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

1년3개월 후…끝나지 않은 성폭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해 1월 미국발 허리케인이 국내에 상륙했다. 이른바 미투운동의 등장이다. 미투운동은 한국 사회서 엄청난 파급력을 발휘했다. 각계각층 저명한 인사들의 과거 잘못된 행동이 쏟아져 나왔다. 단발성 폭로전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미투운동은 사회현상을 넘어 변화의 시발점이 됐다 . 그로부터 13개월이 지났다 .

▲ 서지현 검사

시작은 SNS 해시태그(#)였다. 201710월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나도 피해자’(Me Too)라는 단어에 해시태그를 달아 SNS에 공유했다. 미국서 시작된 미투운동은 유럽 등지로 광풍처럼 뻗어나갔다.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아픔을 알리고 타인의 슬픔에 공감했다.

해시태그 운동
사회 뒤집어

미국의 주간지 <타임>은 미투운동을 촉발한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2017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 <타임>은 이들을 가리켜 침묵을 깬 사람들 ’(The Silence Breakers)이라고 명명했다. 표지 사진에는 영화배우 애슐리 주드, 전 우버 엔지니어 수전 파울러,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등이 포함됐다.

<타임> 이 운동, 심판은 위대한 사회적 변화가 그러했듯이 개인의 용기 있는 행동과 함께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 이러한 심판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났지만 사실은 몇 해, 몇십년 , 몇 세기 동안 계속 끓어올랐다침묵을 깬 사람들은 하루 만에 힘을 모으고 거부 혁명을 시작했으며 그들의 집단적인 분노는 즉각적이고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고 설명했다.

실제 배우인 알리사 밀라노의 트위터 글로 시작된 미투운동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은 30 년간 영화 관계자들을 상대로 저지른 성추문이 드러나면서 몰락했다기네스 팰트로, 안젤리나 졸리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뿐만 아니라 영화 관계자들도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당한 성폭력 피해를 폭로했다 .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미투 바람은 현직 검사의 고백으로 시작됐다. 서지현 수원지검 성남지청 부부장검사는 지난해 1 월, 한 방송에 출연해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혔다. 서 검사의 고백으로 미투운동은 각계각층에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미투운동에 적극 지지입장을 밝히면서 핵폭탄급 이슈로 급부상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2우리 사회 전 분야로 미투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곪을 대로 곪아 언젠가는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문제가 이 시기에 터져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고 말했다.

이어 미투운동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피해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미투운동을 적극 지지한다 고 덧붙였다.

서 검사의 폭로로 미투운동은 법조계를 비롯해 사회 각 분야로 퍼져나갔다. 먼저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문단_ _성폭력) 운동이 진행 중이던 문단을 중심으로 문화예술계가 들썩였다.

폭발적인 파괴력은 줄었지만
사회 전반에 영향 끼치고 있어

일각에서는 2016년 문화예술계서 촉발된 성추문 폭로 사건을 우리나라 미투운동의 시초로 보기도 한다. 이후 정치권 , 연예계, 종교계, 교육계 등에서 연이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폭로가 이어졌다 .

상대적으로 잠잠했던 체육계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피해 경험을 고백하고 가해자로 지목한 코치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인지도가 높은 국가대표 선수에 대한 성폭력 사실은 사회적 관심을 높였다 .


미투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과정서 2차 가해, 거짓 폭로 등의 부작용이 일어났다 . 미투운동은 조직 내에 만연하게 퍼져 있지만 위계 문제로 인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성폭력 사례를 고발한다는 취지로 진행됐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가 가해자와 비교해 낮은 지위에 있는 경우가 많았고 , 이는 2차 가해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 성폭력 피해 경험이 내밀하고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증거 없이 피해자의 주장만 남은 사례도 있다. 피해자의 증언만을 판단 근거로 가해자가 지목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가 악의를 가지고 거짓으로 폭로하거나 이를 보도하는 과정서 엉뚱한 사람이 가해자로 지목돼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보는 사례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미투운동을 바라보는 시선은 긍정과 부정으로 엇갈렸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미투운동이 한국 사회에 잠깐 부는 바람 수준을 넘어섰다는 데는 공감했다. 거짓 폭로, 자극적인 보도 등으로 단발성 이슈에 그칠 것이라 생각했던 미투운동은 한국 사회에 천천히 연착륙했다.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부조리한 사실은 밖으로 꺼내 말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미투운동은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문재인정부서 양성평등 정책을 내놓는 데 미투운동이 장작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빚투’( 채무에 대한 폭로),‘공투’(공무원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 등 미투서 비롯된 신조어도 나왔다.

터지면 ‘끝’
유명인사 ‘훅’

이후 13개월이 흘렀고 미투운동 초기의 폭발적인 파괴력은 사그라졌다. 하지만 피해자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운동은 가해자에 대한 법적 조치 등의 방식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

피해자들도 언론 인터뷰나 시민단체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중이다. 실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에 대한 법적 조치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연극계 대부서 몰락한 이윤택 전 연희당거리패 예술감독은 항소심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1심보다 형량이 1년 추가됐다.

▲ 김기덕 감독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장판사 한규현)는 지난 9일 상습 강제추행 및 유사강간치상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돼 1 심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이 전 감독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을 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공판서 원심 중 일부 무죄로 판단한 선고를 각각 파기하고 피고인에게 징역 7 ,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 아동 ·청소년 관련 기관 10년간 취업제한에 처한다고 판시했다 .

1심 재판부가 무죄로 판단했던 연극 단원 A씨 강제추행 혐의와 추가 기소 사건인 안무가 B 씨 사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유죄를 인정하면서 형량이 늘었다.


지난해 2월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는 SNS를 통해 자신이 10 여년 전 지방 공연을 하던 당시 겪은 일을 공개했다. 김 대표는 지방 공연을 맡았던 연출가가 본인의 기를 푸는 방법이라며 연습 중이든 휴식 중이든 꼭 여자단원에게 안마를 시켰고, 자신도 여관방으로 호출당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안 갈 수가 없었다. 당시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 .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가 누워 있었다. 예상대로 안마를 시켰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가 갑자기 바지를 내렸다 고 주장했다.

이어 이제라도 이야기를 해서 용기를 낸 분들께 힘을 보태는 것이 이제 대학로 중간 선배쯤인 거 같은 내가 작업을 해나갈 많은 후배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글을 맺었다.

1심·항소심
판결 바뀌어

당시 김 대표는 이 전 감독의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대신 글 곳곳에 이 전 감독을 암시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 대표의 폭로 이후 이 전 감독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

이 전 감독은 기자회견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법적 처벌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지만 기자회견 리허설 논란이 불거지면서 비판 수위는 높아졌다.


정치권에서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재판 중에 있다. 안 전 지사는 차기 대선후보로 지목될 만큼 정치적 미래가 밝았지만 성추문 문제가 불거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3월 안 전 지사의 공보비서를 지낸 김지은씨가 방송에 출연했다.

▲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김씨는 안 전 지사에게 8개월에 걸쳐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안 전 지사는 지난 2월 항소심서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1심에선 무죄였다 . 서울고법 형사12(부장판사 홍동기 )는 피감독자 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3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5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도 명령했다 .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저지른 10차례의 범행 중 한 번의 강제추행 혐의를 제외하고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피해자 김씨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고 위력에 대해 폭넓게 해석한 점이 1심 판결과 달랐다.

또 항소심 재판부는 합의하에 이뤄진 성관계라는 안 전 지사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김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

심석희 선수에 대한 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는 항소심서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형사항소4(부장판사 문성관) 는 지난 1월 상습상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코치에 대해 징역 16개월을 선고했다. 심 선수는 조 전 코치에게 당한 성폭행 피해와 관련해 고소를 진행 중이다.

조 전 코치는 지난 20148월부터 201712월까지 태릉·진천 선수촌과 한체대 빙상장 등 7곳에서 심 선수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심 선수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피해 진술과 조 전 코치와 성폭행과 관련한 대화를 나눈 문자메시지, 심 선수의 동료·지인 등 참고인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성폭행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검찰에 송치했다.

가해자에 대한 법적 판결 나와
부정 여론에 방송서 사라지기도

경찰 관계자는 성범죄인 만큼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 ”며 피해자 진술, 복원된 대화 내용 등 여러 증거가 조 전 코치가 (심 선수를)성폭행했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어 혐의 입증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고 전했다.

조 전 코치는 성폭행 관련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은 성폭력 의혹을 제기한 방송사와 여배우 C씨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C씨는 2013년 개봉한 영화 <뫼비우스>의 촬영 당시 , 김 감독이 연기지도 명목으로 뺨을 때리고 사전 협의 없이 대본에 없던 베드신 촬영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김 감독은 여배우 C 씨와 <PD수첩>을 방영한 MBC 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C씨와 MBC <PD 수첩> 제작진이 허위의 주장을 방송에 그대로 내보내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 배우 고 조민기씨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김 감독이 여배우 C씨와 MBC <PD수첩 > 제작진을 상대로 각각 무고 혐의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건에 대해서는 모두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치열하게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예 자취를 감춘 이들도 있다.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울 만큼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 실제 방송계서 미투운동이 불거졌을 무렵, 제작진들은 가해자로 지목된 출연진이 나온 장면을 편집하고 대체자를 찾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짠돌이’ ‘통장요정 콘셉트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던 방송인 김생민은 지난해 4, 10년 전 성추행 사건이 알려지면서 모든 방송서 하차했다 . 10여개에 달하는 광고, 여러 프로그램에 메인으로 참여하던 김씨가 방송가서 자취를 감추는 데는 불과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이후 1년이 지났지만 김씨는 두문불출하고 있는 상태다.

학생 성추행 논란에 휘말렸던 배우 조민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2월 온라인상에 조씨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하는 글이 올라왔다 . 조씨가 청주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학생들을 성추행했다고 고발한 글이었다. 믿고 보는 배우, 연기파 배우로 불렸던 조씨는 가족과 함께 예능에 출연하는 등 친근한 이미지를 쌓고 있던 차였다.

차가운 
대중 시선

조씨는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서 가슴으로 연기하라고 손으로 툭 친 걸 가슴을 만졌다고 진술한 아이들이 있다 고 말하는 등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하지만 누리꾼의 비난은 계속됐다. 이뿐만 아니라 조씨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학생들이 추가로 나왔다 . 또 조씨가 학생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가 공개됐다.

당시 조씨에게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피해자는 20여명에 달했다. 충북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계는 조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었다 . 조씨는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대신 목숨을 끊었다. 조씨에 대한 미투 폭로가 나오고 불과 20 여일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jsjang@ilyosisa.co.kr>

 

<정정보도문> 영화감독 김기덕 미투 사건 관련 보도를 바로 잡습니다

해당 정정보도는 영화 <뫼비우스>에서 하차한 여배우 A씨측 요구에 따른 것입니다.

본지는 2019년 4월16일 <'미투'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여 "영화 <뫼비우스>에 출연했으나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가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했다는 내용으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뫼비우스> 영화에 출연하였다가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는 '김기덕이 시나리오와 관계없이 배우 조재현의 신체 일부를 잡도록 강요하고 뺨을 3회 때렸다는 등'의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을 뿐,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