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을 기다리는 선수들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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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0.07.20 10:19:17
  • 호수 12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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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기생충, 싸이…스포츠도 한류

▲ 유은희 선수

 

[JSA뉴스] IOC는 1년 연기된 도쿄올림픽과 관련해 주어진 1년의 기간 동안 참가 선수들은 어떻게 자신들을 관리해야 하는지에 관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주인공은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이다. 도쿄올림픽 본선 진출로 올림픽 10회 연속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운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2004년의 영웅들이 걸었던 길에서 용기를 얻고 있다.

BTS는 세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이돌 그룹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그리고 K-Pop 제왕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30개국서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정작 본국서 
인정 못 받아

이렇게 ‘문화 한류’는 글로벌 무대서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K-스포츠 한류’ 역시 스포츠계서 빛을 발하고 있다. EPL 토트넘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손흥민, 김연아의 뒤를 이어 피겨 스케이팅 정상을 노리는 유영, 메이저 리그서 활약하는 최지만, 추신수, 류현진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보다 먼저 세계 무대서 성공의 역사를 써온 원조 K-스포츠 한류가 있다. 바로 여자 핸드볼 대표팀이다.

여자 핸드볼은 올림픽 단체 구기 종목서 한국이 최고의 성적을 거둔 종목이다. 그러나 1988 서울 올림픽과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2004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여자 핸드볼은 정작 본국서 성적만큼의 인정을 받지 못해왔다.


그러다 한국 여자 핸드볼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을 통해서였다. 영화를 통해 한국 여자 핸드볼이 이뤄낸 수많은 영광의 순간 중 최소 한 장면만은 모두에게 알려질 수 있었다.

이미 글로벌 무대서 관심 독차지
단체 구기 대한민국 최고의 성적

2004년 올림픽 레전드 오성옥이 이끄는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금메달전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덴마크와 승부던지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게 된다. 노장들로 구성된 대표팀의 이 영웅적인 활약 이야기가 바로 <우생순>으로 흥행에도 성공한다.

이 영화는 한국서 디즈니의 <마법에 걸린 사랑(Enchanted)> 및 조니 뎁과 헬레나 본햄-카터가 주연한 팀 버튼의 <스위니 토드>, ‘고질라가 블레어 위치를 만났다’는 카피를 내세운 <클로버필드> 등의 영화를 누르고 3주간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영화는 핸드볼이라는 스포츠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과 동시에 여성의 역할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비판하는 메시지도 담아냈다. 특히 기혼의 중년 여성, ‘아줌마’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그랬다.

올림픽 무대서 세계 최고들과 경쟁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고 평가받던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도전 이야기는 국민적인 관심을 받았고, 핸드볼이라는 종목도 한국 사람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일부 해외 언론에선 이를 두고 ‘한국판 위기의 주부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제, 2021년에 열릴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여자 핸드볼의 신세대 스타들은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달성해냈다. 이것은 지금까지 다른 그 어떤 핸드볼 팀, 남녀를 통틀어도 이뤄내지 못했던 업적이다.


한국 대표팀의 스타 라이트백 유은희는 ‘올림픽 채널’과의 인터뷰서 “메달을 따내고 싶다. 런던이나 리우에서는 메달이 없었으니까”라고 각오를 밝혔다.

“또 메달을 
따고 싶다”

유은희가 핸드볼서 이루고 싶은 두 가지 꿈은 유럽 진출과 올림픽 메달이다. 그중 절반은 이미 현실이 됐다. 그는 현재 프랑스의 핸드볼 팀, 파리 92서 ‘더 퀸’이란 별명으로 불리며 뛰고 있다. 하지만 올림픽 무대에서는 2012 런던올림픽서 스페인과의 연장 승부 끝에 아깝게 동메달을 놓쳤던 대표팀의 일원이었다.

따라서 나머지 절반의 꿈을 도쿄서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한국의 유은희, 유럽서 돌풍을 일으키다’라는 제목의 기사서, 29세의 유은희는 국제핸드볼연맹(IHF)에 올림픽에 대한 꿈을 이야기했다.

“중학생 때 2004 아테네 올림픽을 봤고, 한국 선수들과 대표팀이 뛰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 선배들의 활약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한국은 2019 세계선수권에서 꿈과는 조금 먼 11위를 기록했지만, 유은희는 대회 우승국 네덜란드의 최다 득점자이자 대회 득점 1위 로이스 아빙의 71점 다음으로 많은 69득점을 올렸다.

유은희는 이 대회에 대해 “많은 선수들이 경험이 거의 없는 상황서 괜찮은 대회를 치렀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에는 계속해서 재능 있는 선수들이 합류하고 있다. 유은희는 이 중에서도 2018년 주니어 세계선수권 MVP 송혜수와 24세의 강은희를 지켜봐야 할 선수로 지목했다.

송혜수는 주니어 U-20 대표팀서 활약하며 스타플레이어 엘레나 미하일리첸코가 이끄는 러시아 대표팀을 상대로 동메달 획득을 도왔던 선수다. 주니어 세계선수권 당시 강재원 감독은 핸드볼 월드 뉴스와의 인터뷰서 “현 세대는 대표팀 미래에 큰 기대를 걸게 해준다”고 밝히기도 했다.

네덜란드가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던 2019 세계 선수권서 11위에 머물렀지만, 이것만으로 한국 여자 핸드볼이 국제무대서 밀려났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올림픽 무대서 언제나 최상의 경기를 보여준 팀이며, 10회 연속 올림픽 진출은 아무나 그냥 이룰 수 있는 업적이 아니다. 1984 로스앤젤레스부터 2012 런던까지 모든 올림픽서,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항상 메달전까지 올라갔다.
 

▲ 2014 난징 하계 유스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 경기서 러시아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대한민국 대표팀

그리고 금메달 두 개, 은메달 세 개, 동메달 한 개를 따냈고, 4위에는 네 번 올라가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한국은 올림픽 양궁과 국기인 태권도서 세계 정상의 자리를 유지해오고 있지만, 여자 핸드볼 역시 세계 정상급 성적을 내왔고, 올림픽 단체 구기 종목서 한국 대표팀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종목이다.

여자 핸드볼이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이후 열린 11번의 올림픽 중 8번서 한국 여자 대표팀은 메달전까지 올라갔다. 1984 LA(은메달), 1988 서울(금메달), 1992 바르셀로나(금메달), 1996 애틀랜타(은메달), 2000 시드니(4위), 2004 아테네(은메달), 2008 베이징(동메달), 2012 런던(4위).

유은희는 올림픽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2012 런던올림픽 8강서 러시아를 꺾은 경기라고 말했다. 아쉽게도 2016 리우올림픽은 10위라는 실망스런 결과를 얻었지만,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도쿄서 다시 한 번 황금빛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국제무대서의 많은 성공들에도 불구하고 유은희는 핸드볼이 아직도 한국 내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했다고 했다.

“한국의 핸드볼 리그는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축구, 농구, 야구에는 못 미치는 인기다. 하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도 결과를 만들어내는 동료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내에서 핸드볼의 인기를 어떻게 올릴지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이렇다.


“한국에서는 핸드볼을 보통 9∼10살 때부터 시작한다. 더 어릴 때부터 공과 가까이한다면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더 어릴 때부터 핸드볼을 접하게 만들까?

어릴 때부터 
공과 가까이

“핸드볼만의 매력이 있다. 실제로 보면 그 속도와 투지를 느낄 수 있다. 경기장서 한 번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데도 꾸준히 국제무대에 등장하고 실력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한국의 핸드볼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게 분명하다.

한국의 핸드볼 선수들과 감독들은 그들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신장의 불리함을 속도와 기술, 속공, 중거리서의 정확한 슛 능력, 그리고 수비 조직력을 통해 극복해냈다.

키 162cm의 레프트백 송혜수의 바운스 슛 같은 획기적인 기술들도 ‘코리안 스타일’에 속한다. 바운스 슛은 터득하기 매우 힘든 기술 중 하나로, 정중앙으로 공격해 들어가서 수비가 두터운 센터 포지션서 공을 던지고, 공은 골키퍼 바로 앞에서 바운드되고, 스핀된다. 이를 통해 상대를 속이는 기술이다.
 

▲ ▲▲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스틸컷

2018년 슬로바키아서 열린 U-18 월드컵서 송혜수는 이 기술만으로 한 경기에 4골을 넣었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에게 바운스 슛은 그저 여러 기술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그는 대회 당시 핸드볼 월드 뉴스와 인터뷰서 “우리 팀에서는 특별한 기술도 아니다. 나는 그냥 코리안 스타일이라고 부르겠다”고 말했다. 

“키가 크지 않기 때문에, 골을 넣을 다른 방법들을 찾아내야만 한다.”

‘코리안 스타일’ 플레이를 통해 지금까지 4명의 한국 선수들이 국제핸드볼연맹(IHF) 세계 핸드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여자부에선 김현미(1989)와 임오경(1996)이, 남자부에서는 강재원(1989)과 윤경신(2001)이 각각 올해의 선수로 뽑혔다.

10회 연속 본선 진출 달성
세계가 놀란 ‘아줌마 신화’

한국 핸드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올림픽 5회 출전에 빛나는 오성옥 선수다. 한국 여자 선수로서는 최초로 올림픽 5회 출전을 기록한 오성옥은 1992 바르셀로나 금메달, 1996 애틀랜타와 2004 아테네 은메달, 그리고 2008 베이징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여자 핸드볼의 선구자 격인 오성옥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오스트리아의 히포팀서 뛰며 유럽 진출도 이뤄냈다.

유은희는 거의 10년 만에 그 뒤를 이어 유럽에 진출한 선수로 2019-20 시즌에 프랑스 리그의 파리 92에 입단했다. 유은희는 서울 슈가글라이더스 소속으로 2018/19 핸드볼 코리아 리그 MVP를 차지한 뒤 프랑스로 향했지만, 새 구단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유럽의 경기는 한국과 비교해 더 거칠고 빠르다. 프랑스에서는 훈련도 실제 경기를 하는 것 같이 진행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리그 적응을 마친 유은희는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기 시작한다. 바로 골을 많이 넣는 일이다. 인생의 골도 확실히 세워져 있다.

“경기력을 향상시키고 부상 없이 활동을 이어가는 것으로 올림픽에서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파리 92와 챔피언스 리그에 도전하고 싶다.”

“선배들이 이룬
역사 이어간다”

도쿄올림픽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1년 연기된 현재, 유은희는 부산으로 돌아와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올림픽이라는 궁극의 무대서 선배들이 이뤄온 역사를 이어가겠다는 목표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도쿄가 K-스포츠의 다음 장을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한국 여자 핸드볼의 새로운 세대들은 그들만의 유산을 남기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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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채 상병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취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신의 사건을 언급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한 게 핵심이다. 임 전 사단장과 연락이 닿은 인물들은 대부분 이해관계자다. 자칫하면 회유 정황으로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은 ‘채 상병 사건’의 핵심 피의자다. 수사외압 논란의 시발점이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직접 챙긴 인물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사건을 물밑에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다 왜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침묵 지키다… 임 전 사단장은 최근까지 복수의 해병대 간부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는 간부 A씨에게 “(공수처)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상황서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어서 연락하지 못했다”며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은 없었다. 다만 “모두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지만 아들을 잃은 채 상병의 유족 특히 모친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다. 진실을 밝힐 때까지는 고통스러워도 견딜 생각이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임 전 사단장은 A씨에게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하 대령)의 변호인이었던 김경호 변호사에게 내용증명을 보낸 것과 관련해 민·형사 소송을 준비 중이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뉘앙스로 연락을 취했다. 김 변호사가 자신을 고발한 게 무고에 해당하는지와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타 간부들에게도 비슷한 도움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간부는 <일요시사>와의 연락서 “난감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모셨던 사람이긴 한데 임 전 사단장에 대해 개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든 사람이 채 상병 사건 진상규명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전 사단장은 과거 박 대령에게도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바 있다. 자신은 물속 수색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수차례 했고 작전통제권이 육군 50사단장으로 넘어간 상황서 자신의 책임과 범위 내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며, 이에 대한 박 대령의 기억과 판단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공수처 수사 대상인데… 사건 연루자들에 연락 당시 임 전 사단장은 “상급지휘관(임 전 사단장)에게 작전통제권은 없지만, 부대를 방문해 전술토의할 수 있고 효율적인 작전이 되도록 유도할 권한은 있다”고 했다. 작전통제권이 없어 안전 책무가 없다면서도, 자신이 현장서 ‘수변을 수색하라’고 지휘한 건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런 이유로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직권남용 문제를 언급한 해병대수사단의 조사 결과 보고서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해병대 수사단은 임 전 사단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적시하지 않았다. 수사단은 ‘작전통제권과 상관 없이’ 임 전 사단장을 실질적 수색작전 지휘관으로 보고, 안전지침을 부대에 하달하지 않아 채 상병 순직사고가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임 전 사단장은 김 변호사와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김 변호사가 SNS에 게시한 글 중 허위 사실이 포함된 내용이 있다는 게 임 전 사단장의 주장이다. 그는 김 변호사에게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한계 속에서 해석과 이해를 거쳐 어떤 주장을 하는 것에 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악의적이라고 생각한다”며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문제점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발견됐고, 제가 사안의 진상을 밝히면서 그걸 뒷받침하는 자료를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허위가 여론을 조작하고 진실을 가리는 불의한 상황을 시정하기 위해 나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을 공수처에 세 번째로 고발했다. 이번 혐의는 군형법 제79조 무단이탈죄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임 전 사단장은 지난 1월 말 서울 노원구에 있는 화랑대연구소가 아닌 영등포구에 위치한 해군 관사 ‘바다마을아파트’에 거주하며 인접한 해군 재경근무지원대대 사무실로 출근 중이다. 마음 급해졌나…어떤 의도? 갑자기? 특검 압박 느꼈나 이 사실은 그가 여러 곳에 자신이 결백하다는 취지의 문서를 내용증명, 등기우편 등으로 보내면서 드러났다. 등기 봉투의 발신지는 화랑대연구소였으나 배송 조회 결과 실제 발신지는 서울 신길7동 우편취급국이었다. 임 전 사단장이 거주 중인 서울 관사 인근이다. 발송 시간도 대부분 일과시간 직전이나 일과 중이었다. 임 전 사단장은 언론을 통해 “연수 초기에 육사에서 주로 근무했으나 장거리 출퇴근 비효율적이라서 최근엔 해군재경대대서 근무 중이다. 근무 장소 중 하나가 해군 재경대대”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정책 연수의 일시와 출퇴근 시간 및 장소가 명령으로 특정된다. 인사명령의 지정된 장소서 지정된 출퇴근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인사명령이나 상급기관의 지휘관에게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최근 자주 번호를 변경하는 임 전 사단장의 핸드폰을 압수수색해 무단이탈한 장소와 상급지휘관인 해병대 사령관에게 정식으로 사전에 허가를 받았는지에 관한 진실을 밝혀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취지”라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행동이 증거인멸 시도로 볼 수 있다”며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며 같이 책임을 면하자는 회유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수처는 지난 1월부터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와 경찰 이첩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에 대해 강제수사를 착수해 왔다. 박 대령에게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것에서 임 전 사단장이 적극적인 책임 회피에 나섰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현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권서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자 조용했던 임 전 사단장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적절한 처신 한 해병대 간부는 “전우의 죽음 이후 형평성에 어긋나거나 석연치 않은 윗선의 처리는 진상규명 문제를 떠나 정치권 개입을 불렀다”며 “도의적 책임도 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일부 작자들의 행동으로 인해 해병대 전체의 명예가 실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 전 사단장은 <일요시사>가 사건 관계인에 연락한 이유에 관해 묻자 "사건 관계인에게 연락한 것은 사실 확인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