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이 심상치 않다. 정치 활동의 깃발을 들었기 때문이다. DJ는 최근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등 야3당의 통합을 제안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새로운 통합야당의 대표로 추대할 것이라는 설이 정가에 나돌고 있다. 여기에는 노무현계의 386세대, 김근태, 이종걸 등의 민주연합세력과 강기갑의 민주노동당이 합세할 것으로 예상돼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DJ가 제안한 새로운 정당의 창당이 실현될 경우 정치권은 범야권의 재편성이 되는 셈이다.
DJ는 지난날 신민+민주 야권통합으로 야권의 천하통일을 한 적이 있다. 현재 민주당은 야당으로서의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가의 분석이다. 정동영, 손학규 이후 민주당의 지도자 부재라는 평가와 함께 이대로라면 한나라당의 독주를 견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호남에서마저 민주당이 제1야당으로서의 제몫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앞으로 있을 4월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도 까딱하면 참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야당 민주당의 위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과거 야당의 역사는 사실상 통합·분당·합당의 악순환을 되풀이해왔다. 이에 따라 이번 야권 통합이 단순한 위기의식 명분에 의한 통합에 그친다면 얼마가지 않아 다시 분열하는 사태를 빚게 된다는 것이 정가의 일치된 견해다. 여기서 DJ의 큰 정치솜씨가 어떻게 발휘될 것인 지가 문제다.
야당과의 협조 요구
‘뭉쳐야 산다’ 강조
DJ는 노벨상 수상 8주년 기념강연에서 어느 때보다 강한 목소리로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정부에 6·15와 10·4 공동 선언과 측근 인사를 북한에 보내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실현하고, 3대 국가적 위기 극복에 야당과의 협조를 요구했다.
야권 통합의 물꼬를 튼 것은 DJ의 ‘뭉쳐야 산다’는 한마디였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1월27일 방북 후 자신을 예방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와 회동에서 “야당이 뭉치고 힘을 합쳐야 한다”면서 구체적으로 ‘민주연합’과 2010년 지방선거에서 ‘후보연합’을 거론했다.
DJ는 강 대표에게 “숨을 길게 쉬어야 한다. 망원경 같이 넓고 멀리 보고 현미경처럼 깊고 좁게 봐야 한다. 뭉치고 힘을 합치면 우리 국민이 도와줄 것”이라고 통합을 권했다.
DJ는 “지금 이명박 정부가 태도(강경 기조)를 바꾸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우리 할 일을 제대로 해서 지지율이 올라가야 정부의 대북정책도 바꿀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단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반대’를 연결고리로 야당이 뭉쳐야 야당도 여당의 일방 독주를 견제할 수 있다는 주문이었다. 모든 민주평화-진보개혁 세력이 작은 노선의 차이와 해묵은 감정을 접어두고 민생과 민주를 위해 한데 뭉치라는 것이다.
지난 11월30일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이 ‘남북관계 위기 타개를 위한 비상대책회의’를 결성하고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초당적으로 대처하기로 한 데는 DJ의 메시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는 시각이 대세다.
DJ는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의 위기, 경제 전반 특히 서민 경제의 위기, 남북 관계의 위기 등 3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면서 “우리 모두 큰 경각심을 가지고 이 3대 위기의 극복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명박 대통령은 6·15, 10·4 두 개의 선언의 수용을 전제로 신뢰할 수 있는 측근을 북한에 보내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를 실현시켜야 한다. 남북관계가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 냉전시대로 돌아간다면 남북 양측이 모두 파멸적인 큰 타격을 받는 길”이라고 경고했다.
DJ는 이명박 정부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한 이행을 놓고 북한과 갈등을 벌이면서 남북 경색국면이 심화되고 있는 데 대해 “정권이 바뀌었어도 전 정권에서 이룩된 권리와 의무는 그대로 승계하는 것이 국제적 원칙”이라며 “이명박 정권은 당연한 의무로써 이 두 개의 선언을 공식 인정해야한다”고 말했다.
DJ는 “비록 늙고 힘없는 몸이지만 오늘의 위기를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이 대통령이 원하면 함께 무릎을 맞대고 남북문제를 논의할 용의도 있다”며 “6자회담과 병행해서 남북 간의 대화가 재개되고 서로 주고받는 협력이 이루어지면 한반도 전체는 물론 우리 한국에는 튼튼한 평화가 정착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안전과 경제발전을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DJ는 지금의 경제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경제협력 담당자들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며 현 정권은 정부 정책의 초점을 중소기업 서민 중산층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재정이 중소서민층으로 돌아가야 하며 사회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도 역설했다.
DJ는 1997년 IMF 경제 위기를 맞아 카드 남발 극약 처방을 했지만 나름대로 경제회복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임동원 전 통일원장관은 6.15 공동선언이후 남북관계가 안정됨에 따라 외국의 대한 투자가 이뤄져 경제위기를 극복했다고 주장했다.
DJ는 “남북은 지난 10년과 같이 대화와 협력의 관계를 하루 속히 복원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DJ는 노벨평화상 수상 8주년을 기념해 김대중평화센터와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이 공동 개최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강연회’에서 “오늘의 남북관계 위기를 보고만 있을 수 없으며 민족 화해와 평화적 통일을 위해 있는 힘을 다 바쳐 헌신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위기 극복 해결책 제시
“남북관계 물꼬 터야” 강조
이어 그는 “이명박 대통령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수용을 전제로 신뢰할 수 있는 측근을 북한에 보내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를 실현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그는 “이명박 정권이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선 6·15와 10·4 선언에 대한 이행을 다짐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하다”며 “정권이 바뀌었어도 전 정권에서 이룩된 권리와 의무는 그대로 승계하는 것이 국제적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더욱이 그는 “대북 정책에 성공하려면 6자회담과 병행해 남북관계가 호전되어야 한다”며 “6자회담의 지속과 오바마 정권의 등장 등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 대화로 해결하려는 조류에 적극 대응해 나가지 못하면 1994년 제네바회담 당시 겪었던 통미봉남식의 고립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DJ는 “이명박 대통령과 무릎을 맞대고 남북문제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면서 “이 대통령은 신뢰할 수 있는 측근을 북한에 보내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실현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DJ는 설에 앞서 특별강연 연사로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미국 대사(현 미국 에모리대 명예총장)와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전 워싱턴 포스트 기자), 이토 나리히코(伊藤成彦) 일본 중앙대 명예교수,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등 4명이 초청됐다.
레이니 전 주한 미대사는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면 부시 행정부가 몇 년간 추진한 것보다 더욱 급진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미국은 북한 정권에 대해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할 것이란 게 바로 희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미관계 진전을 위한 방법으로 평양 특사 파견이 한 가능성일 수 있다. 헨리 키신저, 빌 페리, 샘 넌 같은 분들이 떠오른다”고 구체적 이름을 거론했다.
그는 6자회담과 관련해서는 “오바마 정부는 6자회담 체제에 더 큰 권위를 부여할 것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임동원 전 장관은 “대북 정책을 펴는 데 있어 오바마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엇박자를 내선 절대 안 될 것이다. 나중에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쫓아가는 것보단 남북 관계의 주인인 우리가 오바마 정부와 긴밀히 협조해 대북관계를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미국의 페리 조정관과 함께 평화구축을 위해 노력하는 데 있어 우리가 주도했던 경험을 살려야하지 않겠느냐”며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전향적인 변화가 있어야함을 강조했다.
오버도퍼 교수는 현재의 6자회담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내놔 주목을 받았다. 오버도퍼 교수는 “이곳 회의장만큼이나 큰 방에서 6명이 서로 얼굴을 보면서 회담을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어떤 것이든 합의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6자가 다 모여서 회담을 한다면 바벨탑이 무너지듯 회담이 무산될 가능성이 많다”고 회담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 그는 “2자회담이나 3자회담을 통해 당사자가 합의를 진전시키고 이를 6자 회담이 승인하는 형식으로 가야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나리히코 명예교수는 “6자 회담의 역할은 곧 끝날 것”이라며 6개국 회의 구성을 제안하면서 “6개국 회의의 의장직을 김대중 대통령이 맡도록 요청하면 어떻겠느냐”라고 주장해 참석자들의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어 그는 “전 세계에서 전체 핵무기가 금지되어야 할 시점이다. 유엔 총회가 소집되어 모든 핵무기 폐지를 위한 결의안이 채택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강연회에 참석한 국내외 학자와 각계인사 1000여 명은 손숙 전 환경부장관의 선창으로 ‘자유 번영 평화 통일을 위한 위대한 국민승리’ 결의문을 채택하고 민주주의 위기에 대해 “어떠한 정권도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 없으며, 우리 국민은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참석자들은 경제위기와 관련해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정부 재정이 중소 서민층으로 돌아가게 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진정한 경제발전이 있다”고 주장했다.
남북관계 문제에 대해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겠다고 선언해서 남북 간 대화를 복원시켜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우리 경제의 번영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우리 국민들은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한국전쟁과 분단의 상처 속에서도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했고, IMF 외환위기를 이겨냈고, 남북화해협력 시대를 열었다”며 “위기를 이겨내고 자유와 번영, 평화와 통일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주의 위기론 대두
6·15, 10·4 이행 선언
한편 행사위원장을 맡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개회사를 통해 “미 부시 대통령이 오랜 대북 강경정책을 바꾼 데 이어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는 더욱 적극적인 대북외교를 다짐하고 있는 시점에서 유독 이명박 정부만이 때 지난 강경노선과 북한 무시 정책으로 한반도 평화와 남북공영의 호기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의견들을 보면 DJ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역설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를 입증하듯 DJ는 “그간 온갖 박해와 참을 수 없는 중상모략을 견디면서 결코 포기하지 않고 남북간의 화해와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서 일생을 바쳐왔다”면서 “이제 비록 늙고 힘없는 몸이지만 오늘의 위기를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제 생명이 있는 한 민족의 화해와 평화적 통일을 위해서 있는 힘을 다 받쳐 헌신하겠다”고 다짐했다. 어쨌든 DJ의 정치 활동 재개가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