 기업집단 등은 지정대상에서 제외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첫해인 2017년에 상호출자제한집단 및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린 일반기업은 총 57곳. 상호출자제한집단이 31개, 공시대상 기업집단이 26개였다. 

자존심 걸린 물밑 순위 경쟁
M&A·분리 나비효과…‘빅5’ 뒤바뀌나

3년 뒤 이 명단에는 변화가 뒤따랐다. 지난해 4월 기준 상호출자제한집단(34곳)과 공시대상 기업집단(30곳)에는 총 64곳이 포함됐다. 문 대통령 부임 첫 해와 비교하면 상호출자제한집단에 포함된 기업은 3개 늘었고, 공시대상 기업집단은 1개 감소했다.

세부항목을 살펴보면 국내 기업 환경에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으로 분류되던 몇몇 기업은 더 이상 이 명단에서 이름을 찾기 힘들다.

한진중공업은 인천 북항 운영에 대한 지배력 상실에 따른 자산 감소로 지난해 공시대상 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2000년에 자산 기준 재계 순위 11위에 올랐던 한솔은 이후 외형 확대에 소극적인 양상을 나타냈고, 지난해 공시대상 기업집단 명단에서 제외됐다.
 

▲ SK본사 ⓒ고성준 기자

한솔과 한진중공업이 대기업 명단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이들의 공석은 금방 채워졌다. ▲넷마블 ▲유진 ▲애경 ▲다우키움 ▲HMM ▲장금상선 ▲IMM인베스트먼트 ▲KG ▲삼양 등이 빈자리를 대신했다.


넷마블과 유진그룹은 2018년 공시대상으로 지정됐다. 넷마블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되며 2조70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됐고, 유진그룹은 유진저축은행 인수 및 계열사인 유진기업의 실적 개선이 자산 증가에 기여했다.

지난 2019년에는 애경그룹과 다우키움이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애경그룹은 계열사가 상장하고 신사옥을 준공하면서 자산이 증가했고, 다우키움은 사모펀드(PEF)와 특수목적법인(SPC)이 늘어난 데 따른 영향이 컸다.

뜨고 지고
흥망성쇠

올해는 5곳이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신규 지정됐다. HMM은 6조5000억원, 장금상선은 6조4000억원, IMM인베스트먼트는 6조3000억원, KG그룹은 5조3000억원, 삼양그룹은 5조1000억원으로 자산총액이 집계됐다.

HMM은 지난 2019년 적용된 국제회계 기준으로 2018년까지 부채에 포함되지 않았던 운용 리스가 부채로 인식되면서 자산이 늘었다. 여기에 글로벌 해운업계 흐름인 대형화에 맞춰 대형 선박 확보에 나선 것도 부채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장금상선은 지난해 흥아해운의 컨테이너 사업 부문을 인수하면서 자산이 늘었다. 장금상선을 비롯해 계열회사 모두 비상장법인으로 구성돼있다.

KG그룹의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은 지난해 동부제철(현 KG동부제철)을 인수한 영향이 컸다. KG그룹은 2018년 말 기준으로 자산총액 2조2337억원의 중견 그룹이었는데, 2019년 8월 말 동부제철 인수를 완료하면서 자산이 대폭 늘었다. 동부제철의 자산총액은 2019년 말 기준 2조3553억원에 달한다.
 

▲ LG 본사

삼양그룹은 계열회사의 사채 발행과 당기순이익이 증가하면서 자산이 늘었다. 삼양그룹의 지주회사인 삼양홀딩스의 사채는 지난 2019년 말 기준 6985억원으로, 2018년 말(3441억원)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사모펀드 최초로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지정된 IMM인베스트먼트는 최대주주인 지성배 대표가 IMM인베스트먼트 지분 76%를 확보한 유한회사 IMM의 지분 42.8%를 보유하고 있는 점이 감안돼 공시 대상에 포함됐다. 공정위는 지 대표가 IMM 지분을 통해 IMM인베스트먼트의 79개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치열한
자리 싸움

지난해 인수합병·계열분리 등 굵직한 이슈가 이어진 만큼 올해 재계 순위는 어느 때보다 요동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상호출자제한집단으로 분류된 최상위권 집단에서의 순위 변동이 관심의 대상이다.

지난해 상호출자제한집단 및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보면 삼성전자가 자산총액 424조원으로 1위를 차지한 가운데 현대자동차그룹과 SK그룹이 그 뒤를 잇고 있다.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의 자산총액은 234조원이고, SK그룹은 225조원이다. 두 기업의 자산총액 차이가 10조원을 넘지 않는 상황에서 SK가 인텔의 낸드 사업부를 10조원에 인수하면서 격차는 한층 좁혀지게 됐다.


SK그룹이 인수합병에 적극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연내 순위 역전 가능성은 충분하다. 실제로 지난 2019년, 111개였던 SK그룹 내 소속 회사 수는 지난해 125개로 늘었다. 같은 기간 현대자동차그룹은 53개에서 54개로 제자리걸음 수준이었다. 

‘재계 빅5’의 나머지 구성원인 LG그룹과 롯데그룹의 순위 변동 가능성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지난해 상호출자제한집단 및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보면 LG그룹과 롯데그룹의 자산총액은 각각 137조원, 121조원으로 15조원 이상 격차를 보인다.
 

▲ 농심 본사 ⓒ농심

다만 LG그룹의 계열분리가 변수다. LG그룹은 지난달 24일 LG상사와 LG하우시스의 계열분리를 공식화했다. 두 회사의 자산총액 합계는 약 8조원이고, 계열분리가 완료되면 LG그룹은 약 10조원가량의 자산총액 감소가 불가피하다. 계열분리 세부 내역과 롯데그룹의 자산총액 상승 여부에 따라 순위 자리바꿈이 연출될 수 있는 셈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약진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해 기준 자산총액 63조원으로 재계 순위 9위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완료하면 순위가 오를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의 2020년 기준 자산총액은 12조원으로, 두 기업이 합치면 한화의 자산총액 72조원을 뛰어넘게 된다.

M&A·분리 나비효과
‘빅5’ 순서 뒤바뀌나

이 경우 재계 순위는 2계단 뛰어오른 7위에 위치하게 된다. 여기에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작업까지 연내 마무리되면 자산총액 규모는 더욱 불어난다. 


지난해 기준 재계 14위 한진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의 향방에 따라 현재 11위인 신세계그룹을 넘어설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자산총액은 13조원 규모로 파악되고 있으며, 한진그룹과 신세계그룹의 자산총액은 각각 33조원, 41조원이다.

반면 재계 순위 하락이나 대기업 지정 제외가 불가피한 집단도 눈에 띈다.

지난해 기준 자산총액 29조원으로 재계 순위 15위인 두산그룹은 재무구조 개선 계획이 마무리되면 순위가 하락할 전망이다. 수년 전부터 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두산그룹은 지난해 ‘3조원 자구안’ 마련을 위해 계열사와 자산을 매각해왔고, 이로 인해 자산총액이 9조원 가까이 감소할 것으로 점쳐진다.
 

▲ ⓒ두산그룹

이로 인해 두산그룹의 자산총액이 21조원으로 감소하면, 재계 순위는 2계단 하락한 17위권에 해당한다. 지난해 기준 17위는 부영그룹(23조원)이고, 대림그룹(18조원)이 18위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자산총액 17조원으로 재계 순위 20위에 위치했던 금호아시아나는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속도에 따라 올해부터 대기업 명단에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의 자산총액이 그룹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아시아나항공 및 산하 자회사까지 일괄 매각될 경우 그룹의 자산은 3조원대로 줄어든다. 

이 경우 상호출자제한집단은 물론이고, 공시대상 기업집단에서도 제외된다. 사업적인 부분에서는 그룹 명칭도 바꿔야 한다. 건설회사인 금호산업과 운수업체인 금호고속 정도만 남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대기업 사이에서의 순위 변동도 흥미롭지만, 새롭게 대기업 편입을 앞둔 집단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농심그룹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변화의 
소용돌이

올해부터 공시대상 기업집단 신규 지정이 확실시 되는 농심그룹은 농심홀딩스를 지배회사로 상장사 3개, 비상장사 15개, 해외법인 15개 총 33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농심그룹 상장사 3개 자산 총액만 4조7000억원 수준이다. 여기에 메가마트, 태경농산, 농심엔지니어링, 엔디에스, 농심미분 등 비상장 계열사 15개까지 합치면 5조원을 훌쩍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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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