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장애인의 날 일상 속 차별 백태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4.20 14:42:36
  • 호수 12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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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더 사각지대 내몰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일상 속에 숨어 있다.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로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법정 기념일이다. <일요시사>는 기념일을 맞아 장애인들이 오히려 차별받고 있는 상황을 취재했다.
 

▲ 온라인 수업

장애인들에게 불편한 것 중 하나는 의약품이다. 시각장애인은 의약품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하고 오·남용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비자원은 일반의약품 생산실적 상위 30개 제품과 수입실적 상위 20개 제품 및 안전상비의약품 13개 제품 중 구입 가능한 58개 제품의 점자표시 실태를 조사한 결과, 27.6%인 16개 제품에만 점자표시가 돼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힘들어진
약국 가기

점자표시가 돼있는 경우에도 표시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7년 ‘점자표기 기초 조사’(국립국어원)서 이미 점자표시가 있는 16개 의약품에 점자표시된 것으로 확인된 16개 의약품을 추가해 총 32개 의약품의 점자표시 세부 내용(가독성, 규격, 항목, 위치 등)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32개 의약품 중 상대적으로 가독성이 높은 의약품은 11개에 그쳤고, 21개 의약품은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규정에선 표시 항목에 대해 제품명, 업체명, 사용설명서 주요 내용 등을 점자표시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32개 의약품 중 23개 제품은 제품명만을, 4개 제품은 제품명과 업체명만 표시하고 있었고, 5개 제품은 가독성이 낮아 제품명 등을 확인할 수 없었다. 표시 위치 또한 의약품마다 제각각이었다.


이에 시각장애인의 의약품 접근권을 높이려면 제약사가 사회적·공익적 책임을 발휘해 점자표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과, 취약계층을 위한 약사의 구체적이고 자세한 복약지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를 두고 이를 장려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복지부와 식약처 등 정책당국의 역할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외 선진국들은 한국과 달리 의약품 점자표시를 의무화하거나, 의무화하지 않더라도 관련 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점자표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2004년 3월 의약품 관련 지침을 개정하면서 의약품 외부 포장에 제품명 점자표시를 의무화했고, 성분의 함량이 두  가지 이상으로 판매되는 의약품은 함량에 대해서도 점자표시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환자 단체의 요청이 있는 경우 시판 허가권자는 의약품 첨부 문서를 시각장애인에게 적합한 형태(음성 점자설명서 등)로 제공해야 한다.

50개 의약품 중 16개만 점자표시
수어통역·문자 서비스 등 지원 부족

하지만 식약당국과 제약업계는 점자표기 현실화·확대에 난색을 보여, 시각장애인의 의약품 접근권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의약품 패키지(포장)를 사용자 친화적으로 리뉴얼하는 제약사가 늘고 있지만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 의약품을 사용하기엔 여전히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7년 4월3일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건강기능식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는데, 약사법 개정안은 안전상비의약품의 용기나 포장 등에 제품명, 효능·효과, 용법·용량 등에 관한 정보를 담은 점자 및 점자·음성변환용 코드에 관한 데이터베이스 및 정보시스템을 구축·운영하도록 해 시각장애인이 의약품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업계와 조율 차이로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의약품 점자표기 제작이 업계로서 실현하기 어려운 일임을 시인했다. 구체적으로 생산라인을 구축하면 설비투자 비용이 발생하고 점자를 검수할 인력 마련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코로나19 상황과 관련해서도 장애인들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꾸준히 발생하는 가운데, 장애인에 대한 보호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청도대남병원의 정신질환자 7명이 사망했고, 경북도 중증장애인 시설서 장애인 확진자가 발생했다.

특히나 장애인들은 공동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위험성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이연희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공동거주자 중 확진자 외 나머지 거주자의 건강상태가 취약하다면 거처를 옮길 집이 필요한데, 공간을 마련하는 게 여의치 않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렵게 격리공간이 마련된다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확진자와 거주했던 이력 때문에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활동지원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벼랑 끝 생사
정책 속 외면

이 국장은 “활동지원사가 간헐적으로 방문해 지원하는 경우 방호복을 입고 집 청소, 위생관리, 식사준비, 필요한 물품을 전달한다. 방호복을 입고 장시간 지원하기가 쉽지 않기에 최소한의 시간인 2시간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서도 확진자가 많이 늘어난 상태다. 많은 사람이 의심감염자로 분류돼 자가격리 상태에 있다. 이로 인해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각계 부처들은 다양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지만 쏟아지는 정책 속에 장애인은 외면받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달 26일 중증장애인 A씨는 6번째 확진자와 같은 예배에 참석했고, 동행한 활동 지원사와 함께 자가격리됐다.  

이로 인해 A씨는 활동 지원사 대체인력 투입을 문의했지만, 관련 지침이 없어 투입이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장애인단체들이 장애인관련 지원 대책을 확인하기 위해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중앙사고수습본부 상황반, 다산콜센터 등 연락을 시도했지만 다른 부서로 책임을 떠넘기거나, 확인이 필요하다는 등의 답변만 받았다.

또 질병관리본부 콜센터에 수어통역이나 문자서비스가 가능하냐고 문의했지만, 오후 6시까지만 수어통역이 가능하고 개선의견을 국민신문고에 건의해달라는 답변이 끝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9일부터 전국 초·중·고교가 순차적으로 온라인 개학을 시작했다. 이에 장애가 있는 학생을 위한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는 시각·청각 장애가 있는 학생에겐 자막·수어·점자 등을 제공하고 발달장애 학생에겐 가정방문 순회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으나 학부모들은 “장애 유형별로 세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발달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위한 순회교육도 불충분하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설명이다. 꾸준히 교육하는 게 중요한데 주 1∼2차례 회당 2시간 수업으로 인해 교육 공백이 생기기 때문이다.

교육권 침해
더 심해졌다

윤진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사무처장은 “발달장애의 경우 단순 교과 중심 교육이 전부가 아니라 교사와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안전대책을 마련해 소규모 수업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사들 역시 코로나19 안전대책만큼 장애 학생들의 교육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천교육교사모임은 지난달 30일 전국 유·초·중·고 3321명의 특수학급 교사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니, 응답자의 88.5%(2931명)는 온라인 개학과 관련해 특수교육 대상자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교사와 학생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제시한 방법 외에 좀 더 다양한 형태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발달장애 학생들의 교육권 침해가 우려되고 있다. 발달장애 학생의 부모들은 이들을 위한 온라인 수업 준비가 미비한 상태임을 강조했으며, 일부는 차라리 학교에 나가게 해달라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코로나19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아이들이 교육서 소외됐다고 하소연했다.
 

최수아 최수아통합발달센터 원장은 “등하교라는 안정적인 일상 패턴이 깨지다 보니 아이들이 흥분을 하고 꼬집거나 자해를 하는 등 문제 행동을 많이 보인다”며 “에너지를 풀 곳이 없어 자폐 증상이 더 심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발달장애란 출생과 성장기에 뇌 발달에 문제가 생겨 언어, 인지, 운동, 사회성 등의 성장속도가 또래에 비해 느린 상태를 모두 지칭한다.

공동생활로 감염 위험성 높아
온라인 개학…학부모 발 동동

2019년 교육부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전체 특수교육대상자 9만2958명 중 지적장애, 정서행동장애, 자폐성장애, 학습장애, 발달지체를 가진 7만3629명이 바로 발달장애 학생이기 때문이다.

또 코로나19로 인해 취업시장마저 얼어붙었다. 이로 인해 장애인들도 일자리 채용서 불이익을 받는 형국이다. 장애인들을 위한 일자리가 많지 않은 데다 알선도 제대로 되지 않는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혔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취업 준비부터 근로환경까지 장애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일자리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권익위가 지난 2017년부터 2019년 10월까지 민원정보분석시스템에 수집된 장애인 일자리 관련 민원 945건을 분석한 결과 ‘일자리 확대와 취업 알선’을 요청하는 민원이 44.8%로 가장 많았다.

이어 국가지원 사업인 ‘장애인 일자리 사업’(26.2%), ‘장애인에 대한 직업훈련’(15.6%), ‘장애인 근로자의 근무환경 개선’(13.4%) 순이었다. 일자리 확대 및 취업 알선 관련 민원은 구직 어려움에 따라 장애인 일자리 다양화·확대를 요구하는 내용이 72.5%(307건)를 차지했다.

장애인일자리 사업과 관련해서는 사업에 참여를 희망한다는 내용(41.5%)이 가장 많았고, 참여기간이 끝난 후 정규직으로 전환을 요청하거나, 정규직 선발 시 경력으로 인정을 해달라는 요구가 21.0%로 뒤를 이었다.

장애인 직업훈련 민원은 훈련시설 기준 완화와 장애특성을 고려한 시설기준의 마련 등 장애인 직업훈련의 확대·개선 요구(37.0%), 장애인근로자의 근무환경과 관련해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임금·업무차별 등 직장 내 애로사항(39.8%)이 가장 많았다.

일자리는 
밀려 밀려

권석원 권익위 권익개선정책국장은 <뉴스1>과의 인터뷰서 “장애인 일자리 확대도 중요하지만 장애인 직업훈련 종사자나 교사의 자질을 향상하고, 장애인 채용 시 차별을 배제하는 등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이 동반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투표소 장애인 편의시설 보니…

21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된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사전투표소 앞에서 장애인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이들 단체는 ▲그림 투표용지 도입 ▲발달장애인 유권자를 위한 알기 쉬운 선거 정보 제공 ▲선거 전 과정서 수어 통역과 자막제공 의무화 ▲모든 사람의 접근이 가능한 투표소 선정 ▲장애인 거주 시설 장애인의 참정권 보장 등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참정권을 위해 선거관리위원회가 모든 조치를 이행할 것을 요청했다. 

현재 장애인이 후보를 살펴보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문턱이 높은 게 현실이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전체 투표소 중 20% 가까이는 이동 약자에게 접근이 어려웠다.

이에 2019년 투표소를 이동 약자의 투표소 접근 편의를 위해 ‘1층 또는 승강기 등 편의시설이 있는 곳에 설치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적절한 장소가 없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는다’는 예외조항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투표소에 온 장애인들을 실망하게 했다. 

실제 전국의 사전 투표소 3500곳 가운데 270곳이 1층도 아닌 데다 승강기까지 없어 장애인 접근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장애인 유권자가 가장 많은 서울은 사전 투표소의 21%가 장애인이 이용하기 불편한 곳에 있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그동안 장애인도 평등하게 차별받지 않고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변화된 게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시각장애인은 장애 유형을 고려한 점자 형태의 선거공보물에도 아쉬움이 많다.

점자 형태의 선거공보물은 묵자의 3배 분량이지만, 일반 선거공보물과 동일하게 매수가 제한돼 선거 정보 내용이 중간에 끊기는 등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다. 

점자투표 보조 용구에 대한 어려움도 함께 나타났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비닐장갑을 끼고 투표를 진행하게 되면서 점자투표 보조 용구가 의미가 없어진 셈이다.

서울시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서 장애인이 불편 없이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관내 2252개 전 투표소의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를 점검한 바 있다.

서울시는 투표소가 건물 2층이나 3층에 설치돼있으나 승강기가 없으면, 1층 주 출입구 옆에 임시 투표소를 설치토록 했다.

또 출입구 경사로가 급하거나 계단 높이 차이가 클 경우 임시경사로를 설치토록 하고, 투표 당일 장애인 안내 도우미를 배치했다.

한편 장애인 단체들은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지침 개정으로 투표 과정서 발달 장애인들이 가족과 활동 지원사 등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게 됐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기도 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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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