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네 번째 ‘유리상자’ 곽이랑

삶과 죽음에 대한 일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봉산문화회관에서 기획한 ‘유리상자-아트스타 2020’ 전시는 작가들의 동시대 예술에 대한 낯선 태도에 주목한다. 올해 전시공모 주제인 ‘헬로우! 1974’는 우리 시대 예술가들의 실험정신과 열정에 대한 기억, 공감을 비롯해 도시와 공공성에 주목하는 예술가의 태도를 지지한다는 의미에서 선정됐다. 그 네 번째 전시로 곽이랑 작가의 ‘위로의식’이 열린다. 
 

▲ 봉산-유리상자 ⓒ곽이랑

곽이랑의 개인전 ‘위로의식’은 삶과 죽음을 주제로 다루고 있지만 마냥 무겁게 다가오진 않는다. 곽이랑은 20대에 암 진단을 받아 항암치료로 시간을 보냈다. 30대 초반이 된 최근에는 원격 전이 판정을 받고 병원을 오가는 힘든 과정을 겪고 있다. 

누구나 알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속시원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곽이랑은 오랫동안 죽음을 직시하고 대면하는 삶을 살아오면서 삶과 죽음의 문턱 너머 세상을 설계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스스로의 위로는 작품의 개념이 됐고, 삶을 바라보는 의식은 작품을 마주보는 태도로 자리 잡았다. 

유리상자 안에 높낮이가 다른 4개의 병원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일반적으로 유리상자 안에 작품을 설치할 때에는 외부의 빛이나 내부의 조명에 의해 가시성을 살리는 방법을 취한다. 하지만 곽이랑은 작품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도록 설치했다. 관람을 위해서는 몸을 움직이고 시선을 좌우로 돌려야 하는 불편함을 안긴다. 

20대에 암 진단 받아
30대 때 전이 투병 중 


타인의 삶을 엿보는 듯한 이런 행위를 통해 병원 커튼 안에 작가의 속살인 작품이 감춰져있는 셈이다. 병원 커튼에는 ‘충분한 분유와 약 한 가득과 한 줌의 뼛가루’라는 문구가 희미하게 적혀있다. 충분한 분유는 삶의 시작이고 약 한 가득은 삶의 영위이며 한 줌의 뼛가루는 죽음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커튼 사이로 무덤 혹은 여자의 유방을 형상하는, 크기가 다른 라탄줄기로 엮은 바구니가 봉긋이 자리 잡고 있다. 마치 해방의 공간, 혹은 미완된 삶의 공간인 듯 듬성듬성하게 엮여 뒤집힌 바구니 안에는 현무암과 검은 가루가 자리하고 있다. 현무암은 곽이랑에게서 적출된 암덩어리를 은유한다. 

조동오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는 “곽이랑은 생과 사의 경계에 대한 자유, 경계선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는 믿음, 자신의 불행을 창작활동으로 승화하는 과정에서 힘들고 예민했던 감정들을 추슬렀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절박한 만큼 작업에 집중했고 이는 성찰로 나아가는 과정이 되면서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곽이랑은 “사실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이다. 겪어보지 못한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일일 것”이라면서 “투병생활을 시작한 뒤로 죽음은 줄곧 내 주변을 맴도는 것 같았고 그것에 대한 의문은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 봉산-유리상자 ⓒ곽이랑

그는 우연찮게 ‘열역학 제1법칙’이라는 이론을 발견했다고 했다. 에너지는 형태가 변할 수 있을 뿐 새로 만들어지거나 없어질 수 없다. 즉 우주 에너지의 총량은 시간이 시작된 때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일정하게 고정돼있다고 설명되는 에너지 보존법칙이다. 언뜻 난해해 보이는 이 개념을 작가는 ‘언젠가 우리가 죽더라도 그것은 소멸이 아닌 다른 형태로써 우주의 일부가 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불행 속에서 새로운 희망
관람객에 삶의 방식 전해

곽이랑은 “이런 일련의 상황과 생각들은 내 작업을 지탱하는 에너지가 됐다. 적출당한 그 덩어리들과의 미련 가득한 이별을 정리하는 위로 의식이 필요했고, 우리의 죽음은 소멸이 아닌 다른 형태로 변화해 순환한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박소영 전시기획자는 “곽이랑의 내러티브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각색 없이 은유적으로 풀어낸다”며 “삶의 불행을 겪으면서도 절망이 아닌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간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동시에 감성적으로 우리와 교감하고 소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무도 모른다

봉산문화회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의 일기”라며 “삶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나열한 전시로, 관람객들에게 공감의 손길을 내밀며 우리가 삶을 대하는 방식을 한 번 더 주의 깊게 살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전시는 다음달 27일까지.
 

<jsjang@ilyosisa.co.kr>
 

[곽이랑은?]

▲학력
영남대학교 디자인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Die Universitat fur angewandte Kunst Wien TransArts Master
영남대학교 일반대학원 트랜스아트학과 재학

▲개인전
‘유리상자-아트스타 ver.4’ 봉산문화회관(2020)
‘일상적 해프닝’ 미디어극장 아이공(2019)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 대구예술발전소(2016)
‘꿈의 공장’ 대구미술광장(2014)

▲수상
‘창작경연 ; 작가대전’ Top4 선정(2015) 
‘소통에 대한 UCC공모전’ 1등(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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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