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대낙→이대만’ 이낙연 딜레마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8.10 10:24:01
  • 호수 12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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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밑까지…역전만 남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이 당권을 잡을 것이라는 ‘이낙연 대세론’은 현재진행형이지만, 대권은 장담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민주당 안팎서 감지된다. 여야 잠룡 중 압도적 1위를 달리던 때와는 위상이 사뭇 달라졌다. 일각에선 ‘부자 몸조심’을 이유로 든다. <일요시사>는 이 의원의 딜레마를 뒤쫓았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어대낙’(어짜피 대표는 이낙연)은 유효하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의원이 오는 8·29전당대회서 당권을 잡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같은 당 김부겸 전 의원과 박주민 의원이 추격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대세에 영향을 주기 힘들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김부겸·박주민 두 후보가 ‘이낙연 대세론’을 언제든 흔들 수 있다는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어대낙이 유효한 이유다. 

멀어지는
대권의 꿈?

여론조사업체 ‘리서치뷰’가 미디어오늘의 의뢰로 지난달 28일부터 31일까지 조사하고, 지난 5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는 8·29전당대회 당 대표 적합도서 이 의원이 69%를 기록, 14%의 박 의원과 11%의 김 전 의원을 크게 앞섰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대로라면 어대낙은 현실이 된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 안팎에선 ‘이대만’(이러다 대표만)을 언급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이 의원이 7개월짜리 당 대표만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다. 대권에 대한 비관론이다. 

이 의원은 ‘당권’ ‘대권’ 모두를 정조준하고 있다. 민주당 당헌·당규는 대권 1년 전 대권에 도전하는 당 대표는 직을 사퇴하도록 규정한다. 당권-대권 분리 규정이다. 차기 대선은 2022년 3월9일 열린다. 


즉 이 의원이 오는 8·29전당대회서 당권을 잡은 후 대권에 도전하려면 2021년 3월9일 전 당권을 내려놔야 한다. 7개월짜리 시한부 당 대표인 셈이다. 민주당 당 대표의 임기는 2년으로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게 된다. 

지난 4월과 7월 성추문으로 공석이 된 부산·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는 내년 4월에 열린다. 당헌·당규 개정이 없다면 이 의원은 재보궐 선거가 열리기 전에 대표직을 내려놔야 한다. ‘미니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은 지도부 공백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안아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 의원을 제외한 다른 당 대표 후보들은 이 의원에게 이 같은 문제를 끊임없이 지적하고 있다.

어느새 지지율 반토막 ‘거품이었나’
‘엄중 낙연’ ‘부자 몸조심’ 현실로

부산·울산·경남(PK) 지역 첫 연설회서 김 전 의원은 “지금 누구나 우리 당의 위기를 말한다. 그 위기의 정점은 내년 4월 보궐선거가 아니냐”며 “이미 예정된 위기, 최정점서 당 대표를 그만둔다는 것,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태풍이 몰려오는데 선장이 배에서 내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이 의원을 저격했다.

박 의원 역시 최근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의원의 7개월 시한부 당 대표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당 대표는 안정적·장기적으로 당을 이끌며 비전과 청사진을 만들 수 있어야 하며, 전환시대에 새로운 정책을 긴 호흡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이 의원은 좋은 분이긴 하지만, 당 대표가 되면 호흡을 짧게 가져갈 것”이라며 대권과 당권의 분리를 강조했다.


이 의원 입장에선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손보는 당헌·당규 개정도 기대하기 힘들다. 현재의 이해찬 체제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남은 기간 동안 무리하게 당헌·당규를 손보다가는 특혜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 ⓒ고성준 기자

앞서 유사 논란이 한 번 불거졌던 바도 있다. 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는 지난 6월30일 당 대표와 최고위원의 임기를 분리하는 내용의 당헌·당규 개정을 의결했다. 잠룡의 중도 사퇴로 2년 임기가 보장된 최고위원들까지 동반 사퇴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다. 의결 내용대로라면, 당 대표가 조기 사퇴할 경우 임시 전당대회가 열려 기존 최고위원 임기는 종료되지 않는다.

앞서 김 전 의원은 당 대표로 당선될 시 임기를 채운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권주자 중 이 의원만이 7개월 시한부 당 대표 프레임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때문에 이 의원의 대권행을 돕기 위해 현 지도부가 당헌·당규를 개정, 이 의원의 부담을 덜어준 것이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해당 안은 전당대회를 통해 확정된다.

만약 이 의원이 당 대표에 당선된 후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골자로 한 당헌·당규 개정에 나선다면, 이는 또 다른 논란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예상되는 논란은 ‘셀프 특혜’다. 본인의 대권가도를 열기 위해 당 대표직을 이용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저격에
휘청∼

이 경우 여권의 다른 잠룡들과의 형평성 논란까지 불러올 수 있다. 이 의원을 제외하면 여권 잠룡은 대부분 광역지자체장들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당권-대권 분리 규정에 구애받지 않는다. 즉 이 의원 본인만을 위한 당헌·당규 개정이라는 논란에 직면할 수 있다. 

이 의원은 대권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달 27∼31일 조사하고, 지난 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서 이 의원 지지율은 25.6%로 나타났다. 3개월째 하락세다. 

반면 ‘사법 족쇄’를 풀어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연일 상승세다. 대법원은 이 지사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이 지사는 동 여론조사서 19.6%를 기록했다. 5월 14.2%였던 지지율은 6월 15.6%로 상승했으며, 대법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받은 7월에는 20%대에 근접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2개월째 상승세다. 두 사람의 지지율 격차는 6.0% 포인트에 불과하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컨벤션 효과를 무색하게 하는 결과다. 컨벤션 효과는 전당대회나 대선과 같은 굵직한 정치 이벤트 과정서 후보들의 지지율이 이전에 비해 크게 상승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후보에 대한 언론 노출도가 상승하면서 유권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당선 확률이 떨어지는 정치인이 전당대회 등에 출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권자들에게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후보다. 컨벤션 효과대로라면 지지율이 상승해야 한다. 이 지사는 사법 족쇄를 떨쳐냈지만, 그뿐이다.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의원은 당 대표 후보임에도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고, 전당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이 지사의 지지율은 올라가고 있다. 기현상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지나친 신중함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 의원은 여의도에 재입성한 후 부동산 논란과 인천국제공항(이하 인국공) 문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등 각종 이슈에서 지나치게 신중한 언행을 보였다.
 

▲ ▲▲ 당권 도전에 나선 김부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지난달 초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의 부동산 논란과 관련해 이 의원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며 “합당한 처신과 조치가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이 지사는 비슷한 시기 ‘부동산백지신탁제’ 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주택백지신탁제처럼 필수부동산(주거용 1주택 등)을 제외한 고위공직자의 부동산 소유를 모두 금지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러다
대표만?

이 의원은 인국공 문제에 6월 말까지 침묵했다. 그러다 지난달 1일 한 토론회에 참석해 “인국공 문제가 시급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나 국토교통위원회, 또는 합동회의를 열어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해법이 있을 수 있는지 살펴보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는 뒤늦은 입장 발표였다. 김 전 의원이 지난 6월26일 인국공 문제에 대해 “누가 뭐래도 정부와 지자체는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을 늘려가는 게 맞다”며 논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모습과 대비됐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서도 신중 모드는 여전했다. 이 의원은 국회서 관련 질문을 받자 “당에서 정리된 입장을 곧 낼 것으로 안다”며 말을 아꼈다. 이후 이해찬 대표의 공개사과가 있고 나서야 “국민이 느끼는 실망과 분노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과정서 질타도 받았다. 박 전 시장을 고소한 전직 비서를 ‘피해 고소인’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 의원 역시 다른 민주당 의원들처럼 성추행 피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이 정치권 안팎서 나왔다.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 후보 공천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던 지난 7월 중순, 이 의원은 현 민주당 지도부의 소관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후보들이 말하기 부적절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반면 김 전 의원은 “내가 당 대표가 되면, 당헌을 존중하되, 당원들의 뜻을 물어 최종 판단하겠다”며 “만약 당원들의 뜻이 공천이라면, 내가 국민에게 깨끗이 엎드려 사과드리고 양해를 구하겠다”고 밝혔다. 

김 전 의원은 필요하면 당헌을 개정하겠다고도 했다. 이는 현 민주당 지도부의 소관이라며 당헌 개정에 소극적이었던 이 의원의 입장과 차이가 크다.

이 의원은 여의도 입성 후 지나치게 신중한 언행을 보여 ‘고구마 화법’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으며 ‘엄중 낙연’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이 의원은 직분에 충실하자는 원칙에 따른 결과라고 말하지만, 일각에선 ‘부자 몸조심’이라고 평가한다. 당권과 대권을 모두 잡으려다 실패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나친 신중함에…
친문 눈치 보다가?

이 의원의 이 같은 모습은 몇 개월 전만 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의원이 내각에 있던 시절 별명은 ‘사이다 총리’였다. 국무총리이던 시절 야당의 날선 공세를 품격 있고 절제된 언행으로 되받아치는 모습에 민주당 지지층이 붙여준 별명이다.

지난 2017년 9월 대정부질문 당시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김성태 의원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문 대통령이) 대화를 구걸한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말했다”며 비판하자, 이낙연 당시 총리는 “의원님이 대한민국 대통령보다 일본 총리를 더 신뢰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되받아쳤다.

이어 함진규 의원이 “남조선은 대화 자격이 없다. 핵은 우리와 미국 사이의 문제”라는 북한의 입장을 전하자, 이 총리는 “오히려 되묻고 싶다. 미국이 대화를 말하면 전략이라 하고, 한국이 대화를 말하면 구걸이라 하는 기준이 무엇인가”라고 반격했다.
 

▲ ▲▲ 당권 도전에 나선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병희 기자

‘사이다’서 ‘고구마’로의 변화는 낯설기만 하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낙연 의원의 애매한 포지션이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한겨레>를 통해 “이 의원은 균형감 있는 정치인이라는 기대가 컸는데, 부자 몸조심만 하는 인상을 준다”며 “당내 주류세력 눈치를 보자니 입장 없는 정치인이 되는 것이고, 자기 목소리를 내자니 당내 기반이 없어 언제든지 지지율이 뒤집힐 수 있다는 불안이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의원의 ‘아킬레스 건’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정치권에선 줄곧 이 의원의 당내 세력이 약한 점을 약점으로 꼽아왔다. ‘NY(이낙연)계’는 21대 총선 이후 세 확장 중이다. 아직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기에는 시기상조다. 

이 의원은 ‘대중적 인지도’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당내 최대 계파인 친문(친 문재인)계의 선택을 받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즉 당내 주류인 친문의 뜻에 반하지 않으려다 보니, 소신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과거 인기
되찾을까?

이 의원은 변화를 예고했다. 총리 시절 보여줬던 사이다스러운 모습을 잃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고구마라는 별명을 의식한 듯 최근에는 뚜렷한 입장을 내고 있다. 지난 5일 “윤석열 검찰총장이나 최재형 감사원장은 좀 더 직분에 충실했으면 좋겠다”며 “(추 장관은)개성이 강한 분”이라고 말한 점이 대표적이다. 결국 이 의원의 강점인 ‘균형감각’을 십분 발휘해 친문의 뜻에 반하지 않으면서 소신 발언을 이어가는 모습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민주당 전당대회 흥행 적신호, 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지도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8·29전당대회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서 흥행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초라한 당권레이스’라는 말까지 들리며 최고위원 경선이 더 흥미진진하다는 자조적인 평가까지 나온다.

이에 대해 ‘이낙연 대세론’ ‘아젠다 부재’ ‘언택트(비대면) 방식’ 등 여러 원인이 언급된다.

‘어대낙’(어차피 대표는 이낙연)으로 대표되는 대세론으로 민주당 당원들은 전당대회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여권의 잠룡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행보에 더욱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다.

여기에다 이낙연·김부겸·박주민 등 당권주자들은 아젠다 제시보다 친문 구애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이번 전당대회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언택트(비대면) 방식으로 치러져 후보들이 좀처럼 분위기를 띄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해찬 대표 역시 저조한 흥행 성적을 의식하는 모습이다. 통상 후보만 참석하는 지역별 합동연설회에 동행하고 있다.

과연 이해찬 대표의 동행이 흥행으로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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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