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최장수 총리’ 이낙연의 887일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11.05 09:06:52
  • 호수 1243호
  • 댓글 0개

내년 4월만 잘 넘기면 청와대로?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재임 887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최장수 총리가 됐다. 역대 총리 중 가장 안정감 있게 국정을 운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총리의 887일을 돌아봤다. 
 

▲ 최장수 국무총리 타이틀을 갖게 된 이낙연 국무총리

 

지난달 28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최장수 총리’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날은 재임 881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동안 총리실은 역대 총리들의 취임 1·2주년 등에 맞춰 보도자료를 배포했으나 이 총리와 관련된 보도자료 등을 일절 내지 않았다. 한껏 몸을 낮춘 셈이다.

안정적인 
국정운영

이 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는 길에 취재진과 만나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인데, 특별히 소감이라고 할 건 없다”면서도 “그런 기록이 붙었다는 것은 저에게 분에 넘치는 영광”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 총리는 문재인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이날부로 민주화 시대 역대 국무총리 중 재임기간이 가장 길었던 김황식 전 총리(880일)의 기록을 넘어섰다. 3공시절엔 정일권 총리(1964년 5월10일∼1970년 12월20일) 등이 장기 재임했지만, 당시는 대통령 단임제가 아니었던 만큼 지금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이 총리는 1기 내각이 마무리되는 시점의 소회에 대해 “나름대로 놀지 않고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보면 잘된 것도 있지만 아쉬운 것도 없지 않다”며 “지표상 나아지고 있는 것들이 있지만, 그래도 삶이 어려우신 분들은 여전히 어렵다. 그런 국민들의 고통에 대해선 늘 저의 고통처럼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국무총리로서 이 총리의 887일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후하다. 발탁 당시만 해도 ‘호남에 대한 배려’로 임명된 인사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취임 이후에는 국무총리로서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이 총리의 ‘사이다 답변’이 큰 주목을 받았다. 언론 및 정계에 오래 몸담은 경험을 토대로 야당 및 언론 등의 공세에도 매우 능수능란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대정부질문 때 야당 의원들의 질문 공세에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와 경륜을 보여주며 ‘품격 있는 총리’라는 인상을 심었다. 

민주화 후 김황식 887일 기록 넘어
‘사이다’ ‘군기반장’ 이미지 구축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문재인정부의 복지 공약을 비판하자 “복지 내용은 자유한국당 포함 5당의 대선 공약이었다”고 응수했다. 김 의원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문 대통령이)대화를 구걸한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말했다”며 문 대통령을 비판하자, 이 총리는 “의원님이 대한민국 대통령보다 일본 총리를 더 신뢰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라고 발언해 침묵하게 했다.

이 총리는 취임 일성서 “국민, 그리고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와 부단히 소통할 것”이라고 했던 약속도 충실히 지키고 있다. 과잉 의전 논란으로 빈축을 샀던 전임 황교안 총리(현 자유한국당 대표)와 달리 시민들에게 다가가며 낮은 자세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민과의 소통과 함께 언론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라디오 프로그램, TV 뉴스 생방송 등 형식을 가리지 않고 출연해 문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과 현안을 직접 설명하고 있다.

또 문정부가 ‘책임 총리’를 공언한 만큼, 기존의 대독 총리, 의전 총리를 넘어 각종 현안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중량감 있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지난해 첫 정부 업무보고를 문 대통령을 대신해 직접 주재했다. 국무총리가 정부 업무보고를 받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책임 총리를 공언한 만큼 이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대리 업무 보고를 시켰다고 해석했다.


이 총리는 외교나 국방을 제외한 민생과 관련된 일상적인 국정 운영의 총책임자는 자신이라는 생각으로 일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리스마로 
내각 장악

자신이 밝힌 소신대로 이 총리의 행보는 민생으로 정리된다. 취임 이후 이 총리는 조류 인플루엔자(AI) 확산, 가뭄, 수해, 살충제 계란 파동 등 숨 가쁜 민생 현장을 찾으면서 자신이 민생 현안의 최종 책임자임을 증명하고 있다. JTBC <썰전>의 박형준 교수는 “문재인정부가 허점을 보일 때마다 이 총리가 깔끔한 조정 능력으로 이를 수습해 민심의 실망이 적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 총리는 강한 통솔력과 카리스마로 내각의 ‘군기반장’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총리는 고위 관료들에게 업무 파악을 대단히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미숙한 모습을 보이면 바로 불호령을 날린다. 취임 초기 살충제 계란 파동 당시 미숙한 모습을 보여준 류영진 식약처장에게 “이런 질문은 국민이 할 수도 있고 브리핑서 나올 수도 있는데 제대로 답변하지 못할 거라면 브리핑을 하지 말라”고 직설적으로 질책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깐깐한 이 총리 때문에 장관들이 총리 주재 국무회의가 돌아올 때마다 ‘보고 노이로제’에 시달린다고 한다. 장관들 사이서 ‘대통령은 자모, 총리는 엄부’라는 말이 돌 정도다. 또 다른 일화로 이 총리는 국무회의서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무안한 미소만 짓던 A장관을 향해 “지금 웃음이 나옵니까?”라는 말 한마디에 A장관은 사색이 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총리는 일본을 방문해 과거사 배상 및 무역 갈등을 놓고 첨예하게 대치 중인 한일 간 대화의 물꼬를 트는 역할도 했다. 이 총리는 지난달 2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담관련 “일본의 태도가 변하지 않은 것도 있고 약간의 변화 기미가 엿보이는 것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지난달 22일부터 2박3일간의 방일 기간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 참석, 아베 총리와 회담 등 공식 일정만 14개를 소화했다. 비공식 정계·학계·언론계 인사 면담도 3차례 이상 진행했다.

특히 아베 총리와의 회담은 예정됐던 10분을 훌쩍 넘겨 21분간 진행됐다. 중일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는 아베 총리가 전날 왕치산 중국 국가부주석과 19분간 회담한 것을 고려하면 한일 총리회담이 상당히 비중 있게 진행된 셈이다. 또 일본 정부서 면담이 아니라 회담이라는 단어를 먼저 사용해 양국의 총리 만남을 격상시켰다.

한일 간 대화의 물꼬를 튼 이후에도 당장 내년 총선과 차기 대선을 앞두고 몸값이 금값이 되고 있다. 이 총리는 안정적인 국정운영으로 각종 여론조사서 여권의 차기 대선후보 1위에 올라 있다. 

다음 대권?
지지율 1위

지난달 30일 ‘알앤써치’의 차기대선주자 지지도 조사결과, 조국 파동 후 이 총리 지지율은 9월보다 1.8%포인트 오른 27.2%로 종전 최고치를 경신했다.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보다 5.6%포인트 높은 수치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이 총리의 향후 행보에 대한 관심이 높다. 청와대에선 이 총리를 대체할 만한 차기 총리 후보감을 찾는데, 애를 먹고 있다. 반면 여당은 이 총리가 당으로 돌아와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총리는 자신의 거취에 대해 말을 아꼈다.


이 총리는 “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화롭게 하겠다”고 언급했다.

이 총리가 최장수 총리로 등극하고,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로 꽉 막힌 한일 관계를 뚫는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된 데는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취임 초만 해도 문 대통령과 특별한 개인적 인연이 없는 ‘비문’인 이 총리가 문 대통령이 믿고 맡길 수 있는 국정의 오랜 ‘길동무’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없었다. 

하지만 이 총리는 ‘내각 군기반장’으로 국정 운영에 있어 안정감과 균형감을 보여 주면서 문 대통령의 ‘보완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청와대는 물론 당 안팎서 총리를 보는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다. 

반면 조국 사태 이후 위기를 맞은 여권에선 ‘이낙연 역할론’이 더욱 힘을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선 이 총리가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당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온다. 이 총리가 총선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에 대한 당내 요구는 제각각이다.

여권 차기 대선주자 1위…총선 역할론 힘 받아
선대위원장·험지 출마 등 여권서 러브콜 쇄도

우선 선거대책위원장 등 당의 간판으로 나서 총선을 진두지휘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이철희·표창원 의원이 ‘이해찬 대표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해찬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르는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와중에 이 총리가 함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나서면 민주당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총리가 더불어민주당의 험지에 직접 출마하거나 종로·세종 등 격전지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 총리가 높은 지지율로 여권 내 대선후보 1위 자리를 거머쥐면서 대중적 지지도가 높기 때문이다. 
 

▲ 고 이완구 전 총리

‘총선 차출론’은 이 총리의 향후 대권 행보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총리 체제로 치러진 총선서 민주당이 승리한다면 당내 세력이 약하다는 이 총리의 단점도 상쇄될 것으로 보인다. 비문이나 당의 혁신을 요구하는 소장파가 이 총리를 중심으로 결집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 선거 과정 인지도를 높일 수 있으며, ‘호남 출신 한계론’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다. 

정치권은 이 총리가 당으로 복귀한다면 어떤 시기에, 어떤 자리로 복귀할 것이냐를 두고 여러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이 총리의 향후 거취는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부터 내년 총선에 출마할 공직자들의 사퇴 기한인 내년 1월16일 사이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후임 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다. 총리 임명동의안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 의원 과반의 동의가 있어야 통과된다. 조국 사태로 인사청문회에 대한 부담감이 높아진 탓에 마땅한 후임자를 찾기 어려운 점도 있다. 문 대통령도 지난달 25일 “법무부장관 외에는 달리 개각을 예정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사퇴 언제?
총선 차출설

이 총리도 지난달 28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서 자신의 거취에 대해 “눈치 없이 오래 머물러있는 것도 흉할 것이고, 제멋대로 (처신)해서 사달을 일으키는 것도 총리다운 처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만큼 여당은 이 총리의 총선 전 당 복귀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