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35·36) 콩잎, 토란

가난한 이들의 식재료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식재료 이력서>엔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이 담겨 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콩잎 ⓒpixabay

콩잎

필자가 어렸던 시절엔 지금처럼 음식이 다양하지 못했다.

물론 그 양도 극히 제한돼있어 일부 어린이는 자주 굶주림에 처하곤 했다. 당시에는 서리가 빈번했다.

서리는 말 그대로 떼를 지어 남의 과일이나 곡식 혹은 가축 따위를 훔쳐 먹는 장난이다.

이 장난이 요즈음에는 절도로 둔갑됐지만 필자도 어린 시절엔 이 장난에 자주 참여했었다.


그 중에서도 콩서리에 참여했던 일은 아직도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당시에는 콩밭이 따로 있지 않고 논두렁이나 밭두렁에 콩을 심고는 했다.

그래서 콩서리는 다른 서리보다 쉬웠고 그런 이유로 또래 친구 여러 명과 자주 콩서리를 하고는 했다. 

그렇다고 아무런 계획 없이 서리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본격적인 서리에 앞서 몸이 빠른 측과 굼뜬 측의 두 파트로 조를 편성했다.

몸이 빠른 아이들이 행동대원으로 두렁을 어슬렁거리다 주변에 인기척이 없으면 콩을 통째 뽑아 들고 근처에 있는 야산으로 내달린다.

이어 굼뜬 아이들로 편성된 다른 조는 불을 피우고 기다리고 있다가 콩을 받아 되는 대로 굽기 시작한다.


콩껍질이 시커메지면 콩이 익었다 판단하고 모두 둘러 앉아 허겁지겁 먹어 치운다.

그 고소한 맛에 이끌려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는 일도 잊어버린다.

그리고 모든 작업이 끝나면 포만감과 또 상대 어린이의 시커멓게 변한 얼굴을 살피며 파안대소한다.

그리고는 인근에 있는 시냇가로 달려가 대충 얼굴을 씻고는 시치미를 떼고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하며 가끔 미소 짓고는 하는데, 앞서 깻잎을 이야기했을 때 밝혔듯이 아무리 기억을 짜내어 보아도 콩잎을 반찬으로 먹었던 경험은 없다.

콩만 식용하고 콩잎은 그저 가축 사료로 활용하고는 했다.

하여 여든을 넘어선 누나에게 내 기억에 대한 사실 확인에 나서자 누나 역시 콩잎을 식용했던 기억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첨언했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콩잎을 반찬으로 식용했어”라고 말이다. 아울러 지역마다 식습관이 다른 점에 대한 설명 역시 이어졌다. 

누나의 말을 새겨 듣고 콩잎을 조사하는 중에 콩잎이 곤궁한 삶을 이어가던 사람들에게 오래전부터 식용됐음을 알게 됐다.

아울러 그들을 가리켜 곽식자(藿食者, 콩잎을 먹고 자란다는 뜻으로 가난한 백성을 가리키는 말)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정약용의 작품 중 한 구절을 인용해 본다. 


古來藿食少深憂(고래곽식소심우) 
예로부터 콩잎 먹는 자는 깊은 근심 적다네

상기 글은 정약용이 중국의 고사를 인용한 것인데,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나라에 가난한 백성이 군주인 헌공(晉獻公)에게 나라 다스리는 계책 듣기를 요청하자, 헌공이 “고기 먹는 자가 이미 다 염려하고 있는데, 콩잎 먹는 자가 정사에 참견할 것이 뭐 있느냐.”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가혹하게 들리는 이 말은 가난한 백성은 정사에 관여하지 말고 그저 먹고 사는 데 신경 쓰라는 의미다. 

여하튼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나타난다.

콩잎을 의미하는 藿(곽)이란 글자다.

다른 여타의 잎은 채소의 이름에 잎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엽(葉)을 사용하는데 콩잎은 콩잎을 의미하는 두엽(豆葉)외에도 풀을 의미하는 초(艸→艹)와 빠르다는 의미를 지닌 곽(霍)을 합성한 독립된 글자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콩잎이 오래전부터 인간과 가까운 관계 즉 식용되었음을 입증하는 단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허균의 성소부부고를 살피면 ‘음식은 양약(良藥)이니 몸이 파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먹어야 한다’며 콩잎을 오소(五蔬, 아욱·콩잎·염교·파·부추)에 포함시켰다.

이는 콩잎이 사람에게 상당히 유용한 채소라는 의미다.

농촌진흥청은 콩 종자에는 이소플라본과 사포닌만 존재하는데 반해 콩잎에는 '이소플라본'을 비롯 '플라보놀' '소야사포닌' 등 16종의 건강 기능성 생리활성 물질이 함유돼 있다고 밝혔다.

이소플라본은 주로 콩과 식물에만 함유돼있으며 유방암과 전립선암, 골다공증, 심장병 등 성인병 예방에 효과적이며 특히 이번에 콩잎에 함유된 것으로 확인된 '테로카판'은 혈액 산화작용을 억제해 성인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동맥경화증 예방에 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소야사포닌은 인삼 사포닌과 유사한 성분으로 항암과 항고지혈증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을 진즉에 알았다면 콩서리할 당시 콩뿐만 아니라 콩잎까지 먹어치웠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로부터 콩잎 먹는 자는 깊은 근심이 적다”
올빼미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의 토란

토란

지금도 어린 시절 추석이 되면 항상 차례상에 오르던 토란국, 토란탕을 떠올리게 된다.

처음에는 먹음직스러워 젓가락을 놀려보았지만 입에 들어가면 그저 그렇고 해서 이후에는 토란국을 멀리하고는 했었다.

그런데 묘한 일이다.

세월 지나면 입맛도 바뀐다고 했듯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토란 맛에 이끌리게 됐다.

마냥 텁텁하게만 느껴졌었던 그 맛이 고소한 맛으로 바뀌어 이제는 자주 토란국을 접하고는 한다.   

그 토란이 서거정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는지 그의 작품을 감상해보자.

芋(우)
토란

病口曾無可(병구증무가) 
일찍이 병중에 입에 맞는 게 없는데
蹲鴟早策勳(준치조책훈) 
토란은 일찌감치 내게 은택 주었네 
龍涎香欲動(용연향욕동)
용연의 향기가 움직이는 듯
牛乳滑堪論(우유활감론)
우유의 매끄러움 논할만하네
啖擬山僧共(담의산승공)
먹을 때 산승과 함께 헤아리고
來從野客分(래종야객분)
찾아온 손님에게 나누어 주네
殷勤誰種汝(은근수종여)
누가 은근하게 너를 심겠는가
我亦望田園(아역망전원)
나 역시 전원 바라보리

蹲鴟(준치)는 토란의 별칭이다. 토란이 올빼미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山僧(산승)은 중국 당(唐) 나라 때 고승인 나잔 선사로 그가 토란을 구워 먹은 고사에서 온 말이다. 
 

▲ 토란 ⓒpixabay

법명은 명찬 선사(明瓚禪師)인데 성격이 게을러서 남이 먹다 남긴 음식만 먹었으므로 나잔(懶殘)이라 호칭했는데, 이필(李泌)이 일찍이 형악사에서 글을 읽을 때 나잔 선사를 몹시 기이하게 여겨 한 번은 밤중에 방문했더니, 그때 마침 나잔 선사가 화롯불을 뒤적여서 토란을 굽고 있다가 이필에게 구운 토란 반 조각을 주면서 이르기를 “여러 말 할 것 없다. 10년 재상을 취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여하튼 토란의 한자명을 芋라 이르는데 이 글을 집필하기 전까지는 토란의 한자명이 土卵으로 알고 있었다.

물론 토란 역시 맞는 말이지만 과거에는 土卵이란 이름 대신 주로 芋라 지칭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기며 조사하는 중에 박지원의 연암집에서 芋에 대해 ‘俗所謂土卵’이란 기록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 토란은 세속에서 이르는 이름이라는 의미다.

또 홍만선의 산림경제에는 或稱土芝。鄕名土蓮(혹칭토지. 향명토련)이라 기록되어 있다.

토지(흙에서 나는 영지)라 칭하기도 하고 시골 이름은 연을 닮았다는 뜻에서 토련(土蓮)이라고도 한다는 이야기다.

이 대목에서 다시 이응희 작품 芋(우, 토란)을 감상해보자.

種芋盈長圃(종우영장포) 
긴 채마밭에 토란 가득 심으니
秋來息且蕃(추래식차번) 
가을 오자 무성하게 자라났네
紫莖含露茁(자경함로줄) 
자줏빛 줄기 이슬 머금고 자라며
靑葉向風飜(청엽향풍번) 
푸른 입은 바람 향해 펄럭이네
抱玉傍多子(포옥방다자) 
옥 품은 듯 구근 많이 달렸고
懷蒼碩本根(회창석본근) 
푸른 빛 속에 줄기 굵다네
俗名稱毋立(속명칭무립) 
속명으로 무립이라 부르니
端合老翁飧(단합노옹손) 
늙은이 저녁밥으로 제격이네 

이응희에 의하면 토란이 저녁밥을 대신한다고 했다.

또 증류본초에서도 우(芋)를 삶아 먹으면 양식으로 대용할 수 있어 흉년을 넘길 수 있다고 기록돼있다.

이를 감안하면 토란 역시 과거에는 구황작물로 각광받았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장유의 토란 저장 법(藏芋, 장우)을 감상해보자.

蹲鴟宜沃野(준치의옥야)
토란은 비옥한 들에 적격이고
荒歲可代穀(황세가대곡)
흉년 시 곡식 대용 가능하네
我圃最重此(아포최중차)
내 채마밭에 토란 가장 중하니
頗費抱甕力(파비포옹력)
물 길어 대는 일 매우 힘들었네
秋魁動徑尺(추괴동경척)
가을 되면 큰 놈은 지름이 한 치나 되고
一區收一斛(일구수일곡)
한 구역에서 열 말 거둔다네
深窖藏不爛(심교장불난)
깊은 움에 저장하면 문드러지지 않고
地爐煨易熟(지로외이숙)
땅 화로의 재는 쉽게 익게하네
留作歲暮計(유작세모계)
한 해 동안 지속해서 먹으리니
道人生事足(도인생사족)
도인의 살림 살이로 족하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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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