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이하 드라마협회)가 특정 배우에게 특혜를 주는 ‘배우 등급표’를 작성 배포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월12일 <스포츠 한국>은 “드라마협회가 배용준, 장동건, 이병헌, 이영애 등 한류스타와 최불암, 이순재 등 일부 중견, 원로배우들에게 특혜가 가능하도록 한 문서 ‘제작비 항목별 상한액 추천 안내’를 작성해 각 드라마 외주제작사에 배포해 파문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출연료 상한제’ 담은 문서서 “인센티브 가능” 예외 규정
배용준·장동건·이병헌 등 한류스타 실명거론 반발 예상
드라마협회 “영화로 치면 러닝 개런티 개념” 해명
개런티 상한제 논의 원점으로 돌리는 건 아닌지 우려
이 문서는 배용준, 장동건, 이병헌, 정우성, 비, 송승헌, 권상우, 원빈, 소지섭 등 일부 한류스타의 경우 ‘별도의 인센티브 지급 가능’이라고 적시했다. 또 이영애, 최지우, 송혜교, 박용하는 일본에서 투자 및 선판매된 경우 제비용 공제 후 제작사 재량으로 일정비율 인센티브로 별도 지급 가능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한류스타들은 이에 따라 그동안 드라마협회가 제시한 회당 출연료 1500만원 규제조항에서 탈피해 자유롭게 출연료를 책정할 수 있게 됐다. 제작비 상승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며 ‘출연료 1500만원 상한제’를 만들자던 드라마 제작 관계자의 주장을 스스로 뒤집는 모양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조연급 중견배우 출연료도 500만원으로 상한선을 제시했다. 하지만 최불암, 이순재, 신구, 강부자, 나문희, 김혜자 등은 ‘공로&원로배우’라는 수식어와 함께 예외규정을 적용해 회당 500만원의 출연료를 받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인정된다.
사실상 배우들 등급을 매긴것
배우와 소속사 불쾌감 드러내
드라마협회는 공문에서 특별대우를 받는 배우들의 기준을 “KBI(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자료에 의거 최근 몇 년 동안 드라마 일본 수출에 공로가 인정된 배우”라고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드라마 제작사 측은 “공문서에 특정 인물을 거론해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드라마협회는 이 문서에 배우 출연료 외에 극본 고료, 연출료, 편집료, 조명료, 조연출료 등을 명시하고 특정 버스임대업체 및 화환주문업체의 연락처까지 상세히 기록했다.
이러한 내부문건이 유출되자 이에 해당하지 않는 배우들과 그들의 매니지먼트사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 드라마협회가 방송 3사와 함께 배우들의 회당 출연료를 1500만원으로 정하는 ‘출연료 상한제’를 주장했으면서도 속으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라는 게 그들의 반발 요지다.
드라마협회는 지난달 5일 배우 박신양이 SBS 드라마 <쩐의 전쟁> 번외편에 출연하며 무리한 출연료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박신양에 대해 무기한 출연정지 결정을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배우들의 출연료 지급과 관련해 번외 조항을 만들어 공문화한 것은 논란의 여지를 남긴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사실상 배우들의 등급을 매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 대상으로 분류된 배우들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명단에 들지 못한 배우와 소속사의 반발을 살 수 있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겉으론 회당 1500만원을 지키자고 해놓고 드라마협회 스스로 이를 지키지 않는 분위기”라며 “이렇게 특혜규정을 두면 출연료 상한제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항변했다.
드라마협회 측은 논란이 불거지자 “해외 수출 계약과 관련해 실제로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는 인센티브를 주자는 뜻이다. 영화로 치면 러닝 개런티 개념이다”라고 해명했다.
드라마협회의 한 관계자는 “‘배우출연료등급’은 방송3사하고 서로 논의 해보자는 것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면서 “경제난 등 여러 가지 안 좋은 상황에서 서로 협력해보자는 의미”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난해 말 협회 이사회에서 ‘방송에도 출연료 등급이 있는 만큼 방송과 더불어서 규정을 두는 게 좋지 않냐’는 의미에서 작성된 것이다”라면서 “‘그렇게 해줬으면 하는 것’이지 강요는 아니다. 자칫 공정거래법에 위배될 수 있고 이는 ‘의견’에 불과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센티브 조항은 그 배우로 인해
해외에서 투자받을 수 있는 연기자
이 관계자는 또 “결국 이 문건의 의도는 ‘여러 가지로 드라마 제작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연기자들도 협력을 해야 하지 않냐’는 것이다”라며 “현 상황 하에서는 도저히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제작사-연기자가 ‘서로 협력’하자는 취지다”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센티브 조항’에 대해 “‘인센티브 조항은 그 배우로 인해 해외에서 투자 받을 수 있는 연기자’를 언급한 것이다”라며 “‘한류스타’를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가령 일본에서 송승헌 때문에 그가 출연한 작품을 사간다고 하면 송승헌은 인센티브를 받는 것이다. 출연료에 더해 인센티브를 준다는 것이지 출연료 자체를 올려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더불어 “해당 문건과 관련 방송사와 협의 중이다. 결국 방송-제작사-연기자가 서로 협력해 ‘제작비를 줄이자’는 것으로 강요는 아니다. 연기자들이 호응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라고 부연했다.
방송사 측 또한 말을 아끼면서도 몇몇 한류스타들에 대한 예외규정은 둬야한다는 점에 동의를 표하는 모습이다.
모 방송사 드라마국장은 “일본 시장 내에서 이름 석 자만 가지고도 드라마 제작을 위한 투자를 받을 수 있고 수출 계약까지 이뤄질 수 있는 한류스타라면 예외 규정을 적용해도 되지 않겠나”며 동의를 구했다.
이들 한류스타의 경우 국내 드라마 시청률이 제아무리 낮다고 해도 해외수출을 통해 그 이상을 벌어줌으로써 제작사에 수익을 남기는 만큼 개런티 상한선과 별개로 제비용을 공제한 후 제작사 재량으로 일정 비율의 인센티브를 적용해도 합당하다는 얘기다.
반대로 국내 시청률은 높지만 해외 수출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내수용 스타의 경우 특별대우를 해주기 힘들다는 부연설명이다.
그러나 한류 지형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고 2세대, 3세대 한류스타들도 급증하는 상황에서 언급되지 않은 배우들 중에도 파괴력 있는 한류스타들이 상당수 있는 만큼 이번에 언급된 리스트를 객관적이라고 유권해석하기 힘든 문제점이 있다.
더욱이 협회 측이 한류스타 이외에 최불암, 이순재, 신구, 김혜자, 강부자, 나문희 등 원로 배우 6명의 출연료는 500만원으로 별도로 책정, 특혜 의혹을 더하고 있다.
"투자·수출에 일조하는 스타는
예외 규정 작용해도 되지 않겠나"
한 연예 관계자는 “한쪽에는 채찍을, 다른 한쪽에는 당근을 빼든 협회의 이중 플레이가 모처럼 업계의 공감대를 얻기 시작한 스타의 개런티 상한제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