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행각으로 부당하게 보험금을 타내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여섯 살배기 아들의 명의까지 이용해 억대 보험금을 탄 무속인이 덜미를 잡혔다. 이 무속인은 가족과 신도들을 동원해 70여 개의 보장성 보험에 가입한 뒤 고의로 접촉사고 등을 내 수시로 병원에 입원했다. 이렇게 해서 일당이 4년 동안 부당하게 얻은 보험금은 무려 4억7000여만원에 달했다. 이처럼 심심찮게 터지는 보험사기 관련 사건. 경기가 곤두박질칠수록 생계형 보험사기 사례는 더욱 늘어가고 있다. 문제는 보험사기가 단순히 보험사에만 손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진다는 것. 갈수록 교묘해지는 보험사기 백태를 들춰봤다.
병원 원장과 짜고 6살 아들까지 동원시켜 사기친 무속인
허술한 보험금지급 심사과정으로 인해 청소년까지 범행
무속인 남모(45·여)씨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보험회사들이 내놓은 거의 모든 보험상품에 가입했다. 70여 가지가 넘는 보장성보험이었다. 이유는 하나. 사기극으로 보험금을 타내려는 속셈이었다.
남씨는 남편 백모(37)씨를 비롯해 아들과 딸, 올케, 비서 등 일가족과 신도 등 11명을 동원해 보험에 가입했다. 한 달마다 납부한 보험금은 500만원에 육박했다.
70개 보험상품에 가입
본격적으로 보험사기를 이용해 돈벌이에 나선 것은 2005년. 남씨 일당이 사용한 수법은 간단했다. 고의로 가벼운 사고를 낸 뒤 ‘나이롱 환자’로 병원에 입원해 보험금을 타낸 것. 이들은 경미한 접촉사고를 내거나 계단 등에서 넘어졌다는 이유로 수시로 입원했다. 4년 동안 이들 일당이 입원한 날짜는 적게는 15일에서 많게는 407일에 달했다.
남씨의 사기행각에는 여섯 살 아들도 이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아들 명의로 12개 보험상품에 가입해 매월 102만원의 보험료를 납부했다. 그리고 유사한 방식으로 아들에게 상해를 입힌 뒤 3년 동안 109일간 입원을 시켜 3265만원의 보험금을 뜯어냈다. 이처럼 어린 아들까지 사기극에 가담시키며 일당이 벌어들인 돈은 모두 4억7000여만원.
수년 동안 사기극이 가능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병원원장까지 한패로 끌어들여 수월하게 입원을 했고 허위 진단서도 마음 놓고 뗀 것.
남씨와 함께 보험사기를 펼친 의사는 충남 천안 모 병원 원장 권모(59)씨다. 그는 우연히 남씨에게 점을 보러갔다가 이들의 사기행각에 휘말린 것으로 알려졌다.
권씨와 병원 사무장 이모(35)씨는 일당이 고의로 사고를 낸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병원으로 불러 20일간 입원한 것처럼 허위 진단서와 입원 확인서를 발급해 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그 대가로 120만원을 챙겼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지난달 22일, 상습사기 등의 혐의로 남씨와 사무장 이씨 등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남씨의 남편 백씨 등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일가족까지 동원한 이번 보험사기 사건이 드러나면서 또 한 번 급증하는 보험사기에 우려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기 혐의로 적발된 사람은 총 3만922명, 적발금액은 2045억2400만원으로 전년에 비해 각각 15.6%, 14.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청소년들이 연루된 보험사기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 지난해 보험사기로 적발된 청소년은 모두 578명. 이는 전년에 비해 83.5%나 증가한 수치다. 적발금액은 25억원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험사기 유형을 보면 보험금을 타기 위한 고의 또는 허위 사고가 249명으로 가장 많았고 사고 후 보험가입(174명), 운전자나 사고차량 바꿔치기(101명), 피해 과장(28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청소년들의 보험사기는 주로 오토바이 사고를 이용해 이뤄졌다. 사례 중 하나는 10대 26명이 중국집, 피자가게 등에 취업해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다 교통법규 위반차량을 골라 고의로 사고를 낸 뒤 치료비와 합의금 명목 등으로 34차례에 걸쳐 9000여만원을 뜯은 사건이다.
또 성인들의 사기행각에 이용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부모가 미성년자인 자녀를 이용해 고의로 상해사고를 내고 병원에 입원시켜 7300만원의 보험금을 타낸 사례 등이 그것이다.
성인들의 보험사기도 날이 갈수록 교묘하고 잔혹해지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멀쩡한 사람의 팔, 다리에 망치질을 해 상해를 입혀 보험금과 장애수당을 뜯어낸 엽기적인 사기일당이 적발됐다.
범행을 주도한 이는 보험사기 전과가 있던 염모(43)씨. 그는 노숙자, 신용불량자, 실직자 등을 모은 뒤 손쉽게 돈을 벌 방법이 있다고 유혹했다. 그리고 이들을 경기도 안산 등에 만들어 둔 가짜공장에 허위로 취업을 시킨 뒤 고의로 부상을 당하게 했다. 보험금과 장애인 수당을 받기 위해서였다.
염씨는 4대 보험 등에 가입시킨 가짜 직원들을 범행지시조, 환자역할조, 상해 작업조 등으로 나눠 범행을 시작했다. 이들 중 상해작업조는 망치 등의 둔기로 환자역할조를 맡은 이들의 팔과 다리 등을 내리찍어 부러뜨렸다.
뿐만 아니다. 환자역할을 맡은 이의 입에 수건을 물린 뒤 냉장고를 다리 위에 떨어뜨리기도 하고, 탁자에 다리를 걸치게 한 뒤 발로 밟거나 야구방망이로 무릎을 쳐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 이로 인해 실제로 장애인이 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일당이 약 1년 동안 받아낸 돈은 무려 45억원. 이들은 20차례에 걸쳐 엽기행각을 벌인 뒤 각종 보험금을 타 냈다.
피해자는 보험가입자에게
이처럼 비교적 쉽게 보험사기가 일어날 수 있는 배경에는 형식적이고 허술한 보험금지급 심사과정이 있다. 특히 산재보험의 경우 형식적인 심사만 거치면 보험금이 지급되고 재심 병원의 경우에도 치료를 한 사실이 없는 환자에게 외표 진단과 문진만을 한 뒤 소견서를 발급해주고 있어 범죄가 손쉽게 일어나는 것.
문제는 보험사기가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다수의 선량한 보험계약자가 손해를 본다는 사실이다. 보험개발원이 추정하는 보험금 누수액은 연간 2조원 정도. 이를 1가구당 부담액으로 환산하면 14만원에 이른다. 그러나 감독기관들이 날로 지능화되고 있는 보험사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피해가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