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주교도소 7사의 비밀 ①살 떨리는 증언들

손발 묶고…때리고…밥도 개처럼 먹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김정수 기자 = 누군가에겐 공포의 장소였고, 누군가에겐 치가 떨리는 기억의 현장이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괴물 양산소’라 했다. 20여년 동안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그럼에도 전주교도소에 수감됐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곳. 그들은 그곳을 ‘7사’라 부른다.
 

▲ 전주교도소 ⓒ고성준 기자

교도소의 존재 이유는 ‘단절’과 ‘교화’다.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재사회화하는 일을 담당한다. 하지만 국내 교도소의 기능은 교화보다 단절에 방점을 찍고 있다. 높은 담으로 인한 물리적 단절과 재소자에 대한 혐오로 생긴 심리적 거리감은 아이러니하게도 교도소를 성역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공포의 방

요새화된 교도소는 외부의 감시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됐다. 재소자들의 목소리는 교도소 담장을 넘지 못했다. ‘재소자에게는 그래도 된다’는 사회적 인식은 교도소서 일어나는 부조리를 눈감아줬다. 그 결과 교도소는 재소자를 더 악랄한 범죄자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곳으로 전락했다. 

‘재소자를 악에 받치게 만든다’는 7사는 전주교도소 내 또 다른 사각지대다.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에 있는 전주교도소는 광주지방교정청 산하 교정시설로, 형이 확정된 기결수와 미결수를 동시에 수용 관리하고 있다. 

미결수와 기결수는 1∼6사동에 나눠 수감된다. 전주는 여전히 폭력 조직의 위세가 상당하고 그로 인한 조직범죄가 많아, 전주교도소에서는 조직에 따라 사동을 나눠 재소자를 수감하기도 한다. 별칭으로 월드컵 사동과 나이트 사동으로 불린다. 이 외에 아픈 재소자들을 수용하는 병사동이 있다. 


7사는 일반사동에 속하지 않는 특별사동으로 보호실, 진정실 등으로 알려져 있다. 재소자가 자해를 하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 진정과 보호를 목적으로 잠시 수감하는 곳이다. 일반사동과 달리 재소자들이 항시 기거하진 않는다. 취사장 앞에 자리하며 기결수 사동과 가깝다. 

지난해 말 자신을 전주교도소 재소자라고 밝힌 표두형이 <일요시사>로 편지를 보냈다. 올해 3월까지 5개월여에 걸쳐 날아든 편지서 눈길을 끈 대목은 전주교도소 7사에 대한 언급이었다. 그는 아내를 통해 언론사, 교정본부, 법무부, 대검찰청,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전주교도소서 겪은 일과 7사에 대한 두려움을 담은 편지를 수십통 보냈다.

“7사라는 데 들어가면 죽어서 나와” “여기 7사라는 곳이 있어. 거기 들어가면 고문당하는 거야” “CRPT(기동순찰팀)가 날 건들고 꼬틀이(꼬투리) 잡고 7사에 집어넣으려고 해” “7사라는 곳 가보지는 않았지만 날 묶어 보내려 한다. 서대문 형무소 같이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시설에 수감(수갑) 채워 던져 놓는다” “전주교도소 7사 폐쇄하라고 하세요. 7사는 인간이 갇혀서도 짐승이 갇혀서도 안 되는 공간입니다”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보이지 않는 폭력 들리지 않는 비명
보호실 뒤에 숨은 진짜 모습 공개

전주교도소서 수감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7사에 대한 소문에 빠삭했다. 전주의 스터디카페, 빨래방, 부산의 구치소, 인천의 다방, 영월의 당구장 등에서 만난 전주교도소 ‘출신’들은 서로 일면식도 없으면서 마치 ‘입을 맞춘 듯’ 7사의 악명에 대해 설명했다. 

#. 교도소에 들어가자마자 7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몇몇 형님들이 거기 끌려가면 안 된다고 겁을 줬다. 어느 날 방에 누워 있는데 “살려주세요” “교도관” “주임님”하면서 악쓰는 목소리가 들려 ‘저게 7사서 나는 소리구나’ 생각했다. 운동 시간에 7사에 갔다 왔다는 놈이 바지를 벗었는데, 다리가 피멍으로 새카맸다. 손하고 발을 묶어서 어두운 곳에 던져놓는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관구실에 불려갔다가 CCTV 화면에 잡힌 무슨 덩어리를 봤다. 좁은 방에 사람이 묶인 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교도관에게 물었더니 이불 같은 걸로 가리더라. 수갑을 뒤로 채워놓고 밥 먹을 때도 풀어주질 않아 개처럼 먹는단다. CRPT들이 내게도 ‘7사에 못 보내서 한’ ‘너를 못 묶어서 한’이라고 말하곤 했다.(표두형, 전주 스터디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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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 누워있다 보면 가끔 벽 너머로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소지(사동도우미)로 일하는 동안 3명이 7사로 끌려가는 모습을 봤다. 1명은 원래는 점잖은 분이셨는데 민원실서 깽판을 쳤다. 그분은 끌려갔다가 금방 나왔다. 교도관들에게 빌었다고 하더라. 1명은 CRPT하고 갈등이 생겼는데 순식간에 4명이 달라붙어서 넘어뜨렸다.

또 1명은 오우창이라고 좀 바보다. 좀 모자랐다. 얘는 조금만 떠들어도 CRPT들이 ‘7사에 보내버린다’고 윽박질렀다. 7사에 끌려갈 때는 뭘 모르니까 그냥 얌전히 걸어갔다. 갔다 오고 나면 ‘7사 안 가고 싶다’ ‘못가겠다’며 부들부들 떨었다. 우창이 부모님이 전주 남부시장서 장사를 한다. ‘내 아들이지만 전화 못하게 해주시고 잘 관리 부탁드립니다’ 하고는 영치금만 넣어주고 한 번도 찾아오질 않았다. 

어느 날에는 한 지적장애인이 다른 사람하고 싸움이 붙었다. 진짜 치고 박고 싸운 건데, 둘 중 좀 모자란 사람만 7사에 끌려갔다. 나머지 사람은 매주 찾아오는 접견인도 있었고, 영치금도 빵빵했다. 끌려간 애는 뭐 아무것도 없었고.(송재환, 전주 빨래방)

재소자들은
다 아는 곳

#. 밤에 고함소리가 들려 뭐냐고 물으면 형님들이 7사로부터 나는 소리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멀쩡한 사람이 7사에 갔다 오면 반병신이 되거나 이상해져서 나온다고들 하더라. 어릴 때 소년원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는 문제를 일으키는 애들에게 구속복을 입혔다. 아마 그 구속복이 전국 교도소에 보급된 걸로 안다. 

그런데 7사에선 구속복을 안 입히고 뒷수갑을 채워 포승으로 묶는다고 했다. 독방도 사고를 치거나 규율을 어기면 가는 곳이라 크게 보면 같은 맥락이지만 하는 짓거리를 보면 7사는 좀 심하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될 일을 CRPT들이 크게 만드는 식? 

그래도 7사 이야기가 바깥으로 알려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교도소는 접견인이 민원을 넣는 것에 굉장히 신경 쓴다. 그런데 연고지도 없고 면회도 안 오고 영치금도 별로 없다? (무슨 짓을 해도) 소문이 안나니 얼마나 좋겠나.(신두호, 전주 빨래방)

#. 7사에 끌려간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면서 가족이 저 사실을 알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까 생각했다.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아들이고, 남편일 텐데 그런 취급을 받고 있는 걸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사슬로 손을 뒤로 묶고, 발을 묶은 뒤 다시 둘을 연결해 사람 몸을 활처럼 만든다고 했다. 그 상태로 있다 보면 사람이 말 그대로 미쳐버린다. 소리를 안지를 수가 없는 상황이 된다.(전철환, 인천 다방)

#. 2000년, 2003년에 전주교도소로 이감됐다. 취사장 앞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7사가 있었다. 우리끼리는 ‘먹방’이라고도 불렀다. 빛이 잘 들지 않고 어두워서, 또 그 안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못 한다고 해서. 벽은 자해를 하지 못하도록 스티로폼 같은 푹신한 재질로 덧대놨다. 그런 방에 갇히면 손에는 수갑을, 발에는 족쇄를, 머리에는 헤드기어 같은 걸 채우고 씌운다. 3종 세트라는 말을 쓸 거다, 요즘엔.(강기동, 영월 당구장)

전주교도소 출신들은 7사에 대해 ▲자해를 하거나 난동을 피우는 재소자를 끌고 간다 ▲빛이 없는 좁은 방에 가둔다 ▲수갑을 뒤로 채운다 ▲3종 세트(수갑, 족쇄, 헤드기어)를 착용시킨다 ▲곡소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지적능력이 떨어지거나 접견인이 없는 재소자가 일반 재소자에 비해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식사 시간이나 용변이 급해도 풀어주지 않는다 등을 공통적으로 언급했다. 

고함 소리
3종 세트

소문의 실체는 2017년 교도관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며 전주교도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재소자와 그의 어머니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재소자 박성철은 CRPT가 “니 어미를 생각하라”는 등 어머니를 언급한 말에 화가 나 창틀 사이로 그의 눈을 찔렀고, 그러자 CRPT 4명이 방으로 한꺼번에 들이닥쳐 머리를 바닥에 찧고 발로 옆구리를 때렸다고 주장했다. 


박성철은 2017년 11월 전주교도소 CRPT들을 독직폭행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그는 고소 이후에도 CRPT들이 자신을 주먹과 무릎으로 때리고 2주 넘게 수갑을 세게 조이는 등 보복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CRPT들은 오히려 박성철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맞고소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진술 조서 등에 따르면 박성철은 CRPT들과 충돌한 이후 7사에 수감됐다. 그는 “교도관 폭행에 대해 접견 금지와 일반사동 대신 7사동(보호실)서 지내도록 금치 45일의 징벌 처분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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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소 10일 이상 7사에 수감돼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동안 자해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른바 3종 세트를 착용한 채 생활했고 3차례에 걸쳐 CCTV가 없는 복도서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 의견서 등에 따르면 박성철이 수갑 등 3종 세트를 차고 있던 기간은 17일에 이른다.

박성철의 어머니 서두옥씨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접견이 막혀서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너무 걱정돼서 변호사에게 접견을 가달라고 부탁했다”고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박성철에 대한 접견은 한 달 이상 제한된 상황으로 가족조차 그의 상태를 살필 수가 없었다.

변호사가 만난 박성철의 상태는 처참했다. 변호사가 접견을 가기까지 10일가량 교도소서 수도를 막아놓아 그 사이 그는 전혀 씻지 못한 상태였다. 변기에도 용변이 둥둥 떠다닐 지경이었다. 3~4일간 헤드기어를 쓰고 있어서 양코 주변으로 하얀 곰팡이가 가득했다. 

손목에 수갑, 다리에 족쇄를 착용한 상태로 난방이 들어오지 않는 마룻바닥에 방치돼있었다. 아침마다 수갑을 꽉 조이는 바람에 손목에는 고름이 낭자했다. 자료에는 전주교도소 의무과 주임이 ‘(박성철의) 손이 다 썩는다’며 수갑을 풀게 했다는 부분도 있다.


출소자들 증언 대부분 같아
2017년 소송 과정에서 확인

박성철은 CRPT들이 자신을 제압하는 과정서 사망한 재소자를 언급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CRPT들이 발목에 무언가를 찔러 넣으면서 ‘안태윤이 후유증으로 죽었다’며 항복하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진술은 박성철이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서도 나온다. 

당시 진술조서에 따르면 “한두원 교위가 ‘죽은 안태윤이도 나한테 많이 당했다. 너도 당해봐라’라고 말하면서 아킬레스건 쪽에 스테이플러 같은 것을 찔러 넣었다”는 부분이 있다. 또 “많은 재소자들이 교도관들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하고 있다. 사실 접견을 오지 않는 재소자들이 더 많은 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2018년 1월에도 박성철은 7사에 수감됐다. 7사에 수감된 재소자는 박성철뿐이었다. 당시 7사 근무일지에 따르면 박성철은 “몸이 언 것 같다. 너무 추워 한숨도 못 잤다. 몸 왼쪽이 마비되는 느낌이 온다. 얼굴 한쪽에 경련이 일어난다”고 호소했다. 또 저녁 시간 내내 수갑을 뒤로 차고 있던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7사에 수감된 경험이 있는 최상익도 “7사는 문제수를 수용한다는 미명 하에 별도로 만든 방이다. 모든 공간이 폐쇄돼있고 하나 있는 창문도 벽을 향해 나 있어 밀실이나 다름없는 곳”이라며 폐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CRPT들이 반말과 욕설 등으로 재소자들을 자극하고, 재소자들이 화를 내면 보디캠을 켜서 그 부분만 촬영하곤 했다”고 주장했다. 수갑과 족쇄 때문에 손목과 발목에 고름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치료는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박성철의 어머니 서씨는 “7사에 갔다 온 재소자들은 손목만 봐도 알 수 있다. 수갑을 어찌나 조여 놓는지 손목에 상처가 났다가 아물기를 반복해 나중에는 흉이 남는다. 7사의 표식”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원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박성철을 부산구치소 화상접견을 통해 마주했다. 그는 3년이 지났음에도 당시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부유물이 둥둥 떠다니던 변기” “구둣발로 밟혔다” “모포도 없이 냉골의 바닥서” “수갑을 꽉 조여서” 등의 말을 했다. 이어 “나는 죄를 지어 교도소에 들어왔다. 내가 나쁘지 않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처럼 짓밟는 건 너무하지 않나?”라고 토로했다.

같이 때려도
한쪽만 처벌?

당시 전주교도소는 박성철의 주장에 “집단폭행과 가혹행위는 전혀 없었다”면서도 “문제의 독방에는 CCTV가 없어 당시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고 답한 바 있다. 박성철과 전주교도소 측의 맞고소는 박성철이 교도관 폭행 혐의 등에 대해 형을 추가로 받는 것으로 끝났다. 박성철이 고소한 CRPT들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됐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이름은 모두 가명 처리했음을 밝힙니다)


<jsjang@ilyosisa.co.kr>
<kjs0814@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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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