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16·17) 매실, 명이

으뜸 조미료와 희귀나물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명이(사진 왼쪽)와 매실

[매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소소한 오류 바로 잡고 넘어가자.

매실나무와 매화나무에 대해서다.

일부 사람들이 매실과 매화나무를 별개로 오해하고 있다.

매실은 매실나무의 열매로 말이다.


그러나 매실은 매화나무의 열매를 지칭한다는 사실 밝힌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서 먼저 1928년 7월3일 <동아일보> 기사 인용해본다.

생선의 뼈를 연하게 하려면 일본 사람들이 먹는 매실장아찌(梅干)을 넣어도 좋다.

이를 인용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 땅에서 언제부터 매실을 장아찌로 만들어 먹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이 기사를 살피면 일제치하 당시 매실장아찌, 아니 일본인들이 섭취하는 매간(梅干, 우매보시)이 이 나라에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매간이 일본인들에게는 상당히 친밀하고 중요한 반찬이라는 이유로, 배일감정으로 인해 한국인들로부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 1990년대 초반 UR(우르과이 라운드)의 파고를 헤쳐 나가기 위해 정부 주도로 농산물 가공 산업을 벌이는 과정에 매실 등 상품성이 높은 작물들을 재배하며 홍보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민간서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과정에 매실의 효능이 낱낱이 밝혀지면서 매실장아찌가 등장하게 된다.

이를 감안하면 매실을 본격적으로 식용한 시기는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매실을 그저 관상용으로만 대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매실은 유사 이래 소금과 함께 주요한 조미료의 역할을 해왔다.

그런 이유로 염매(鹽梅, 소금과 매실)라는 단어까지 등장한다.

이를 염두에 두고 조선왕조실록 성종 25년(1494) 9월 기록 살펴보자.

조미료로 소금 이상으로 활용된 ‘매실’
‘압권’은 명이 장아찌에 고기를 싸먹기

당시 우의정이었던 이극배가 병으로 사임을 청하자 성종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나이가 더욱 많으며 덕이 더욱 높아 백성이 모두 바라보니, 술은 누룩으로 빚고 국은 매실로 만든다.

내가 네 도움을 어기겠는가? 마땅히 서로 기다리는 도리를 다해 무강한 아름다움을 비승(丕承, 이어 받들다)하며 굳이 사직만을 고집하지 말고 그 직위를 힘써 편안히 하라.


국은 매실로 만든다는 말, 즉 성종이 국을 만드는데 이극배에게 매실이 되어달라는 이야기다.

이는 서경에 ‘잘 조화된 국물을 만들려 하거든 그대가 소금과 매실이 되어 주오’라는 말에서 인용했는데 신하가 군주를 도와 선정(善政)토록 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제 조선 중기 학자인 고상안(高尙顔, 1553∼1623)의 작품 매실을 읊다(詠梅實, 영매실)를 감상해보자.   

庭梅有佳實(정매유가실) 
뜨락 매화에 멋진 열매 있는데
可愛亦堪憐(가애역감련) 
어여쁘면서 한편 가련도하네
自黃烟雨裏(자황연우리) 
안개비 속에 절로 노란데
調鼎更何年(조정갱하년) 
어느 해에 다시 조리하려나

상기 시 마지막 부분에 調鼎(조정)이 등장한다.

이는 음식물을 요리한다는 의미인데 매실로 음식을 만들겠다는 건지 혹은 조미료로 활용하겠다는 의미인지 확실하지 않다.


여하튼 이를 살피면 과거에는 매실이 조미료로서는 소금 이상으로 활용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 일어난다. 

[명이]

1934년 2월18일 <동아일보> 기사에 ‘폭설 내린 울릉도 상황’에 대해 ‘그렇지 않아도 춘궁기이면 산마늘 밖에 의지할 곳이 없는 이들을 구할 자 그 누구인가’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산마늘이 바로 명이의 다른 명칭이다.

명이란 명칭이 탄생되기 이전에는 ‘마늘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 나물’이라고 해 산마늘(山蒜, 산산) 혹은 산에서 자생하는 파라는 의미로 산총(山葱)으로 불렸었다.

여하튼 명이를 식용했던 기록은 상기 <동아일보> 기사에 처음으로 실릴 정도로 오래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일설에 의하면 고려 말 우왕 시절부터 실시된 공도정책(空島政策, 섬 거주민들을 본토로 이주시키는 정책)으로 사람이 살지 않던 울릉도에 조선 고종 19년에 실시된 개척령으로 사람들이 건너가 살면서 명이가 식용됐다고 한다.

내용인즉, 울릉도로 이주한 사람들이 겨울을 보내고 나자 앞서 <동아일보> 기사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고, 식량을 찾아 울릉도를 샅샅이 뒤지던 중 눈 속에서 싹을 틔운 산마늘을 발견해 캐 먹고 목숨을 연명했단다. 

그런 이유로 산마늘이 사람의 생명을 이어준다는 의미서 ‘명이’란 이름이 탄생되었다고 한다.

역시 그런 이유로 명이는 울릉도의 특산물로 알려져 있으며 산에 자생하는 명이는  희귀 나물로 보호받고 있고 지금 식용되는 명이는 사람들이 심어 가꾼 것을 쓰고 있다 한다. 

그런데 이를 의아하게 여기며 조사하던 중 새로운 사실 발견하게 된다. 1990년 8월4일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다.

‘오대산·계방산에 산마늘 자생’이라는 제하로 ‘방부멸균력 특출, 고려 땐 국약으로 사용’이란 소제목으로 ‘강원도 오대산과 계방산에 희귀식물인 산나물(멩이풀)이 폭넓게 자생하고 있다’며 ‘생약명이 명총(茗葱), 산총(山葱), 산산(山蒜) 등인 산마늘은 고려시대에는 쑥과 함께 국약으로 쓰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유황화합물질 등을 함유 천연 물질 중에서 방부력과 멸균력이 특출하다’고 기록돼있다. 

이를 살피면 명이가 고려 시절 약용되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이를 입증할만한 단서는 보이지 않는다.

고려말부터 실시된 공도정책으로 인해 사람이 거주하지 않았던 게 그 요인으로 보인다.

명이에 대해 간략하게 열거해봤으나 무엇보다도 압권은, 상기 기사에서도 언급됐지만 명이 장아찌에 고기를 싸먹는 일이다.

그 맛,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할 정도로 별미임을 밝히며 이만 줄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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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