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노무현과의 대화’ 마지막 검사 김병현 “국민이 원하면 검찰은 따라야 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은 전국서 대표로 선정된 10명의 평검사들과 토론회, 이른바 ‘검사와의 대화’를 열었다. 이들 중 가장 오랫동안 현직에 남아있던 ‘마지막 멤버’ 김병현 변호사가 지난 7월말 검찰을 떠났다. '저승사자’ ‘독사’ ‘’. 검사를 수식할 때 자주 쓰이는 단어다.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면 피바람이 분다는 표현도 나온다.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검사의 이미지는 냉정하고 날카롭다. 살리기보다는 죽이는 데 더 익숙한 직업으로 묘사된다.
 

▲ 김병현 변호사

김병현 변호사는 범죄자를 단죄하는 것보다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상생을 꾀하는 검사로 살고자 했다. 그런 그를 가리켜 대학 선배는 너는 살검(殺檢)이 아니라 활검(活檢)”이라고 말했다. 활검은 김 변호사가 가장 명예롭게 여기는 별명이다.

죽이기보다
살리는 검사

지난 728일 김 변호사(당시 서울고검 검사)는 검찰 내부망에 흐르는 물처럼 떠나고자 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사의를 밝혔다. 그는 그동안 저를 알던 분들께 참으로 미흡했고, 저를 모르는 분들께는 더더욱 부족 했습니다라며 장점보다 단점이 많았던 검사 김병현, 인생의 일부를 함께 해주셨던 선후배님들께 작별인사를 고합니다라고 전했다.

지난달 26<일요시사> 회의실서 김 변호사를 만났다.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로 출근한지 이틀밖에 안된 새내기(?) 변호사 신분이었다. 검찰청서 법무법인으로 소속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변호사호칭이 조금 어색한 듯 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2526년 정도 일한 직장서 떠나올 때 처음에는 실감이 나질 않는다. 결단도 어려웠다. 시대적 흐름과 지나온 인생의 한 굽이에 대한 슬픔, 서운함,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사직의 변에 담았다.”


1993년 사법고시(35)를 패스한 김 변호사는 1996년 사법연수원(25)을 수료하고 인천지검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강력부, 특수부, 공안부를 거쳐 지휘라인에 이르기까지 검찰 내 요직을 넘나든 그는 각 부서를 거치면서 숱한 사건들을 담당했다.

특히 특수부 시절 경주서 일하면서 문화재 도굴 사건을 많이 맡았다. 사찰서 탱화를 훔치거나 분묘를 탐침봉으로 찔러본 뒤 부장품을 챙긴 도굴범들이 그의 손에 잡혔다. 우리 국보급 문화재를 일본으로 밀수출한 자들도 여럿 검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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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압수한 부장품 중에 도자기로 만든 소꿉놀이 세트가 있었다. 그걸 보는데 수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모가 아기를 위해 장난감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의 원형은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흙이 묻은 채 바닥에 놓인 그릇과 냄비를 보면서 한 인간이 겪어 왔을 삶의 편린이 떠올랐다.”

2006년 검사 시절 한 언론과의 인터뷰 사진 속 그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표정을 하고 있다. 14년 뒤 오랜만에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김 변호사는 그때보다 훨씬 편안한 얼굴로 솔직하고 담담하게 검사 시절을 회고했다.

옛날에는 웃질 않았다. 냉기가 흐른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살면서 세파나 부침을 겪고 나니까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어쩌면 이 시점서 검사를 그만두길 잘한 것 같다. 살인·강간·강도 이런 범죄는 정말 나쁘지만 몇몇 범죄에 대해서는 인간적으로 안쓰러운 감정을 느낄 때도 있다. 과거에 비해 약해진 것 같다.”

평검사 10명 중 가장 오래 현직
노사갈등 해결로 감사패 받기도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와는 달리 김 변호사는 검사 시절부터 가장 적은 수의 사람을 처벌하는 수준으로 사건을 해결해왔다. 이른바 예방적 공안개념이다.


가령 노사 갈등으로 파업이 일어났을 경우 과거에는 진압적 공안이라고 해서 위원장부터 사무국장, 직원들까지 관련자들을 한꺼번에 검거했다. 반면 예방적 공안은 평상시 노동계와 회사 쪽 관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전후 사정을 파악한 뒤 가장 불법적인 행동을 주도하는 사람만 검거하는 방식이다.

최소한의 희생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예방적 공안은 평소 사건 관련자들과의 대화가 전제돼야 한다. 김 변호사가 예방적 공안 개념을 주창할 때까지만 해도 검사가 노조 관계자와 대화하는 것을 불온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김 변호사의 예방적 공안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여러 차례 성과를 냈다. 울산병원, 성진애드컴, 골든브릿지 투자증권 등에서 불거진 노사갈등은 그의 손을 거쳐 해결됐다. 울산병원 사태 때는 노사 안정에 노력한 점을 인정받아 노조와 회사 양측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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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울산병원 노사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연속 파업 사태를 겪었고 2002년에는 노조지부장이 불법파업 혐의로 구속되는 등 노사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김 변호사는 구속된 노조지부장에 대해 최대한 선처하면서 파업 자제를, 지부장을 징계하려는 사측에는 용서를 주문하는 등 적극적인 중재에 나섰다.

갈등이 봉합된 이후에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복직된 노조위원장이 병원을 홍보하면서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노조서 사측을 상대로 정당한 투쟁을 벌이면서도 바깥으로는 우리 병원에 많이 와주세요라며 영업하고 홍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기뻤다. 말로만 하는 상생을 넘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공안, 내가 지향하는 방향이었다.”

2006<오마이뉴스>는 검찰 각 분야 중 이른바 으로 꼽히는 검사를 발굴하는 기획-한국의 검사들을 연재했다. 당시 김 변호사는 한국의 검사들 1에 뽑혀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변호사는 내가 지향하던 보편타당한 가치, 예방적 공안의 개념을 이해해준 게 아닐까 싶다“‘한국의 검사 1라는 타이틀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영광스러웠다고 전했다.

강력, 특수, 공안…
검찰 요직 거쳐

김 변호사의 소신은 기관장으로 근무할 때 빛을 발했다. 대전지검 공주지청장으로 근무하다 떠날 적에는 지역 시의원과 유명 시인이 그를 위한 송덕비를 만들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김 변호사가 극구 사양하면서 송덕비는 세워지지 않았지만 그가 지청장으로 근무하면서 보여준 진정성은 충분히 확인받은 셈이었다.

내가 (공주 지역에) 지망해서 갔지만 막상 가보니 많이 낙후돼있었다. 지청장에 부임하자마자 처음으로 한 일은 행사 때 지역 술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진로 소주 대신 공주 밤막걸리, 대전 소주를 마셨다. 벌금을 지역 실정에 맞게 조절하기도 했다. 양형기준이 있지만 대화를 통해 조율이 가능한 부분을 고려했다.”

예를 들어 시골 아줌마들끼리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다가 서로 상처를 입혀 벌금이 500만원이 나왔다. 시골서 500만원은 정말 큰돈이다. 이웃끼리 철천지원수가 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양쪽을 붙들고 따뜻한 말 한마디만 건네도 또 쉽게 풀어질 수 있다. 원칙서 벗어난 검사라고 비난 받을 여지는 있지만 내 생각엔 그게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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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는 게 우선이었다는 김 변호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공주 지역을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공주 지역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지역 관계자와 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 과정서 의견도 많이 냈다.

법조인은 법을 다루는 직업이지만 기본적으로 마음속에 긍휼함(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검사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긍휼함을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것이다.”


그는 존경받는 검사의 조건으로 영적 이해력’ ‘사회 인식력’ ‘시대 통찰력을 들었다. 영적 이해력이 없으면 무능한 검사가, 사회 인식력이 없으면 난폭한 검사가, 시대 통찰력이 없으면 국가와 민족에 해가 되는 검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소 희생으로
원하는 결과를

영적 이해력은 세상에 자신이 모르는 세상도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항상 이성적으로만 접근해서는 사건 해결이 어려울 수 있다는 조언이다. 뭐든 자신이 경험한 것만 가지고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영적 이해력은 타인의 내부까지 들어가서 심연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다. 그 밑바탕에는 사람을 긍휼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부부싸움처럼 극단으로 치닫는 감정을 달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검사는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사회 인식력은 균형감각과 비슷하다. 서울 시민과 시골 주민이 느끼는 벌금 500만원의 크기가 어떻게 다른지 깨닫는 문제다. 예를 들어 부부싸움 과정서 남편이 아내의 뺨을 때린 경우를 두고 어떤 검사는 어떻게 여자를 때릴 수 있느냐며 당장 구속해야 한다고 하는 반면, 또 다른 검사는 부부싸움에 왜 법이 관여해, 그냥 내버려 둬야지라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이것이 바로 사회 인식력의 차이다.

시대 통찰력은 시대의 흐름을 읽는 것이다. 시대마다 국민들의 흐름이 있다. 국민들이 원하면 검찰은 따라야 한다. 선출된 권력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정적을 제거해주는 것도 안 되고 반대로 검찰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해 권력화되는 것도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다. 국민을 계도하려 하거나 우리가 대한민국 유일한 정의의 보루라고 생각하는 것도 위험하다.”


김 변호사는 이순신 장군과 원균 장군 이야기로 말을 덧붙였다. 그가 생각하는 이순신은 형편없는 장군이다. 원칙에 맞춰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통솔하는 원균과 비교하면 이순신은 훌륭한 군인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이순신은 실제 군사훈련보다는 어민을 돕는 일에 몰두했고 <난중일기>에 나와 있듯 매일 같이 술을 마셨다. 하지만 이순신은 시대의 성웅으로 회자된다.
 

▲ 노무현과의 대화서 발언하는 김병현 당시 검사 ⓒ청와대

이순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바로 민심이다. 어민들은 자신들의 일을 도와준 이순신과 군사들을 위해 왜선의 경로를 알려줬다. 탐망선의 한계를 어민들의 신고로 극복한 것이다. 원균은 그걸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패배한 것이다. 검사 역시 국민들에게 존경받기 위해서는 영적 이해력, 사회 인식력, 시대 통찰력을 바탕으로 민심을 알아야 한다.”

김 변호사는 16년 전 노무현 대통령의 검찰개혁 시도에 한가운데 서 있었다. 검사와의 대화에 참여했던 10명의 검사들은 평생 따라다닐 수식어를 그때 얻었다. 당시 영상과 발언은 아직까지도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그는 문재인정부의 검찰개혁에 말을 아끼면서도 그때와 다른 분위기를 전했다.

예방적 공안 개념 주창해
검 민심 읽어야 존경받아

노무현정부 당시에는 기존 질서가 계속 유지되던 때였기 때문에 새로운 형식에 대한 생경함이 컸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검찰이 가진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이 구성원에게 전달됐고 이 과정서 검찰을 비판하는 민심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또 과거에 비해 조직이 방대해지면서 일체화된 행동양식이 나오기 어려워진 점도 노무현정부 때와 다른 부분이라고 본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당시 검사와의 대화에 참여한 검사들은 정치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많은 부분서 오해를 사고 있는 것과는 달리 참여한 검사들 가운데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들도 많았다”고 강조했다.

검사 시절에도 비주류로서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김 변호사는 검찰을 떠났지만 조직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을 잊지 않았다. 그는 흥하는 조직은 (사람의)능력을 보고, 쇠하는 조직은 인품을 본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좋다, 사람 괜찮다는 말에는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앞서 말한 이순신과 원균의 사례처럼 단점이 큰 사람은 역으로 장점이 큰 경우가 많다. 인사 과정서 이런 부분을 고려해 장점을 중심으로 사람을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변호사로 인생의 2막을 시작한 김 변호사는 아직까지 변호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 중이다. 하지만 검사 시절부터 고수해온 가치중립적이라는 가치관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가치중립적 지식인으로서의 삶과 그런 사람이 머무를 여지가 있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어느 쪽이든 객관적인 시각으로 비판할 수 있는 가치중립적 지식인은 어떤 의미서 항구적인 소수자가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김 변호사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 아시아인들끼리의 연대 등 공익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그의 관심은 검사 시절부터 쭉 이어져 온 것이다. 그는 다문화 학교를 두고 국가의 발전을 위한 전초기지라고 설명했다.

검찰이 정말 잘한 것 중에 하나가 법사랑과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만든 것이다. 부산동부지청장으로 근무할 때 이 두 가지를 아시아에 많이 전파하고 싶었다. 큰 줄기의 외교는 대통령이나 정부가 해야겠지만 법사랑과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다른 나라에 알리는 일은 검찰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이화여대와 협력해 안산관산중 다문화 학생들을 상대로 실시한 힐링캠프 모습   

김 변호사는 대검 형사과장 시절 소년범들에게 미술치료를 도입했고, 안산지청 차장검사 시절에는 다문화 청소년들을 위해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또 아시아적 가치라는 관점서 다문화 가정에 대한 보호와 지원에 관심이 있었다. 우리가 가진 우수한 시스템을 교육하고 수출해 아시아가 함께 공유하는 것을 꿈꿨다. 검사로서 그걸 완성하지 못하고 사직한 것이 참 아쉽다. 지금은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지구촌학교에 관여하고 있다. ‘아시아평화대학(가칭)’ 같은 것을 운영해 우리가 먼저 취득한 민주화 학습이라든가 여러 가지 아시아적 가치를 공유하고 싶다.”

아시아적 가치
공유·전파해야

검찰에 있을 무렵 좋은 검사를 꿈꿨던 김 변호사는 이제 사회로 나와 좋은 인간을 꿈꾼다.

검사 시절에는 당신 같은 검사가 있어서 다행이다. 대한민국 검찰에 당신 같은 검사가 있어서 좋다는 말을 듣고 싶었고, 실제 들었던 적도 있다. 정말 감동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제 남은 인생은 당신 같은 사람 있어서 좋다는 말을 듣고 싶다. 어느 한 부류의 사람에게라도 있어서 좋았다는 표현을 듣는다면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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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성수3지구 재개발 조합 복마전

[단독] 성수3지구 재개발 조합 복마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재개발·재건축 현장은 ‘내 집 마련’이라는 욕망의 집합체다. 사려는 사람, 팔려는 사람, 그리고 짓는 사람까지 집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촘촘하게 얽혀 있다. 조합은 사방팔방 뻗어있는 이권을 조율하고 사업을 끝까지 이끌어야 하는 책무를 지닌다. 문제는 이 과정서 발생하는 유착과 비리 의혹이다. 주택 재개발사업은 권력의 이동에 영향을 받는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2007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성수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53만㎡ 면적의 땅을 4개 지구로 나눠 재개발을 진행하다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되면서 사업이 지체됐다. 그러다 오 시장의 취임으로 다시 궤도에 오르는 모양새다. 3조 사업 14년째 성수전략정비구역은 압구정 아파트 지구 특별계획구역을 마주 보면서 한강 조망이 가능해 재개발 수혜 단지로 주목받고 있다. 그중 성수전략정비구역 제3지구는 성동구 성수동2가 572-7번지 일대로 기존 계획안에 따르면, 부지 11만4193㎡에 1852가구 규모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전체 사업비는 3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성수전략정비구역 제3지구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하 제3지구 조합)이 내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11월 조합장이 지위를 상실한 데 이어 각종 의혹이 불거져 복마전이 따로 없는 상황이다. 특히 조합장과 정비사업관리전문업자(이하 정비업체) 간의 유착 의혹이 화두로 떠올랐다. 정비업체는 정비사업 과정서 조합의 비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한 전문지식을 갖춘 사업자를 말한다. 대통령령이 정한 자본‧기술인력 등의 기준을 갖춰 시·도지사에게 등록한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은 제정 당시부터 ‘정비사업전문관리업 제도’를 도입했다. 조합원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업추진의 효율성을 도모한다는 취지다. 정비업체는 ▲조합 설립 및 정비사업의 동의 ▲조합 설립 인가 신청 ▲사업성 검토 및 정비사업 시행계획서 작성 ▲설계자 및 시공자 선정 ▲사업 시행 인가 신청 ▲관리처분계획 수립 등의 업무를 지원하고 대행한다. 정비사업의 A부터 Z까지 모든 업무에 관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3지구 조합은 2009년 10월 추진위원회의 승인, 2010년 5월 주민총회를 거쳐 N사를 정비업체로 선정했다. 이후 2018년 2월 조합 설립 인가를 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제3지구 조합 내부서 문제가 제기된 부분은 14년에 걸쳐 조합 업무를 대행해 온 N사와 역시 10년 넘게 조합서 일한 전 조합장 김모씨의 유착 의혹이다. 뉴타운 후보지 정비구역으로 오세훈 시장 취임에 재시동 김 전 조합장은 2010년 추진위 총무로 선출된 후 2016년 주민총회를 통해 추진위원장으로 뽑혔다. 2018년 창립총회서 조합장으로 선출됐지만 지난해 11월 도정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원이 확정돼 자격을 상실했다. 그사이 재신임 투표, 주민총회 등의 과정이 있었고 수차례에 걸쳐 법정 공방에도 휘말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김 전 조합장은 2016년 추진위원장으로 선출된 이후부터 지난해 말까지 ‘불사조’에 가까운 면모를 보이며 자리를 지켰다. 김 전 조합장은 창립총회(2018년)와 동시에 진행된 조합장 선거서 학력을 허위로 기재한 혐의가 인정돼 2021년 조합장 지위를 상실했다. 제3지구 조합 선거관리 규정은 ‘후보자 등록 시 제출 서류의 허위·변조·위조 등이 발견된 경우 당선을 무효로 한다’고 명시했다. 김 전 조합장은 후보자 등록 신청서에 지방 소재 ‘Y대학 졸업’이라고 기재해 제출했다. 또 Y대학 총장 명의로 된 졸업증명서를 3부 만들어 추진위원장과 조합장 후보 등록 등에 사용했다. 앞서 서울동부지검은 업무방해죄와 사문서위조죄·위조사문서행사죄 등으로 김 전 조합장에 각각 벌금 100만원과 7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이후 2021년 1심 법원은 해당 약식명령 등을 근거로 ‘조합장 지위 부존재 확인’ 소송서 김 전 조합장이 조합장의 지위에 있지 않다고 판시했다. 서울시가 진행한 조합 실태점검 결과도 조합장 지위에 영향을 미쳤다. 성동구서 2022년 2월28일부터 3월11일까지 열흘간 진행한 ‘성수전략정비구역 제3지구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운영실태 시·구 합동 기동점검’서 총 22건의 지적사항이 나왔다. 자금 차입 결국 사임 특히 성동구는 김 전 조합장이 총회 의결 없이 자금을 차입한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도정법 제45조(총회의 의결) 2항에 따르면 자금의 차입과 그 방법, 이자율과 상환방법은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성동구의 실태점검 결과에도 김 전 조합장은 2022년 10월 주민총회서 또다시 조합장으로 선출됐다. 하지만 총회 의결 없이 자금을 빌린 부분이 문제가 되면서 결국 조합장 자격을 잃었다. 김 전 조합장은 2022년 ▲총회 의결 없이 자금을 차입한 점 ▲자료 공개 거부 등 도정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두 혐의 모두를 인정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서 자료 공개 거부 혐의가 무죄로 바뀌면서 벌금 100만원으로 줄었다.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눈여겨볼만한 부분은 돈을 빌려준 주체가 정비업체인 N사였다는 사실이다. N사는 2019년 6월과 8월, 그리고 10월 각각 2000만원, 2000만원, 1000만원 등 총 5000만원을 제3지구 조합에 무이자로 빌려 줬다. 앞서 김 전 조합장은 2019년 2월에 5000만원, 4월에 3000만원 등 8000만원을 총회 의결 없이 N사로부터 차입한 사실이 확인돼 벌금 7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제3지구 조합이 총회 의결 없이 N사로부터 빌린 돈의 액수는 총 1억3000만원에 이른다. 김 전 조합장의 가족 일가가 제3지구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 등을 구입하는 과정서도 N사의 흔적이 등장한다. 재산 증식 내부 정보? 문제를 제기한 제3지구 조합원은 “김 전 조합장이 추진위원장, 조합장을 하던 시기에 아들과 딸, 사위 등이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를 사거나 도로를 증여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김 전 조합장의 재산이 늘어나는 과정에 조합의 내부 정보가 사용된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6년 전후로 김 전 조합장을 비롯한 가족 일가의 부동산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덧붙였다. 김 전 조합장이 추진위원장으로 선출된 시기와 맞물린다. 김 전 조합장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이모씨는 2018년 7월 성수동의 빌라 한 채를 1억9500만원에 매입했다. 등기부등본상 이씨의 주소는 김 전 조합장의 주소와 같았다. 흥미로운 대목은 2019년 1월 이 빌라가 송모씨에게 2억원에 팔렸는데 해당 인물이 정비업체 N사의 관계자라는 의혹이 제기된 점이다. 송씨는 한 달 뒤 해당 빌라를 2억1000만원에 팔았다. 김 전 조합장의 아들로 추정되는 이모씨는 2015년 1월 제3지구 재개발 지역에 위치한 아파트 한 채를 4억5750만원에 매입했다. 김 전 조합장의 아들은 현재 제3지구 조합의 대의원으로 이름이 올라있다. 김 전 조합장의 딸로 추정되는 이모씨는 2018년 11월 특정 인물로부터 성수동2가의 도로 일부를 증여받았다. 딸 이씨의 남편이자 김 전 조합장의 사위로 추정되는 김모씨는 2017년 1월 성수동2가의 한 상가 1층을 매입했다. 김씨도 제3지구 조합의 대의원 명단에 존재한다. 2018년 해당 건물에 근저당을 설정한 업체는 세입자 조사업 등을 하는 W사였다. W사의 과거 등기부등본상 주소는 제3지구 조합서 업무를 하는 법무사 사무소의 주소와 일치했다. 송사 휘말려도 계속 부활해 가족 일가 부동산 구입 의혹 제3지구 조합의 한 조합원은 “지금 드러난 것은 등기부등본을 뒤져 찾아낸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총회의 결의 없이 정비업체로부터 금전을 차입해 자신의 급여를 챙기고 가족 일가의 부동산 축재에 사용했다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며 “김 전 조합장은 대법원 확정 판결로 사임하면서도 조합원에게 단 한 마디의 사과도 없이 뻔뻔함의 극치를 보였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온 직후 김 전 조합장은 “2009년부터 지금까지 14년간 성수3지구를 위해 노력해 왔고 14년간 조합 운영을 투명하고 절약하였기에 조합장 자리서 내려오며 부끄럽지 않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에는 사무실을 얻어 ‘김○○ 사랑방’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주민과 부동산 관련 정보를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3지구 조합의 또 다른 조합원은 “김 전 조합장의 나이가 70대다. 컴퓨터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고 들었다. 그러다 보니 정비업체가 조합장을 바지사장으로 세우고 뒤에서 조합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말이 내부에 많다”며 “N사는 한남4구역재개발조합서도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계약이 해지된 업체”라고 주장했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한남재정비촉진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하 한남4구역 조합)은 지난해 정기총회서 N사와의 계약 해지 안건을 통과시켰다. 조합 설립 과정서 발생한 비위, 허위 견적서 제출, 금전 편취 혐의로 사기죄 확정 등이 이유였다. 한남4구역 조합은 2011년 N사와 용역 계약을 맺고 지난해까지 조합 업무를 함께 해 왔던 것으로 파악됐다. 한남4구역 계약 해지 제3지구 조합서 불거진 의혹은 현재 성동세무서, 성동경찰서 등에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문제를 제기한 조합원은 “전 조합장과 N사는 조합을 장악하고 감시 체계가 허술한 틈을 타 끊임없이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며 “이들의 비리는 민생침해 범죄인만큼 철저한 수사로 조합원의 피해를 막아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 조합장의 해명 “떳떳하다” 김모 전 조합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울분을 쏟아냈다. 14년간 조합을 위해 일했는데 근거 없는 모함으로 자신을 괴롭히려 든다는 것이다. 김 전 조합장은 자녀를 비롯해 사위 등 가족 일가가 재개발 지역에 아파트나 건물을 산 것은 인정하면서도 결혼을 할 무렵 본인들이 구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비업체 N사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정비업체는 재개발 사업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곳이다. 조합장이 됐지만 업무에 서툰 부분이 있어 정비업체 대표(송모씨)에게 도와 달라고 했다”면서도 “정비업체 직원을 따로 만난 적도 없고 부정적인 일을 한 것도 없다. 나는 떳떳하다. 떳떳하기에 아직 이 동네에 살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젊고 똑똑한 사람이 조합장 선거에 나와야 한다. 그런 분이 있다면 언제든 도울 것”이라며 “2010년 조합 총무로 시작해 14년 동안 조합 일을 보면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법원 판결로 사임하게 됐지만 조합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기사 속 기사> N사 대표의 해명 “우리는 을이다” N사의 송모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정비업체는 조합이 시키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정비업체가 조합장을 내세워 조합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내부의 의견에 강한 불쾌감을 표하면서 한 말이다. 조합이 갑, 정비업체가 을이라고 강조했다. 송 대표는 총회의 의결 없이 제3지구 조합에 돈을 빌려준 이유에 대해 “(김 전 조합장이) 조합 재정 상태가 너무 열악하다고 간곡히 부탁해서 무이자로 빌려준 것인데 그게 문제가 돼서 조합장님이 지위를 잃게 된 점은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합에 차입한 1억3000만원은 한 푼도 돌려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합장이 사임하는 등 조합 내부가 뒤숭숭한 것 같다는 말에는 “직무대행이 조합 업무를 보고 있고 우리도 정비업체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사업은 표류하지 않고 계속 진행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 업체가 맡고있는 재개발 지역이 20여군데 정도다. 한 군데서 문제가 생기면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불법을 저지를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남4구역 조합과의 계약 해지에 대해서는 “(한남4구역 조합) 조합장이 내가 불법적인 요구를 했다. 그걸 거절했더니 계약 해지를 한 것”이라며 “현재 민·형사상의 조치를 취한 상태다. 법으로 가려질 일”이라고 주장했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