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20 상반기 방송계 결산

빈익빈 부익부 드라마
트로트에 쏠린 예능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어느덧 2020년도 절반을 지나가고 있다. 전 세계를 지배한 코로나19로 생경한 한 해를 맞이한 2020년. 방송계 역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오프라인 만남이 줄어든 가운데 많은 이들이 방송으로 여가를 달랬다. 방송 콘텐츠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드라마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예능은 트로트 쏠림 현상이 짙게 보였다. 
 

▲ (사진 왼쪽부터) JTBC <부부의 세계>, SBS <스토브리그>,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TV조선 <미스터트롯>

먼저 상반기 드라마계는 4월을 전후로 크게 나뉜다. 4월 이전에는 시청률 20%를 넘거나 육박하는 작품이 대거 나왔다. 파죽지세라 불려도 손색없을 만큼 각 방송사는 수작을 내놨다. 그 가운데 SBS와 JTBC, tvN이 두각을 나타냈고, MBC와 KBS는 인기작품 하나 건지지 못했다. 반면 4월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모든 방송사가 저조한 성적표를 받고 허덕이고 있다.

올 상반기 최대 관심작은 단연 JTBC <부부의 세계>다. 영국 BBC 드라마 <닥터 포스터>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원작의 밀도 높은 이야기와 예기치 못한 반전이 휘몰아치는 전개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불륜으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는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구현했다.

신드롬 일으킨
JTBC 함박웃음

배우 김희애와 박해준, 한소희, 박선영, 김영민, 채국희, 이경영, 심은우, 이학주 등 극한의 스토리 속에서 복잡한 인물의 감정을 훌륭하게 표현한 출연 배우들 모두 대중의 관심을 듬뿍 받았다. 

1회 시청률 6.3%(닐슨코리아)로 시작한 <부부의 세계>는 28.4%의 최고시청률을 기록하며 마지막 회를 장식했다. 신드롬급 사랑을 받은 <부부의 세계>는 “사랑한 게 죄는 아니잖아” 등의 명대사들이 각종 온라인서 패러디 되며 2차 콘텐츠가 대거 양산되기도 했다.


배우 박서준과 김다미, 권나라 등이 출연한 JTBC <이태원 클라쓰>는 동명 웹툰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청년 창업을 소재로 한 이 드라마는 복잡한 관계와 상황 속에서 성장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로 16.5%의 시청률을 기록, 성공적인 마무리를 지었다.

어딘가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 뭉쳐 최고의 음식점을 만드는 과정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각 인물 간의 로맨스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는 평가다. 

SBS 내놓은
잇단 수작들

비록 최고의 왕좌 자리는 JTBC의 <부부의 세계>에 내줬지만, 전체적인 성과로 치자면 SBS가 더욱 빛났던 기간이었다. 한석규 주연의 <낭만닥터 김사부2>와 스포츠 드라마로서는 기념비적인 인기를 누린 <스토브리그>, 김혜수와 주지훈이 열연한 <하이에나> 등이 올해 SBS가 내놓은 작품이다.

지방에 있는 돌담병원을 배경으로 벌어진 진짜 의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여러 단면을 보여준 <낭만닥터 김사부2>는 한석규를 비롯해 안효섭, 이성경, 소주연, 윤나무 등 신구조화가 어우러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27.1%라는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얻어내며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JTBC ‘한 방’ SBS ‘두각’ tvN ‘체면치레’
10% 시청률 하나 없는 KBS·MBC 울상

남궁민 주연의 <스토브리그>는 야구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비시즌, 프런트의 브레인 싸움에 집중한 이 드라마는 많은 양의 취재를 바탕으로 매우 뛰어난 디테일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을 몰입시켰다. 새로운 리더십을 선보인 ‘백승수’ 역의 남궁민을 비롯해 박은빈, 오정세, 조병규 등 다수의 배우가 조명됐다. 19.1%의 높은 시청률로 마무리된 작품이다.


변호사들의 하이에나식 생존기를 그린 <하이에나>는 김혜수의 막강한 걸크러시와 주지훈의 강렬한 연기에 힘입어 14.6%를 기록했다. 

이외에도 김서형 주연의 <아무도 모른다>는 장르물 특성의 높은 진입장벽을 깨며 11.4%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탄탄한 구성과 대본을 선보인 수작으로 기억된다. 

두 히트작
tvN 턱걸이

드라마 명가로 부상했던 tvN은 올해 그 이름값에는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작품 대부분이 5% 이하의 시청률을 내놨으며, 화제를 모으는 데도 실패했다. 

그런 와중에 손예진과 현빈 주연의 <사랑의 불시착>이 21.7%로 tvN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사랑의 불시착>은 멜로물의 전형적인 구도였음에도 손예진, 현빈을 비롯한 출연 인물들이 매력적으로 묘사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아울러 넷플릭스에 공개되면서 현재 국내뿐 아니라 일본서도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신원호 사단의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병원을 중심으로 한 힐링 드라마의 매력을 선보였다. ‘99즈’로 불리는 전미도, 조정석, 유연석, 김대명, 정경호를 비롯해 신현빈, 정문성, 김준한, 안은진 등 조연배우들도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시즌제를 선포한 이 드라마는 14.1%를 기록하며 마무리했다. 앞으로 시즌2·3서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 (사진 왼쪽부터)tvN 반의반, 하트시그널, 어서와, 부러우면 지는거다

연상호 감독이 대본을 집필한 <방법>도 장르물치고는 높은 성적인 6%를 기록했다. 워낙 독특한 소재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인기 작품이다.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기록한 작품이 적지 않았지만, 반대로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작품도 많았다. 특히 <더킹:영원한 군주>는 김은숙 작가의 작품으로 올해 상반기 최대의 기대작이었으나,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다가 결국 8.1%로 종영했다. 과도한 PPL, 일부 배우들의 연기력 논란, 어려운 스토리, 복잡한 1인2역 등의 지적을 받았다. 

SBS의 <굿캐스팅> 역시 12.3%로 순조롭게 출발했지만, 조금씩 하락세를 보이다 8.0%까지 떨어졌다. 마지막 회는 9.8%로 마무리하면서 절반의 성공만을 거뒀다. 

그나마 거론된 작품은 나름의 인기를 얻은 편이다.

소리 없이 사라진 드라마들
국내 예능은 하향평준화 중?

KBS2 <어서와>, MBC <그 남자의 기억법> <365:운명을 거스르는 1년> <더 게임:0시를 향하여> 등은 1∼3% 시청률에 허덕였다. tvN <반의 반>도 1∼2%의 시청률 난조에 허덕이다 조기에 종영했으며, 채널A <터치>, MBN <유별나!문셰프>는 0%대의 시청률로 종영했다.


이 외에도 MBC <저녁 같이 드실래요>, tvN <가족입니다> <오 마이 베이비>, JTBC <쌍갑포차> <야식남녀>, KBS2 <영혼수선공> 등이 5% 이하의 낮은 시청률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MBC <꼰대인턴>만이 그나마 6% 시청률로 선전 중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워낙 많은 콘텐츠가 나오면서 작가진은 물론 스태프 역시 능력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여러 방면서 콘텐츠의 질적인 차이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게 현 드라마 시장의 현상”이라고 꼬집었다.

2020년 예능계는 코로나19의 확산이 본격화되면서 변화를 맞이했다. 오디션이나 공개 무대 예능은 무관객 녹화로 진행됐다. 해외 촬영이 필수였던 여행 예능은 국내로 방향을 틀거나 새 판을 짜는 데 집중했다. 이런 가운데 비교적 촬영이 손쉬운 관찰 예능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일부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서 신선한 새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으면서 예능 프로그램이 전반적으로 지루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방송가에 부는
트로트 광풍

코로나19 여파로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이 제작에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그 빈틈을 트로트가 꿰차고 들어왔다. TV조선 <미스터트롯>이 그 중심이다. 


2020년 상반기 예능에 있어 <미스터트롯>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다. TOP7에 오른 출연자들은 TV조선을 넘어 각 방송사의 패널로 출연하며, 평균 시청률의 2배를 얻어내는 등 시청률 파워를 입증하고 있다. 

지난 겨울 시작한 <미스터트롯>은 종합편성채널이란 한계를 뛰어넘고 최고 시청률 35.7%를 기록했다. 각종 콘텐츠 영향력평가서도 높은 점수를 받으며 ‘국민 예능’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미스터트롯> 진(眞) 임영웅을 향한 인기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임영웅뿐 아니라 영탁, 이찬원, 김호중, 정동원 장민호, 김희재 등의 스타들은 압도적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 ▲▲ tvN <삼시세끼> 어촌편

TV조선은 <미스터트롯>의 열풍을 이어가기 위해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 - 사랑의 콜센타>(이하 <사랑의 콜센타>), F4 임영웅, 영탁, 이찬원, 장민호가 출연하는 <뽕숭아학당>을 스핀오프로 즉각 편성했다. <사랑의 콜센타>는 20%를 넘나드는 시청률을 기록 중이며, <뽕숭아학당>도 14%를 기록하는 등 국내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여전히 이들의 인기는 시들지 않고 있다. 

기성세대의 전유물로만 여겨진 트로트가 공전의 히트를 치자 다른 방송사에서도 트로트와 관련된 음악 예능을 내세웠다. 이 같은 현상은 이른바 ‘트로트 코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SBS는 <트롯신이 떴다>를 런칭했고, MBC <편애중계>는 트로트 미니 오디션을 진행 중이다. MBC는 <트로트의 민족>(가제)도 편성했으며, KBS2는 <트롯전국체전>을 제작했다. SBS플러스는 기성 인기 가수들의 트로트 도전기를 그린 <내게ON트롯>을, MBN은 <보이스트롯>을 제작했다.

하지만 TV조선의 출연자들이 나오지 않는 트로트 방송은 기대만큼 좋은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으며, 워낙 우후죽순 생겨나는 탓에 소모적이라는 평가도 잇따르고 있다.

장수 프로그램
스타PD의 선전

요즘 예능계에선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예능 프로그램이 흔치 않다. 새롭게 론칭한 예능은 많지만 그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품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스타 PD인 김태호 PD와 나영석 PD는 꾸준히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MBC <놀면 뭐하니?>는 효리와 비가 합세한 혼성그룹 아이템이 엄청난 관심을 끌면서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특히 이효리의 막강한 입담으로 새로운 형태의 예능 토크를 선보이며 눈길을 끌고 있다.

나 PD의 <삼시세끼:어촌편5> 역시 편안한 힐링 예능의 매력을 톡톡히 보이며 11%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장수 프로그램들이 꾸준히 선전한 2020년 상반기이기도 했다. MBC <나 혼자 산다> <복면가왕>, SBS <런닝맨> <동물농장> <미운우리새끼>, KBS2 <1박2일 시즌4> <불후의 명곡>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이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에 반해 올해 론칭한 프로그램 중 두각을 나타내는 예능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다는 것도 특이한 현상이다. 

보수적 환경 낡은 콘텐츠
새로운 형태의 전환 필요

시청률 집계 업체인 닐슨코리아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새로 제작된 예능 프로그램 중 지상파 주간 시청률 순위 20위 안에 드는 프로그램은 <트롯신이 떴다>가 유일하다.

케이블의 경우 <삼시세끼:어촌편5>를 제외하곤, 3.3%의 <바퀴 달린 집>이 그나마 선전 중이다. 종합편성채널 분야는 TV조선의 트로트 예능을 제외하고는 두각을 나타내는 새 예능이 없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지만, 기존의 높은 벽을 뚫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올해 예능계의 가장 핫 이슈는 KBS2 <개그콘서트>의 잠정 중단이다. 한국 코미디의 산실이기도 했던 <개그콘서트>는 지난 26일 마지막 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 1999년 9월4일 첫 방송 이후 처음 있는 방송 중단은 ‘사실상 폐지’로 향한다는 게 중론이다.

리얼리즘이 강조되는 예능이 인기를 끄는 현실서, 콩트와 연기를 통해 웃음을 주는 공개 코미디의 매력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유튜브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성장은 보수적인 제작환경의 지상파 공개 코미디를 낡은 콘텐츠로 전락시켰다.
 

▲ ▲▲ KBS2TV 장수 개그프로그램 개그콘서트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tvN <코미디 빅리그> 역시 겨우 1∼2%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코너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공개코미디 형태를 갖추는가 싶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무관객 녹화가 진행되면서 이마저도 어려워졌다. 아울러 새로운 스타 발굴도 딱히 보이지 않아 <코미디 빅리그>의 미래도 밝은 편은 아니다.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높은 효율을 보인 관찰예능도 힘이 빠지기는 매한가지다. 워낙 많은 관찰예능이 쏟아져 나와 지겹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실제로 SBS <미운우리새끼>와 KBS2 <살림하는 남자들2> <슈퍼맨이 돌아왔다>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MBC <나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 시점> 등을 제외하면 5%를 넘기는 프로그램이 없다. 

지겨워진  예능

특히 일반인을 활용한 관찰예능은 끊임없이 과거사 논란에 휘말리면서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겁다. MBC <부러우면 지는 거다> 채널A <하트시그널3>가 대표적인 예다.

관찰예능은 사람들의 리얼한 면을 지켜본다는 측면서 오랫 동안 방송가의 먹거리였다. 하지만 비슷한 형태의 프로그램이 너무 많이 나왔고, 리얼리즘을 표방한 짜여진 연출도 드러나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방송 관계자는 “관찰예능을 너무 우려먹었다. 소재만 조금 바뀐 형태의 관찰예능이 너무 많아 시청자들이 지루함을 느낀다. 이제는 방송계가 새로운 형태의 방송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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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