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은 겨울 산이 불륜남녀들로 가득하다. 어느 때부턴가 산이 ‘잘못된 만남’의 온상으로 떠오르면서 생긴 진풍경이다. 불륜커플이 맺어지는 곳은 다름 아닌 산악회. 일부 가정이 있는 산악회의 회원들이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등산을 하는 동안이나 뒤풀이 장소에서 마음이 맞은 이들은 주말마다 등산을 핑계로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이로 인해 뜻밖의 호황을 누리는 것은 산 인근의 모텔들. 산바람과 동동주 한잔에 들뜬 남녀들로 인해 숙박업소들만 쾌재를 부르고 있다. 불륜을 부르는 위험한 산행을 뒤쫓았다.
정초부터 전국의 산들이 등산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IMF 이후 급증한 등산인구는 주5일제의 정착과 경기침체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불황으로 인해 심신이 지친 이들이 산을 찾으면서 등산인구 증가에 한몫을 한 것. 게다가 한 해의 계획을 세우는 1월에는 등산객들이 느는 경향이 있어 새해를 맞은 산은 어느 때보다 북적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산을 오르는 이들이 있어 겨울 산은 또 한 번 몸살을 앓고 있다. ‘불륜의 장’으로 산을 택하는 사람이 그들이다.
등산하다가 불꽃 ‘화르르’
산을 찾는 불륜커플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아는 이들의 눈을 피해 마음 놓고 데이트를 하려는 남녀다. 언제 누구를 만날지 모르는 도심을 떠나 한적한 산속에서 불안감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산악회에서 만나 눈이 맞은 커플이다. 등산인구가 늘면서 자연스레 산악회도 증가했는데 이 모임 속에서 불륜사이로 발전하는 남녀가 적지 않다. 심지어 이성을 만나려는 의도를 가지고 산악회에 가입하는 이들도 생겨나는 실정이다.
물론 건전한 산행과 만남으로 운영되는 산악회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부 불륜을 조장하거나 방관하는 산악회가 있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주말마다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등산을 한다는 A(45)씨도 산행이 아닌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산을 오른다고 한다. 1년 전 직장동료의 권유로 모 산악회에 가입한 그는 등산보다는 낚시를 좋아했다. 그를 산으로 이끈 것은 동료의 한마디였다. 산악회 회원 중 예쁜 미시들이 많고 잘만 하면 재미도 볼 수 있다는 솔깃한 말이었다.
반신반의하며 산악회에 가입하고 첫 등반을 하던 날, A씨는 회원들 간에 흐르는 미묘한 애정전선을 느꼈다고 한다. 모두 어울려 등산을 하고 점심을 먹으면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남녀들이 있었던 것.
이들은 마치 부부처럼 서로를 챙기면서 다정하게 산행을 즐기고 있었다. 산에 왔다고 하기엔 남녀 모두 한껏 멋을 낸 옷차림이었다. 커플이 아닌 사람들 가운데에는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작업을 거는 이들도 있었다.
일부 산악회 남녀, 등산하다 불륜관계로 발전 산 속 애정행각
인근 모텔 주말, 낮 시간 불륜커플로 북적북적 불황 속 성업 중
경사가 심한 곳을 오를 때면 여성회원의 손을 잡아준다거나 생수병을 따서 건네는 등 과도한 호의를 베풀며 노골적인 관심을 표하고 있었던 것. 이들 가운데는 산을 오를 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던 남녀가 내려올 때는 손을 잡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남녀 간에 튀는 불꽃이 절정에 달한 것은 하산 후 가졌던 뒤풀이 자리에서였다. 노곤한 몸에 동동주 몇 잔을 들이킨 회원들은 산에서의 수줍은 모습은 벗어 던지고 점찍어 둔 이성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기 시작했다고. 급기야 눈빛을 교환하고 자리를 빠져나와 모텔로 직행하는 회원들까지 있었단다.
이로써 말로만 듣던 산악회의 실체를 알게 된 A씨는 서너 번의 산행 후 마음에 드는 여자회원과 불륜관계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은 또 다른 회원과 연인사이가 되어 주말마다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고 전했다.
부부와 불륜커플을 구별하는 방법은 도심의 거리나 산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손을 꼭 잡고 다정하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등산하는 이들은 불륜남녀일 확률이 높다. 반면 5m 이상 거리를 두고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조용히 산을 오르는 남녀는 대부분 부부다.
그렇다면 왜 남녀들은 유독 산에서 쉽게 바람이 날까. A씨는 여러 가지 요소가 합해지면서 남녀들이 눈이 맞는다고 말했다.
그중 하나는 상쾌한 산 공기가 회원들의 마음을 열게 한다는 것. A씨는 “산악회 회원들은 가정이 있는 40~50대가 대부분인데 젊은 층에 비해 스트레스를 해소할 통로가 없던 이들이 긴장감을 풀면서 일탈행위를 쉽게 저지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A씨는 또 등반과정에서 생기는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남녀 간에 정분이 나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같은 목표인 산 정상을 향하면서 동시에 가쁜 숨을 몰아쉬고 땀을 흘리면서 동지의식이 생기고 자연스레 이성간에 애정이 싹튼다는 논리다.
남녀가 눈이 맞는 데는 술을 빼놓을 수 없다. A씨는 “등산을 하다 중간쯤에서 동동주를 한잔 하거나 하산 후 뒤풀이에서 술을 마시는 등 등산을 하고 나면 으레 술 한 잔을 걸치기 마련”이라며 “안 그래도 산바람에 취해 묘한 기분인데다 술기운까지 도는데 누군들 이성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겠느냐”고 털어놨다.
이처럼 갖가지 이유로 불고 있는 불륜 바람. 그 징후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챈 것은 인근의 모텔주인들이다. 근래 들어 부쩍 주말 낮 손님이 늘었기 때문이다.
경기도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B씨는 “얼마 전부터 갑자기 토요일과 일요일 낮 손님 중 등산복 차림을 한 손님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미사리, 양수리 등 불륜남녀들의 메카로 소문난 지역 인근에서 영업을 하고 있어 불륜커플들을 수도 없이 봐 왔는데 최근 들어 새로운 현상이 생겼다고.
B씨는 “중년의 남녀커플들은 평일 낮 시간대에 말끔한 정장차림으로 모텔을 찾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주말 낮 시간대엔 거의 손님이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주말 오전 11시쯤부터 등산복을 입은 커플들이 대실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렇듯 산이 부적절한 남녀관계를 만들어주는 온상으로 전락하자 볼멘소리를 내는 것은 순수한 목적으로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등반하기 위해 산악회에 가입했을 뿐인데 배우자나 주변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것.
등산을 취미로 갖고 있는 이모(47)씨도 피해자 중 한 명이라고 호소했다. 이씨는 10여 년 전부터 산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모임을 만들어 등산을 하고 있다.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2박3일 코스로 외박까지 하며 등산을 하는데, 그때도 전혀 의심하지 않던 이씨의 부인이 변한 것은 최근이다. 등산하면서 바람피우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들은 후부터다.
“등산하러 간다니까!”
그후 그의 부인은 ‘어느 산으로 가느냐’부터 ‘누구와 가느냐’, ‘여자 회원은 없느냐’, ‘혹시 다른 곳으로 새는 것 아니냐’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따지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산에 가는 재미까지 반감됐다고 한다. 친구들과 산에만 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시시각각 휴대폰으로 사진까지 찍어 전송하는 지경에 이르자 이씨는 산에 가는 횟수를 대폭 줄였다고 한다.
이씨는 “그동안 산에서 수 없이 많은 불륜커플들을 보면서 한심하단 생각을 해왔는데 그 사람들 때문에 내가 괜한 오해를 받아 좋아하는 산도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 억울하다”며 답답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처럼 어느 곳보다 순수해야 할 산마저 부적절한 관계를 갈망하는 이들로 인해 시름하고 있다. 새해가 밝아도 사그라질 줄 모르는 불륜공화국의 씁쓸한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