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 자료제공: <월간골프>
  • 승인 2018.12.31 09:59
  • 호수 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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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디 오픈’의 역사

‘디 오픈(THE OPEN)’은 스승 알렌 로버트슨을 기리기 위해 톰 모리스가 주최한 세계 최초의 공식 대회로 1860년에 시작해 21세기인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전설의 디 오픈의 시작을 확인했다.
 

첫 닭이 울던 새벽 5시경. 잠을 설치던 톰 모리스 시니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그는 9살 된 아들 톰 주니어를 깨웠다. 오늘 벌어질 경기는 그에게 있어 너무나도 중요한 대회였다. 아들 주니어는 아버지의 캐디를 자처했다.

구름 관중

1860년 10월17일 7시, 스코틀랜드 서쪽 해변가의 프레스트윅(PRESTWICK) 골프장에는 이른 시각에도 불구하고 1만여명의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영국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골퍼 8명이 한판 대결을 벌이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이날 대회는 스코틀랜드의 골프지존으로 군림하던 알렌 로버트슨의 사망 1주기를 기리는 한편, 그의 죽음으로 공석이 된 영국 골프의 최강자를 가리자는 취지였다.

이 대회는 모리스 한 사람의 노력으로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의견차이로 스승 알렌으로부터 올드코스 공방에서 쫓겨나 프레스트윅에 둥지를 틀었지만, 그는 늘 알렌을 존경하고 있었다. 그를 추도하면서 대회를 주최했고 스승의 영전에 우승트로피를 바치고자 했던 것이다. 골프의 신 알렌이 사망한 뒤 당대 최고의 고수로 불리는 그로서는 원년 대회에서 우승을 해야 하는 막중한 의무가 있었다. 

조촐하게 태동한 이날 경기는 세계 최초의 공식 대회이자 21세기까지 이어져 오는 디 오픈의 시초였다. 비록 8명이 참가한 작은 대회였지만 조직위원회 등 격식은 갖추었다. 참가한 프로들에게 상금은 없었지만, 대신 프레스트윅 회원들의 경기에서 우승자에게 수여되던 모로코가죽으로 만든 붉은색 벨트가 트로피를 대신했다. 가죽 벨트는 다섯 개의 은색 버클 위에 골프 치는 장식이 새겨진 화려하고 값져 보이는 것이었다.
 

최초의 디 오픈이 명실공히 올드코스에서 열렸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생소한 프레스트윅이라는 곳에서 열린 이유는 모리스의 노력 때문이었다. 새로 발명된 고무공을 사용하다 가죽볼의 장인인 스승 알렌으로부터 쫓겨난 뒤 거취를 정한 곳이 에든버러 서남쪽에 위치한 프레스트윅 골프장이었다. 모리스는 이미 5~ 6년 전부터 스코틀랜드를 대표할 골프대회를 열 계획을 차분히 다져가고 있었다. 알렌의 죽음으로 파워를 잃은 올드코스에서는 설상가상으로 옥수수밭 개간업자들과의 고소 건으로 대회는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모리스는 잔디의 촉감, 벙커의 모래까지 모두 머릿속에 꿰뚫고 있었다. 직접 페어웨이의 잔디를 깎고 그린을 보수하면서 프레스트윅을 당대 최고의 골프장으로 만들어가고 있던 것이다.

유력한 우승 후보는 알렌의 그늘에 가려졌던 모리스와 윌리 파크였다. 윌리는 당시 모리스 못지않게 골프 명가로 알려진 파크패밀리의 선봉장이었다. 경기는 단 하루, 프레스트윅 코스의 12홀을 3번 도는 36홀 스트로크 방식이었다. 12홀의 총 길이는 3800야드로 18홀을 하루에 두 번 도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서 출발
1860년 시작 현재까지 경기

경기는 정오에 시작됐다. 파크는 앞 조에, 모리스는 뒷 조에 속했다. 홈구장의 모리스는 차분히 경기에 임했다. 그러나 경기 초반부터 팽팽한 접전으로 생각됐던 예상은 깨지기 시작했다. 윌리의 샷이 모리스보다 10야드 이상 더 나가곤 했던 것이다. 모리스는 라운드 내내 신들린 샷을 보여주는 파크를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12홀의 첫 라운드 결과는 파크가 55타를 쳐 58타를 친 모리스에게 3타나 앞섰다.

휴식 시간 없이 두 번째 라운드가 속개됐다. 쌀쌀한 스코틀랜드 특유의 바람은 샷을 방해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두 선수는 바람이나 날씨를 탓할 수 없었다. 혼신을 다해 만회한 모리스와 도망가려는 파크의 접전이 이어졌다. 2라운드 결과는 두 선수 모두 59타로 동타를 이뤘다. 여전히 점수는 파크의 3타 차 리드였다. 1만여명의 갤러리들도 지칠 줄 몰랐다. 열심히 두 패로 갈라져 응원에 열을 올렸다. 

주최 측에서 제공한 짧은 점심식사 후 마지막 3라운드가 시작됐다. 드디어 1, 2위인 파크와 모리스 두 선수가 한 조가 돼 출발했다.

39세의 모리스가 27세의 파크를 상대하기에는 체력적으로 벅찼다. 모리스는 183센티미터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크의 드라이버 샷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모리스는 대신 정교한 샷으로 맞섰다. 3라운드 결과 모리스는 59타, 파크는 60타를 쳤다. 모리스는 한 타를 따라잡은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윌리의 팬들은 환호성을 올렸다. 모리스는 58-59-59로 176타를, 파크는 55-59-60로 2타를 앞선 174타를 기록했다. 그렇게 골프지존의 자존심이 걸린 제1회 디 오픈의 우승벨트는 파크의 허리춤에 채워졌다.

영국골프 가리는 성지
모리스 노력으로 성사

모리스의 패배 소식은 전 영국으로 퍼져 나갔다. 알렌 이후 당대 최고라는 명성을 누리던 모리스는 자존심을 구겼다. 더구나 홈그라운드에서 가진 초대대회에서 졌으니 그 상심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날 대결이 끝은 아니었다. 향후 수년간 두 사람의 자존심 대결은 계속됐고 두 집안은 대를 이어 영국골프를 이끌어 나가는 골프명가로 거듭나게 됐다.

자존심

절치부심한 모리스는 2회째를 비롯해 훗날 디 오픈에서 총 4번을 우승해, 3번 우승에 그친 윌리 파크에게 잃었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었다. 또한 원년 대회의 우승보다 더욱 큰 것을 얻었다. 향후 10년간 오직 프레스트윅에서만 디 오픈을 치르는 자격을 얻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