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허균, 서른셋의 반란 (13)허난설헌

박복한 인생

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시대에 흔치않은 인물이었다.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 천대받던 불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사고방식부터 행동거지까지 그의 행동은 조선의 모든 질서에 반(反)했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같을 수 없었던 그는 기인(奇人)이었다. 소설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허균의 기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파격적인 삶을 표현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그의 의지 속에 태어나는 ‘홍길동’과 무릉도원 ‘율도국’.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조선시대에 21세기의 시대상을 꿈꿨던 기인의 세상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광한전백옥루상량전’이라. 그래, 초희는 무엇을 보고 이 글을 짓게 되었느냐.”

“보름날 하늘에 동그랗게 떠 있는 달을 보며 마음속에 떠오른 감흥을 그리 그려보았습니다.” 

허엽이 다시 한 번 딸아이를 바라보다 글로 시선을 주었다.

그녀의 재능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


抛梁東(포양동) 어영차, 대들보 동쪽 향하니
曉騎仙鳳入珠宮(효기선봉입주궁) 새벽에 봉황 타고 진주 궁궐에 들어가
平明月出扶桑底(평명일출부상저) 날이 밝자 해가 동쪽 바다 밑에서 솟아올라
萬縷丹霞射海紅(만루단하사해홍) 일만 가닥 붉은 노을 바다 붉게 물들이네
 
抛梁南(포양남) 어영차, 대들보 남쪽 향하니
玉龍無事飮珠池(옥룡무사음주지) 옥룡이 하염없이 구슬 연못의 물 마시는데
銀床睡起花陰牛(은상수기화음우) 은 평상에 잠자다가 꽃그늘 짙은 한 낮에 일어나
笑喚瑤姬脫壁衫(소환요희태벽삼) 웃으며 아름다운 미녀 불러 푸른 적삼 벗게하네

抛梁西(포양서) 어영차, 대들보 서쪽 향하니
壁花零落彩鸞啼(벽화영락채난제) 푸른 꽃 시들어 떨어지고 오색 난새 우짖는데
春羅玉字邀王母(춘라옥자요왕모) 비단천에 아름다운 글씨로 서왕모 맞이하니
鶴馭催歸日己低(학어최귀일기저) 학 타고 돌아올 제 날 이미 저물었네

抛梁北(포양북) 어영차, 대들보 북쪽 향하니
溟海茫洋浸斗極(명해망양침두극) 북해 아득하여 북극성에 젖어드는데
鳳翼擊天風力*(봉익격천풍력흔) 봉새 날개 하늘 치니 그 바람 힘으로 뭍 높이 치솟아
九*雲垂雨氣黑(구소운수우기흑) 구만리 하늘에 구름 드리워 비의 기운 어둑하네

抛樑上(포양상) 어영차, 대들보 위쪽 향하니
曙色微明雲錦帳(서색미명운금장) 새벽빛 희미하여 비단구름 드리웠네
仙夢初回白玉床(선몽초회백옥상) 백옥 침상 위에서 신선 꿈 깨어
臥聞北斗回杓響(와문북두회표향) 누워 북두칠성 자루 도는 소리 듣네

抛樑下(포양하) 어영차, 대들보 아래쪽 향하니
八垓雲黑知昏夜(팔해운흑지혼야) 팔해에는 구름 덮여 어두운 밤이구나 
侍兒報道水晶寒(시아보도수정한) 계집종이 수정 주렴 차다 말하는데 
曉霜已結鴛鴦瓦(효상이결원앙와) 새벽 서리 원앙 기와에 맺혔네

그녀의 재능을 걱정하는 아버지
여자의 재능은 불운한 운명 의미

허엽의 입에서 가느다란 탄성이 새어나왔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균의 시선이 초희에게 향했다.

초희가 균의 시선이 거북스러운지 얼굴을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가느다란 미소가 흘러나왔다.

초희의 시선이 다시 아버지에게 향했을 때 천천히 허엽의 눈이 떠지고 있었다. 

“박복한지고.”

눈을 뜬 아버지의 입에서 순간적으로 흘러나온 말이었다.

말을 마친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바라보자 두 분의 시선이 한 군데서 마주쳤다.

허균이 잠시 사이를 두었다. 그 틈을 매창이 치고 들어갔다.

“나리의 누님 되시는 허난설헌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리께서 저와 같은 처지라니요.”

허균이 대답 대신 잔을 비워냈다. 

“아직 갈 길이 멀구려. 그러니 어서 잔부터 채워 주구려.”

매창이 호리병 대신 안주를 들어 허균의 입으로 가져갔다.


허균이 어색한 표정도 없이 덥썩 안주를 받았다.

“그 이야기는 천천히 하도록 하지요. 어쨌든 아버지께서 누나 문제로 많은 생각과 함께 힘들어 하셨다오. 마치 훗날 누나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하셨듯이 말이요.”

매창이 가느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오?”

“혹시 이옥봉이라는 여인을 아시는지요.”

허균이 이옥봉을 되뇌며 쓴맛을 다셨다.


“매창, 이옥봉을 내 누나와 비교하지는 마시오. 아니.”

매창이 채근하지 않고 다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요, 이옥봉이나 내 누나나 매한가지로 보아도 무방하지.”

말을 마친 허균이 매창이 채운 잔을 들어 한 번에 들이키고는 급하게 내려놓았다. ‘탁’하는 소리가 좁은 방안에 울려 퍼졌다.

이옥봉, 시대를 잘못 타고난 기구한 여인이었다.

서녀로 태어난 그녀는 시에 관해 천재적인 소질을 지녔었다.

당시 여자가 지니고 있는 재능은 결국 불운한 운명을 의미했고 특히 서녀로서의 운명은 예견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옥봉은 사랑 때문에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인 시를 쓰지 않기로 약조하고 조원의 소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솟구치는 재능을 속으로만 삭일 수 없었고 그를 밖으로 드러내는 순간 집에서 쫓겨난다.

자신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조원의 그릇된 사랑을 알아채지 못하고 종국에까지 서방님의 사랑의 손길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 기다림이 허망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생전 자신이 쓴 시를 띠로 만들어 배에 두르고는 강물에 몸을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여인이었다.

박복한 인생

막상 말을 꺼낸 매창이 아차 한 모양으로 허균 쪽으로 바짝 다가갔다.

“소녀가 괜한 이야기를 꺼내서…….”

“아니오, 조금도 괘념치 마시오. 이옥봉이나 나의 누나나 박복하기는 매한가지 아니겠소.”

결국 앞에 앉아 있는 매창의 경우도 한 가지 아니겠느냐는 이야기였다.

“나리의 누님 되시는 분을 어찌 저희와 같이 천한 여인들과 대등하다 하십니까?”

“천한 여인이라…….”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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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채 상병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취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신의 사건을 언급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한 게 핵심이다. 임 전 사단장과 연락이 닿은 인물들은 대부분 이해관계자다. 자칫하면 회유 정황으로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은 ‘채 상병 사건’의 핵심 피의자다. 수사외압 논란의 시발점이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직접 챙긴 인물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사건을 물밑에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다 왜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침묵 지키다… 임 전 사단장은 최근까지 복수의 해병대 간부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는 간부 A씨에게 “(공수처)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상황서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어서 연락하지 못했다”며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은 없었다. 다만 “모두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지만 아들을 잃은 채 상병의 유족 특히 모친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다. 진실을 밝힐 때까지는 고통스러워도 견딜 생각이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임 전 사단장은 A씨에게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하 대령)의 변호인이었던 김경호 변호사에게 내용증명을 보낸 것과 관련해 민·형사 소송을 준비 중이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뉘앙스로 연락을 취했다. 김 변호사가 자신을 고발한 게 무고에 해당하는지와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타 간부들에게도 비슷한 도움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간부는 <일요시사>와의 연락서 “난감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모셨던 사람이긴 한데 임 전 사단장에 대해 개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든 사람이 채 상병 사건 진상규명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전 사단장은 과거 박 대령에게도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바 있다. 자신은 물속 수색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수차례 했고 작전통제권이 육군 50사단장으로 넘어간 상황서 자신의 책임과 범위 내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며, 이에 대한 박 대령의 기억과 판단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공수처 수사 대상인데… 사건 연루자들에 연락 당시 임 전 사단장은 “상급지휘관(임 전 사단장)에게 작전통제권은 없지만, 부대를 방문해 전술토의할 수 있고 효율적인 작전이 되도록 유도할 권한은 있다”고 했다. 작전통제권이 없어 안전 책무가 없다면서도, 자신이 현장서 ‘수변을 수색하라’고 지휘한 건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런 이유로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직권남용 문제를 언급한 해병대수사단의 조사 결과 보고서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해병대 수사단은 임 전 사단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적시하지 않았다. 수사단은 ‘작전통제권과 상관 없이’ 임 전 사단장을 실질적 수색작전 지휘관으로 보고, 안전지침을 부대에 하달하지 않아 채 상병 순직사고가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임 전 사단장은 김 변호사와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김 변호사가 SNS에 게시한 글 중 허위 사실이 포함된 내용이 있다는 게 임 전 사단장의 주장이다. 그는 김 변호사에게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한계 속에서 해석과 이해를 거쳐 어떤 주장을 하는 것에 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악의적이라고 생각한다”며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문제점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발견됐고, 제가 사안의 진상을 밝히면서 그걸 뒷받침하는 자료를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허위가 여론을 조작하고 진실을 가리는 불의한 상황을 시정하기 위해 나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을 공수처에 세 번째로 고발했다. 이번 혐의는 군형법 제79조 무단이탈죄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임 전 사단장은 지난 1월 말 서울 노원구에 있는 화랑대연구소가 아닌 영등포구에 위치한 해군 관사 ‘바다마을아파트’에 거주하며 인접한 해군 재경근무지원대대 사무실로 출근 중이다. 마음 급해졌나…어떤 의도? 갑자기? 특검 압박 느꼈나 이 사실은 그가 여러 곳에 자신이 결백하다는 취지의 문서를 내용증명, 등기우편 등으로 보내면서 드러났다. 등기 봉투의 발신지는 화랑대연구소였으나 배송 조회 결과 실제 발신지는 서울 신길7동 우편취급국이었다. 임 전 사단장이 거주 중인 서울 관사 인근이다. 발송 시간도 대부분 일과시간 직전이나 일과 중이었다. 임 전 사단장은 언론을 통해 “연수 초기에 육사에서 주로 근무했으나 장거리 출퇴근 비효율적이라서 최근엔 해군재경대대서 근무 중이다. 근무 장소 중 하나가 해군 재경대대”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정책 연수의 일시와 출퇴근 시간 및 장소가 명령으로 특정된다. 인사명령의 지정된 장소서 지정된 출퇴근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인사명령이나 상급기관의 지휘관에게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최근 자주 번호를 변경하는 임 전 사단장의 핸드폰을 압수수색해 무단이탈한 장소와 상급지휘관인 해병대 사령관에게 정식으로 사전에 허가를 받았는지에 관한 진실을 밝혀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취지”라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행동이 증거인멸 시도로 볼 수 있다”며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며 같이 책임을 면하자는 회유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수처는 지난 1월부터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와 경찰 이첩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에 대해 강제수사를 착수해 왔다. 박 대령에게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것에서 임 전 사단장이 적극적인 책임 회피에 나섰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현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권서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자 조용했던 임 전 사단장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적절한 처신 한 해병대 간부는 “전우의 죽음 이후 형평성에 어긋나거나 석연치 않은 윗선의 처리는 진상규명 문제를 떠나 정치권 개입을 불렀다”며 “도의적 책임도 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일부 작자들의 행동으로 인해 해병대 전체의 명예가 실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 전 사단장은 <일요시사>가 사건 관계인에 연락한 이유에 관해 묻자 "사건 관계인에게 연락한 것은 사실 확인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