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연임 논란 시끄러운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8.20 11: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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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6개월은 '인권위'라 쓰고 '반인권위'라 읽어야…"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결국 재임명됐다. 자질논란과 함께 연임 반대 여론이 거셌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는 막을 도리가 없었다. 현 위원장은 6명이 사망한 용산참사를 두고 "독재라고 해도 좋습니다"라는 기막힌 망언을 남겼다. 그런 그가 3년을 더 인권위원회 수장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연임이 확정되자 인권위 내부는 '멘붕'에 빠졌고 야당, 시민단체, 학계, 종교계, 언론계에 누리꾼들까지 '사방팔방'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

 

지난 13일 이명박 대통령은 자질 논란, 논문 표절 논란, 부동산 투기 의혹,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 등에 휩싸인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내정자의 임명을 재가했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전 "이 대통령이 오늘 자로 현 위원장의 임명을 재가했다"면서 "그동안 제기된 문제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 이어 박 대변인은 정치권에서 현 위원장의 임명을 반대하고 있는 데 대해 "일부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고, 제기된 의혹이라도 업무수행에 큰 차질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현 위원장의 임명을 재가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명박 대통령
현병철 연임 강행

전남 영암 출신인 현 위원장은 원광대와 성균관대에서 민법을 전공한 뒤 1976년부터 35년여간 한양대에서 주요 보직을 맡아왔다. 그가 학계에서 활동하는 동안 발표한 '단체협약에 관한 고찰' '부당이득법의 연구'(1991) 등 석·박사 학위 논문은 물론 이후 발표한 크고 작은 논문들은 대부분이 부당이득과 불법원인급여 등 민법 관련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2009년 내정 당시 시민단체 일각에선 현 위원장은 인권 관련 논문이나 글, 사회활동 등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정부가 행정능력을 우선으로 위원장을 고른 뒤 인권위를 행정기관 중 하나로 대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쏟아냈다.


이에 당시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은 "현 내정자는 대학장, 학회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균형감각과 합리적 조직관리 능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3년이 지나 또 다시 현 위원장의 연임 재가 소식에 인권위원회 구성원 및 시민단체, 학계, 법조계 그리고 민주통합당과 야권 대선후보들은 즉각 성명서를 내며 '현병철 연임 반대'를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이날 민주통합당 소속 인사청문위원들은 성명서에서 "현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통해 최악의 부적격자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업무수행에 큰 차질이 없다는 청와대는 어느 나라 청와대인가"라며 "인권위 수장으로서 근원적 결격사유를 가진 자가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업무는 정권 눈치 보기다"라고 밝혔다.

현병철 연임에 인권위원회 노조 '멘붕'
침묵으로 일관하는 박근혜 속마음은?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대선경선후보들도 대변인을 통해 현 위원장의 연임 결정을 일제히 비판했다. 진선미 문재인 캠프 대변인은 "현병철은 학자적 양심은 물론이고, 용산참사와 <PD수첩> 사건을 등에서의 발언을 보면 근본적 결격사유를 갖고 있는 반인권위원장"이라며 "지금이라도 이명박 대통령은 현 위원장 임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유정 손학규 캠프 대변인은 "이명박 대통령 인사스타일에 유일한 일관성이 있다면 그것은 국민의 뜻과는 완전하게 거꾸로 간다는 것"이라며 "모두가 'NO'라고 외칠 때 혼자만 'YES'라고 고집피우는 MB 스타일 인사가, 결국 정권몰락의 가속페달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현희 김두관 캠프 대변인도 "대통령의 독도 깜짝 방문과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현 위원장에 대한 인사를 강행한 것은 여론을 오도하고, 국민과의 소통을 단절하겠다는 오만한 인식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임명철회를 요구했다.

심지어 홍일표 새누리당 대변인도 당일 브리핑에서 "우리 당은 그동안 이 문제와 관련해 정치권과 시중 여론을 충분히 수렴할 것을 권했다"며 "청와대의 고심은 이해하지만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아들 병역비리 의혹 등이 제기돼 새누리당 내에서도 '부적격' 목소리가 높은 기색이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 측만큼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가장 크게 반발하고 있는 인권위원회 노조는 성명서에서 "올림픽의 환호와 독도 방문 이벤트 뒤에 이어진 현 위원장 연임 소식은 인권위 직원들을 절망 상태로 몰아넣었다"며 "인권을 끊임없이 무시해온 현 위원장 체제에서 다시 3년을 보낼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다"고 개탄했다.


'국가인권위바로세우기전국긴급행동' 등 시민단체들도 성명서를 내고 "현병철의 연임은 인권위원회 죽이기 선언"이라며 "이 정권의 반인권 작태와 치부, 부도덕을 은폐하고 청와대 말만 잘 듣는 애완견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법학교수·변호사 단체들도 현 위원장의 연임 반대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들 단체는 공동선언문에서 "현 위원장은 인권이라는 보편적이고 소중한 가치를 짓밟힌 국민들의 고통 어린 절규를 침묵으로 방관했고 인권위를 국제사회의 조롱거리로 만들었다"며 "그는 연임은커녕 인권위를 후퇴시킨 데 대한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진보매체를 중심으로 언론들도 '현병철 위원장 자질논란과 연임반대'를 다룬 사설과 시론을 연일 실으며 이명박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문재인·손학규·김두관
"현병철은 안 돼"

그렇다면 현 위원장은 지금까지 도대체 어떤 행보를 걸어왔기에 이다지도 거센 후폭풍이 부는 걸까?

먼저 표절 의혹이다. 지난달 12일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은 "현 위원장이 교수로 재직한 35년 동안 발표한 17편의 학술 논문 가운데 최소 7편에서 표절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진 의원은 "현병철 후보자는 논문의 주요 아이디어와 특정구절만 따오는 수준이 아니라, 타인과 자신의 논문을 붙여넣기 수준으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아 표절에 대한 경각심이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논문 표절 방법도 다양하다"며 "타인의 논문을 편집해 자신의 논문으로 둔갑시키는 '논문 훔치기', 같은 논문을 다시 게재하는 '논문 우려먹기', 두 개의 논문을 편집해 하나의 논문으로 만드는 '논문조립', 학위논문을 두 개의 논문으로 나누어 게재하는 '논문 새끼치기' 등 '표절백화점'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이를 두고 학술단체협의회는 "2008년도 논문이 제자의 석사학위논문을 전체적으로 베끼기 수준의 복사 표절, 무단 인용표절, 짜깁기 수준의 표절, 단순표절 등의 유형이 주를 이루는 매우 심각한 수준의 표절이라고 판단된다"며 현 위원장의 한 논문을 표절로 확정했다.

위장전입 및 부동산 투기 의혹도 제기됐다.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현 위원장이 1983년 서울 동대문의 재개발 예정지구 1평짜리 땅에 전입신고를 한 후 한 달도 안 돼 근처 연립주택을 환지 받았다며, '알박기' 의혹을 제기했다. 심지어 1평짜리 땅은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도랑근처 땅으로 밝혀졌다.

현 위원장 아들의 병역비리 문제도 드러났다. 지난달 13일 박기춘 민주통합당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현 후보의 아들은 19세이던 고교 3학년 때 체중이 100㎏이었으나 1년 후 병무청 신체검사에서는 113㎏으로 불어나 4급 공익근무 판정을 받았다"면서 "검사 당시 체중이 4급 보충역 판정 기준(113㎏)과 정확히 일치해 의도적으로 기준선에 맞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차례 입대를 연기하려는 정황도 포착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현 위원장 아들이 병역 근무지 배정에 특혜가 있었다는 정황이 폭로되기도 했다. 한정애 의원실은 "병무청과 국민연금공단의 자료를 확인한 결과 현 위원장의 장남 현○○이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영본부에 배치될 당시 정원보다 많은 공익근무요원을 배치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 서영교 민주통합당 의원실은 "2009년 7월부터 2012년 6월 현재까지 후보자가 위원장으로 재임한 3년간의 업무추진비 내역을 분석한 결과, 총 1억7000여만원의 전체 사용금액의 중 97%인 1억6500여만원이 '술값과 밥값'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폭로했다. 확인 결과 현 위원장은 업무추진비 사용에 대해 외부인사와 업무협의, 의견수렴 간담회를 위한 용도라고 했지만, 실제 대부분의 사용처는 밥값, 술값으로 나타났고 특히 300여 차례 7200여만원의 업무추진비는 고급 일식집에서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용산참사 재판 안건 내라고 하자
"독재라고 해도 좋습니다" 망언

이에 서 의원은 "3일에 한 번 꼴로 고급일식집을 드나들었는데 현병철은 고급일식 마니아인가"라고 꼬집으면서 "업무를 하지 않는 주말을 제외한다면 이틀에 한 번은 꼬박꼬박 출근도장이라도 찍듯이 일식집 식사를 즐겼다"고 지적했다.


현 위원장이 친일거물의 후손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적도 있다. 지난 2009년 7월 김을동 당시 친박연대 국회의원은 '현 정부의 친일후손 인사, 해도 너무 한다'라는 성명서를 내고 "신임 국가인권위원장에 내정된 인사(현병철)마저 친일거물의 후손이라는 데 대하여 현 정부의 인사정책에 또다시 심각한 우려와 함께 개탄스러운 심경을 표하며, 친일파 후손이 활개 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도 되는 것인지, 현 정부의 역사인식 부재에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현 내정자의 종증조부(증조할아버지의 형제)는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광복회와 함께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에 올라있는 친일경력자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금번 인사는 매우 부적절하다"며 "대통령직속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종증조부의 시가 10억원의 땅 3만2000㎡를 국가에 귀속시키는 등 명백한 반민족 행위가 드러났음에도 그 후손을 국가인권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기고자 하는 것은 현 정부의 역사인식과 국가관을 의심해봐야 하는 무책임한 인사가 아닐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위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은 채 묻혀버렸고 연임이 확정됐다. 무엇보다도 지난 3년 동안 현 위원장에 대해 '인권 감수성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비판이 계속 있어왔다. 이는 늘 논란이 됐던 그의 반인권적 발언에 잘 드러난다.

현 위원장은 2009년 7월 취임할 때부터 인권 관련 경력이 전혀 없어 인권위원장 자격 시비에 휘말렸다. 한양대 법과대학 교수였던 현 위원장은 한양사이버대학장과 한양대 행정대학원장 등 학내 보직을 맡은 게 주요경력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위원장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인지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반인권적 발언을 서슴없이 하기 시작했다. 그는 취임 직후 언론과의 첫 인터뷰에서 "인권위원회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첫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선 "우리나라에 아직도 여성차별이 존재하느냐"고 말해 주위 사람들과 여성계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특히 큰 논란이 불거졌던 사건은 2009년 12월 28일 열린 전원위에서 다수의 인권위원들이 용산참사 사건 재판에 인권위가 의견을 내야 한다며 분위기가 안건 가결 쪽으로 흐르자 그는 회의를 강제로 끝내며 "독재라고 해도 좋습니다"라고 발언해 역사에 길이 남을 망언을 남긴 것이다.

일식집에 출근도장 찍으며 7000여만원 써  
'장군의 손녀' 김을동 "현병철은 친일후손"


같은 해에 열린 22차 전원위 회의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회의에 <PD수첩> 관련 의견제출 안건이 올라왔다.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PD수첩>의 광우병소 관련 보도가 존중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안건에 인권위원 5명이 찬성, 5명이 반대했다. 재적인원 6명이 찬성해야 안건이 채택돼 <PD수첩> 안건 가결 여부는 현 위원장의 판단에 맡겨졌다. 그가 찬성하면 가결, 반대하면 부결이었다. 하지만 현 위원장은 찬성, 반대가 아닌 "이 안건은 부결된 것으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회의를 황급히 끝냈다.

2010년 7월에는 인권위에 인턴으로 온 사법연수생들과 차를 마시다 "우리사회는 다문화사회가 되었어요. '깜둥이'도 같이 살고…"라고 표현해 곤욕을 치렀다. 요즘은 초등학생도 나서서 '살색'이라는 표현이 인종차별적이라며 '살구색'으로 바꿔달라고 청원하는 시대다. 그런데 인권기구 수장이 '깜둥이'라는 표현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쓴 것이다.

엄청난 발언은 또 있다. 바로 이주 외국인 앞에서 민족차별적인 말을 던진 것인데, 2010년 4월 재한몽골학교에 방문해 몽골학생들을 앞에 두고 "야만족이 유럽을 200년이나 지배한 건 대단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몽골학생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해 학교 관계자는 물론 동행했던 인권위 직원들이 적잖이 당황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 '홍대 앞 작은 용산'이라고 불리던 칼국수가게 운영자인 유채림 작가는 "현 위원장은 개발이익을 위한 인권유린에 눈감았다"고 비판했다. 한여름 한국전력공사가 두리반에 대한 전기 공급을 중단했으나 현 위원장은 "불법농성장이기 때문에 인권을 논할 가치가 없다"는 어록을 추가하며 구제요청을 두 번이나 기각했다.

그의 반인권적 발언에 나타나듯이 재임한 3년 동안 인권위 본연의 역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동안 현 위원장은 용산참사, <PD수첩>, 민간인 사찰 등 현 정권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인권문제에 관한 의견 제출을 독단적인 방식으로 묵살했다.

이를 못 참고 인권위를 떠난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현 위원장에 대해 "당시 인권정책과장이던 내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올리지 마라'고 부탁했다"며 "사회적 현안 관련 안건을 보고하러 온 직원에게는 '이거 안 하면 안 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또 "정치적 쟁점이 된 인권문제는 외면하고 생활밀착형 인권문제에만 치중한 것은 국민의 기본권에 눈 감으려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뿐만 아니다. 현 위원장체제 아래에서 점점 인권과는 어울리지 않는 위원들이 인권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최근 선거기간 동안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했던 공직선거법93조 제1항에 대한 헌법재판소 의견 제출을 부결시키고, 야간시위 위헌법률심판 제청에 대한 의견제출도 부결시키며 서서히 효과가 드러나고 있다. 그 외에도 MBC <PD수첩> 사건,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손배사건,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로 문제가 되었던 김종익씨 사건,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와 강제진압,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제주 강정마을에서 벌어진 경찰의 폭력 등 우리 사회를 뒤흔들던 사건들에 대해 '인권'의 최후의 보루라 일컬어지는 인권위원회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차기 정권에서도 임기 수행?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기어이 연임을 강행한 MB정부에 기대를 갖는 것은 헛수고로 보인다. 어찌 됐든 '인권위원회'라 쓰고 '반인권위원회'라 읽는 현 상황은 MB의 남은 임기동안 유지될 것이다. 문제는 차기 정권이 탄생했을 때 현 위원장이 3년이라는 국가인권위원장 임기를 다 채울 수 있을지 여부다.

한편 현 위원장은 지난 13일 취임사에서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소명의식으로 인권위원장직을 다시 시작한다"며 "인권위의 임무와 역할을 흔들림 없이 수행하고 인권이 우리 생활 속에 더욱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변함없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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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