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푸르밀 2세의 수상한 회사 추적

전화도 안 받고…본사에 빌붙어 더부살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푸르밀 본사에는 오너 일가 회사 두 곳이 입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곳이 더 있었다. 현재 푸르밀 2세 시대를 열고 있는 신동환 푸르밀 대표이사의 개인회사다.
 

▲ 신동환 푸르밀 대표

유제품 전문기업 푸르밀은 범 롯데가 기업이다. 신준호 푸르밀 회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막냇동생이자 롯데그룹 부회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러나 신 명예회장과의 불화로 롯데햄·롯데우유 부회장에 머물렀다. 이후 신 회장은 롯데우유를 물적분할시켜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사명을 롯데우유서 푸르밀로 변경하면서 롯데그룹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

롯데우유
완전 독립

신 회장은 지난 2012년 푸르밀 주식을 자녀들에게 증여했다. 이전까지 자녀들의 지분이 없었던 관계로 2세 승계가 예고됐다. 바통을 이어받은 건 신 회장의 아들 신동환 푸르밀 부사장. 그는 지난해 푸르밀 대표이사로 승진해 2세 경영의 시작을 알렸다.

푸르밀 본사는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푸르밀 외에 ‘호정무역’(무역업)과 ‘대선건설’(건설업)이 들어서 있다. 각각 신 대표와 그의 여동생 신경아 푸르밀 이사가 대표인 회사다.

호정무역과 대선건설은 2007∼2008년 푸르밀 본사 부지에 안착했다. 물적분할 이후 해당 토지의 소유권이 푸르밀로 온전히 넘어간 때였다. 이들은 푸르밀과 임대차 계약을 맺고 사무실을 마련했다.


관련 내용은 푸르밀 감사보고서에 적시돼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호정무역은 2008년, 대선건설은 2007년 감사보고서에 등장한다. 이들은 ‘기타 특수관계자’로서 푸르밀에 임차료를 지급했다.

푸르밀은 최근 5년간 호정무역과 대선건설로부터 임대수익을 올렸다. 세부적으로 ▲2018년 2050만원 ▲2017년 2450만원 ▲2016년 2400만원  ▲2015년 2300만원 ▲2014년 2100만원 등이다.

신 대표 개인회사 푸르밀 사옥 주소
지점엔 엉뚱한 회사가…흐릿한 실체

눈길이 가는 건 푸르밀 본사에 회사가 한 곳 더 있다는 사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세양월드’라는 회사의 주소지가 푸르밀 본사 주소와 정확히 일치했다.

세양월드는 지난 1991년 세워진 식품 관련 도소매 업체다. 해당 법인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곳은 오너 2세 신 대표의 개인회사로 보인다. 신 대표는 지난 2010년 5월 세양월드의 사내이사와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그는 3년 단위로 두 직책을 중임했다. 최근 중임 시기는 지난 5월이었다.

신 회장과 신 이사도 각각 이름을 올렸다. 신 회장은 지난 2000년 3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세양월드의 이사였다. 현재는 어떠한 직책도 맡고 있지 않다. 신 이사는 지난 2005년 6월부터 이사와 기타비상무이사를 거쳐 사내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세양월드의 구성원은 오너 일가다. 주소지는 푸르밀 본사로 뒀는데 특수관계자로 볼 수 있다. 이곳 역시 푸르밀과 임대차 계약을 맺은 것으로 점쳐진다. 앞서 언급한 호정무역, 대선건설과 같은 맥락이다.
 

▲ (사진 위쪽)지난해 푸르밀 감사보고서. 대선걸설, 호정무역은 푸르밀과 임대차 계약을 맺고 임차료를 지급했다. (아래)세양월드 등기부등본 캡쳐본. 세양월드는 지난 2008년 푸르밀 본사로 이전했다. 신 대표는 세양월드의 대표이사와 사내이사를 맡고 있다. 현재 지점은 경기도 성남시 소재 오피스텔로 나와 있지만 다른 업체에 임대했다. 부동산 소유주는 세양월드다.

그러나 세양월드는 푸르밀 감사보고서에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호정무역 등의 경우와 상반된다. ‘실체’에 물음표가 찍히는 까닭이다.

세양월드는 비외감법인이다. 감사보고서를 작성하거나 공시할 의무가 없다. 그만큼 정확한 재무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어렴풋이 추정할 수 있었지만, 이마저도 20여년전 재무 상태였다.

둥지 텄는데
임차료는?

중소기업현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세양월드는 1999년 470억원 매출에 3억1500만원 순이익을 기록했다. 2000년에는 7억원의 매출과 3억원의 적자로 주저앉았다. 결국 2001년 매출은 ‘0원’까지 추락했지만 2억7600만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나이스기업정보에 따르면 세양월드가 0원의 매출을 기록할 당시 영업 외 수익은 11억3200만원, 영업 외 비용은 8억1300만원이었다. 이 중 수입이자는 200만원에 불과했다. 나머지 수익처는 확인할 수 없었다. 3년간 총 자산은 35억원, 27억원, 30억원으로 오르내렸다.

세양월드는 본점 외에도 한 개의 지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점은 경기도 성남 소재의 한 오피스텔.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소유주는 세양월드였다. 하지만 지점으로 등기된 주소지에는 다른 업체의 간판이 걸려 있었다. 영위하는 사업도 세양월드와 거리가 멀었다.

취재 끝에 세양월드 연락처로 전화 연결을 시도했지만, 통화음만 계속될 뿐 끝내 접촉할 수 없었다.

푸르밀 측은 최초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세양월드에 대해 “모르겠다”고 답했다. 관계자는 ‘세양월드와 푸르밀 주소가 같다’는 말에 “연락처를 남겨주면 잘 알고 있는 담당자에게 전달하겠다”고 응했다.

이후 접촉한 관계자는 “(푸르밀)본사 안에 세양월드가 있다”며 “(푸르밀과)같은 주소지를 쓰고 있고, 별도의 사무실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투자나 사업 구상에 대해 계획하고 있는 단계”라며 식품 관련 아이템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관계자는 ‘세양월드가 신 대표의 개인회사인 만큼 특수관계자로 보인다’는 질의에 “(특수관계자가)맞다”고 답했다.

정상 운영
계약 맺어

‘특수관계자가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면 푸르밀 감사보고서에 적시해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엔 “호정무역과 푸르밀이 임대차 계약을 최초로 맺었고, 세양월드는 호정무역과 임대차 계약을 맺어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푸르밀→호정무역→세양월드’로 이어지는 전대차 구조인 셈이다. 전대차는 임차인이 임차물을 제3자에게 임대하는 계약이다. 임대인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이 관계자는 “호정무역을 청산하면서 세양월드만 사무실을 쓰다 보니 재임대 방식으로 푸르밀과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며 “(세양월드가)관리비 등을 내고 있다”고 해명했다. 호정무역은 지난해 7월 해산했고, 같은 해 10월 청산 종결됐다.

그러면서도 “호정무역 청산 이후 몇 달 간 세양월드와 푸르밀의 임대차 내용이 감사보고서에 누락된 것은 맞다. 이후 보고서에 적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호정무역과 세양월드는 꽤 오래 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이들은 각각 1994년과 1991년 신설됐는데 설립 시기는 다르지만 두 회사는 처음과 끝을 함께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호정무역과 세양월드는 같은 주소지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총 5번의 이사를 갔는데, 두 회사 모두 같은 곳으로 짐을 옮겼다. 등기된 날짜도 같았으며 이들이 프루밀 본사로 들어온 시기도 동일했다.

사업 영역도 비슷하다. 두 회사의 사업 목적은 상당 부분 겹친다.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 FIS에 따르면 호정무역과 세양월드는 모두 ‘커피 및 차류 도매업’으로 분류돼있다.

전대차 형식으로 터 잡아
“보고서에 누락된 건 맞다”


사업 내용이 유사한 점, 두 회사가 설립 초기부터 최근까지 사무실을 함께 사용한 점 등을 미뤄 볼 때 연관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회사 관계자는 세양월드 지점으로 등기돼있던 오피스텔에 대해 “(세양월드가)오피스텔을 구입해 (다른 회사에)임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았던 세양월드의 전화번호를 문의했지만 “제게 연락을 주시면 된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현재 푸르밀 주요 주주는 신준호 회장(60.0%), 신경아 이사(12.6%), 신동환 대표(10.0%) 등이다. 손자 신재열·신찬열씨도 각각 4.8%, 2.6%의 지분을 쥐고 있다. 오너 일가서만 90%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10%는 우리사주조합(6.8%), 푸르밀 자기주식(3.2%) 등이다. 사실상 푸르밀은 오너 일가 경영 체제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소유 지분만 따져봤을 때 신 대표는 3대주주에 그친다. 반면 신 대표는 푸르밀 대표이사로 선임됐는데 후계 구도가 비교적 명확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물론 ‘완전한 승계’까지는 요원해 보인다. 관건은 푸르밀 최대주주인 신 회장 지분의 확보 여부다. 이를 두고 다양한 경우의 수가 언급된다.

우선 해당 지분을 직접 매입 할 수 있다. 다만 충분한 재원이 동반돼야 한다. 지분을 물려받는 방식도 있지만 상당한 증여세와 상속세가 부담으로 따른다. 개인이 아닌 회사를 활용할 수 있다. 신 대표가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가 신 회장의 지분을 사들인다면 푸르밀을 간접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화번호
사실상 없어

하지만 신 대표가 주인으로 있던 호정무역은 지난해 청산 절차를 밟았다. 여동생 신 이사의 대선건설서 신 대표는 1주의 주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 대선건설은 신 이사(72.62%)를 필두로 신 회장과 그의 부인 한일랑씨가 21.90%, 5.48%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